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 제3장
《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제3장

《전쟁과 평화》 제1권 3장 삽화

안나 파블로브나의 모임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사방에서는 물레가 쉬지 않고 일정하게 돌아가듯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커다란 리본을 단 모자를 쓴 이모 곁에는 가늘고 근심 어린 얼굴이 이 화려한 사교계와 어울리지 않는 나이 든 부인 한 사람만 앉아 있었다. 그들을 제외한 손님들은 모두 세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주로 남자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는 모리오 신부를 둘러쌌다.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무리는 바실리 공작의 딸인 아름다운 엘렌 공작 영애와, 나이에 비해 조금 통통하지만 발그레하고 사랑스러운 어린 볼콘스카야 공작부인을 중심으로 모였다. 세 번째 무리는 모르테마르 자작과 안나 파블로브나 주위에 자리 잡았다.

자작은 부드러운 용모와 세련된 태도를 지닌 잘생긴 젊은이였다. 그는 자신이 유명 인사라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지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들어온 모임에 겸손히 몸을 맡기는 듯 행동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그를 손님들에게 특별한 진미처럼 내놓고 있었다. 솜씨 좋은 지배인(maître d’hôtel)이 부엌에서 보았다면 누구도 먹고 싶어 하지 않았을 고깃덩이를 귀한 요리처럼 차려 내놓듯, 그녀는 먼저 자작을, 다음에는 신부를 더없이 특별한 진미처럼 손님들 앞에 내놓았다. 모르테마르 자작을 둘러싼 사람들은 곧 앙기앵 공작의 살해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작은 앙기앵 공작이 자신의 관대한 성품 때문에 죽음을 맞았으며, 보나파르트가 그를 증오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 그래요! 우리에게 모두 들려주세요, 자작님.” 안나 파블로브나는 그 말에서 루이 15세풍(à la Louis XV)의 무엇인가를 느끼고 흐뭇해하며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작님(Contez-nous cela, Vicomte).”

자작은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지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사람들을 그의 주위에 모으고 모두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했다.

“자작님은 공작을 직접 알고 지내셨답니다.” 그녀는 한 손님에게 속삭였다. “자작님은 이야기를 정말 훌륭하게 들려주세요.” 다른 손님에게는 그렇게 말했다. “최상류 사회에 속한 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분명한가요.” 그녀는 또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그렇게 자작은 뜨겁게 달군 접시 위에 보기 좋게 장식한 쇠고기 요리처럼 가장 먹음직스럽고 유리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차려졌다.

자작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쪽으로 와요, 사랑하는 엘렌.” 안나 파블로브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무리의 중심이 되어 앉아 있던 아름다운 공작 영애를 불렀다.

엘렌은 미소 지었다. 그녀는 처음 방에 들어올 때부터 얼굴에 띠고 있던 변함없는 미소,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를 그대로 지닌 채 일어났다. 이끼와 담쟁이덩굴 모양으로 장식된 흰 드레스가 가볍게 바스락거렸다. 새하얀 어깨가 빛나고,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과 다이아몬드가 반짝였다. 그녀는 길을 비켜 주는 남자들 사이를 지나갔다. 누구 한 사람을 따로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모두에게 미소를 보냈다. 마치 누구에게나 자신의 아름다운 몸매와 잘 다듬어진 어깨, 등과 가슴을 바라볼 특권을 너그럽게 허락하는 듯했다. 당시의 유행에 따라 그녀의 어깨와 등, 가슴은 상당히 드러나 있었다. 엘렌은 안나 파블로브나에게 다가가는 동안 마치 무도회의 화려함까지 함께 몰고 오는 듯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요염하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의심할 여지 없이 압도적인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그 아름다움이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 아름답군!”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엘렌이 자작의 맞은편에 앉아 변함없는 미소를 그에게까지 비추자, 자작은 뜻밖의 놀라운 광경에 압도된 사람처럼 어깨를 들썩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부인, 이런 청중 앞에서는 제 재주가 부족할까 두렵습니다.”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엘렌은 둥글고 맨살이 드러난 팔을 작은 탁자 위에 얹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기다렸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줄곧 꼿꼿이 앉아 있었다. 탁자에 눌려 모양이 조금 달라진 자신의 아름답고 둥근 팔을 바라보기도 하고, 더 아름다운 가슴 쪽을 내려다보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고쳐 놓기도 했다. 때때로 드레스의 주름을 매만졌으며,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 때마다 안나 파블로브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즉시 자기 얼굴에 그대로 옮긴 뒤, 다시 환하게 빛나는 미소로 돌아갔다.

