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 제25장
《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제25장

《전쟁과 평화》 제11권 25장 삽화

오전 아홉 시 무렵 군대가 이미 모스크바를 지나가고 있을 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백작에게 지시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했다.

백작은 소콜니키로 갈 마차를 준비하라고 명하고 서재에서 두 손을 포갠 채 침울하고 누르스름한 얼굴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평온하고 아무 일 없는 시대에는 모든 행정관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통치 아래의 모든 주민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에서 수고와 노력의 주된 보상을 찾는다. 역사의 바다가 잔잔한 동안에는 지배자인 행정관이 연약한 조각배에서 갈고리 장대로 민중의 배를 붙잡고 자신도 움직이면서, 자기가 기울이는 노력으로 붙잡은 배가 움직인다고 자연스럽게 상상한다. 하지만 폭풍이 일고 바다가 출렁이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런 착각은 더는 불가능하다. 배는 거대한 자체의 운동으로 움직이고 장대는 움직이는 배에 닿지 않는다. 그러면 행정관은 지배자이자 권력의 근원으로 보이던 자리에서 갑자기 하찮고 쓸모없고 나약한 사람으로 변한다.

로스토프친은 그것을 느꼈고 그 때문에 격분했다.

군중에게 제지당했던 경찰서장이 백작에게 말들이 준비되었다고 알린 부관과 동시에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창백했다. 경찰서장은 받은 지시를 수행했다고 보고한 뒤 거대한 군중이 뜰에 모여 백작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알렸다.

로스토프친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가볍고 호화로운 응접실로 급히 걸어갔다. 발코니 문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았다가 다시 놓고, 군중 전체가 더 잘 보이는 창가로 갔다. 키 큰 젊은이가 앞에 서서 엄한 표정으로 팔을 휘두르며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피투성이 대장장이는 침울한 얼굴로 곁에 서 있었다. 닫힌 창문을 통해 웅성거림이 들렸다.

“마차는 준비됐나?” 로스토프친은 창가에서 물러나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각하.” 부관이 대답했다.

로스토프친은 다시 발코니 문으로 갔다.

“그런데 저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경찰서장에게 물었다.

“각하, 각하의 명령대로 프랑스군과 싸울 준비를 했다고 말하며 반역에 관해서도 무언가 외쳤습니다. 하지만 난폭한 군중입니다, 각하.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각하, 감히 말씀드리자면…….”

“가도 좋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자네가 말해 줄 필요는 없어!” 로스토프친이 성을 내며 외쳤다.

그는 발코니 문가에 서서 군중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러시아를 이렇게 만들었어! 저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는 벌어지는 일의 책임을 씌울 수 있는 누군가를 향해 억누를 수 없이 솟아오르는 분노에 차 생각했다. 격정적인 사람들에게 흔히 그렇듯 분노에 사로잡혔지만 그것을 쏟아부을 대상을 여전히 찾고 있었다. ‘저기 저 무리, 민중의 찌꺼기가 있군.’ 그는 군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들의 어리석음이 선동한 오합지졸이야! 희생물이 필요한 거야.’ 팔을 휘두르는 키 큰 젊은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 자신이 희생물, 곧 분노를 쏟을 무언가를 원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마차는 준비됐나?” 그가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각하. 베레샤긴은 어떻게 하라고 명하시겠습니까?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관이 말했다.

“아!” 로스토프친은 뜻밖의 기억에 얻어맞은 듯 외쳤다.

그는 재빨리 문을 열고 단호하게 발코니로 나갔다. 이야기는 즉시 멎고 모자들이 벗겨졌으며 모든 눈이 백작을 향했다.

“안녕들 한가, 여보게들!” 백작은 활기차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와 주어 고맙네. 곧 자네들에게 나가겠지만 먼저 악당을 처리해야 하네. 모스크바를 파멸시킨 악당을 벌해야 해. 기다리게!”

백작은 똑같이 활기찬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와 문을 쾅 닫았다.

