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5권 1806~1807년 / 제6장
《전쟁과 평화》 · 제5권 1806~1807년

제6장

《전쟁과 평화》 제5권 6장 삽화

피에르와 돌로호프의 결투 소동은 가라앉았다. 당시 황제가 결투를 엄하게 다스렸음에도 당사자도 입회인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러나 피에르가 아내와 헤어짐으로써 사실로 확인된 듯한 결투 이야기는 사교계의 화제가 되었다. 사생아였을 때는 거만한 벼락출세자로 여겨지고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신랑감이 되었을 때는 떠받들리며 찬사를 받았던 피에르는 결혼한 뒤, 혼기 찬 딸들과 그 어머니들이 더는 그에게 기대할 것이 없어지자 사교계의 평가가 크게 떨어졌다. 특히 그는 사교계의 환심을 사는 법을 알지도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다. 이제 사람들은 일어난 일의 책임을 오직 그에게만 돌렸다. 그가 미친 듯 질투하는 인간이며 아버지처럼 피에 굶주린 격노를 터뜨린다고들 했다. 피에르가 떠난 뒤 엘렌이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을 때에는 모든 지인이 다정하게 맞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당한 불행 때문에 존경까지 섞어 대했다. 남편 이야기가 나오면 엘렌은 위엄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타고난 감각으로 익힌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불평 없이 자신의 불행을 견디기로 했으며 남편은 하느님이 지워 준 십자가라는 뜻을 나타냈다. 바실리 공작은 더 노골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피에르의 이름이 나오면 어깨를 으쓱하고 이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조금 잘못됐어. 내 전부터 그렇게 말했지.”

“저는 처음부터 말했어요.” 피에르 이야기가 나오자 안나 파블로브나가 선언했다. “그분별없는 젊은이는 요즘의 타락한 사상에 물든 사람이라고요. 모두가 그에게 열광하고 그가 외국에서 막 돌아왔을 때, 기억하시겠지만 제 야회에서 무슨 마라라도 된 듯 행동하던 바로 그때에도 그렇게 말했어요.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저는 그때도 이 결혼에 반대했고, 일어난 일을 모두 예견했답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비는 저녁마다 모임을 열었다. 그녀만이 마련할 수 있는 종류의 모임이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그곳에는 “진정 훌륭한 사교계의 정수, 페테르부르크 지식계의 꽃”이 모였다. 이렇게 세련되게 사람을 고르는 것 외에도, 안나 파블로브나의 모임은 언제나 손님들에게 새롭고 흥미로운 인물을 내놓는다는 점과 합법적인 페테르부르크 궁정 사교계의 정치적 온도가 이곳만큼 정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없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1806년 말, 나폴레옹이 예나와 아우어슈테트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하고 프로이센 요새 대부분이 항복했다는 비통한 소식이 모두 전해지고, 러시아군이 이미 프로이센으로 들어가 나폴레옹과의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되었을 무렵 안나 파블로브나는 모임을 열었다. “진정 훌륭한 사교계의 정수”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매혹적인 엘렌, 빈에서 막 돌아온 유쾌한 이폴리트 공작, 두 외교관, 늙은 숙모, 응접실에서 그저 “대단히 훌륭한 분(un homme de beaucoup de mérite)”이라 불리는 젊은이, 새로 임명된 시녀와 그 어머니, 그 밖의 덜 주목받는 몇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날 저녁 안나 파블로브나가 손님들에게 새롭게 선보인 인물은 보리스 드루베츠코이였다. 그는 프로이센군에서 특별 전령으로 막 돌아왔으며 어느 유력 인사의 부관이었다.

그날 저녁 이 모임에서 정치적 온도계가 가리킨 온도는 이러했다.

“유럽의 군주와 지휘관들이 보나파르트에게 아첨하려고 무슨 짓을 하든, 그래서 우리와 나를 괴롭히고 수치스럽게 만들더라도 보나파르트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바뀔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끊임없이 밝힐 것이며, 프로이센 왕을 비롯한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만 더 나쁠 뿐이오. 당신이 자초한 일이오, 조르주 당댕(Tu l’as voulu, George Dandin).’ 우리가 할 말은 그것뿐이다.”

보리스가 응접실로 들어왔을 때 손님들은 거의 모두 모여 있었다. 안나 파블로브나가 이끄는 대화는 오스트리아와의 외교 관계와 동맹의 희망에 관한 것이었다.

