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 제9장
《전쟁과 평화》 · 제1권 1805년

제9장

《전쟁과 평화》 제1권 9장 삽화

피에르가 친구의 집을 나선 것은 한 시가 넘어서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북쪽 지방의 여름밤이었다. 피에르는 곧장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지붕 없는 마차를 탔다. 그러나 집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밤에 잠을 잔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텅 빈 거리의 먼 곳까지 보일 만큼 밝았고, 밤이라기보다는 아침이나 저녁 같았다. 가는 도중 피에르는 그날 저녁 아나톨 쿠라긴이 늘 어울리던 사람들을 불러 카드놀이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카드놀이가 끝나면 대개 술판이 벌어졌고, 마지막에는 피에르가 무척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쿠라긴의 집에 가고 싶군.’ 그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안드레이 공작에게 약속한 일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러자 의지가 약한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듯, 익숙한 방탕을 다시 한번 즐기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강렬해져서 결국 가기로 마음먹었다. 안드레이 공작에게 한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즉시 떠올랐다. 그 약속을 하기 전에 이미 아나톨 공작에게 모임에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예를 건다는 따위의 말은 모두 관습적인 표현일 뿐 확실한 의미가 없어. 특히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고, 혹은 명예와 불명예가 아무 차이도 없어질 만큼 엄청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피에르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결심과 의도를 무효로 만드는 일이 잦았다. 그는 쿠라긴의 집으로 갔다.

근위기병대 병영 근처에 있는 아나톨의 커다란 집에 도착한 피에르는 불이 밝혀진 현관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른 뒤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섰다.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병과 외투와 덧신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술 냄새가 났으며, 멀리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고함이 들려왔다.

카드놀이와 저녁 식사는 끝났지만 손님들은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피에르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식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하인 하나가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잔에 남은 술을 몰래 마시고 있었다. 세 번째 방에서는 웃음소리와 낯익은 목소리들의 고함, 곰의 으르렁거림과 온갖 소란이 들려왔다. 여덟아홉 명쯤 되는 젊은이들이 열린 창문 주위에 잔뜩 몰려 있었다. 다른 세 명은 어린 곰을 데리고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사슬을 잡아당기며 곰을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들게 하려 했다.

“스티븐스에게 백을 걸겠어!” 한 사람이 외쳤다.

“붙잡으면 안 돼!” 다른 사람이 소리쳤다.

“나는 돌로호프에게 걸겠어!” 세 번째 사람이 외쳤다. “쿠라긴, 자네가 우리 손을 떼어 놓게.”

“자, 곰은 내버려 둬. 여기 내기가 시작됐어.”

“단숨에 마셔야 해. 아니면 지는 거야!” 네 번째 사람이 외쳤다.

“야코프, 술 한 병 가져와!” 일행 한가운데 서 있던 주인이 외쳤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이로, 웃옷을 벗고 고운 아마포 셔츠의 앞섶을 풀어 헤친 차림이었다. “잠깐, 친구들…… 페탸가 왔군! 잘 왔어!” 그는 피에르를 향해 외쳤다.

창가에 있던 다른 목소리가 외쳤다. 맑고 푸른 눈을 지닌 중키의 남자가 낸 목소리로, 술 취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유난히 또렷하고 맑게 들렸다. “이리 와서 내기 건 사람들의 손을 떼어 놓아 줘!” 그는 세묘놉스키 연대의 장교이자 악명 높은 도박꾼이며 결투자인 돌로호프로, 아나톨의 집에 함께 살고 있었다. 피에르는 유쾌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대체 무슨 일이야?”

“잠깐만, 아직 취하지 않았잖아! 술 한 병 이리 줘.” 아나톨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서 잔 하나를 집어 들고 피에르에게 다가갔다.

“무엇보다 먼저 마셔야지!”

피에르는 눈썹 아래로 술에 취한 손님들을 바라보며 한 잔씩 거듭 마셨다. 손님들은 다시 창가로 몰려들어 떠들어 댔다. 아나톨은 계속 피에르의 잔을 채우면서 돌로호프가 영국 해군 장교 스티븐스와 내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삼 층 창문의 바깥쪽 턱에 다리를 내놓고 앉아 럼주 한 병을 마시겠다는 내기였다.

“자, 전부 마셔야 해.” 아나톨은 피에르에게 마지막 잔을 건네며 말했다. “안 그러면 보내 주지 않을 거야!”

“아니, 안 마시겠어.” 피에르는 아나톨을 밀어내고 창가로 다가갔다.

