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 제29장
《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제29장

《전쟁과 평화》 제11권 29장 삽화

프랑스 장교가 피에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자 피에르는 자기가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다시 확인시켜 주고 떠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교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예의 바르고 상냥하고 선량했으며 목숨을 구해 준 피에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피에르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처음 들어간 방인 응접실에서 그와 함께 앉았다. 피에르가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거듭 말하자 대위는 누구든 그토록 듣기 좋은 호칭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피에르가 굳이 러시아인으로 행세하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 목숨을 구해 준 피에르에게 영원히 감사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이 남자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고 피에르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피에르는 아마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것에 활기차게 둔감한 태도가 피에르의 무장을 풀었다.

“프랑스인 아니면 신분을 숨긴 러시아 공작이겠군요.” 장교는 훌륭하지만 더러운 피에르의 속옷과 손가락의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목숨을 빚졌으며 우정을 드리겠소. 프랑스인은 모욕도 은혜도 결코 잊지 않소. 내 우정을 드리겠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오.”

장교의 목소리와 얼굴 표정과 몸짓에는 프랑스식 의미에서의 선량함과 고결함이 너무도 넘쳤다. 피에르는 자기도 모르게 프랑스인의 미소에 웃음으로 답하고 내민 손을 힘주어 잡았다.

“제13경보병연대 랑발 대위이며, 9월 7일 전투의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사람이오.” 그는 콧수염 아래 입술을 자족적이고 억누를 수 없는 미소로 일그러뜨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제 그 미치광이의 총알을 몸에 박고 구호차에 누워 있는 대신 이렇게 유쾌하게 대화하는 영광을 누구와 나누는지 알려 주시겠소?”

피에르는 이름을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고 얼굴을 붉히며 이름을 지어내고 숨기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프랑스인은 서둘러 가로막았다.

“아, 됐소!” 그가 말했다. “이유를 이해하오. 당신은 장교요…… 아마 고급 장교겠지. 우리와 맞서 무기를 들었을 것이오. 그것은 내 알 바가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목숨을 빚졌고 그것이면 충분하오.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소. 귀족이시오?” 그는 끝에 질문의 기색을 조금 담았다. 피에르는 고개를 숙였다. “세례명만이라도 알려 주시오. 내가 요구하는 것은 그것뿐이오. 피에르 씨라고 했지요……. 그것만 알면 되오.”

양고기와 오믈렛이 나오고 사모바르와 보드카, 프랑스군이 러시아의 저장고에서 가져온 포도주가 놓이자 랑발은 피에르에게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자신은 건강하고 배고픈 사람처럼 탐욕스럽고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튼튼한 이로 음식을 재빨리 씹고 계속 입맛을 다시며 “훌륭해! 맛있군!”이라고 되풀이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땀으로 덮였다. 피에르도 배가 고파 즐겁게 함께 먹었다. 당번병 모렐은 냄비에 뜨거운 물을 가져와 클라레 한 병을 담갔다. 맛을 보라고 부엌에서 가져온 크바스 한 병도 내왔다. 프랑스인들은 이미 그 음료를 알고 특별한 이름까지 붙였다. ‘돼지의 레모네이드(limonade de cochon)’라고 불렀고, 모렐은 부엌에서 찾은 그 ‘돼지의 레모네이드’를 칭찬했다. 그러나 대위에게는 모스크바를 지나오며 가져온 포도주가 있었으므로 크바스는 모렐에게 주고 보르도 포도주에 집중했다. 병목까지 냅킨으로 감싸 피에르와 자기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배를 채우고 포도주까지 마시자 대위는 더욱 활기를 띠어 식사 내내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래요, 친애하는 피에르 씨. 그 미치광이에게서 나를 구해 주었으니 당신에게 훌륭한 봉헌초 하나를 빚졌소……. 보시오, 내 몸에는 이미 총알이 충분히 들어 있소. 이쪽 것은 바그람에서 맞았고…….” 그는 옆구리를 만졌다. “두 번째 것은 스몰렌스크에서 맞았소.” 뺨의 흉터를 보여 주었다. “보시다시피 잘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 다리는 7일의 모스크바강 대전투(la Moskowa)에서 얻었소. 맙소사(Sacré Dieu)! 정말 장관이었지! 그 불의 홍수는 볼 만했소. 우리에게 힘든 일을 안겨 주었소, 정말이오! 자랑스러워해도 좋소! 맹세코, 그곳에서 얻은 기침에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소.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깝소.”

