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 제5장
《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제5장

《전쟁과 평화》 제11권 5장 삽화

바로 그때 전투 없이 퇴각하는 일보다도 더 중대한 사태, 곧 모스크바 주민의 철수와 도시의 화재가 벌어지는 가운데, 흔히 그 사건의 선동자로 묘사되는 로스토프친은 쿠투조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

보로디노 전투 뒤 모스크바를 포기하고 불태우는 일은 러시아군이 전투를 치르지 않고 모스크바 너머로 물러나는 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었다.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추론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조상들 모두에게 깃든 감정으로 그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스몰렌스크를 비롯한 러시아 땅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는 로스토프친 백작이나 그의 벽보와 관계없이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민중은 무심한 듯 적을 기다렸고, 폭동을 일으키거나 흥분하거나 누구를 갈기갈기 찢지도 않은 채 운명을 맞이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찾아낼 힘이 자기 안에 있음을 느꼈다. 적이 다가오자 부유한 계층은 재산을 버리고 떠났고, 가난한 사람들은 남아서 남은 것을 불태우고 부수었다.

일이 그렇게 되리라는, 언제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은 모든 러시아인의 마음속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 모스크바가 점령되리라는 예감과 그런 의식은 1812년 러시아의 모스크바 사회에도 있었다. 이미 7월과 8월 초에 모스크바를 떠난 사람들은 그것을 예상했음을 보여 주었다.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집과 재산의 절반을 버린 채 떠난 사람들은, 말이나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자식을 바치는 것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위업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고 단순하고 유기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강력한 결과를 낳는 잠재된 애국심 때문에 그렇게 했다.

“위험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오. 겁쟁이들만 모스크바를 떠나는 것이오.”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로스토프친은 벽보를 통해 모스크바를 떠나는 일은 수치스럽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겁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럽고 떠나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떠나야 함을 알고 떠났다. 왜 떠났는가? 로스토프친이 나폴레옹이 정복한 나라들에서 저지른 참상을 이야기하여 사람들을 겁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가장 먼저 떠난 사람들은 부유하고 교양 있는 이들이었다. 빈과 베를린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나폴레옹이 점령한 동안 주민들이 매력적인 프랑스인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았다. 당시 러시아인들, 특히 러시아 여성들은 그런 프랑스인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들이 떠난 것은 러시아인에게 프랑스 지배 아래의 모스크바에서 사정이 좋아질지 나빠질지를 묻는 일 자체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지배 아래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최악이었다. 사람들은 보로디노 전투 전부터 떠났고 전투가 끝난 뒤에는 더욱 서둘러 떠났다. 모스크바를 지키라는 로스토프친의 호소도, 그가 이베르 성모의 기적을 일으키는 성상을 가지고 싸우러 나가겠다고 선언한 일도, 프랑스군을 무찌를 비행기구도, 그가 벽보에 적은 온갖 허튼소리도 막지 못했다. 사람들은 싸우는 것이 군대의 일이며, 군대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젊은 숙녀들과 농노들을 모스크바의 세 언덕 지구로 데려가 나폴레옹과 싸울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재산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 아무리 안타까워도 떠나야만 했다. 그들은 그 거대하고 부유한 도시가 파괴되도록 넘겨주는 행위가 지닌 엄청난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채 떠났다. 목조 건물이 많은 큰 도시는 주민들이 버리면 반드시 불타게 마련이었다. 각자 자기 사정에 따라 떠났지만, 그들이 떠났기 때문에 러시아 민중의 가장 위대한 영광으로 영원히 남을 중대한 사건이 이루어졌다. 로스토프친 백작의 명령으로 길이 막힐까 두려워 이미 6월에 흑인 시종들과 여자 어릿광대들을 데리고 모스크바를 떠나 사라토프 영지로 간 귀부인은 자신이 보나파르트의 신하가 아니라는 막연한 의식을 품고 있었다. 바로 그 귀부인이야말로 러시아를 구한 위대한 일을 실제로, 단순하고 진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스토프친 백작은 모스크바를 떠나는 사람들을 조롱했다가 관청을 철수시키고, 술 취한 군중에게 아무 쓸모 없는 무기를 나누어 주었다가 성상을 앞세운 행렬을 벌이고, 아우구스틴 신부에게는 성상이나 성인의 유해를 옮기지 못하게 했다. 모스크바의 사륜마차를 모두 징발하고는 그중 136대에 레피히가 만들던 비행기구를 실어 옮겼다. 모스크바를 불태우겠다는 암시를 하고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고 이야기했다가, 프랑스인들에게 보내는 포고문에서는 그들이 자신의 고아원을 파괴했다고 엄숙히 꾸짖었다. 모스크바를 불태우겠다고 암시한 일을 자신의 영광으로 내세웠다가 다시 그 행위를 부인했다. 사람들에게 모든 첩자를 붙잡아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명령했다가 그렇게 했다고 그들을 나무랐다. 모스크바의 프랑스인들을 모두 추방하면서도 프랑스인 공동체 전체의 중심인 오베르샬메 부인은 남게 했고, 아무 죄도 없는 존경받는 늙은 우체국장 클류차료프는 체포하여 유배하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을 세 언덕에 모아 프랑스군과 싸우게 했다가 그들을 없애 버리려고 한 사람을 내주어 죽이게 하고 자신은 뒷문으로 마차를 달려 떠났다. 모스크바가 함락되면 살아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자신이 그 일에 관여한 몫을 앨범에 프랑스어 시로 썼다. 이런 사람은 벌어지는 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을 놀라게 할 일을 직접 하고 애국적 영웅 행위를 벌이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모스크바의 포기와 화재라는 중대하고 피할 수 없는 사건을 장난감으로 삼았고, 자신을 휩쓸어 가는 거대한 민중의 물결을 보잘것없는 손으로 서두르게 했다가 막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