군중 사이에서 찬성과 만족의 웅성거림이 번졌다. “모든 악당을 처리하실 거야, 두고 봐! 프랑스인이라고 했지…… 법이 무엇인지 보여 주실 거야!” 군중은 서로의 불신을 나무라는 듯 말했다.

몇 분 뒤 장교 하나가 서둘러 현관문으로 나와 명령을 내렸고 용기병들이 일렬로 섰다. 군중은 발코니에서 현관 쪽으로 열렬히 움직였다. 성난 빠른 걸음으로 나온 로스토프친은 누군가를 찾는 듯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자가 어디 있나?” 그가 물었다. 말을 하면서 용기병 둘 사이에서 집 모퉁이를 돌아오는 젊은이를 보았다. 길고 가는 목에 반쯤 깎았던 머리에는 짧은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다. 한때 말쑥했을 여우 털 안감의 낡은 푸른 모직 외투와 더러운 삼베 죄수 바지를 입었고, 바지 위로 여위고 더럽고 짓밟힌 장화를 끌어 올렸다. 가늘고 힘없는 두 다리에는 무거운 쇠사슬이 걸려 있어 망설이는 걸음을 방해했다.

“아!” 로스토프친은 털 안감 외투를 입은 젊은이에게서 서둘러 눈길을 돌리고 현관 맨 아래 계단을 가리켰다. “저기에 세워라.”

젊은이는 쇠사슬을 달그락거리며 서툰 걸음으로 지시받은 곳에 갔다. 목을 쓸어 아프게 하는 외투 깃을 손가락 하나로 떼어 놓고 긴 목을 두 번 이쪽저쪽으로 돌린 뒤 한숨을 쉬었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 가느다란 두 손을 순종적으로 앞에 모았다.

젊은이가 계단에 자리를 잡는 몇 초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한 지점으로 밀려드는 뒤쪽 사람들 사이에서 한숨과 신음, 발을 끄는 소리만 들렸다.

로스토프친은 젊은이가 계단에 서기를 기다리며 얼굴을 찌푸리고 손으로 문질렀다.

“여보게들!” 그는 금속성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 베레샤긴은 모스크바를 파멸시킨 악당이다.”

털 안감 외투를 입은 젊은이는 조금 몸을 숙이고 손가락을 앞에 맞잡은 채 순종적인 자세로 섰다. 반쯤 깎인 머리 때문에 흉해진 여위고 젊은 얼굴을 절망적으로 늘어뜨렸다. 백작이 처음 말을 하자 천천히 머리를 들어 무언가 말하려거나 적어도 시선을 마주치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로스토프친은 바라보지 않았다. 젊은이의 길고 가는 목에 있는 핏줄 하나가 끈처럼 부풀어 귀 뒤에서 파랗게 변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모든 눈이 그에게 쏠렸다. 젊은이는 군중의 얼굴을 바라보다 거기서 읽은 표정에 희망을 얻어 슬프고 소심하게 웃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계단 위에서 두 발의 위치를 바꾸었다.

“그자는 차르와 조국을 배신하고 보나파르트 편으로 넘어갔다. 모든 러시아인 가운데 홀로 러시아의 이름을 욕되게 했고 모스크바를 파멸시켰다.” 로스토프친은 날카롭고 고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같은 순종적인 자세로 서 있는 베레샤긴을 갑자기 내려다보았다. 그 광경에 격해진 듯 팔을 들고 거의 고함치며 민중에게 말했다.

“마음대로 처리하라! 자네들에게 넘긴다.”

군중은 말없이 서로에게 더 가까이 밀려들었다. 서로를 뒤에서 막고,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호흡하며, 움직일 수 없는 채 알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무서운 일을 기다리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들은 이들은 모두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온 힘을 다해 버티며 뒤에서 미는 군중을 막았다.

“때려라!…… 반역자는 죽어 러시아의 이름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라!” 로스토프친이 외쳤다. “베어 버려라. 내가 명령한다.”

군중은 로스토프친의 말보다 성난 목소리를 듣고 신음하며 앞으로 출렁였다가 다시 멈추었다.

