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 제20장
《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제20장

《전쟁과 평화》 제11권 20장 삽화

그동안 모스크바는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고 이전 주민의 50분의 1쯤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도시는 비어 있었다. 여왕벌을 잃고 죽어 가는 벌집이 비어 있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비어 있었다.

여왕벌이 없는 벌집에는 생명이 남아 있지 않지만 얼핏 보면 다른 벌집들만큼 살아 있는 듯하다.

벌들은 한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살아 있는 벌집 주위를 돌 때처럼 여왕벌 없는 벌집 주위를 즐겁게 맴돈다. 멀리서는 다른 벌집과 똑같이 꿀 냄새가 나고 벌들도 똑같이 드나든다. 그러나 그 벌집을 자세히 보기만 하면 더는 생명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벌들은 같은 방식으로 날지 않으며 양봉가를 맞는 냄새와 소리도 같지 않다. 병든 벌집 벽을 양봉가가 두드릴 때, 예전에는 수만 마리의 벌이 배를 위협적으로 오므리고 날개를 빠르게 떨며 만들어 내는 살아 있는 공기의 소리인 일제의 웅웅거림이 즉시 울렸다. 그러나 이제 텅 빈 벌집의 여러 곳에서 끊어진 윙윙거림만 대답한다. 벌들이 날개로 부채질하여 깨끗이 쓸어 놓은 벌집 입구의 발판에서는 예전에 꿀과 독의 강하고 향기로운 냄새와 빽빽한 생명의 따뜻한 숨결이 났지만, 이제는 꿀 냄새에 공허와 부패의 냄새가 섞여 나온다. 배를 치켜들고 벌집을 지키다 죽을 준비를 한 보초벌도 더는 경보를 울리지 않는다. 끓는 물처럼 고르고 조용하게 고동치던 활동의 소리는 사라지고 무질서한 소리들이 뒤엉킨다. 꿀이 묻은 길고 검은 도둑벌들은 겁먹고 수상쩍게 벌집을 드나든다. 쏘지 않고 위험을 피해 기어 달아난다. 예전에는 꿀을 실은 벌만 벌집으로 들어와 빈몸으로 나갔지만 이제는 꿀을 싣고 나간다. 양봉가는 벌집 아래쪽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노동으로 길든 윤기 나는 검은 벌들이 서로 다리를 붙잡고 밀랍을 늘이며 끊임없는 노동의 웅웅거림 속에서 벌집 바닥까지 긴 송이처럼 늘어졌던 모습 대신, 쭈그러들고 졸린 벌들이 벌집 바닥과 벽을 따라 제각기 기어 다닌다. 가지런히 붙이고 벌들이 날개로 쓸어 놓았던 바닥에는 밀랍 조각과 배설물, 다리를 간신히 움직이는 죽어 가는 벌과 치우지 않은 죽은 벌이 널려 있다.

양봉가는 벌집 위쪽을 열고 덧통을 살핀다. 벌집의 빈틈마다 벌들이 빽빽이 늘어서 봉하고 애벌레를 따뜻하게 지키던 모습 대신, 정교하고 복잡한 벌집 구조만 보일 뿐 예전의 깨끗한 상태는 아니다. 모든 것이 버려지고 더러워졌다. 검은 도둑벌들이 벌집을 따라 재빠르고 은밀하게 돌아다닌다. 몸집이 작고 쭈그러든 집벌들은 늙은 것처럼 무기력하게 천천히 기어 다니며, 삶의 동기와 감각을 모두 잃어 도둑들을 막으려 하지 않는다. 수벌과 뒤영벌과 말벌과 나비들이 날다가 벌집 벽에 서툴게 부딪친다. 죽은 애벌레와 꿀이 든 방 사이에서는 이따금 성난 윙윙거림이 들린다. 어떤 곳에서는 습관에 따라 애벌레 방을 청소하는 벌 한두 마리가 힘에 부치는 노력을 기울여 죽은 벌이나 뒤영벌을 힘겹게 끌어내면서도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른다. 다른 구석에서는 늙은 벌 두 마리가 힘없이 싸우거나 몸을 닦거나 서로 먹여 주며, 그것이 우호적인 행동인지 적대적인 행동인지 스스로도 모른다. 세 번째 곳에서는 벌들이 서로를 짓누르며 어떤 희생물에게 달려들어 싸우고 질식시킨다. 약해지거나 죽은 희생물은 깃털처럼 천천히 가볍게 떨어져 시체 더미 속으로 들어간다. 양봉가는 애벌레 방을 살피려고 가운데 칸막이 두 개를 연다. 수천 마리 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생식의 높은 신비를 지키며 만들던 빽빽하고 검은 원들 대신, 흐릿하고 무기력하며 졸린 벌의 껍데기 같은 몸 수백 개를 본다. 그들은 지키던 성소가 사라진 줄도 모른 채 그 안에 앉아 거의 모두 죽었다. 썩음과 죽음의 냄새가 난다. 몇 마리만 아직 움직이고 일어나 힘없이 날아 적의 손 위에 내려앉지만, 그를 쏘고 죽을 기력조차 없다. 나머지는 모두 죽어 물고기 비늘처럼 가볍게 떨어진다. 양봉가는 벌집을 닫고 분필로 표시한 뒤 시간이 나면 내용물을 뜯어내 깨끗이 태운다.

마찬가지로 모스크바는 비어 있었다. 지치고 불안하고 침울한 나폴레옹이 카메르콜레시스키 장벽 앞을 오가며, 형식적일 뿐이지만 자기 생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예법인 대표단을 기다릴 때 그러했다.

모스크바 여러 구석에는 아직 몇 사람이 남아 목적 없이 돌아다니며 오랜 습관을 따르고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거의 알지 못했다.

신중을 기해 모스크바가 비었다는 보고를 받은 나폴레옹은 보고한 사람을 성난 눈으로 보고 몸을 돌려 말없이 계속 오갔다.

“마차를 대라!” 그가 말했다.

그는 당직 부관 곁에 앉아 교외로 갔다. ‘모스크바가 버려졌다니!’ 그는 생각했다.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일인가!’

그는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도로고밀로보 교외의 여관에 묵었다.

극적 연출은 실패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