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 제6장
《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제6장

《전쟁과 평화》 제11권 6장 삽화

궁정을 따라 빌나에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엘렌은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제국의 최고위 관직 가운데 하나를 차지한 어느 고관의 특별한 보호를 누렸다. 빌나에서는 젊은 외국 공작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자 고관과 공작이 모두 그곳에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엘렌은 어느 쪽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문제에 맞닥뜨렸다.

다른 여자라면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여겼을 일도, 매우 영리한 여자라는 평판을 받을 만했던 베주호바 백작부인에게는 조금도 난처하지 않았다. 엘렌이 일을 숨기려 하거나 꾀를 써서 난처한 처지에서 빠져나오려 했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되어 사정을 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엘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처럼, 자신이 진심으로 믿은 대로 곧바로 자기 입장을 올바른 것으로 정하고 잘못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고 여겼다.

젊은 외국인이 처음으로 그녀를 책망했을 때, 엘렌은 아름다운 머리를 들고 몸을 반쯤 돌려 단호하게 말했다. “남자란 다 그렇군요. 이기적이고 잔인해요! 다른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한 여자가 당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고통받았는데, 돌아오는 보답이 이것인가요! 전하께 무슨 권리로 제 애정과 우정을 따져 물으시는 거죠? 그분은 제게 아버지 이상의 분이에요!” 공작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엘렌이 가로막았다.

“그래요, 그분이 제게 아버지와는 다른 감정을 품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제가 그분에게 문을 닫을 수는 없어요. 나는 남자가 아니니, 은혜를 배은망덕으로 갚지는 않아요! 전하, 제 마음 깊은 곳의 감정에 관해서는 오직 하느님과 제 양심에만 설명한다는 것을 알아 두세요.” 엘렌은 아름답고 풍만하게 부푼 가슴 위에 손을 얹고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제발,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나와 결혼해 주시오. 그러면 당신의 노예가 되겠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나와 결혼하여 몸을 낮출 생각은 없다는 것이오, 당신은…….” 엘렌은 울기 시작하며 말했다.

공작은 그녀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엘렌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자기가 결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선례도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때까지 선례는 거의 없었지만 나폴레옹과 그 밖의 높은 신분의 인물들을 거론했다. 자신은 남편의 아내였던 적이 없고 희생되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법과 종교가…….” 이미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공작이 말했다.

“법과 종교라니요…… 이런 일조차 처리하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만든 거죠?” 엘렌이 말했다.

공작은 그토록 단순한 생각이 자기에게 떠오르지 않았다는 데 놀랐고, 가까이 지내던 예수회의 거룩한 수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며칠 뒤 엘렌이 카멘니섬의 별장에서 연 매혹적인 축제 가운데 하나에서, 이제 젊지는 않지만 눈처럼 흰 머리와 빛나는 검은 눈을 지닌 매력적인 조베르 씨가 엘렌에게 소개되었다. 평복 차림의 예수회 평회원(à robe courte)인 그는 정원의 화려한 조명과 음악 소리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와 성심, 이승과 저승에서 유일한 참된 가톨릭교가 주는 위안에 관해 그녀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엘렌은 감동했고, 한 번 이상 엘렌과 조베르 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으며 목소리가 떨렸다. 엘렌의 춤 상대가 그녀를 데리러 와서 미래의 영적 지도자(directeur de conscience)와 나누던 이야기는 끝났지만, 이튿날 저녁 조베르 씨는 엘렌이 혼자 있을 때 찾아왔고 그 뒤로도 자주 찾아왔다.

* 예수회 평회원.

어느 날 그는 백작부인을 로마 가톨릭 교회로 데려갔고, 엘렌은 안내받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매혹적인 중년의 프랑스인은 그녀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었다. 엘렌은 나중에 자신이 묘사한 대로 신선한 산들바람 같은 것이 영혼 속으로 불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은총(la grâce)’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 뒤에는 긴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찾아왔다. 엘렌은 그에게 고해했고 그는 그녀의 죄를 사해 주었다. 이튿날 엘렌은 성체를 모신 작은 상자를 받아 영성체를 위해 집에 두었다. 며칠 뒤 엘렌은 이제 자신이 참된 가톨릭교회에 받아들여졌고, 며칠 안에 교황이 직접 그 일을 듣고 어떤 문서를 보내 주리라는 사실을 기쁘게 알게 되었다.

그 무렵 엘렌의 주위에서, 그리고 그녀를 위해 이루어진 모든 일, 그토록 많은 영리한 남자가 그토록 유쾌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그녀에게 기울인 관심, 이제 그녀가 누리는 비둘기 같은 순결의 상태는 모두 그녀를 기쁘게 했다. 그동안 엘렌은 흰 드레스와 흰 리본만 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 기쁨 때문에 목적을 한순간이라도 잊지는 않았다. 꾀를 겨루는 일에서는 언제나 어리석은 사람이 더 영리한 사람들을 이기게 마련이다. 엘렌은 이 모든 말과 수고의 주요 목적이 자신을 가톨릭교로 개종시킨 뒤 예수회 기관을 위한 돈을 받아 내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그런 뜻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다. 그리하여 엘렌은 돈을 내놓기 전에 남편에게서 자신을 해방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절차를 수행하라고 고집했다. 엘렌이 보기에 모든 종교의 목적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일정한 예의를 지키게 하는 데 있을 뿐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고해 신부와 나눈 대화에서, 자신의 결혼에 어느 정도까지 구속되는지를 명확히 대답하라고 요구했다.

두 사람은 해 질 무렵 응접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창문으로 꽃향기가 들어왔다. 엘렌은 어깨와 가슴 부분이 비치는 흰 드레스를 입었다. 살이 잘 오른 신부는 통통하고 말끔히 면도한 턱, 기분 좋고 단호한 입매를 지녔으며 흰 두 손을 무릎 위에 얌전히 포개고 엘렌 곁에 앉았다. 그는 입술에 미묘한 미소를 띠고 엘렌의 아름다움을 평온하고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며, 때때로 그녀의 얼굴을 흘끗 보면서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설명했다. 엘렌은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곱슬머리와 통통하고 말끔히 면도한 거무스름한 뺨을 바라보았고, 대화가 언제 새로운 방향으로 바뀔지 기다렸다. 하지만 신부는 함께 앉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분명 즐기면서도 이 문제를 다루는 자신의 솜씨에 몰두해 있었다.

고해 신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무엇을 하려는지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결혼이 지닌 종교적 의미를 믿지 않으면서 혼인 상태에 들어가 신성모독을 저지른 남자에게 부부의 정절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 혼인에는 본래 갖추어야 할 이중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맹세는 여전히 당신을 구속했고, 당신은 그 맹세를 저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소죄입니까, 대죄입니까? 악한 의도 없이 행동했으므로 소죄입니다. 이제 자녀를 낳으려는 목적으로 다시 결혼한다면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에는 다시 두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러나 지루해진 엘렌은 갑자기 사람을 홀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제가 참된 종교를 받아들인 이상 거짓된 종교가 제게 지운 의무에 구속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고해 신부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단순하게 문제가 제시되자 경악했다. 제자가 뜻밖에 그토록 빨리 발전한 데 기뻤으나, 애써 세운 논리의 건축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로 정확히 이해하도록 합시다, 백작부인.” 그는 미소 지으며 말하고 자신의 영적 딸이 내세운 논리를 반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