한층 사내다워지고 생기와 혈색이 돌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의 보리스는 부관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응접실에 들어와, 의례에 따라 숙모에게 인사를 올린 뒤 사람들 속으로 돌아왔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쭈글쭈글한 손을 내밀어 입을 맞추게 한 다음 그가 모르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한 사람씩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폴리트 쿠라긴 공작—매력적인 청년이지요. 크론크 씨—코펜하겐 주재 대리공사, 대단히 깊은 지성을 지닌 분이에요.” 그리고 늘 그렇게 소개되는 사람에게는 간단히 말했다. “시토프 씨—대단히 훌륭한 분입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노력과 자기 취향, 절제된 성격 덕분에 보리스는 복무 중 매우 유리한 자리를 차지했다. 유력 인사의 부관이었고, 중대한 임무를 띠고 프로이센에 파견되었다가 특별 전령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올뮈츠에서 마음에 들어 했던 불문율을 완전히 터득했다. 그 법칙에 따르면 소위가 장군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자리에 설 수도 있었고, 출세에 필요한 것은 노력과 수고, 용기와 끈기가 아니라 상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었다. 그는 자기가 그토록 빨리 성공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자주 놀랐다. 이 발견으로 그의 생활 방식과 옛 친구들과의 관계, 장래 계획은 모두 달라졌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보다 좋은 옷을 입는 데 마지막 돈까지 썼다. 초라한 마차를 타거나 낡은 군복 차림으로 페테르부르크 거리에 나타나느니 많은 즐거움을 포기하는 편을 택했다. 자기보다 지위가 높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가까이 지내며 교분을 구했다. 페테르부르크를 사랑하고 모스크바를 경멸했다. 로스토프 집안의 추억과 나타샤에 대한 어린 시절의 사랑은 불쾌했으며, 군대로 떠난 날 이후 로스토프 집안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안나 파블로브나의 응접실에 드나드는 일을 복무에서 중요한 진전으로 여긴 그는 즉시 자기 역할을 파악하고 여주인이 보내는 관심을 모두 이용했다. 차분하게 참석자들의 얼굴을 살피며 누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그 관계에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가늠했다. 그는 아름다운 엘렌 곁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빈은 제안된 조약의 토대를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봅니다. 아무리 눈부신 성공을 거두더라도 확보할 수 없으며, 그것을 얻을 수단도 의심스럽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빈 내각이 실제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덴마크 대리공사가 말했다.

“‘의심스럽다’라니, 참으로 기분 좋은 표현이군요.” ‘대단히 깊은 지성을 지닌 분’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빈 내각과 오스트리아 황제를 구분해야 합니다.” 모르테마르 자작이 말했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각뿐입니다.”

“아, 친애하는 자작님.” 안나 파블로브나가 말했다. “L’Urope”—그녀는 프랑스인과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 특별히 세련된 발음이라고 여겼는지 ‘유럽’을 그렇게 발음했다—“L’Urope ne sera jamais notre alliée sincère.”*

* “유럽은 결코 우리의 진정한 동맹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뒤 안나 파블로브나는 보리스를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프로이센 왕의 용기와 굳센 성품에 화제를 맞추었다.

보리스는 모든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한편, 곁에 앉은 아름다운 엘렌을 여러 번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엘렌은 잘생긴 젊은 부관에게 미소 지었다.

프로이센의 상황을 이야기하던 안나 파블로브나는 자연스럽게 보리스에게 글로가우로 다녀온 일과 프로이센군의 상태를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보리스는 유창하고 정확한 프랑스어로 군대와 궁정에 관한 흥미로운 세부 사항을 신중하게 들려주면서, 자신이 말하는 사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조심스럽게 피했다. 한동안 모두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고 안나 파블로브나는 자신이 내놓은 새로운 인물이 모든 손님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진 데 만족했다. 보리스의 이야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엘렌이었다. 그녀는 여행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했고 프로이센군의 사정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보리스가 말을 끝내자마자 엘렌은 늘 짓는 미소를 띠고 그에게 몸을 돌렸다.

“반드시 저를 찾아오셔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보리스가 모르는 어떤 이유 때문에 꼭 그래야만 한다는 뜻을 담은 어조였다.

“화요일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요. 오시면 정말 기쁠 거예요.”

보리스가 찾아가겠다고 약속하고 막 엘렌과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안나 파블로브나가 숙모께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는 핑계로 그를 불렀다.

“물론 저 여인의 남편을 아시겠지요?” 안나 파블로브나는 눈을 감고 슬픈 몸짓으로 엘렌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정말 불행하고 매력적인 여인이에요! 저 여인 앞에서는 남편 이야기를 꺼내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너무나 괴로워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