“나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아니, 정말이오? 그거 잘됐군! 당신들은 분명 용감한 적이오. 대보루는 훌륭히 버텼소, 맹세코!” 프랑스인이 계속했다. “우리에게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소. 내가 거기에 세 번이나 갔소. 여기 앉아 있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분명하오. 세 번 대포까지 갔고 세 번 종이 인형처럼 밀려났소. 아, 정말 아름다웠소, 피에르 씨! 당신네 척탄병은 훌륭했소, 맙소사! 그들이 여섯 번 연달아 대열을 메우고 열병식처럼 전진하는 것을 보았소. 훌륭한 사내들이오! 사정을 아는 우리 나폴리 국왕도 ‘브라보!’라고 외쳤소. 하, 하! 그러니 당신도 우리와 같은 군인이군!” 그는 잠시 뒤 웃으며 덧붙였다. “그거 잘됐소, 아주 잘됐소, 피에르 씨! 전장에서는 무섭고…… 여인들 앞에서는 멋진 신사이고…….” 그는 눈을 찡긋하고 웃었다. “그게 프랑스인 아니겠소, 피에르 씨?”

대위는 너무도 순진하고 선량하게 명랑했으며 진실하고 자신에게 만족해, 피에르는 즐겁게 바라보다 거의 눈을 찡긋해 답할 뻔했다. ‘여인들 앞에서는 멋진 신사’라는 말이 아마 대위의 생각을 모스크바의 상태로 돌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 나왔으니 알려 주시오. 여자들이 모두 모스크바를 떠났다는 말이 사실이오? 참 이상한 생각이오! 무엇이 두려웠던 거요?”

“러시아군이 파리에 들어가면 프랑스 숙녀들은 떠나지 않겠습니까?” 피에르가 물었다.

“하, 하, 하!” 프랑스인은 피에르의 어깨를 두드리며 쾌활하고 다혈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말씀을 하시오!” 그가 외쳤다. “파리라고?…… 하지만 파리, 파리는…….”

“파리는 세계의 수도지요.” 피에르가 대신 말을 끝맺었다.

대위는 피에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멈추고 웃음 띤 선량한 눈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당신이 러시아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파리 사람이라고 내기를 걸었을 것이오! 당신에게는 그…… 뭐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것이 있소…….” 이런 칭찬을 하고 다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파리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해를 보냈지요.” 피에르가 말했다.

“아, 그렇군. 분명히 드러나는군. 파리라!…… 파리를 모르는 사람은 야만인이오. 파리 사람은 2리그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소. 파리는 탈마와 뒤셰누아와 포티에와 소르본과 대로들이오.” 자기 결론이 앞의 말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덧붙였다. “세상에 파리는 단 하나뿐이오. 파리에 살고도 러시아인으로 남았군. 그래도 당신을 덜 존중하지는 않소.”

마신 포도주의 영향과 우울한 생각을 하며 홀로 보낸 며칠 뒤라, 피에르는 이 명랑하고 선량한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저도 모르게 즐겼다.

“숙녀들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들었소. 프랑스군이 모스크바에 있는데 초원으로 가서 파묻히다니 얼마나 불쌍한 생각이오. 아가씨들이 기회를 놓쳤군! 농민들은 다른 문제지만 문명인들은 우리를 더 잘 알아야 하지 않겠소. 우리는 빈과 베를린과 마드리드와 나폴리와 로마와 바르샤바, 세상의 모든 수도를 점령했소……. 우리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사랑도 받소. 알고 지내면 좋은 사람들이오. 게다가 황제께서는…….” 그가 말을 시작했으나 피에르가 가로막았다.

“황제라.” 피에르는 되풀이했고 얼굴이 갑자기 슬프고 난처해졌다. “황제는……?”

