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5권 1806~1807년 / 제1장
《전쟁과 평화》 · 제5권 1806~1807년

제1장

《전쟁과 평화》 제5권 1장 삽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뒤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토르조크 역참에는 말이 없었는지, 아니면 역참지기가 말을 내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피에르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옷도 벗지 않은 채 둥근 탁자 앞의 가죽 소파에 누워, 덧신을 신은 커다란 두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여행 가방을 들여놓을까요? 침대도 준비하고 차도 내오게 할까요?” 시종이 물었다.

피에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들른 역참에서부터 생각에 잠겨 있었고, 여전히 똑같은 문제를 곱씹고 있었다. 너무나 중대한 문제여서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페테르부르크에 일찍 도착하든 늦게 도착하든, 이 역참에서 묵을 자리를 얻든 못 얻든 상관없었을 뿐 아니라, 지금 그를 사로잡은 생각에 비하면 이곳에 몇 시간 머물든 평생 머물든 아무 차이도 없었다.

역참지기와 그의 아내, 시종, 토르조크 자수를 파는 농부 여자가 방으로 들어와 저마다 시중을 들겠다고 나섰다. 피에르는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지도 않은 채 안경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자신을 이토록 사로잡고 있는 문제들을 풀지도 않은 채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투 뒤 소콜니키에서 돌아와 고통스럽게 잠 못 이루던 첫날밤부터 줄곧 같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외로운 여행길에 오르자 그 생각들이 유난히 거센 힘으로 그를 붙들었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는 풀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 묻기를 그칠 수도 없는 똑같은 문제들로 되돌아왔다. 마치 그의 삶 전체를 붙들어 매던 중심 나사의 나사산이 닳아 버려, 나사는 안으로 들어가지도 밖으로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헛돌기만 하는 것 같았다.

역참지기가 들어와 굽실거리며 나리께 두 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리께 파발마를 내드리겠다고 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여행객에게서 돈을 더 받아내려 할 뿐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이것은 선한 일인가, 악한 일인가?’ 피에르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게는 선하고 다른 여행객에게는 악하며, 그 자신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먹을 것을 살 돈이 필요하니까. 전에 개인 여행객에게 파발마를 내주었다가 어느 장교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했지. 하지만 그 장교는 가능한 한 빨리 길을 가야 했기 때문에 그를 때렸어. 그리고 나는 모욕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로호프를 쏘았고, 루이 16세는 사람들이 그를 죄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처형당했으며, 일 년 뒤에는 그를 처형한 사람들도—역시 무슨 이유에서인지—처형당했어. 무엇이 악한가? 무엇이 선한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힘은 무엇인가?’

이 물음들에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단 하나가 있기는 했으나 논리적인 답도, 물음에 대한 대답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너는 죽을 것이고 모든 것은 끝날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거나, 더는 묻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죽는 것 또한 두려웠다.

토르조크의 행상 여자는 칭얼대는 목소리로 계속 물건을 권했는데, 특히 염소가죽 슬리퍼 한 켤레를 내밀었다. ‘나는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는 돈을 수백 루블이나 갖고 있는데, 저 여자는 다 해진 망토를 걸치고 내 앞에 서서 겁먹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구나.’ 피에르는 생각했다. ‘그런데 저 여자는 돈을 무엇에 쓰려고 하는가? 그 돈이 행복이나 마음의 평안에 털끝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상 무엇이 저 여자나 나를 악과 죽음의 제물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을 끝내 버리며 오늘이나 내일 반드시 닥쳐올 죽음—영원에 견주면 어쨌든 한순간 뒤에 닥쳐올 죽음을.’ 그러고는 나사산이 닳은 나사를 다시 돌렸으나, 나사는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쓸데없이 헛돌았다.

시종이 마담 드 수자가 쓴, 편지 형식의 아직 재단하지 않은 소설 한 권을 건넸다. 피에르는 에밀리 드 만스펠트라는 여인이 겪는 고난과 고결한 투쟁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혹하는 남자를 사랑하면서 왜 그에게 저항했을까?’ 피에르는 생각했다. ‘하느님이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충동을 그녀의 마음에 심어 놓으셨을 리는 없어. 내 아내는—예전의 그녀는—저항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것이 옳았는지도 몰라.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어.’ 피에르는 다시 자신에게 말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야. 그것이 인간 지혜의 절정이지.’

그의 내면과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무의미하며 혐오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피에르는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을 바로 그토록 혐오하는 데서 묘하게 마음을 끄는 만족을 느꼈다.

“나리께서 이 신사분을 위해 자리를 조금 옮겨 주시기를 감히 청합니다.” 역참지기가 말했다. 말이 없어 역시 붙들려 있던 다른 여행객이 그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새로 온 사람은 키가 작고 뼈대가 굵으며 얼굴이 누렇고 주름진 노인이었다. 빛나면서도 무슨 색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회색 눈 위로 잿빛의 텁수룩한 눈썹이 드리워져 있었다.

피에르는 탁자에서 발을 내리고 일어나 준비된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서 이따금 새로 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우울하고 지친 얼굴의 그 여행객은 피에르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시종의 도움을 받아 피곤한 몸짓으로 겉옷을 벗고 있었다. 그는 가늘고 앙상한 두 다리에 펠트 장화를 신고, 빛바랜 무명천을 씌운 낡은 양가죽 외투는 그대로 걸친 채 소파에 앉았다. 관자놀이가 넓고 머리를 짧게 깎은 커다란 머리를 뒤로 젖힌 뒤 베주호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엄숙하고 영리하며 꿰뚫어 보는 듯한 표정에 피에르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길에 관해 물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에는 이미 여행객이 눈을 감은 뒤였다. 노인의 쭈글쭈글한 두 손은 포개져 있었고, 그중 한 손가락에는 해골 문양의 인장이 새겨진 커다란 무쇠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낯선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피에르의 눈에 그렇게 보였듯 깊고 고요한 명상에 잠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종 역시 얼굴이 누렇고 주름진 노인이었으며 턱수염도 콧수염도 없었다. 면도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수염이 자란 적이 없는 듯했다. 이 부지런한 늙은 시종은 여행객의 휴대 식기 상자를 풀고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펄펄 끓는 사모바르를 들여왔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낯선 사람은 눈을 뜨고 탁자로 옮겨 앉아 자신이 마실 차 한 잔을 따른 뒤, 수염 없는 노인에게도 한 잔 가득 따라 건넸다. 피에르는 불안과 더불어 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필요성, 아니 필연성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시종은 덜 녹아 이빨 자국이 난 설탕 조각을 얹고 잔을 거꾸로 엎은 채* 가져와서, 더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 차를 더 마시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없다. 책을 다오.” 낯선 사람이 말했다.

시종이 책 한 권을 건넸다. 피에르는 신앙 서적인 듯하다고 생각했으며, 여행객은 책에 몰두했다. 피에르는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낯선 사람이 책을 덮고 책갈피를 끼우더니, 다시 두 팔을 소파 등받이에 얹고 눈을 감은 채 아까의 자세로 앉았다. 피에르는 그를 바라보다가 미처 고개를 돌릴 틈도 없었다. 노인이 눈을 뜨더니 흔들림 없이 엄숙한 시선을 피에르의 얼굴에 곧장 고정했다.

피에르는 당황하여 그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노인의 빛나는 두 눈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