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 제16장
《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제16장

《전쟁과 평화》 제1권 16장 삽화

결국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진로를 정하지 못했고, 난동을 부린 탓에 그곳에서 쫓겨나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로스토프 백작 집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피에르도 경찰관을 곰과 함께 묶는 일에 가담했다. 그는 며칠 전부터 모스크바에 와서 여느 때처럼 아버지 집에 머물고 있었다. 자신의 소행이 모스크바에도 알려졌고, 원래부터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아버지 곁의 여인들이 그 일을 이용해 백작의 마음을 돌려놓았으리라 예상했다. 그래도 도착한 날 그는 아버지가 사는 쪽으로 갔다. 공작 영애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응접실로 들어가자, 자수틀 앞에 앉은 두 사람과 소리 내어 책을 읽는 한 사람이 있었다. 책을 읽던 이는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만난 맏이였다. 두 동생은 자수를 놓고 있었다. 둘 다 발그레하고 예뻤으며, 한 명의 입술에 작은 점이 있어 훨씬 더 예뻐 보인다는 점만 달랐다. 그들은 피에르를 시체나 나병 환자처럼 맞았다. 맏이는 읽기를 멈추고 겁먹은 눈으로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둘째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쾌활하고 생기 넘치는 성격인 점박이 막내는 곧 벌어질 우스운 광경을 예상한 듯 미소를 감추려고 자수틀 위로 몸을 숙였다.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무늬를 들여다보는 척 실을 천 아래로 잡아당겼다.

“안녕하시오, 사촌들.” 피에르가 말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소?”

“너무나 잘 알아보지요. 지나칠 만큼 잘요.”

“백작의 병세는 어떻소? 만나 뵐 수 있겠소?” 피에르는 여느 때처럼 어색하지만 주눅 들지는 않은 태도로 물었다.

“백작께서는 육체와 정신 모두 고통받고 계세요. 그런데 당신은 그 정신적 고통을 더하려고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한 모양이군요.”

“백작을 만나 뵐 수 있겠소?” 피에르는 다시 물었다.

“흥…… 그분을 죽이고 싶다면, 아주 끝장내고 싶다면 만나도 되겠지요…… 올가, 아저씨의 고기 수프가 준비됐는지 가서 봐. 거의 시간이 됐어.” 그녀는 자신들이 바쁘며 아버지를 편안하게 해 드리느라 바쁜 반면, 피에르는 그분을 괴롭히는 일에만 바쁘다는 것을 알리듯 덧붙였다.

올가는 나갔다. 피에르는 자매들을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 방으로 가겠소. 언제 뵐 수 있는지 알려 주시오.”

그는 방을 나갔다. 입술에 점이 있는 동생의 낮지만 낭랑한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다음 날 바실리 공작이 도착해 백작의 집에 머물렀다. 그는 피에르를 불러 말했다. “친구, 여기서도 페테르부르크에서처럼 행동한다면 아주 나쁜 결말을 맞을 걸세.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야. 백작은 몹시, 몹시 위중하시니 자네는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네.”

그 뒤로 아무도 피에르를 방해하지 않았고, 그는 줄곧 위층의 자기 방에서 지냈다.

보리스가 문 앞에 나타났을 때 피에르는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따금 구석에 멈춰 보이지 않는 적을 칼로 찌르는 듯 벽을 향해 위협적인 몸짓을 하고, 안경 너머로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걸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몸짓을 했다.

“영국은 끝장났다.” 그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찡그려 보며 손가락질했다. “국가와 인권을 배신한 피트 씨에게…… 형을 선고한다.” 그 순간 자신을 나폴레옹 본인이라 상상하며, 위험한 도버 해협 횡단을 마치고 런던을 점령한 피에르가 피트에게 선고를 내리려던 찰나, 체격 좋고 잘생긴 젊은 장교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피에르는 멈춰 섰다. 보리스가 열네 살 소년일 때 모스크바를 떠난 그는 보리스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의 충동적이고 진심 어린 태도로 보리스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보리스가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차분히 물었다. “어머니와 함께 백작님을 뵈러 왔는데 편찮으신 모양이군요.”

“그래, 아프신 모양이야. 사람들이 늘 그분을 괴롭히지.” 피에르는 이 젊은이가 누구인지 떠올리려 애쓰며 대답했다.

보리스는 피에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지만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피에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로스토프 백작께서 오늘 저녁 식사에 오시라고 합니다.” 상당히 긴 침묵으로 피에르를 불편하게 만든 뒤 그가 말했다.

“아, 로스토프 백작!” 피에르가 기뻐하며 외쳤다. “그럼 자네가 그분의 아들 일리야로군? 이런,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네. 우리가 자코 부인과 참새 언덕에 갔던 일 기억하나?…… 정말 오래됐군…….”

“잘못 아셨습니다.” 보리스는 대담하고 약간 빈정거리는 미소를 띠고 또렷하게 말했다. “저는 안나 미하일로브나 드루베츠카야 공작부인의 아들 보리스입니다. 아버지 로스토프 백작의 이름이 일리야이고, 그 아들은 니콜라이입니다. 저는 자코 부인을 알지 못합니다.”