“백작님!” 순간의 침묵 속에서 베레샤긴의 소심하지만 연극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백작님! 우리 두 사람 위에는 한 분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는 머리를 들었다. 가는 목의 굵은 핏줄에 다시 피가 차고 얼굴의 핏기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는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베어 버려라! 내가 명령한다…….” 로스토프친은 갑자기 베레샤긴처럼 창백해져 외쳤다.

“군도를 뽑아라!” 용기병 장교는 자기 칼을 빼며 외쳤다.

더 강한 파도가 군중 속을 지나 앞줄까지 밀려와 그들을 현관 계단까지 휘청거리게 했다. 돌처럼 굳은 얼굴에 뻣뻣이 팔을 든 키 큰 젊은이는 베레샤긴 곁에 서 있었다.

“칼로 베어!” 용기병 장교가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병사 하나가 갑자기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 군도의 무딘 면으로 베레샤긴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 베레샤긴은 왜 그런 일을 당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겁먹은 눈길로 돌아보며 온순한 놀라움 속에서 외쳤다. 군중 속에서도 비슷한 놀라움과 공포의 신음이 번졌다. “오, 주여!” 슬픈 목소리가 외쳤다.

그러나 놀라서 외친 뒤 베레샤긴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자 그 비명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군중을 억눌러 온 인간 감정의 장벽이 한계까지 팽팽해졌다가 갑자기 무너졌다. 범죄는 시작되었으므로 이제 끝내야 했다. 원망 어린 신음은 군중의 위협적이고 성난 포효에 묻혔다. 배를 부수는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파도처럼 뒤에서 밀려온 저항할 수 없는 마지막 파도가 앞줄까지 이르러 모두를 쓰러뜨리고 삼켰다. 용기병은 다시 내리치려 했다. 베레샤긴은 공포의 비명을 지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군중 쪽으로 달려들었다. 부딪힌 키 큰 젊은이가 두 손으로 그의 가는 목을 붙잡았고 사납게 고함치며 밀치고 싸우는 군중의 발 아래로 함께 쓰러졌다.

어떤 이들은 베레샤긴을 때리고 찢었으며 다른 이들은 키 큰 젊은이를 때렸다. 짓밟히는 이들의 비명과 젊은이를 구하려는 이들의 외침은 군중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용기병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거의 죽도록 맞은 젊은이를 끌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작한 일을 끝내려고 군중이 열병처럼 서둘렀는데도 베레샤긴을 때리고 목을 조르고 찢는 이들은 오랫동안 그를 죽이지 못했다. 군중이 사방에서 한 덩어리로 그들을 중심에 두고 흔들며 밀어붙여 죽일 수도 놓아줄 수도 없게 했기 때문이다.

“도끼로 쳐, 응!…… 깔렸나?…… 반역자, 그리스도를 팔아넘겼어……. 아직 살아 있어…… 질기군…… 당해도 싸! 도둑에게는 고문이 제격이지. 손도끼를 써!…… 뭐야, 아직 살아 있어?”

희생물이 몸부림을 멈추고 비명이 길고 규칙적인 죽음의 숨소리로 바뀌고 나서야 엎어진 피투성이 시체 주위의 군중은 빠르게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다가와 저지른 일을 흘끗 보고 공포와 비난과 놀라움 속에서 뒤로 밀려났다.

“오, 주여! 사람들은 야수 같아!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겠어?” 군중 속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직 아주 젊은 사람인데…… 상인의 아들이었겠지. 사람들이란!…… 엉뚱한 사람이라잖아……. 엉뚱한 사람이 아니라니?…… 오, 주여! 다른 사람도 맞아 거의 죽었다잖아……. 아, 사람들이란……. 죄가 두렵지도 않나?…….” 바로 그 군중이 이제 길고 가늘어 거의 잘린 목과 피와 먼지로 얼룩진 검푸른 얼굴의 시체를 고통스럽고 괴로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부지런한 경찰 관리는 각하의 뜰에 시체가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용기병들에게 치우라고 했다. 용기병 둘이 뒤틀린 두 다리를 잡아 땅바닥으로 끌고 갔다. 피 묻고 먼지가 밴 반쯤 깎인 머리와 긴 목이 땅을 따라 뒤틀리며 끌려갔다. 군중은 그것을 피해 물러섰다.

