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 제4장
《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제4장

《전쟁과 평화》 제1권 4장 삽화

바로 그때 또 한 사람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어린 공작부인의 남편인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이었다. 그는 키가 중간쯤 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단정한, 매우 잘생긴 젊은이였다. 지치고 권태로운 표정에서 조용하고 절제된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것은 작고 활기찬 아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응접실의 모든 사람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듣는 일마저 지겨울 만큼 이미 싫증 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가 지루해하는 그 모든 얼굴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만큼 그를 싫증 나게 하는 것은 없는 듯했다. 그는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찡그리며 아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어 안나 파블로브나의 손에 입을 맞추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방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전쟁터로 떠나시는 건가요, 공작님?” 안나 파블로브나가 물었다.

“쿠투조프 장군께서,” 볼콘스키 공작은 프랑스어로 말하면서 프랑스인처럼 장군의 이름 마지막 음절에 힘을 주었다. “나를 부관으로 받아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부인 리자는요?”

“시골로 갈 겁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부인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앙드레(André),” 아내는 다른 남자들에게 말할 때와 똑같이 교태 어린 태도로 남편을 불렀다. “자작님이 조르주 양과 보나파르트에 관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세요!”

안드레이 공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기쁘고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피에르가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누가 자기 팔을 건드렸는지도 확인하기 전에 성가시다는 듯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피에르의 환한 얼굴을 알아보자 뜻밖에도 따뜻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자네도 상류 사교계에 발을 들였군.” 그가 피에르에게 말했다.

“자네가 여기 있을 줄 알았어.” 피에르가 대답했다. “오늘 저녁 자네 집에 가서 식사하겠네. 그래도 되겠지?”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자작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낮추어 덧붙였다.

“안 된다니, 말도 안 되지!” 안드레이 공작은 웃으며 피에르의 손을 눌러, 그런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뜻을 보였다. 그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그때 바실리 공작과 딸이 돌아가려고 일어섰고 두 젊은이는 그들이 지나가도록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애하는 자작님, 용서해 주십시오.” 바실리 공작은 자작이 일어나지 못하게 친근하게 소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대사관의 이 불행한 축하연 때문에 즐거움을 빼앗기고 자작님의 이야기도 중간에 끊게 되는군요.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러고는 안나 파블로브나를 향해 덧붙였다. “이 매혹적인 모임을 떠나기가 몹시 아쉽습니다.”

그의 딸 엘렌 공작 영애는 드레스의 주름을 가볍게 들어 올린 채 의자들 사이를 지나갔다. 아름다운 얼굴에서는 미소가 한층 더 환하게 빛났다. 피에르는 그녀가 곁을 지나가는 동안 황홀하면서도 거의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참 아름답군.”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정말 그래.” 피에르가 대답했다.

지나가던 바실리 공작은 피에르의 손을 움켜잡고 안나 파블로브나에게 말했다. “나 대신 이 곰을 길들여 주시오! 내 집에 한 달이나 머물렀는데 사교 모임에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오. 젊은이에게 영리한 여성들과 어울리는 것만큼 필요한 것은 없지요.”

안나 파블로브나는 미소를 지으며 피에르를 맡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피에르의 아버지가 바실리 공작과 친척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늙은 이모 곁에 앉아 있던 나이 든 부인은 급히 일어나 대기실에서 바실리 공작을 따라잡았다. 지금까지 억지로 꾸미고 있던 관심 어린 표정은 친절하지만 눈물에 지친 얼굴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불안과 두려움만 남아 있었다.

“공작님, 제 아들 보리스의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는 공작을 따라 대기실로 서둘러 나오며 말했다. “나는 페테르부르크에 더 머물 수가 없어요. 가엾은 아이에게 어떤 소식을 전해 주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바실리 공작은 달가워하지도 예의를 갖추지도 않은 채 그 나이 든 부인의 말을 들었고, 조바심마저 드러냈다. 그러나 부인은 비위를 맞추듯 애원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손을 붙잡았다.

“공작님께서 황제 폐하께 한 말씀만 해 주시면 그 아이는 곧바로 근위대로 전속될 수 있잖아요. 공작님께는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공작부인, 믿어 주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생각이오.” 바실리 공작이 대답했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 직접 청을 올리기는 어렵소. 골리친 공작을 통해 루먄체프에게 부탁하는 편이 좋겠소. 그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오.”