피에르는 모기나 벌의 습격이라도 받은 듯 머리와 두 팔을 흔들었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모두 뒤섞었군. 모스크바에는 친척이 너무 많아! 자네가 보리스로군? 물론이지. 이제 서로 누군지 알겠군. 불로뉴 원정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폴레옹이 해협만 건너면 영국은 큰일 날 거야. 나는 원정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네. 빌뇌브만 일을 망치지 않는다면!”

보리스는 불로뉴 원정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신문을 읽지 않았고 빌뇌브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우리 모스크바 사람들은 정치보다 만찬과 추문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차분하고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저는 그 일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모스크바는 주로 소문에 몰두하지요. 지금은 당신과 아버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피에르는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할까 그를 위해 걱정하는 듯했다. 그러나 보리스는 피에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분명하고 또렷하고 건조하게 말했다.

“모스크바에는 소문을 이야기하는 것 말고 할 일이 없습니다.” 보리스가 계속했다. “백작께서 누구에게 재산을 남길지 모두 궁금해하지요. 물론 제가 진심으로 바라듯, 어쩌면 그분이 우리 모두보다 오래 사실지도 모르지만요…….”

“그래, 모두 몹시 끔찍한 일이야.” 피에르가 말을 가로막았다. “정말 끔찍해.”

피에르는 이 장교가 무심코 자신을 당황하게 할 말을 꺼낼까 여전히 두려웠다.

“당신에게는 이런 생각이 드시겠지요.” 보리스는 조금 얼굴을 붉혔지만 어조와 태도는 바꾸지 않고 말했다. “모두가 부자에게서 무엇인가 얻어 내려 한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실제로 그래.’ 피에르는 생각했다.

“하지만 오해를 피하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나 제 어머니를 그런 사람들로 여긴다면 완전히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우리는 몹시 가난하지만, 적어도 저는 바로 당신의 아버님이 부자라는 이유 때문에 제 자신을 그분의 친척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도 그분께 무엇을 청하거나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피에르는 한참 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침내 알아듣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빠르고 서투른 동작으로 보리스의 팔꿈치 아래를 붙잡았다. 보리스보다 훨씬 더 얼굴을 붉힌 채 수치와 짜증이 뒤섞인 감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거 이상하군! 내가…… 누가 그런 생각을……? 나는 잘 알고 있네…….”

그러나 보리스가 다시 말을 가로막았다.

“모든 것을 솔직히 말씀드려 기쁩니다. 혹시 기분이 상하셨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피에르에게 위로받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편하게 해 주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언제나 솔직히 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무어라고 답을 전할까요? 로스토프 댁의 저녁 식사에 오시겠습니까?”

보리스는 무거운 의무를 벗고 곤란한 처지에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놓은 듯, 다시 아주 유쾌한 사람이 되었다.

“아니, 내 말 좀 들어 보게.” 피에르는 진정하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야! 방금 한 말은 훌륭해. 아주 훌륭하네. 물론 자네는 나를 모르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으니까…… 어린 시절 이후로는 말이야. 자네는 내가…… 이해하네. 아주 잘 이해해.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용기가 없었겠지. 하지만 훌륭해. 자네를 알게 되어 정말 기쁘네. 이상하군.” 그는 잠시 뒤 덧붙였다. “자네가 나를 의심했다니!” 그는 웃기 시작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앞으로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라네.” 그는 보리스의 손을 꼭 잡았다. “있잖나, 나는 백작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 나를 찾지도 않으셨고…… 한 인간으로서 그분이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그렇다면 나폴레옹이 군대를 건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피에르는 보리스가 화제를 바꾸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도 같은 마음이었으므로 불로뉴 원정의 장단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인이 들어와 공작부인이 떠난다고 보리스를 불렀다. 피에르는 보리스와 더 가까워지려고 저녁 식사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안경 너머로 애정 어린 눈길을 보리스의 두 눈에 보냈다. 보리스가 떠난 뒤 피에르는 오랫동안 방 안을 서성거렸다. 이제 상상의 칼로 상상의 적을 찌르지는 않았고, 유쾌하고 영리하며 단호한 젊은이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젊은 시절, 특히 외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듯 그는 까닭 모를 다정한 감정을 이 젊은이에게 느끼고 두 사람이 친구가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바실리 공작이 공작부인을 배웅했다. 그녀는 손수건을 눈에 대고 있었고 얼굴에는 눈물이 흘렀다.

“끔찍해요, 끔찍합니다!” 그녀는 말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의무를 다할 거예요. 밤을 보내러 다시 오겠습니다. 그분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요. 매 순간이 귀중합니다. 조카딸들이 왜 일을 미루는지 모르겠군요. 어쩌면 하느님께서 내가 그분을 준비시킬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실지도 모르지요!…… 안녕히 계세요, 공작님!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기를…….”

“안녕히 가시오, 좋은 분.” 바실리 공작은 그녀에게서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아, 병세가 끔찍하더구나.” 마차에 오른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다. “사람을 거의 알아보지 못하셔.”

“어머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분은 피에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들이 물었다.

“유언장을 보면 알게 되겠지, 얘야. 우리 운명도 거기에 달렸단다.”

“하지만 왜 그분이 우리에게 무언가 남길 거라고 기대하세요?”

“아, 얘야! 그분은 그렇게 부유하고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잖니!”

“글쎄요, 어머니,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못 되는 것 같은데요…….”

“아, 하느님! 어쩌면 저렇게 위중하실까!” 어머니가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