베레샤긴이 쓰러지고 군중이 사나운 고함을 지르며 그를 에워싸 출렁이던 순간, 로스토프친은 갑자기 창백해졌다. 마차가 기다리는 뒷문으로 가지 않고,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아래층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서둘러 걸었다. 백작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아래턱이 열에 들뜬 듯 떨리는 것을 억누르지 못했다.

“이쪽입니다, 각하…… 어디로 가십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오…….” 떨리고 겁먹은 목소리가 뒤에서 말했다.

로스토프친 백작은 대답하지 못하고 순종적으로 몸을 돌려 지시받은 쪽으로 갔다. 뒷문에는 사륜마차가 서 있었다. 멀리서도 고함치는 군중의 포효가 들렸다. 그는 서둘러 자리에 앉고 마부에게 소콜니키의 별장으로 가라고 했다.

먀스니츠카야 거리에 이르러 군중의 외침이 더는 들리지 않자 백작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부하들 앞에서 드러낸 동요와 두려움을 불쾌하게 떠올렸다. ‘군중은 끔찍하고 역겨워.’ 그는 프랑스어로 혼잣말했다. ‘고깃덩이를 던져 주어야만 잠잠해지는 늑대와 같아.’ ‘백작님! 우리 두 사람 위에는 한 분 하느님이 계십니다!’ 베레샤긴의 말이 갑자기 떠올라 등줄기에 불쾌한 전율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인 감정뿐이었고 로스토프친은 자신을 경멸하듯 웃었다. ‘내게는 다른 의무가 있었어. 민중을 달래야 했지. 공익을 위해 다른 희생자들도 많이 죽었고 죽어 가고 있어.’ 그는 가족과 맡은 도시를 향한 사회적 의무와 자신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표도르 바실리예비치 로스토프친 개인이 아니라 총독이자 권력과 차르의 대표인 자신이었다. 그는 표도르 바실리예비치 로스토프친이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였다면 전혀 다르게 행동했겠지만, 총사령관으로서 내 생명과 위엄을 지킬 의무가 있었어.’

마차의 유연한 용수철 위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무서운 군중의 소리를 더는 듣지 않자 로스토프친은 육체적으로 진정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몸이 평온해지자 정신도 평온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냈다. 그를 진정시킨 생각은 새롭지 않았다. 세상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인 뒤로, 누구도 똑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지 않고 동료 인간에게 이런 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 그 생각은 ‘공익’, 곧 가정된 다른 사람들의 복리다.

격정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그 복리는 결코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언제나 복리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안다. 이제 로스토프친도 그것을 알았다.

이성은 그가 한 일을 나무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편리한 기회를 그토록 성공적으로 이용하여 범죄자를 벌하는 동시에 군중을 진정시킨 데서 스스로 만족할 이유까지 찾았다.

‘베레샤긴은 재판을 받아 사형 선고를 받았어.’ 원로원은 강제노동형만 선고했지만 로스토프친은 생각했다. ‘반역자이며 첩자였어. 벌하지 않고 놓아줄 수 없었으니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았지. 군중을 달래려고 희생물을 주면서 악당을 벌했어.’

별장에 이르러 집안일에 관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자 백작은 완전히 평온해졌다.

30분 뒤 그는 빠른 말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소콜니키 들판을 가로질렀다. 벌어진 일은 더는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했다. 쿠투조프가 있다는 말을 들은 야우자강 다리로 가는 길이었다. 로스토프친 백작은 쿠투조프의 기만을 두고 퍼부을 성나고 날카로운 비난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다. 교활한 늙은 조신에게 도시를 포기한 뒤 일어날 모든 재앙과 로스토프친이 보기에 러시아의 파멸이 그 노망난 늙은 머리의 책임임을 느끼게 할 작정이었다. 할 말을 미리 준비하며 그는 사륜마차 안에서 성난 눈으로 좌우를 엄하게 바라보았다.

