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 제9장
《전쟁과 평화》 · 제11권 1812년

제9장

《전쟁과 평화》 제11권 9장 삽화

피에르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갑자기 거의 현실처럼 또렷하게 쿵, 쿵, 쿵 하는 포성이 들리고, 포탄이 부딪치는 소리와 신음과 비명이 들렸으며, 피와 화약 냄새가 났다.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겁에 질려 눈을 뜨고 외투 밑에서 머리를 들었다. 뜰은 모두 고요했다. 누군가의 당번병만 문간을 지나며 진창에 물을 튀기고 숙소 주인과 이야기했다. 피에르가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놀란 비둘기 몇 마리가 그의 머리 위 어두운 헛간 지붕 아래에서 날개를 퍼덕였다. 뜰 전체에는 그 순간 피에르에게 더없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마구간의 강하고 평화로운 냄새가 배어 있었다. 두 헛간의 어두운 지붕 사이로 맑고 별이 빛나는 하늘이 보였다.

‘하느님께 감사드려야지. 이제 그런 일은 없어!’ 그는 다시 머리를 덮으며 생각했다. ‘아, 두려움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나는 얼마나 부끄럽게 그것에 굴복했던가! 하지만 그들은…… 그들은 언제나 끝까지 한결같고 침착했어…….’

피에르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포대에 있던 병사들과 그에게 음식을 준 병사들과 성상 앞에서 기도하던 병사들이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낯선 사람들인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과 뚜렷하고 날카롭게 구별되었다.

‘병사가 되는 것, 그저 병사가 되는 것!’ 잠들며 피에르는 생각했다. ‘공동생활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것에 젖는 것. 그러나 내 겉사람이 짊어진 이 쓸데없고 악마 같은 짐을 어떻게 벗어 던질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어. 원했던 대로 아버지에게서 달아날 수도 있었지. 돌로호프와 결투를 벌인 뒤에는 병사로 복무하러 보내졌을 수도 있었고.’ 돌로호프에게 결투를 신청했던 영국인 클럽의 만찬이 피에르의 머릿속에 번뜩였고, 이어 토르조크에서 만난 은인이 떠올랐다. 이제 엄숙한 프리메이슨 지부 모임의 광경이 마음속에 나타났다. 모임은 영국인 클럽에서 열리고 있었고, 가깝고 소중한 누군가가 탁자 끝에 앉아 있었다. ‘그래, 그분이야! 내 은인이야. 하지만 돌아가셨는데!’ 피에르는 생각했다. ‘그래, 돌아가셨지. 나는 그분이 살아 계신 줄 몰랐어. 돌아가셔서 얼마나 안타까운가. 다시 살아 계셔서 얼마나 기쁜가!’ 탁자 한쪽에는 아나톨과 돌로호프와 네스비츠키와 데니소프, 그리고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꿈속에서 이들이 속한 부류는 그가 ‘그들’이라 부르는 이들의 부류만큼 마음속에 뚜렷했다. 아나톨과 돌로호프를 비롯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치고 노래하는 것이 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 사이로 은인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 말소리는 전장의 포성처럼 묵직하고 끊이지 않았지만 기분 좋고 위안을 주었다. 피에르는 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선과 ‘그들’처럼 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하고 선량하고 굳건한 얼굴을 한 ‘그들’은 사방에서 은인을 둘러쌌다. 그러나 그들은 선량하면서도 피에르를 바라보지 않았고 그를 알지도 못했다. 피에르는 말을 걸어 주의를 끌려고 일어났으나, 그 순간 다리가 차갑고 맨살로 드러났다.

그는 부끄러워 한 팔로 다리를 가렸다. 실제로 외투가 다리에서 흘러내려 있었다. 외투를 고쳐 덮으며 잠시 눈을 뜬 피에르는 똑같은 헛간 지붕과 기둥과 뜰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푸른빛을 띠고 서리나 이슬로 반짝였다.

‘동이 트는구나.’ 피에르는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은인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싶어.’ 그는 다시 외투를 덮었으나 이제 지부도 은인도 없었다. 말로 명확히 표현된 생각들만 있었다. 누군가가 말하거나 그 자신이 만들어 내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그 생각들을 떠올린 피에르는, 그날 받은 인상에서 비롯되었음에도 자기 밖의 누군가가 그 말을 했다고 확신했다. 깨어 있을 때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해 본 적이 없다고 여겼다.

“전쟁을 견디는 일은 인간의 자유를 하느님의 법에 굴복시키는 가장 어려운 순종이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단순함은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하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 행동한다. 입 밖에 낸 말은 은이고 하지 않은 말은 금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안 인간은 아무것도 지배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다. 고통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알지도, 자신을 알지도 못할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피에르는 꿈속에서 계속 생각하거나 들었다. “영혼 안에서 모든 것의 의미를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결합한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야, 결합하는 것이 아니야. 생각들은 결합할 수 없어. 이 모든 생각을 하나의 마구에 매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야! 그래, 마구에 매야 해, 마구에 매야 해!” 그는 마음속으로 황홀해하며 되풀이했다.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바로 그 말만이 표현하고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를 풀어 준다고 느꼈다.

“그래, 마구에 매야 해. 마구를 매야 할 때야.”

“마구를 매야 할 때입니다, 마구를 매야 합니다, 각하! 각하!” 어떤 목소리가 되풀이했다. “마구를 매야 합니다. 마구를 매야 할 때입니다…….”

그를 깨우려는 마부의 목소리였다. 햇빛이 피에르의 얼굴을 곧바로 비추었다. 피에르는 야윈 말들에게 병사들이 펌프 물을 먹이고 마차들이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더러운 숙소 뜰을 바라보았다. 그는 혐오감을 느끼며 몸을 돌리고 눈을 얼른 감은 채 다시 마차 좌석에 쓰러졌다. ‘아니야,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아. 이것을 보고 이해하고 싶지 않아. 꿈속에서 내게 모습을 드러내던 것을 이해하고 싶어. 단 1초만 더 있었다면 모든 것을 이해했을 텐데!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마구에 매라고. 하지만 어떻게 모든 것을 하나의 마구에 맬 수 있지?’ 피에르는 꿈에서 보고 생각한 모든 것의 의미가 파괴되었음을 느끼고 몸서리쳤다.

마부와 마차꾼과 숙소 주인은 장교가 찾아와 프랑스군이 벌써 모자이스크 가까이 왔고 아군은 그곳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말했다.

피에르는 일어나 마구를 매고 뒤따라오라고 이른 뒤 걸어서 시내를 지나갔다.

군대는 약 1만 명의 부상자를 남겨 두고 이동하고 있었다. 부상자들은 뜰과 집의 창가에 있었고 거리에도 가득했다. 부상자들 가운데 일부를 데려갈 마차 주위의 거리에서는 고함과 욕설이 들리고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피에르는 뒤따라온 자기 마차를 아는 부상 장군에게 내주고 그와 함께 모스크바로 갔다. 가는 도중 그는 처남 아나톨과 안드레이 공작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