어린 공작부인도 차를 마시던 탁자를 떠나 엘렌의 뒤를 따라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자수거리를 가져올게요.” 리자는 그렇게 말한 뒤 이폴리트 공작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내 자수 가방을 가져다주세요.”

리자가 모두에게 한꺼번에 미소 지으며 즐겁게 말을 건네고 자리에 앉자, 사람들 사이에 일제히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제 됐어요.” 그녀는 자리를 편안히 잡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작에게 이야기를 시작해 달라고 청한 뒤 자수를 집어 들었다.

이폴리트 공작은 자수 가방을 가져온 다음 그 무리에 합류했다. 그는 의자를 리자 가까이 끌어당겨 그녀 곁에 앉았다.

‘매력적인 이폴리트(Le charmant Hippolyte)’는 아름다운 누이와 놀랄 만큼 닮았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닮았는데도 지독히 못생겼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누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엘렌의 얼굴과 몸 전체는 즐겁고 자신만만하며 젊고 생기 넘치는 변함없는 미소와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반대로 이폴리트의 얼굴에는 어리석음과 음울한 자만심이 늘 드리워져 있었고 몸은 마르고 허약했다. 눈과 코와 입은 모두 공허하고 지친 찡그림 속으로 오므라든 듯했고, 팔다리는 언제나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늘어졌다.

“유령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그는 공작부인 옆에 앉아 급히 단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마치 그 기구가 없으면 말을 시작할 수도 없다는 듯했다.

“아니오, 그럴 리가요.” 뜻밖의 질문에 놀란 자작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는 유령 이야기를 싫어하거든요.” 이폴리트 공작은 말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한 말의 뜻을 이해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너무도 자신 있게 말해 듣는 사람들은 그 말이 대단히 재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독히 어리석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짙은 초록색 연미복을 입고, 자신이 ‘겁먹은 요정의 허벅지색(cuisse de nymphe effrayée)’이라고 부르는 빛깔의 무릎바지에 구두와 비단 양말을 갖춰 신고 있었다.

자작은 이야기를 아주 능숙하게 들려주었다.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일화에 따르면, 앙기앵 공작은 조르주 양(Mademoiselle George)을 만나려고 몰래 파리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 유명한 여배우의 총애를 함께 받고 있던 보나파르트와 마주쳤다. 마침 나폴레옹은 공작 앞에서 평소 앓던 실신 발작을 일으켜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공작은 그를 해치지 않았고, 보나파르트는 훗날 그 관대함에 죽음으로 보답했다는 이야기였다.

두 경쟁자가 갑자기 서로를 알아보는 대목은 특히 멋지고 흥미로웠다. 여자들은 흥분한 표정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매혹적이군요!” 안나 파블로브나는 어린 공작부인을 떠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매혹적이에요.” 어린 공작부인이 속삭였다. 그녀는 이야기의 흥미와 매력 때문에 더 이상 자수를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늘을 자수감에 꽂았다.

자작은 이 말없는 찬사를 알아차리고 감사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던 젊은이를 줄곧 지켜보고 있던 안나 파블로브나는 피에르가 모리오 신부와 지나치게 큰 소리로 열렬히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급히 그들을 구하러 갔다. 피에르는 신부와 유럽의 세력 균형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는 데 성공한 참이었다. 젊은이의 순박한 열성에 흥미를 느낀 듯한 신부는 자신이 아끼는 이론을 설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나치게 열심히, 그리고 지나치게 자연스럽게 말하고 들었다. 바로 그것이 안나 파블로브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방법은 유럽의 세력 균형과 민족들의 권리에 있습니다.” 신부가 말하고 있었다. “러시아처럼 강력한 한 나라가, 비록 야만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 사심 없이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맹의 선두에 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균형을 어떻게 이룬다는 겁니까?” 피에르가 말을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안나 파블로브나가 다가왔다. 그녀는 피에르에게 엄한 눈길을 보내면서, 이탈리아인 신부에게 러시아의 기후가 어떠냐고 물었다. 이탈리아인의 얼굴은 즉시 달라졌다. 여자들과 대화할 때 늘 짓는 표정인 듯, 지나치게 꾸민 달콤하고 느끼한 표정을 띠었다.

“제가 영광스럽게 맞아들여진 이곳 사교계, 특히 여성 사회의 찬란한 지성과 교양에 완전히 매혹된 나머지, 아직 기후를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신부와 피에르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을 더 편리하게 감시할 수 있도록 그들을 큰 무리 속으로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