소콜니키 들판은 황량했다. 끝의 구빈원과 정신병원 앞에만 흰옷을 입은 몇 사람과 그들과 비슷한 이들이 한 사람씩 들판을 가로질러 걸으며 외치고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하나가 로스토프친 백작의 마차가 가는 길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백작과 마부와 용기병들은 풀려난 미치광이들, 특히 달려오는 사람을 막연한 공포와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길고 가는 두 다리로 좌우로 흔들리고 실내복을 펄럭이며 이 미치광이는 로스토프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맹렬히 달려왔다. 쉰 목소리로 무언가 외치고 멈추라는 몸짓을 했다. 군데군데 수염이 자란 엄숙하고 음울한 얼굴은 여위고 누르스름했다. 샛노란 흰자위 속 흑옥 같은 검은 눈동자가 아래 눈꺼풀 가까이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멈춰! 세우라고 했어!” 그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치고 숨을 헐떡이며 힘주어 억양을 넣고 손짓하며 다시 무언가 외쳤다.

사륜마차와 나란히 이르자 곁을 따라 달렸다.

“세 번 저들이 나를 죽였고 세 번 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났다. 저들은 나를 돌로 치고 십자가에 못 박았어…… 나는 일어나리라…… 일어나리라…… 일어나리라. 저들이 내 몸을 찢었어. 하느님의 왕국은 무너지리라…… 나는 세 번 무너뜨리고 세 번 다시 세우리라!” 그는 갈수록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로스토프친 백작은 군중이 베레샤긴을 에워쌌을 때처럼 갑자기 창백해졌다. 고개를 돌렸다. “빨리…… 더 빨리 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부에게 외쳤다. 사륜마차는 말들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들판을 날아갔다. 그러나 로스토프친 백작은 오랫동안 멀어지는 미치광이의 절망적인 비명을 들었고, 그의 눈에는 털 안감 외투를 입은 ‘반역자’의 놀라고 겁먹은 피투성이 얼굴만 보였다.

그 장면은 최근의 일이었지만 로스토프친은 이미 그것이 마음을 깊이 베어 피를 흘리게 했다고 느꼈다. 그 기억의 피 묻은 흔적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끔찍한 기억이 삶이 끝날 때까지 마음속에 갈수록 더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머물 것임을 이제도 분명히 느꼈다. 자기 말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했다. ‘베어 버려라! 내가 명령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우연히 입 밖에 나왔어…….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생각했다.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겁먹었다가 분노한 칼을 휘두른 용기병의 얼굴과, 털 안감 외투의 젊은이가 자기에게 던진 말없고 소심한 비난의 눈길을 보았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한 일이 아니야.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어……. 군중, 반역자…… 공익.’ 그는 생각했다.

군대는 여전히 야우자강 다리에 몰려 있었고 날은 더웠다. 풀이 죽고 얼굴을 찌푸린 쿠투조프는 다리 옆 긴 의자에 앉아 채찍으로 모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사륜마차가 요란하게 달려왔다.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장군 제복을 입은 남자가 쿠투조프에게 다가가 프랑스어로 무언가 말했다. 로스토프친 백작이었다. 그는 수도 모스크바는 더는 존재하지 않고 군대만 남았기 때문에 왔다고 쿠투조프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다시 한번 전투를 치르지 않고서는 모스크바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말했다.

쿠투조프는 로스토프친을 바라보았다.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 순간 말하는 사람의 얼굴에 쓰인 특이한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했다. 로스토프친은 당황하여 입을 다물었다. 쿠투조프는 머리를 조금 흔들고 꿰뚫는 눈길을 그의 얼굴에서 떼지 않은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니오! 나는 전투 없이 모스크바를 내주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을 할 때 쿠투조프가 전혀 다른 일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말이 무의미함을 알면서 일부러 했는지는 몰라도 로스토프친은 대답하지 않고 서둘러 그를 떠났다. 이상하게도 모스크바 총독인 거만한 로스토프친 백작은 카자크 채찍을 집어 들고 다리로 가 길을 막는 마차들을 고함치며 몰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