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 제18장
《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제18장

《전쟁과 평화》 제14권 18장 삽화

이 원정은 프랑스군이 달아나면서 스스로를 파멸시키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 도주였다. 그들이 칼루가 가도로 방향을 튼 때부터 지도자가 군대를 버리고 달아난 날까지 그 군중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따라서 이 원정 시기에 대해서만큼은 대중의 행동을 한 사람의 의지에 돌리는 역사가들도 후퇴의 이야기를 자기들의 이론에 맞출 수 없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역사가들은 이 원정에 관해 산더미 같은 책을 썼고, 어디서나 나폴레옹의 조치와 기동, 군대를 이끈 심오한 계획, 그리고 원수들이 보여준 군사적 천재성을 묘사했다.

보급이 풍부한 지역으로 향하는 길이 열려 있었고, 훗날 쿠투조프가 추격한 평행 도로도 이용할 수 있었는데 말로야로슬라베츠에서 후퇴한 일, 곧 황폐해진 길로 행한 불필요한 후퇴는 심오한 숙고의 결과라고 설명된다. 스몰렌스크에서 오르샤로 후퇴한 일에도 마찬가지로 심오한 숙고가 제시된다. 이어 크라스노예에서 나폴레옹이 보인 영웅적 행위가 묘사된다. 그는 전투를 받아들이고 직접 지휘할 준비를 하고 자작나무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J’ai assez fait l’empereur; il est temps de faire le général.”* 그러나 그는 곧 다시 달아나며 뒤에 남긴 군대의 흩어진 잔존 병력을 운명에 내맡겼다.

* “황제 노릇은 충분히 했다. 이제 장군 노릇을 할 때다.”

그 뒤에는 원수들, 특히 네의 위대한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위대한 정신이란 그가 군기와 대포와 병력의 10분의 9를 버리고 밤에 숲을 돌아 드네프르강을 건너 오르샤로 달아났다는 데 있었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황제가 영웅적인 군대를 떠난 최후의 출발조차 역사가들은 위대하고 천재다운 일로 제시한다.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모든 아이가 부끄러워하도록 배우는 가장 비열한 행동인 그 마지막 도주마저 역사가들의 언어에서는 정당화된다.

역사적 궤변의 매우 탄력적인 실을 더 이상 늘일 수 없을 때, 행동이 인류가 옳거나 심지어 정당하다고 부르는 모든 것에 명백히 어긋날 때, 역사가들은 구원이 되는 ‘위대함’이라는 개념을 꺼낸다. 위대함은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다. ‘위대한’ 사람에게는 잘못된 일이 없으며, ‘위대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잔혹 행위도 없다.

“C’est grand!”* 역사가들은 말한다. 그러면 선도 악도 사라지고 오직 ‘위대한 것’과 ‘위대하지 않은 것’만 남는다. 위대한 것은 선하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악하다. 그들의 생각에서 위대함은 ‘영웅’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동물들의 특성이다. 나폴레옹은 따뜻한 모피 외투를 입고 고국으로 달아나며, 단지 동료일 뿐 아니라 자기 생각에는 자신이 그곳으로 데려온 사람들이었던 이들을 죽도록 내버려둔다. 그러면서 그는 ‘que c’est grand’*(2)라고 느끼고 마음의 평온을 누린다.

* “그것은 위대하다.”

* (2) 그것이 위대하다고.

“Du sublime(그는 자기 안에서 어떤 숭고함을 보았다) au ridicule il n’y a qu’un pas.”* 그는 말했다. 그리고 온 세상은 50년 동안 “숭고하다! 위대하다! 위대한 나폴레옹!”이라고 되풀이해 왔다. “Du sublime au ridicule il n’y a qu’un pas.”

* “숭고한 것에서 우스꽝스러운 것까지는 한 걸음뿐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과 한없는 비열함을 인정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아무에게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준 선악의 기준을 가진 우리에게는 그 기준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이란 없다. 그리고 단순함과 선함과 진실이 없는 곳에는 위대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