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 제19장
《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제19장

《전쟁과 평화》 제14권 19장 삽화

1812년 원정의 마지막 부분에 관한 기록을 읽는 러시아인 가운데 후회와 불만과 당혹이 뒤섞인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군의 세 군대가 우세한 병력으로 프랑스군을 포위했고, 혼란에 빠져 굶주리고 얼어붙은 프랑스군이 무리를 지어 항복했으며, 역사가들의 말대로 러시아군의 목적이 프랑스군을 저지하고 퇴로를 차단하여 모두 사로잡는 것이었다면, 어째서 프랑스군을 모두 사로잡거나 섬멸하지 못했는지 스스로 묻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프랑스군보다 병력이 적었을 때 보로디노에서 전투를 벌였던 러시아군이 프랑스군을 삼면에서 포위했고 그들을 사로잡는 것을 목표로 했을 때는 어째서 목적을 이루지 못했는가? 프랑스인은 우리보다 그토록 엄청나게 우월해서 우리가 더 많은 병력으로 포위하고도 무찌르지 못한 것인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역사, 또는 역사라고 불리는 것은 이 질문에 답하며 쿠투조프와 토르마소프와 치차고프,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이런저런 기동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왜 그런 기동을 실행하지 않았는가? 사전에 정한 계획을 실행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왜 재판받고 처벌받지 않았는가? 설령 쿠투조프와 치차고프 등이 러시아군의 실패 원인이었다고 인정하더라도, 크라스노예와 베레지나에서 러시아군이 처한 위치가 그러했고 두 경우 모두 병력도 우세했는데, 러시아군의 목적이 프랑스군을 사로잡는 것이었다면 어째서 원수들과 왕들과 황제가 함께한 프랑스군을 사로잡지 못했는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 군사 역사가들이 이 기이한 사실을 설명하며 쿠투조프가 공격을 방해했다고 하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우리는 그가 뱌지마와 타루티노에서 병력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로디노에서는 열세한 병력으로 전력을 온전히 갖춘 적을 견뎌낸 러시아군이 어째서 크라스노예와 베레지나에서는 수적으로 우세하면서도 무질서한 프랑스군 무리에게 패배했는가?

러시아군의 목적이 나폴레옹과 원수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사로잡는 데 있었다면, 그 목적이 좌절되었을 뿐 아니라 목적을 이루려는 모든 시도가 지극히 치욕스럽게 실패했다면, 이 원정의 마지막 시기를 프랑스인들이 일련의 승리로 여기는 것은 전적으로 옳고 러시아 역사가들이 승리로 여기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논리의 요구에 따르는 한 러시아 군사 역사가들은 그 결론을 인정해야 한다. 용맹과 헌신 등에 관해 서정적으로 아무리 열광하더라도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프랑스군의 후퇴는 나폴레옹의 일련의 승리이자 쿠투조프의 일련의 패배였음을 마지못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민족적 허영심을 완전히 제쳐놓아도 그러한 결론에는 모순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프랑스군의 일련의 승리는 프랑스군을 완전히 파멸시켰고, 러시아군의 일련의 패배는 적의 전면적인 파멸과 조국의 해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모순의 근원은 역사가들이 군주와 장군들의 편지, 회고록, 보고서, 계획서 등을 통해 사건을 연구하면서 1812년 전쟁의 이 마지막 시기에 존재한 적이 없는 목적, 곧 나폴레옹과 원수들과 그 군대의 퇴로를 차단해 사로잡으려는 목적을 부여한 데 있다.

그런 목적은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무의미했고 달성하기도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것이 무의미했던 것은 나폴레옹의 무질서한 군대가 가능한 한 빠르게 러시아에서 달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러시아인이 바라던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달아나는 프랑스군을 상대로 여러 작전을 펼칠 필요가 어디 있었겠는가?

둘째로 모든 힘을 도주에 쏟고 있는 사람들의 길을 막는 것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셋째로 외부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파멸하고 있던 프랑스군을 섬멸하기 위해 아군을 희생하는 것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프랑스군은 퇴로를 막지 않았는데도 12월에 원래 병력의 100분의 1밖에 국경 너머로 데려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파멸하고 있었다.

넷째로 황제와 왕들과 공작들을 포로로 잡으려는 것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당시 가장 노련한 외교관들인 조제프 드 메스트르 등이 인정했듯이 그들을 사로잡는 일은 러시아에 극도로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프랑스군 군단을 사로잡으려는 것은 더욱 무의미했을 것이다. 아군도 크라스노예에 도착하기 전에 절반으로 줄었고, 포로 군단을 호송하려면 사단 하나가 통째로 필요했으며, 아군 병사들도 늘 충분한 식량을 받지 못했고 이미 사로잡은 포로들은 굶어 죽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과 그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여 사로잡으려는 모든 심오한 계획은, 자기가 가꾼 밭을 짓밟은 소를 정원에서 몰아내면서 문으로 달려가 소의 머리를 때리는 채소밭 주인의 계획과 같았다. 그 주인을 변호하며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그가 몹시 화가 났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계획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짓밟힌 밭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그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은 무의미했을 뿐 아니라 불가능했다.

