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 제8장
《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제8장

《전쟁과 평화》 제11권 8장 삽화

보로디노 전투가 끝나 갈 무렵, 피에르는 라예프스키 포대에서 두 번째로 뛰어 내려와 병사들의 무리에 섞여 골짜기를 지나 크냐지코보로 갔다. 응급 치료소에 이르러 피를 보고 비명과 신음 소리를 듣자, 여전히 병사들 틈에 뒤섞인 채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그가 온 영혼으로 바라는 것은 그날 겪은 무서운 감각에서 빨리 벗어나 평범한 생활 조건으로 돌아가 자기 방의 침대에서 조용히 잠드는 것뿐이었다. 평범한 생활 조건 속에서만 자신과 그가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생활 조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포탄과 총알이 그가 가는 길 위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사방에는 여전히 전장에 있던 것들이 있었다. 고통받고 지치고 때로는 이상할 만큼 무심한 똑같은 얼굴들, 똑같은 피, 똑같은 병사 외투, 이제 멀어졌어도 여전히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똑같은 총포 소리가 있었다. 게다가 탁한 공기와 먼지도 있었다.

모자이스크 도로를 2마일쯤 걸어간 피에르는 길가에 앉았다.

땅거미가 내리고 대포 소리가 잦아들었다. 피에르는 팔꿈치로 몸을 받친 채 오랫동안 누워 어둠 속에서 곁을 지나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계속 포탄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고, 그때마다 몸을 떨며 일어나 앉았다. 거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한밤중에 병사 셋이 장작을 가져와 그의 가까이에 자리 잡고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피에르를 곁눈질하며 불을 지피고 그 위에 쇠솥을 올렸다. 솥에 마른 빵을 부수어 넣고 기름을 조금 넣었다. 기름진 음식의 기분 좋은 냄새와 연기 냄새가 뒤섞였다. 피에르는 일어나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병사 셋은 그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먹으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당신은 뉘시오?” 그중 하나가 갑자기 피에르에게 물었다. 피에르 자신도 생각하고 있던 것과 같은 뜻임이 분명했다. ‘먹고 싶다면 나눠 드리겠소. 다만 정직한 사람인지만 알려 주시오.’

“나는, 나는…….” 피에르는 병사들에게 더 가까워지고 그들이 자기를 더 잘 이해하게 하려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가능한 한 낮추어 말해야 한다고 느꼈다. “원래는 민병대 장교지만 부하들이 여기 없소. 전투에 왔다가 그들을 잃어버렸소.”

“거참!” 병사 하나가 말했다.

다른 병사는 고개를 저었다.

“죽 좀 드시겠소?” 첫 번째 병사가 묻고는 나무 숟가락을 핥아 깨끗이 한 뒤 피에르에게 건넸다.

피에르는 불가에 앉아 그들이 솥 속 음식을 부르는 이름인 죽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다고 생각했다. 탐욕스럽게 몸을 숙이고 큰 숟가락으로 떠서 연달아 씹는 그의 얼굴을 불빛이 비추었고, 병사들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셔야 하오? 말씀해 보시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말했다.

“모자이스크로.”

“신사분이시지요?”

“그렇소.”

“성함은 무엇이오?”

“표트르 키릴리치요.”

“그러면 표트르 키릴리치, 우리와 함께 갑시다. 우리가 데려다드리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병사들은 피에르와 함께 모자이스크까지 걸었다.

모자이스크에 가까이 이르러 시내로 들어가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닭이 울고 있었다. 피에르는 숙소가 언덕 아래에 있으며 이미 그곳을 지나쳤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채 병사들과 계속 걸었다. 그처럼 넋을 잃은 상태여서 한동안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덕 중턱에서 시내로 자신을 찾으러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던 마부와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랬을 터였다. 마부는 어둠 속에서도 흰 모자를 보고 피에르를 알아보았다.

“각하!” 마부가 말했다. “아니, 저희는 이제 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걸어 다니십니까? 또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아, 그렇군!” 피에르가 말했다.

병사들은 멈추어 섰다.

“댁 사람을 찾으셨군요?” 그중 하나가 말했다. “자, 안녕히 가시오, 표트르 키릴리치―맞지요?”

“안녕히 가시오, 표트르 키릴리치!” 다른 병사들의 목소리가 되풀이하는 것을 피에르는 들었다.

“안녕히 가시오!” 그는 말하고 마부와 함께 숙소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들에게 무언가 주어야겠어!’ 피에르는 생각하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니야,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 마음속의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숙소에는 빈방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누군가 차지하고 있었다. 피에르는 뜰로 나가 머리까지 덮은 채 자기 마차 안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