그 나이 든 부인은 러시아의 명문가 출신인 안나 미하일로브나 드루베츠카야 공작부인이었다. 그러나 가난했고, 오랫동안 사교계에서 떠나 지낸 탓에 예전에 지녔던 유력한 연줄도 잃었다. 이제 그녀는 외아들을 근위대에 넣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로 왔다. 사실 바실리 공작을 만나려는 목적 하나로 안나 파블로브나의 모임에 초대받았고, 그 때문에 자작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바실리 공작의 말에 겁을 먹은 그녀의 한때 아름다웠던 얼굴에는 원망스러운 표정이 드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곧 다시 미소를 짓고 공작의 팔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내 말을 들어 주세요, 공작님.” 그녀가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공작님께 무엇을 부탁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부탁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공작님께 베푼 우정을 내세운 적도 없지요. 하지만 이번만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청합니다. 내 아들을 위해 이 일을 해 주세요. 그러면 나는 평생 공작님을 은인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녀는 다급히 덧붙였다. “아니, 화내지 마시고 약속해 주세요! 골리친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예전처럼 마음씨 좋은 분이 되어 주세요.”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늦겠어요.” 문가에서 기다리던 엘렌 공작 영애가 아름다운 머리를 돌리고, 고전적인 조각처럼 빚어진 어깨 너머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교계의 영향력은 오래 유지하려면 아껴 써야 하는 자본과도 같다. 바실리 공작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부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청탁하다가는 정작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부탁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 그는 영향력을 쓰는 데 인색해졌다. 그러나 드루베츠카야 공작부인이 두 번째로 간청하자 양심의 가책과 비슷한 감정이 일었다. 그녀가 상기시킨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출세의 첫걸음을 내디딜 때 그녀의 아버지에게 신세를 졌다. 더구나 그녀의 태도를 보니, 한 번 마음먹으면 목적을 이룰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여자들, 대개 어머니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 여자들은 필요하다면 날마다, 시간마다 계속 졸라 대고 심지어 소란까지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로 그 마지막 생각이 공작의 마음을 움직였다.

“친애하는 안나 미하일로브나.” 그는 평소처럼 친숙하면서도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청하는 일은 내게도 거의 불가능하오. 하지만 당신에게 얼마나 헌신하는지, 또 당신 아버지의 기억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불가능한 일을 해 보겠소. 당신 아들은 근위대로 전속될 것이오. 내 손을 잡으시오. 이제 만족하오?”

“나의 은인이시여! 공작님이라면 그렇게 해 주실 줄 알았어요. 공작님의 선한 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바실리 공작은 돌아서서 가려 했다.

“잠깐만요, 한 말씀만 더! 아이가 근위대로 옮겨지면…….”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공작님은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쿠투조프 장군과 가까우시잖아요…… 보리스를 그분의 부관으로 추천해 주세요! 그러면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고, 그러면…….”

바실리 공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일까지는 약속하지 않겠소. 쿠투조프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시달리는지 당신은 모르는군. 모스크바의 부인들이 모두 자기 아들을 부관으로 보내려고 공모한 것 같다고 그가 직접 내게 말했소.”

“아니, 그래도 약속해 주세요! 공작님을 보내 드리지 않겠어요! 나의 은인이시여…….”

“아버지.” 아름다운 딸이 전과 똑같은 어조로 말했다. “늦겠어요.”

“그럼 이만, 안녕히(Au revoir)! 들었지 않소?”

“그러면 내일 황제 폐하께 말씀드리실 거지요?”

“물론이오. 하지만 쿠투조프에게 부탁하는 일은 약속하지 않겠소.”

“약속해 주세요, 약속해 주세요, 바실리!”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떠나는 그를 향해 외쳤다. 한때는 자연스럽게 어울렸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지치고 수척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태 부리는 소녀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잊은 듯 오랜 습관대로 여자가 쓸 수 있는 옛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그러나 공작이 떠나자 얼굴은 곧 전처럼 차갑고 꾸며 낸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자작이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는 무리로 되돌아가 다시 듣는 척하며 떠날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해야 할 일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