“황제라고? 관용과 자비와 정의와 질서와 천재, 그것이 황제요! 나 랑발이 당신에게 말하오……. 8년 전에는 내가 그분의 적이었다는 것을 보증하오. 내 아버지는 망명한 백작이었소……. 하지만 그분이 나를 이겼소. 나를 붙잡았지. 프랑스를 뒤덮은 장엄함과 영광을 보고 저항할 수 없었소. 그분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우리에게 월계관의 침상을 마련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분이 군주다’라고 생각하고 몸을 바쳤소! 그렇소! 오, 그래, 친애하는 벗이여. 그분은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람이오.”

“그분은 모스크바에 있습니까?” 피에르는 죄지은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프랑스인은 그의 죄스러운 얼굴을 보고 미소 지었다.

“아니오, 내일 입성하실 것이오.” 그는 대답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대문에서 여러 목소리가 외치고 모렐이 뷔르템베르크 후사르들이 와서 대위의 말이 있는 뜰에 자기 말들을 두려 한다고 알리면서 대화는 중단되었다. 어려움은 주로 후사르들이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생겼다.

대위는 선임 하사를 불러 엄한 목소리로 어느 연대 소속이며 지휘관이 누구이고 이미 차지한 숙소를 무슨 권리로 요구하는지 물었다. 프랑스어를 거의 못하는 독일인은 첫 두 질문에 연대와 지휘관의 이름으로 답했다. 이해하지 못한 세 번째 질문에는 서투른 프랑스어를 독일어에 섞어 자기는 연대의 숙영 담당자이며 지휘관이 집들을 차례로 모두 차지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독일어를 아는 피에르는 독일인의 말을 대위에게 옮기고 대위의 대답을 뷔르템베르크 후사르에게 독일어로 전했다. 말을 이해한 독일인은 복종하고 부하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대위는 현관으로 나가 큰 소리로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피에르는 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통이 드러났다. 그는 그 순간 정말 괴로웠다. 대위가 나가고 혼자 남자 갑자기 정신이 들어 자신이 놓인 처지를 깨달았다. 모스크바가 점령되고 기뻐하는 정복자들이 주인이 되어 자기를 감싸는 일이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 피에르를 괴롭힌 것은 자기 약함에 대한 의식이었다. 몇 잔의 포도주와 선량한 남자와의 대화는 계획을 실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던, 지난 며칠의 집중되고 침울한 기분을 무너뜨렸다. 권총과 단검과 농민 외투는 준비되어 있었고 나폴레옹은 이튿날 도시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피에르는 악인을 죽이는 일이 여전히 유용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느꼈다. 이유는 몰라도 뜻을 실행하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싸웠지만 이길 수 없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복수와 살인과 자기희생에 관한 이전의 침울한 마음은 처음 만난 사람과 닿자 먼지처럼 흩어졌다.

대위는 조금 다리를 절고 곡조를 휘파람 불며 방으로 돌아왔다.

전에는 피에르를 즐겁게 하던 프랑스인의 수다가 이제는 불쾌했다. 휘파람 곡조와 걸음걸이, 콧수염을 비트는 동작까지 모욕적으로 보였다. ‘즉시 떠나겠어. 다시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어.’ 피에르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묘한 무력감이 그를 붙들었다. 일어나 떠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반대로 대위는 몹시 명랑해 보였다. 방 안을 두 번 오갔다. 눈이 빛나고 재미있는 생각에 혼자 웃는 듯 콧수염이 실룩거렸다.

“저 뷔르템베르크 사람들의 대령은 정말 훌륭하오.” 그가 갑자기 말했다. “독일인이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오……. 하지만 독일인이지.” 그는 피에르와 마주 앉았다. “그런데 당신은 독일어도 하는군?”

피에르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숙소’를 독일어로 무엇이라고 하오?”

“숙소요?” 피에르가 되풀이했다. “숙소는 독일어로 ‘운터쿤프트’입니다.”

“어떻게 말한다고?” 대위는 빠르고 의심스레 물었다.

“운터쿤프트(Unterkunft).” 피에르가 되풀이했다.

“온테르코프(Onterkoff).” 대위는 말하고 몇 초 동안 웃음 띤 눈으로 피에르를 바라보았다. “이 독일인들은 정말 대단한 바보들이오. 그렇지 않소, 피에르 씨?” 그가 말을 맺었다.

“자, 이 모스크바산 보르도 포도주를 한 병 더 마시는 것이 어떻소? 모렐이 작은 병을 하나 더 데워 줄 것이오. 모렐!” 그가 명랑하게 불렀다.

