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 제11장
《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제11장

《전쟁과 평화》 제14권 11장 삽화

사람들은 어스름 속에서 재빨리 제 말을 찾아 안장 복대를 조이고 중대를 이루었다. 데니소프는 보초막 옆에 서서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부대의 보병들은 수백 개의 발로 진창을 첨벙거리며 길을 지나 이른 새벽의 안개 낀 나무들 사이로 빠르게 사라졌다. 예사울은 부하들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페탸는 고삐를 잡고 올라타라는 명령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찬물로 씻은 그의 얼굴은 온통 빛났고 두 눈은 유난히 반짝였다. 등줄기로 차가운 전율이 흘렀으며 온몸이 규칙적으로 고동쳤다.

“자, 모두 준비됐나?” 데니소프가 물었다. “말을 가져와.”

말들이 왔다. 데니소프는 안장 복대가 너무 느슨하다고 카자크에게 화를 내며 꾸짖은 뒤 말에 올랐다. 페탸는 등자에 발을 얹었다. 그의 말은 버릇대로 다리를 물려는 시늉을 했지만, 페탸는 자신의 몸무게도 느끼지 못할 만큼 재빨리 안장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뒤쪽 어둠 속에서 출발하는 경기병들을 돌아본 뒤 데니소프에게 다가갔다.

“바실리 드미트리치, 제게도 임무를 맡겨주십시오! 제발…… 하느님을 봐서라도……!” 그가 말했다.

데니소프는 페탸의 존재 자체를 잊었던 듯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페탸를 보았다.

“네게 바라는 건 하나뿐이다.” 그가 엄하게 말했다. “내 명령에 따르고 어디에도 앞장서 끼어들지 마라.”

그는 페탸에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내 침묵한 채 말을 몰았다. 숲 가장자리에 이르자 들판 위가 눈에 띄게 밝아지고 있었다. 데니소프는 예사울과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눴고 카자크들은 페탸와 데니소프를 지나 앞으로 갔다. 모두가 지나가자 데니소프는 말의 옆구리를 차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말들은 뒷다리로 주저앉고 미끄러지며 기수들을 태운 채 골짜기로 내려갔다. 페탸는 데니소프 곁에서 말을 몰았고 온몸의 고동은 계속 빨라졌다. 사방은 갈수록 밝아졌지만 안개는 아직 먼 곳의 물체를 가리고 있었다. 골짜기에 이른 데니소프는 뒤를 돌아보고 곁에 있는 카자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 그가 말했다.

카자크가 팔을 들자 총성이 울렸다. 그 순간 앞으로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사방에서 함성이 터졌으며, 뒤이어 총성이 더 울렸다.

말발굽 소리와 함성이 처음 들리자 페탸는 말에 채찍질하고 고삐를 풀어 앞으로 질주했다.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데니소프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페탸에게는 총성이 울린 순간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진 듯했다. 그는 다리로 질주했다. 앞쪽 길에서는 카자크들이 말을 달리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페탸는 뒤처진 카자크 한 명과 부딪쳤지만 그대로 내달렸다. 앞에서는 아마 프랑스군인 듯한 병사들이 길을 가로질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페탸의 말발굽 아래 진창으로 쓰러졌다.

카자크들은 오두막 하나를 에워싸고 무언가에 몰두해 있었다. 그 무리 한가운데서 끔찍한 비명이 솟았다. 페탸가 달려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턱을 한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자신을 겨눈 창의 자루를 움켜쥐고 있었다.

“우라!…… 얘들아!…… 우리 것이다!” 페탸는 외치며 흥분한 말에 고삐를 내주고 마을길을 따라 앞으로 질주했다.

앞쪽에서 총성이 들렸다. 길 양쪽에서 달려온 카자크와 경기병, 누더기를 걸친 러시아인 포로들이 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푸른 외투를 입고 모자를 잃은, 붉은 얼굴을 찌푸린 용감해 보이는 프랑스인 하나가 경기병들에게 맞서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페탸가 달려왔을 때 그 프랑스인은 이미 쓰러진 뒤였다. ‘또 늦었어!’라는 생각이 페탸의 머리를 스쳤고 그는 연달아 총성이 들리는 곳으로 질주했다. 총성은 전날 밤 돌로호프와 함께 찾아갔던 지주의 집 안뜰에서 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관목이 빽빽하게 자란 정원의 엮은 울타리 뒤에 버티고 서서 문간에 몰려든 카자크들에게 사격하고 있었다. 문 가까이 다가간 페탸는 연기 사이로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창백한 돌로호프가 부하들에게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 보병을 기다려!” 그가 페탸가 달려오자 외쳤다.

“기다리라고요?…… 우라아아!” 페탸는 외치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총성이 들리고 연기가 가장 짙은 곳으로 질주했다.

일제 사격 소리가 났다. 총알 몇 발은 휘파람을 울리며 지나갔고 다른 총알들은 무언가에 철퍽 부딪쳤다. 카자크들과 돌로호프는 페탸를 뒤쫓아 안뜰 문으로 질주했다. 짙게 일렁이는 연기 속에서 일부 프랑스군은 무기를 버리고 덤불 밖으로 나와 카자크들을 맞았고, 다른 이들은 연못을 향해 언덕 아래로 달아났다. 페탸는 안뜰을 질주하고 있었지만 고삐를 잡는 대신 두 팔을 빠르고 이상하게 휘둘렀으며 안장에서 점점 한쪽으로 미끄러졌다. 아침 햇살 속에서 연기를 피우는 모닥불 가까이 달려간 말은 갑자기 멈춰 섰고, 페탸는 젖은 땅에 무겁게 떨어졌다. 카자크들은 그의 머리가 꼼짝도 하지 않는데 두 팔과 다리가 빠르게 경련하는 것을 보았다. 총알이 그의 두개골을 관통한 것이다.

집에서 나온 프랑스군 선임 장교는 칼에 흰 손수건을 묶고 그들이 항복한다고 알렸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돌로호프는 말에서 내려 두 팔을 벌린 채 꼼짝 않고 누워 있는 페탸에게 다가갔다.

“끝났군!”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고는 말을 타고 다가오는 데니소프를 맞으러 문으로 갔다.

“죽었나?” 데니소프가 소리쳤다. 멀리서도 그는 페탸의 몸이 누워 있는, 너무나 익숙하여 틀림없이 생명이 사라진 자세를 알아보았다.

“끝났어!” 돌로호프는 그 말을 입에 올리는 데서 즐거움이라도 느끼는 듯 되풀이했다. 그러고는 달려온 카자크들에게 둘러싸인 포로들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포로는 받지 않겠어!” 그가 데니소프에게 외쳤다.

데니소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페탸에게 다가가 말에서 내린 뒤, 피와 진흙으로 얼룩지고 이미 하얗게 질린 얼굴을 떨리는 손으로 자기 쪽으로 돌렸다.

“저는 단것에 익숙합니다. 건포도예요, 좋은 거예요…… 전부 가지세요!” 그는 페탸의 말을 떠올렸다. 데니소프가 울타리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가 그것을 움켜쥐면서 개의 낑낑거림 같은 소리를 내자, 카자크들은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데니소프와 돌로호프가 구출한 러시아인 포로들 가운데는 피에르 베주호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