돌로호프는 영국인의 손을 잡고 내기의 조건을 분명하고 또렷하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특히 아나톨과 피에르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돌로호프는 중키에 곱슬머리와 연한 푸른 눈을 지닌 스물다섯 살가량의 남자였다. 모든 보병 장교가 그렇듯 콧수염을 기르지 않아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입매가 훤히 드러났다. 그 입술의 선은 놀랄 만큼 섬세하게 휘어 있었다. 윗입술의 가운데는 뾰족한 쐐기 모양을 이루며 단단한 아랫입술에 굳게 다물렸고, 입 양쪽 끝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미소 같은 것이 언제나 떠돌았다. 단호하고 오만한 지성이 담긴 눈빛과 어우러진 그 표정 때문에 그의 얼굴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돌로호프는 재산도 인맥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수만 루블을 쓰는 아나톨과 함께 살면서, 아나톨 자신을 포함해 두 사람을 아는 모두가 아나톨보다 그를 더 존중할 만큼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돌로호프는 모든 놀이를 할 줄 알았고 거의 언제나 이겼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정신이 흐려지는 법이 없었다. 당시 쿠라긴과 돌로호프는 둘 다 페테르부르크의 방탕아와 난봉꾼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럼주 병이 들어왔다. 바깥쪽 창턱에 앉지 못하게 가로막는 창틀을 하인 둘이 억지로 떼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주위 신사들의 지시와 고함에 당황하고 겁먹은 것이 분명했다.

아나톨은 거드름을 피우며 창가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는 무엇이든 부수고 싶었다. 하인들을 밀쳐 내고 창틀을 잡아당겼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유리창 한 장을 깨뜨렸다.

“헤라클레스, 자네가 해 봐.” 그가 피에르를 돌아보며 말했다.

피에르는 가로대를 움켜쥐고 잡아당겨 참나무 창틀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뜯어냈다.

“완전히 치워 줘. 내가 붙잡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니까.” 돌로호프가 말했다.

“영국인이 허풍을 떨고 있나?…… 어때? 다 됐어?” 아나톨이 말했다.

“훌륭해.” 피에르가 말했다. 그는 럼주 병을 든 채 창문으로 다가가는 돌로호프를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는 저녁노을과 새벽빛이 뒤섞인 하늘의 빛이 보였다.

돌로호프는 럼주 병을 든 채 창턱 위로 뛰어올랐다. “잘 들어!” 그가 그곳에 서서 방 안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오십 임페리알을 걸겠어.” 그는 영국인이 알아듣도록 프랑스어로 말했지만 프랑스어가 썩 능숙하지는 않았다. “오십 임페리알을 걸지…… 아니면 백으로 할 텐가?” 그가 영국인에게 덧붙였다.

“아니, 오십.” 영국인이 대답했다.

“좋아. 오십 임페리알을 걸고…… 럼주 병을 입에서 떼지 않고 한 병을 전부 마시겠어. 창문 바깥의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말이야.” 그는 몸을 굽혀 창문 밖의 비스듬한 턱을 가리켰다. “그리고 아무것도 붙잡지 않겠어. 맞나?”

“정확해.” 영국인이 말했다.

아나톨은 영국인 쪽으로 몸을 돌려 외투 단추 하나를 붙잡았다. 영국인은 키가 작았기 때문에 아나톨은 그를 내려다보며 영어로 내기의 조건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잠깐!” 돌로호프가 주의를 끌려고 병으로 창턱을 두드리며 외쳤다. “잠깐만, 쿠라긴. 들어 봐!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한다면 내가 그에게 백 임페리알을 주겠어. 알아들었나?”

영국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도전을 받아들일 생각인지 아닌지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나톨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영국인이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계속 고개를 끄덕이는데도 돌로호프의 말을 영어로 옮겨 주었다. 그날 저녁 돈을 잃은 근위 경기병대의 여윈 젊은이가 창턱 위로 올라가 몸을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 오! 오!” 그는 창문 아래의 포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입 다물어!” 돌로호프가 외치며 그를 창가에서 밀어냈다. 젊은이는 박차에 발이 걸려 어색하게 비틀거리며 방 안으로 뛰어내렸다.