모렐은 촛불과 포도주 한 병을 가져왔다. 대위는 촛불에 비추어 피에르를 보고 동료의 근심스러운 표정에 놀란 것이 분명했다. 랑발은 진심으로 괴롭고 동정하는 표정으로 피에르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자, 우리가 슬퍼졌군.” 그는 피에르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내가 기분을 상하게 했소? 정말 내게 화난 일이 있소?” 그가 물었다. “어쩌면 지금의 사정 때문에?”

피에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프랑스인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동정의 표정이 기분 좋았다.

“진심으로,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은 말하지 않더라도 우정을 느끼오. 내가 해 줄 일이 있소? 마음대로 부리시오. 삶과 죽음을 함께할 것이오. 가슴에 손을 얹고 하는 말이오!” 그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대위는 ‘숙소’가 독일어로 ‘운터쿤프트’라는 것을 알았을 때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다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마십시다!” 그는 명랑하게 외치며 두 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피에르는 한 잔을 들어 비웠다. 랑발도 자기 잔을 비우고 다시 피에르의 손을 힘주어 잡은 뒤 생각에 잠긴 자세로 탁자에 두 팔꿈치를 얹었다.

“그래요, 친애하는 벗이여.” 그가 말을 시작했다. “운명의 변덕이란 이런 것이오. 예전에 보나파르트라고 불렀던 그분을 섬기는 용기병 대위이자 군인이 되리라고 누가 말했겠소? 그런데 이렇게 그분과 모스크바에 와 있소. 친애하는 벗이여, 우리 가문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집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말해야겠소.” 긴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의 슬프고 고른 어조로 계속했다.

대위는 프랑스인 특유의 쉽고 순진한 솔직함으로 조상과 유년기와 청년기와 장년기의 이야기, 친척과 재정과 집안 사정 모두를 피에르에게 말했다. 물론 ‘불쌍한 나의 어머니(ma pauvre mère)’가 이야기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삶의 배경일 뿐이고 진짜는 사랑이오, 사랑! 그렇지 않소, 피에르 씨?” 그는 활기를 띠며 말했다. “한 잔 더?”

피에르는 다시 잔을 비우고 세 번째 잔을 따랐다.

“오, 여자들, 여자들!” 대위는 빛나는 눈으로 피에르를 바라보며 사랑과 연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교의 잘생기고 자족적인 얼굴과 여자를 말할 때의 열띤 열성을 보면 믿기 쉽듯 그런 이야기는 아주 많았다. 랑발의 연애 이야기는 모두 프랑스인들이 사랑의 특별한 매력과 시정으로 여기는 관능적인 성격을 띠었지만, 자신만이 사랑의 모든 매력을 겪고 안다는 진실한 확신으로 이야기하고 여자들을 매혹적으로 묘사하여 피에르는 호기심을 품고 들었다.

프랑스인이 그토록 좋아한 ‘사랑(l’amour)’은 피에르가 한때 아내에게 느낀 저속하고 단순한 종류도, 스스로 부추겨 나타샤에게 품은 낭만적인 사랑도 아닌 것이 분명했다. 랑발은 둘 다 똑같이 업신여겼다. 전자는 ‘농사꾼의 사랑’, 후자는 ‘바보들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인이 숭배한 사랑(l’amour)은 주로 여자와 맺은 관계의 부자연스러움과 감정에 주된 매력을 주는 모순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대위는 매혹적인 서른다섯 살 후작부인과 그 후작부인의 딸인 사랑스럽고 순진한 열일곱 살 소녀를 동시에 사랑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대한 다툼은 어머니가 자신을 희생하여 딸을 연인에게 신부로 내놓는 것으로 끝났다. 먼 과거의 기억인데도 대위를 감동시켰다. 이어 남편이 연인 역할을 하고 연인인 자기가 남편 역할을 맡은 일화, ‘숙소’를 ‘운터쿤프트’라 하고 남편들은 자우어크라우트를 먹으며 젊은 여자들은 ‘너무 금발’인 독일에서 겪은 우스운 사건 몇 가지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아직 대위의 기억에 생생한 폴란드에서의 최근 일화는 빠른 몸짓과 달아오른 얼굴로 들려주었다. 폴란드인의 목숨을 구했고, 목숨을 구하는 일은 대위의 이야기에서 계속 일어났다, 그 폴란드인은 프랑스군에 입대하면서 매혹적인 아내, 마음만은 파리 여인인 그녀(parisienne de cœur)를 대위에게 맡겼다. 대위는 행복했고 매혹적인 폴란드 여자는 그와 달아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관대한 마음에서 아내를 남편에게 돌려주며 “나는 당신의 목숨을 구했고 명예도 구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되풀이한 대위는 눈을 훔치고 감동적인 기억에 엄습한 약함을 떨쳐 내려는 듯 몸을 흔들었다.

