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 제2장
《전쟁과 평화》 · 제10권 1812년

제2장

《전쟁과 평화》 제10권 2장 삽화

아들이 떠난 다음 날, 니콜라이 공작은 마리야 공작 영애를 서재로 불렀다.

“그래? 이제 만족하느냐?” 그가 말했다. “네가 나와 아들을 다투게 만들었어! 만족하느냐? 네가 원한 것은 그것뿐이었지! 만족해?…… 나는 아프다, 가슴이 아파. 늙고 약한 나에게 네가 바란 일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자, 고소해하거라! 마음껏 고소해해!”

그 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꼬박 일주일 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는 병이 나서 서재를 나오지 않았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아버지가 병을 앓는 동안 자기만 방에 들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부리엔 양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티혼만이 그를 시중들었다.

일주일이 끝날 무렵 공작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 예전 생활로 돌아갔다. 그는 유난히 열성적으로 건축 공사와 정원 정비에 몰두했고 부리엔 양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 딸을 바라보는 눈빛과 차가운 어조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 보았느냐? 너는 내게 음모를 꾸미고, 내가 저 프랑스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 안드레이 공작에게 거짓말하여 나와 아들을 다투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아라. 내게는 그 여자도 너도 필요 없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하루의 절반을 어린 니콜라이와 함께 보내며 수업을 지켜보고 직접 러시아어와 음악을 가르치며 데살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늙은 유모와 지냈고, 때때로 뒷문으로 찾아오는 ‘하느님의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여자들이 전쟁을 생각하듯 전쟁을 생각했다. 전쟁에 나간 오빠가 걱정되었고, 인간이 서로 죽이게 만드는 기이한 잔혹함에 몸서리치며 놀랐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번 전쟁은 이전의 모든 전쟁과 똑같아 보여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늘 대화를 나누던 데살은 전쟁의 진행에 열렬한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려 했고, 그녀를 찾아오는 ‘하느님의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침입에 관한 민간의 소문을 자기들 방식으로 전했다. 이제 드루베츠카야 공작부인이 된 줄리도 다시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여 모스크바에서 애국적인 편지를 보내왔다. 그런데도 마리야 공작 영애는 이 전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다정한 친구여, 나는 러시아어로 편지를 써요.” 줄리는 프랑스어투가 밴 러시아어로 썼다. “나는 모든 프랑스인을 혐오하고, 그들이 쓰는 언어도 똑같이 혐오해서 그 말이 들리는 것조차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에요…… 모스크바의 우리는 흠모하는 황제 폐하를 향한 열의에 고양되어 있어요.

“불쌍한 내 남편은 유대인 여관에서 고통과 굶주림을 견디고 있지만, 내가 듣는 소식은 나를 더욱 고무해요.

“라예프스키의 영웅적인 위업은 아마 들었겠지요. 두 아들을 끌어안고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죽을 것이나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지요. 적이 우리보다 두 배나 강했지만, 우리는 정말 흔들리지 않았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보내요. 하지만 전쟁 중에는 전쟁답게 지내야지요! 알린 공작 영애와 소피 공작 영애는 온종일 나와 함께 앉아 있고, 살아 있는 남편을 둔 불행한 과부인 우리는 붕대용 보풀을 만들며 아름다운 대화를 나눈답니다. 오직 당신만이, 친구여, 이곳에 없군요…….” 그 밖에도 이런 내용이 이어졌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이 전쟁의 중요성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늙은 공작이 전쟁에 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고, 전쟁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으며, 저녁 식사 때 데살이 전쟁 이야기를 하면 비웃었기 때문이다. 공작의 말투가 너무나 침착하고 확신에 차 있었으므로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아무런 의심 없이 아버지를 믿었다.

7월 내내 늙은 공작은 대단히 활동적이었고 심지어 활기에 넘쳤다. 그는 또 다른 정원을 설계하고 집안 농노들을 위한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걱정한 것은 아버지가 잠을 거의 자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서재에서 자지 않고 날마다 잠자리를 바꾸었다. 하루는 유리 회랑에 야전 침대를 펴라고 명령했고, 또 하루는 응접실의 긴 의자나 안락의자에 머물며 옷도 벗지 않은 채 졸았다. 그동안 부리엔 양 대신 농노 소년이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 밤은 식당에서 보냈다.

8월 1일, 안드레이 공작의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집을 떠난 직후 도착한 첫 번째 편지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이 감히 했던 말을 용서하고 다시 아버지의 총애를 받게 해 달라고 공손히 청했다. 늙은 공작은 그 편지에 다정하게 답했고 그때부터 프랑스 여자를 멀리했다. 프랑스군이 비테프스크를 점령한 뒤 안드레이 공작이 그 근처에서 쓴 두 번째 편지에는 원정 전체에 관한 짤막한 설명과 그가 그린 지도,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예상이 들어 있었다. 이 편지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전쟁터와 매우 가깝고 군대가 곧장 지나갈 길목에 있는 민둥산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고 아버지에게 지적하며 모스크바로 옮기라고 권했다.