돌로호프는 손이 쉽게 닿는 창턱에 병을 놓고 조심스럽고 천천히 창문을 넘어 다리를 내렸다. 창문 양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자리를 잡은 뒤, 두 손을 내리고 오른쪽으로 조금, 다시 왼쪽으로 조금 움직인 다음 병을 집어 들었다. 이미 날이 제법 밝았지만 아나톨은 촛불 두 개를 가져와 창턱에 놓았다. 흰 셔츠를 입은 돌로호프의 등과 곱슬머리가 양쪽에서 환히 비쳤다. 모두가 창가로 몰려들었고 영국인이 맨 앞에 섰다. 피에르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한 남자가 겁에 질리고 화난 얼굴로 갑자기 앞으로 밀고 나와 돌로호프의 셔츠를 붙잡으려 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죽을 거라고.” 그나마 분별 있는 남자가 말했다.

아나톨이 그를 막았다.

“건드리지 마! 놀라게 하면 정말 죽어. 그러면 어쩔 건데?…… 응?”

돌로호프는 몸을 돌려 다시 두 손으로 붙잡고 자리를 바로잡았다.

“누구든 다시 끼어들면,” 그는 얇게 다문 입술 사이로 한 단어씩 끊어서 말했다. “저 아래로 던져 버리겠어. 자, 시작하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몸을 돌려 손을 내려놓았다. 병을 들어 입술에 대고 머리를 뒤로 젖힌 다음, 균형을 잡으려고 빈손을 위로 들었다. 깨진 유리 조각을 주우려고 몸을 굽힌 하인 하나는 그대로 굳은 채 창문과 돌로호프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나톨은 눈을 크게 뜨고 꼿꼿이 서 있었다. 영국인은 입술을 오므리고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일을 막으려 했던 남자는 방 한구석으로 달려가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소파에 몸을 던졌다. 피에르는 얼굴을 가렸다. 희미한 미소가 채 사라지지 않은 얼굴에는 이제 공포와 두려움이 드러나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피에르는 눈에서 손을 떼었다. 돌로호프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다만 머리를 더 뒤로 젖혀 곱슬머리가 셔츠 깃에 닿았고, 병을 든 손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가며 힘을 쓰느라 떨리고 있었다. 병은 눈에 띄게 비어 갔고 더 높이 들렸으며 머리도 한층 뒤로 젖혀졌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피에르는 생각했다. 반 시간도 더 지난 듯했다. 갑자기 돌로호프가 허리를 뒤로 움직였고 팔이 신경질적으로 떨렸다. 그것만으로도 비스듬한 턱에 앉은 몸 전체가 미끄러지기에 충분했다. 몸이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힘을 주느라 머리와 팔이 더욱 흔들렸다. 한 손이 창턱을 붙잡으려 움직였지만 끝내 닿지는 않았다. 피에르는 다시 눈을 가리며 영영 뜨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돌로호프가 창턱 위에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환하게 빛났다.

“다 비웠어.”

그는 영국인에게 병을 던졌고 영국인은 능숙하게 받아 냈다. 돌로호프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에게서 럼주 냄새가 진동했다.

“잘했어!…… 멋진 친구야!…… 이게 진짜 내기지!…… 빌어먹을 녀석!”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영국인은 지갑을 꺼내 돈을 세기 시작했다. 돌로호프는 얼굴을 찌푸린 채 말없이 서 있었다. 피에르가 창턱 위로 뛰어올랐다.

“신사 여러분, 나와 내기할 사람 있습니까? 나도 똑같이 하겠소!” 그가 갑자기 외쳤다. “내기하지 않아도 좋아! 어서 술 한 병을 가져오라고 해. 나도 하겠어…… 병을 가져와!”

“하게 둬, 하게 둬.” 돌로호프가 웃으며 말했다.

“또 무슨 짓이야? 미쳤나?…… 아무도 자네에게는 못 시켜!…… 자네는 계단에서도 어지럼증이 나잖아!” 여러 목소리가 외쳤다.

“마시겠어! 럼주 한 병 가져와!” 피에르는 단호하면서도 술 취한 몸짓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창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면서 외쳤다.

사람들이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피에르가 워낙 힘이 세서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가떨어졌다.

“아니, 그런 식으로는 절대 못 막아.” 아나톨이 말했다. “잠깐 기다려. 내가 잘 달래 볼 테니까…… 들어 봐! 내일은 자네와 내기하겠어. 하지만 지금은 모두 함께 ——의 집으로 가는 거야.”

“그럼 가자!” 피에르가 외쳤다. “가자!…… 곰도 데려가자.”

그는 곰을 붙잡아 두 팔로 안아 땅에서 들어 올린 뒤, 곰과 함께 방 안을 빙빙 돌며 춤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