피에르는 늦은 저녁 술의 영향을 받으면 흔히 그렇듯 대위의 이야기를 모두 따라가고 이해하면서, 왜인지 갑자기 마음에 떠오른 개인적인 기억의 흐름도 좇았다. 그 연애담을 들으면서 나타샤에 대한 자기 사랑이 뜻밖에 떠올랐고, 상상 속에서 그 사랑의 장면들을 되짚으며 랑발의 이야기와 비교했다. 사랑과 의무의 투쟁 이야기를 들으며 수하레프 급수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난 순간의 가장 작은 세부까지 눈앞에 보았다. 그 만남은 당시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고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만남에 매우 중요하고 시적인 무언가가 있었다고 느꼈다.

“표트르 키릴로비치, 이리 오세요! 알아봤어요!” 이제 그녀가 한 말이 들리고 눈과 미소와 여행용 두건과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가닥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 모든 것에는 가엾고 감동적인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매혹적인 폴란드 여자 이야기를 마친 대위는 피에르도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비슷한 충동과 합법적인 남편을 향한 질투를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을 받은 피에르는 고개를 들고 마음을 채운 생각들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여자에 대한 사랑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생 단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그녀는 결코 자기 것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Tiens!)” 대위가 말했다.

피에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여자를 사랑했지만 너무 어렸고 자신은 이름 없는 사생아였기에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이름과 재산을 얻은 뒤에도 너무 사랑하여 세상의 모든 것보다, 특히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곳에 두었기에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이 지점까지 말한 피에르는 대위에게 이해하는지 물었다.

대위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 달라는 뜻으로 몸짓했다.

“플라토닉한 사랑, 구름…….” 그가 중얼거렸다.

마신 포도주 때문인지, 솔직해지고 싶은 충동 때문인지, 이 남자가 자기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을 아무도 모르고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 때문인지 피에르의 혀가 풀렸다. 혀가 꼬이고 빛나는 눈은 먼 곳을 보며 결혼과 가장 친한 친구를 향한 나타샤의 사랑, 배신과 그녀와 나눈 자기의 단순한 모든 관계를 비롯해 삶의 이야기를 전부 들려주었다. 랑발의 질문에 이끌려 처음에 숨겼던 자기 처지와 이름까지 밝혔다.

피에르의 이야기에서 대위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준 것은 그가 엄청난 부자로 모스크바에 저택 두 채를 소유했는데도 모든 것을 버리고 도시를 떠나지 않은 채 이름과 신분을 숨기고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두 사람은 함께 거리로 나갔다. 밤은 따뜻하고 밝았다. 포크로프카 거리에 있는 집 왼쪽에서는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첫 화재가 붉게 빛났다. 오른쪽 높은 하늘에는 이지러지는 초승달이 걸렸고 그 맞은편에는 피에르의 마음속에서 사랑과 연결된 밝은 혜성이 떠 있었다. 대문에는 게라심과 요리사와 프랑스인 둘이 서 있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두 언어로 나누는 웃음과 말이 들렸다. 그들은 도시에서 보이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도시 멀리서 나는 작은 불 하나에는 무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높고 별이 빛나는 하늘과 달과 혜성과 화재의 불빛을 바라보며 피에르는 기쁜 감동을 느꼈다. ‘자, 얼마나 좋은가. 무엇이 더 필요하지?’ 그는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 계획을 떠올리자 어지럽고 정신이 아득해져 넘어지지 않으려고 울타리에 몸을 기댔다.

피에르는 새 친구에게 작별도 하지 않고 불안정한 걸음으로 대문을 떠났다.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눕자 곧바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