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 제22장
《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제22장

《전쟁과 평화》 제1권 22장 삽화

접견실과 공작 영애의 방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불려 온 피에르와 그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태운 마차가 베주호프 백작 저택의 안뜰로 들어왔다. 바퀴가 창문 아래 깔린 짚 위를 조용히 구를 때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동행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다 그가 구석에서 잠든 것을 깨닫고 깨웠다. 잠에서 깬 피에르는 마차에서 내리는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뒤따랐고, 그제야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의 만남을 생각했다. 정문이 아니라 뒷문으로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마차 발판을 내려오는 동안 장사꾼처럼 보이는 남자 둘이 현관에서 급히 뛰어나와 벽의 그늘에 숨었다. 잠시 멈춘 피에르는 저택 양쪽 그늘에도 같은 부류의 남자들이 여럿 숨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을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안나 미하일로브나도 하인도 마부도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 정상인 모양이군.’ 피에르는 결론짓고 그녀를 따라갔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어둑하고 좁은 돌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며 뒤처지는 피에르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피에르는 자신이 왜 백작에게 가야 하는지, 더구나 왜 뒷계단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확신에 찬 다급한 태도를 보고 이 모든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 물통을 든 남자들이 장화를 쿵쾅거리며 뛰어 내려오다가 두 사람을 거의 쓰러뜨릴 뻔했다. 그들은 피에르와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지나가도록 벽에 바짝 붙었고, 그곳에서 두 사람을 본 일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공작 영애들의 거처로 가는 길이 이쪽인가요?”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그중 한 명에게 물었다.

“예.” 하인은 이제 무슨 일이든 허용된다는 듯 대담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왼쪽 문입니다, 마님.”

“어쩌면 백작께서 나를 부르지 않으셨을지도 몰라요.” 층계참에 도착한 피에르가 말했다. “내 방으로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멈춰 서서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아, 친구!” 그녀는 그날 오후 아들에게 그랬듯 피에르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믿어 주세요. 나도 당신 못지않게 괴롭답니다. 하지만 남자답게 행동하세요!”

“하지만 정말로 그냥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는 안경 너머로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 사랑하는 친구! 당신이 겪은 부당한 일은 잊으세요. 그분이 당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생각하세요…… 어쩌면 임종의 고통을 겪고 계실지도 몰라요.”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당신을 아들처럼 사랑했어요. 나를 믿고 맡기세요, 피에르. 당신의 이익을 잊지 않겠어요.”

피에르는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모든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그는 벌써 문을 여는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온순하게 따라갔다.

문은 뒤쪽 대기실로 이어졌다. 공작 영애들의 늙은 하인 하나가 구석에 앉아 양말을 뜨고 있었다. 피에르는 이쪽에 와 본 적도, 이런 방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술병을 쟁반에 들고 서둘러 지나가는 하녀를 ‘얘야’, ‘착한 아이야’라고 부르며 공작 영애의 안부를 물은 뒤 피에르를 돌 복도로 이끌었다. 왼쪽 첫 번째 문은 공작 영애들의 거처로 이어졌다. 서두르던 하녀는 문을 닫지 않았다. 당시 이 집에서는 모든 일이 서둘러 이루어졌다. 지나가던 피에르와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본능적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바실리 공작과 맏공작 영애가 바싹 붙어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본 바실리 공작은 뚜렷이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뒤로 물러났고, 공작 영애는 벌떡 일어나 절망적인 몸짓으로 문을 힘껏 닫았다.

공작 영애의 평소 침착함과 너무나 다른 행동, 바실리 공작의 위엄과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드러난 두려움 때문에 피에르는 멈춰 서서 안경 너머로 안내자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놀라지 않고,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한숨을 쉬었을 뿐이었다.

“남자답게 행동하세요, 친구. 당신의 이익은 내가 지킬게요.” 그녀는 피에르의 눈길에 답하고 복도를 더욱 빠르게 걸었다.

