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1877

제8부 제8장

형의 죽음 이후 놓지 못한 삶과 죽음의 물음
형의 죽음 이후 놓지 못한 삶과 죽음의 물음

사랑하는 형 니콜라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레빈이 처음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스스로 ‘새로운 신념’이라고 부르던 것들을 통해 바라보게 된 그 순간부터 ― 스무 살에서 서른네 살 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믿음을 대신해버린 그 신념들을 통해 ― 그는 죽음보다도 오히려, 삶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있으며 왜 존재하고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사실에 더 큰 공포를 느꼈다.

유기체, 그 유기체의 붕괴, 물질의 불멸성, 에너지 보존 법칙, 발전과 진화 ― 이런 말들이 예전의 신앙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말들과 그 말들에 연결된 개념들은 지적인 목적에는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레빈은 문득, 따뜻한 모피 외투를 얇은 모슬린 옷과 바꾸어 입은 사람과 같은 처지에 자신이 놓여 있음을 느꼈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혹한 속에 나섰을 때, 논리적인 추론이 아니라 온몸으로, 자기는 사실상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피할 길 없이 고통스럽게 얼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같았다.

그 순간부터 레빈은 스스로 그것을 분명히 의식하지 못한 채 예전처럼 살아가면서도,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두려움을 한순간도 떨쳐버리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가 ‘신념’이라고 부르던 것이 단지 무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절실히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애초에 알 수 없게 만드는 사고방식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처음 한동안은 결혼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기쁨과 의무들이 이런 생각들을 완전히 눌러버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내의 출산 뒤 모스크바에서 별다른 일 없이 지내게 되자 대답을 요구하는 그 문제가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끈질기게 레빈 앞에 나타났다.

그에게 문제는 이것이었다.

‘내 삶의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가 내놓는 대답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대답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러나 자기 신념이라는 무기고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는 어떤 대답은커녕 대답 비슷한 것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장난감 가게와 무기상점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 사람과 같은 처지였다.

자기도 모르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는 이제 읽는 모든 책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이 문제와 관련된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한 것은 자기 또래, 자기 계층의 대다수 사람들 역시 자기처럼 옛 신앙을 버리고 자기와 똑같은 새로운 신념으로 대신했으면서도, 그 속에서 아무런 불행도 느끼지 않고 완전히 만족하고 평온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문제 외에도 또 다른 질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진심으로 그러는 것일까? 가장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과학이 자기의 질문들에 내놓는 대답을, 그들이 자기보다 어떤 다른 방식으로 더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그런 사람들의 견해와, 그런 대답을 담은 책들을 부지런히 살펴보았다.

이 문제들이 그를 사로잡은 뒤 그가 발견한 것 가운데 하나는, 대학 시절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종교는 이미 시대가 지나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던 자기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이었다.

생활로 보아 선량하고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믿고 있었다. 늙은 공작도, 그가 좋아하게 된 리보프도,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도 믿었고, 여자들은 모두 믿었다. 아내는 자기가 아주 어린 시절 믿었던 것처럼 믿고 있었다. 러시아 민중의 거의 전부, 그 삶에 대해 레빈이 가장 깊은 존경을 느끼는 바로 그 민중도 믿고 있었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많은 책을 읽은 끝에 자기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 역시 그 말들 속에 다른 어떤 깊은 뜻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는커녕 자신이 대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문제들 자체를 부정한 채, 유기체의 발전이나 영혼의 기계적 설명 따위, 그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전혀 다른 문제들을 풀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아이를 낳던 때 그 자신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었다. 믿지 않는 사람인 그가 기도했고, 기도하는 그 순간에는 믿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자 그는 그때의 정신상태를 지금의 자기 삶 속 어디에도 놓을 수 없었다.

그때는 진실을 알고 있었고 지금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침착하게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때 자기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때의 정신상태를 소중히 여겼고, 그것을 나약함의 산물이라고 인정한다면 그 순간들을 모독하는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자신과 고통스러운 불화 속에 있었고,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영혼의 모든 힘을 다 쏟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