첫째로 불가능했던 까닭은 전장에서 종대가 3마일을 이동하는 일조차 계획과 일치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경험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차고프와 쿠투조프와 비트겐슈타인이 지정된 장소에서 제때 합류할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희박했다. 실제로 쿠투조프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계획을 받아보고 먼 거리를 두고 계획한 양동 작전은 원하는 결과를 낳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둘째로 나폴레옹 군대가 후퇴하는 기세를 막으려면 러시아군이 가진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병력이 필요했으므로 불가능했다.

셋째로 ‘퇴로를 차단한다’는 군사 용어에는 의미가 없으므로 불가능했다. 빵 한 조각은 잘라낼 수 있지만 군대는 잘라낼 수 없다.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 즉 길을 막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돌아갈 공간은 언제나 넉넉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도 있기 때문이다. 군사학자들은 크라스노예와 베레지나의 사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포로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잡히는 데 동의할 때뿐이다. 제비가 사람의 손 위에 내려앉아야만 붙잡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독일인들이 그랬듯 전략과 전술의 규칙에 따라 항복해야만 사람들을 포로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이것이 자신들에게 적절하지 않다고 아주 정당하게 판단했다. 도주해도 포로가 되어도 굶주림과 추위로 죽을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넷째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가능했던 까닭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1812년과 같은 조건에서 전쟁이 벌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을 추격한 러시아군은 힘을 극한까지 쏟았고, 그보다 더 했다면 스스로 파멸했을 것이다.

러시아군은 타루티노에서 크라스노예로 이동하는 동안 병자와 낙오자 5만 명을 잃었다. 큰 지방 도시 하나의 인구와 맞먹는 수였다. 전투도 치르지 않고 군대의 절반이 이탈했다.

군대에는 장화와 양가죽 외투가 없고 식량이 부족했으며 보드카도 없었다. 영하 15도의 눈 속에서 몇 달 동안 밤마다 야영했다. 낮은 7~8시간뿐이고 나머지는 규율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는 밤이었다. 전투에서처럼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달 동안, 규율이 무너지는 죽음의 영역에 사람들을 데려다 놓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매 순간 굶주림과 추위가 가져오는 죽음과 싸웠고, 한 달 만에 군대의 절반이 죽었다. 역사가들이 밀로라도비치가 이런 곳으로 측면 행군을 했어야 하고 토르마소프는 저런 곳으로, 치차고프는 무릎보다 깊은 눈을 헤치고 또 다른 곳으로 건너갔어야 하며, 누가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퇴로를 차단’했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이 원정 시기에 관해서다.

절반이 죽은 러시아인들은 민족에게 값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할 모든 일을 했다. 따뜻한 방에 앉은 다른 러시아인들이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제안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과 역사 기록 사이에 존재하여 이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모든 기이한 모순은, 이 문제를 다룬 역사가들이 사건의 역사가 아니라 여러 장군의 아름다운 말과 감정의 역사를 썼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들에게는 밀로라도비치의 말도, 자기들의 추측도, 이 장군 저 장군이 받은 포상도 매우 흥미로워 보인다. 그러나 병원과 무덤에 남겨진 5만 명의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연구 범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서와 총괄 계획에 관한 연구를 내버리고 사건에 직접 참여한 수십만 명의 움직임을 살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해결할 수 없어 보이던 모든 문제가 쉽고 단순하게 즉각적이고 확실한 해답을 얻는다.

나폴레옹과 그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은 십여 명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무의미하고 달성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런 목적은 존재할 수 없었다.

민중에게는 하나의 목적만 있었다. 침략으로부터 자기 땅을 해방하는 것이었다. 첫째, 프랑스군이 달아났으므로 그 목적은 저절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도주를 막지 않기만 하면 되었다. 둘째, 프랑스군을 파멸시키던 유격전으로 이루어졌다. 셋째, 프랑스군의 움직임이 멈출 경우 힘을 쓸 준비가 된 러시아 대군이 그 뒤를 따름으로써 이루어졌다.

러시아군은 달리는 짐승을 다루는 채찍처럼 행동해야 했다. 노련한 마부는 달리는 짐승의 머리를 때리기보다 채찍을 위협적으로 치켜드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