피에르는 대체 무슨 일인지, 더구나 ‘자신의 이익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복도에서 백작의 접견실과 이어진 어둑하고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정면 현관으로 드나들 때만 보았던 호화롭고 차가운 방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빈 욕조가 놓여 있고 카펫에 물이 쏟아져 있었다. 향로를 든 부제와 발끝으로 걷는 하인이 그들을 본체만체 지나갔다. 두 사람은 피에르에게 익숙한 접견실로 들어갔다. 이탈리아식 창문 두 개가 온실로 열리고, 커다란 흉상과 예카테리나 대제의 전신 초상화가 있는 방이었다. 아까와 거의 같은 사람들이 거의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 속삭이고 있었다. 창백하고 눈물에 지친 안나 미하일로브나와 고개를 숙인 채 온순하게 뒤따르는 크고 뚱뚱한 피에르가 들어서자 모두가 입을 다물고 바라보았다.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얼굴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는 자각이 드러났다. 실무적인 페테르부르크 부인의 태도로 피에르를 곁에 붙인 채, 그날 오후보다 더 대담하게 방으로 들어섰다. 임종을 앞둔 사람이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을 데려왔으니 자신도 틀림없이 들어갈 수 있다고 느꼈다. 방 안의 사람들을 재빨리 훑어보고 백작의 고해신부를 발견하자 종종걸음처럼 미끄러져 다가갔다. 허리를 숙이지 않았지만 갑자기 몸이 작아진 듯한 태도로 한 사제와 다른 사제의 축복을 차례로 공손히 받았다.

“제때 오셔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사제 한 명에게 말했다. “우리 친척들은 모두 몹시 걱정했답니다. 이 젊은이는 백작의 아들입니다.” 그녀는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얼마나 끔찍한 순간인지요!”

이 말을 마친 그녀는 의사에게 다가갔다.

“친애하는 의사 선생님.” 그녀가 말했다. “이 젊은이는 백작의 아들입니다. 희망이 있습니까?”

의사는 재빨리 눈을 들어 바라보고 말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도 똑같은 동작으로 어깨와 눈을 치켜올려 거의 눈을 감고 한숨을 쉰 다음, 의사에게서 떨어져 피에르에게 다가갔다. 유난히 공손하고 다정하게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세요!” 그녀는 피에르에게 작은 소파를 가리키며 앉아 기다리게 했다. 그런 다음 모두가 바라보는 문을 향해 말없이 갔고, 아주 가볍게 삐걱거리는 문 뒤로 사라졌다.

피에르는 안내자의 말에 무조건 따르기로 하고 그녀가 가리킨 소파로 향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사라지자 방 안 모든 사람의 눈길에는 호기심과 동정을 넘어선 무언가가 담겨 있음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경외심과 아첨까지 담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며 서로 속삭였다. 피에르가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존중이 쏟아졌다. 사제들과 이야기하던 낯선 부인이 일어나 자리를 내주었고, 부관은 피에르가 떨어뜨린 장갑을 주워 건넸다. 의사들은 그가 지나갈 때 공손히 침묵하며 길을 비켰다. 처음에는 부인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다른 자리에 앉고, 장갑도 직접 주우며, 길을 막지도 않은 의사들을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밤 자신은 모두가 기대하는 어떤 무서운 의식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므로 그들의 시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관에게서 말없이 장갑을 받고 부인의 의자에 앉았다. 이집트 조각상처럼 순진한 자세로 커다란 두 손을 양 무릎에 가지런히 올렸다. 모든 일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정신을 잃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려면 오늘 밤에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 말고 안내하는 사람들의 뜻에 자신을 완전히 맡겨야 했다.

이 분도 지나지 않아 바실리 공작이 고개를 꼿꼿이 들고 위엄 있게 들어왔다. 가슴에 별 세 개가 달린 긴 상의를 입고 있었다. 아침보다 야윈 듯했고, 방을 둘러보다 피에르를 발견했을 때 두 눈은 평소보다 커 보였다. 그는 피에르에게 다가가 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로 손을 잡은 뒤, 단단히 붙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아래로 잡아당겼다.

“용기를 내게, 용기를, 친구! 그분이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셨네. 잘된 일이야!” 그는 몸을 돌려 가려 했다.

하지만 피에르는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세가 어떠…….” 그는 임종을 앞둔 이를 ‘백작’이라 불러도 되는지 몰라 머뭇거렸지만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웠다.

“반 시간쯤 전에 또 발작을 일으키셨네. 용기를 내게, 친구…….”

피에르의 정신은 너무 혼란스러워 ‘발작’이라는 말을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당혹스럽게 바실리 공작을 바라보다가 나중에야 병의 발작이라는 뜻임을 이해했다. 바실리 공작은 지나가며 로랭에게 무언가 말하고 발끝으로 걸어 문을 통과했다. 발끝 걸음이 서툴러 걸을 때마다 온몸이 들썩였다. 맏공작 영애가 뒤따랐고 사제와 부제들, 하인 몇 명도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에서 물건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여전히 창백하지만 의무를 다하려는 단호한 얼굴로 뛰어나와 피에르의 팔을 가볍게 건드리며 말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다함이 없습니다! 이제 종부성사를 드릴 거예요. 들어오세요.”

피에르는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낯선 부인과 부관, 하인 몇 명도 뒤따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그 방에 들어가기 위한 허락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