그날 저녁 식사 때 데살이 프랑스군이 이미 비테프스크에 들어갔다고 한다는 말을 꺼내자 늙은 공작은 아들의 편지를 떠올렸다.

“오늘 안드레이 공작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는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말했다. “읽어 보지 않았느냐?”

“아니요, 아버지.” 그녀가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편지가 도착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므로 읽었을 리 없었다.

“이번 전쟁에 관해 썼더구나.” 공작은 이번 전쟁을 말할 때 버릇처럼 짓게 된 비웃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

“무척 흥미롭겠군요.” 데살이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사정을 알 만한 위치에 계시니…….”

“아, 아주 흥미롭겠어요!” 부리엔 양이 말했다.

“가서 가져오너라.” 늙은 공작이 부리엔 양에게 말했다. “알지, 작은 탁자 위 문진 아래에 있다.”

부리엔 양은 기꺼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다, 가지 마라!”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미하일 이바노비치, 자네가 가게.”

미하일 이바노비치는 일어나 서재로 갔다. 그러나 그가 방을 나가자마자 늙은 공작은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냅킨을 내던지고 직접 갔다.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해…… 늘 엉망으로 만들지.” 그가 중얼거렸다.

그가 없는 동안 마리야 공작 영애와 데살, 부리엔 양, 심지어 어린 니콜라이까지 아무 말 없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늙은 공작은 미하일 이바노비치를 거느리고 빠른 걸음으로 돌아오면서 편지와 지도 한 장을 가져왔다. 그는 식사 중에는 아무도 읽지 못하게 그것들을 자기 옆에 내려놓았다.

응접실로 자리를 옮긴 뒤 그는 편지를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건넸다. 그리고 새 건물의 설계도를 자기 앞에 펼쳐 놓고 거기에 눈을 고정한 채 편지를 소리 내어 읽으라고 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편지를 다 읽은 뒤 묻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 생각에 온통 빠진 것이 분명한 채 설계도를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작님?” 데살이 감히 물었다.

“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작은 불쾌한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말하며 건물 설계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전쟁터가 어쩌면 우리 가까이까지 옮겨 올지도…….”

“하하하! 전쟁터라고!” 공작이 말했다. “나는 전쟁터가 폴란드라고 말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말한다. 적은 절대로 네만강을 넘지 못해.”

적이 이미 드네프르강에 이르렀는데도 네만강을 말하는 공작을 데살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리야 공작 영애는 네만강의 지리적 위치를 몰랐으므로 아버지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눈이 녹으면 놈들은 폴란드 늪에 빠져 버릴 게다. 그것도 내다보지 못하다니.” 공작은 아주 최근 일처럼 느껴지는 1807년 원정을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베니히센이 프로이센으로 더 일찍 진격했어야 해. 그랬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텐데…….”

“하지만 공작님.” 데살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편지에는 비테프스크가 나옵니다…….”

“아, 편지? 그래…….” 공작이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그래…….” 그의 얼굴에 갑자기 침울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 안드레이는 프랑스군이…… 어느 강이더라…… 그곳에서 패했다고 썼지?”

데살은 눈을 내리깔았다.

“안드레이 공작께서는 그런 말씀을 전혀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내가 지어낸 말은 아니야.”

오랫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 그래…… 자, 미하일 이바노비치.”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건물 설계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고칠 생각인지 말해 보게…….”

미하일 이바노비치가 설계도 가까이 다가갔다. 공작은 건물에 관해 그와 이야기한 뒤 마리야 공작 영애와 데살을 성난 눈으로 바라보고 자기 방으로 갔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데살이 당황하고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고, 그가 침묵하는 것도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응접실 탁자에 아들의 편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을 입에 올리고 데살에게 그가 당황하여 침묵한 까닭을 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이유를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저녁에 공작의 심부름으로 온 미하일 이바노비치가 응접실에 잊어버린 안드레이 공작의 편지를 받으러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왔다. 그녀는 편지를 건네주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히 물어보았다.

“언제나 바쁘시지요.” 미하일 이바노비치가 공손하면서도 빈정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미소에 마리야 공작 영애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새 건물 때문에 몹시 마음을 쓰십니다. 조금 전까지 책을 읽으셨는데, 지금은…….” 미하일 이바노비치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지금은 책상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하고 계실 겁니다.” 근래 공작은 자신이 죽을 때 남기려는 몇몇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즐겼고, 그것을 ‘유언장’이라고 불렀다.

“알파티치는 스몰렌스크로 보내셨나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물었다.

“아, 그럼요. 떠나려고 기다린 지 한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