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 제1장
《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제1장

《전쟁과 평화》 제14권 1장 삽화

보로디노 전투와 그 뒤의 모스크바 점령, 더 이상의 교전 없이 이루어진 프랑스군의 도주는 역사에서 가장 교훈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다.

모든 역사가는 국가와 민족이 서로 충돌할 때 그 외적인 활동이 전쟁으로 표현되며, 전쟁에서 거둔 성공의 크고 작음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로 국가와 민족의 정치적 힘이 커지거나 줄어든다는 데 동의한다.

어떤 왕이나 황제가 다른 왕이나 황제와 다툰 뒤 군대를 모으고 적군과 싸워 3천 명, 5천 명 또는 1만 명을 죽여 승리하고 수백만 명으로 이루어진 왕국과 온 국민을 굴복시킨다는 역사적 설명이 아무리 기묘해도, 군대 하나—민족의 백분의 일—의 패배가 왜 온 국민을 복종하게 만드는지는 이해할 수 없는데도, 우리가 아는 한 역사의 모든 사실은 한 군대가 다른 군대에 거둔 성공의 크고 작음이 그 민족의 힘이 커지거나 줄어드는 원인, 적어도 본질적인 징표라는 주장이 옳음을 확인한다. 군대가 승리하면 즉시 승리한 민족의 권리가 패배한 민족의 손해를 대가로 커진다. 군대가 패배하면 즉시 패배의 심각성에 비례하여 한 민족이 권리를 잃고, 군대가 완전히 패배하면 민족 전체가 완전히 굴복한다.

역사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판명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그렇다. 나폴레옹의 모든 전쟁이 이 법칙을 확인한다. 오스트리아군이 패배한 만큼 오스트리아는 권리를 잃고 프랑스의 권리와 힘은 커진다. 예나와 아우어슈테트에서 프랑스군이 거둔 승리는 프로이센의 독립적 존재를 파괴한다.

그러나 1812년에는 프랑스군이 모스크바 근처에서 승리했다. 모스크바가 함락되었고 그 뒤 더 이상의 전투도 없었는데, 존재하기를 멈춘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60만 프랑스군이었으며 이어 나폴레옹의 프랑스 자체였다. 보로디노 전장이 러시아군의 수중에 남았다거나 모스크바 이후 나폴레옹군을 파멸시킨 다른 전투가 있었다고 말하여 사실을 역사의 법칙에 억지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로디노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한 뒤 전면적인 교전도, 조금이라도 심각한 교전도 없었지만 프랑스군은 존재하기를 멈췄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중국 역사에서 가져온 사례라면 역사적 현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역사가들이 흔히 쓰는 방편이다. 소수 병력만 참여한 짧은 충돌에 관한 일이라면 예외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 아버지들의 눈앞에서 일어났고 그들에게는 조국의 생사가 걸린 문제였으며, 알려진 모든 전쟁 가운데 가장 큰 전쟁에서 일어났다.

보로디노 전투부터 프랑스군 축출까지 이어진 1812년 전역은 전투의 승리가 정복을 낳지 않으며 정복의 변함없는 징표조차 아님을 증명했다.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은 정복자에게도, 군대와 전투에조차도 있지 않고 다른 무엇에 있음을 증명했다.

프랑스 역사가들은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 프랑스군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기병과 포병과 수송대를 제외하면 대육군의 모든 것이 질서 정연했다고 주장한다. 말과 가축에게 먹일 사료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근 농민들이 프랑스군에게 건초를 내주느니 불태웠기 때문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불행이었다.

프랑스군이 거둔 승리가 평소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은 농민 카르프와 블라스—프랑스군이 모스크바에서 철수한 뒤 수레를 몰고 도시를 약탈하러 갔으며 일반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떤 영웅적 감정도 나타내지 못한—와 그들과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농민 전체가 높은 값을 제안받았어도 건초를 모스크바에 가져가지 않고 불태웠기 때문이다.

펜싱 기술의 모든 규칙에 따라 레이피어로 결투를 벌이는 두 사람을 상상해 보자. 한동안 칼싸움이 이어지다가 한 사람이 갑자기 자기가 상처 입었으며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 생명에 관한 문제임을 깨닫고 레이피어를 내던진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첫 몽둥이를 쥐고 휘두르기 시작한다. 이어 자기 목적을 이루는 가장 훌륭하고 단순한 수단을 그토록 현명하게 사용한 결투자가 동시에 기사도 전통의 영향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감추려고 펜싱 기술의 모든 규칙에 따라 레이피어로 승리했다고 고집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결투에 대한 설명에서 얼마나 큰 혼란과 모호함이 생길지 상상할 수 있다.

펜싱 규칙에 따른 대결을 요구한 검객은 프랑스군이었고, 레이피어를 내던지고 몽둥이를 움켜쥔 상대는 러시아 민중이었으며, 펜싱 규칙에 따라 이 일을 설명하려는 이들은 사건을 서술한 역사가들이다.

스몰렌스크가 불탄 뒤 이전의 어떤 전쟁 전통도 따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시와 마을을 불태운 일, 전투 뒤 퇴각한 일, 보로디노에서 가한 타격과 다시 이어진 퇴각, 모스크바를 불태운 일, 약탈자를 붙잡은 일, 수송대를 빼앗은 일과 유격전은 모두 규칙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나폴레옹은 이것을 느꼈다. 모스크바에서 올바른 펜싱 자세를 취한 뒤 상대의 레이피어 대신 자기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몽둥이를 본 순간부터, 그는 모든 규칙을 어겨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쿠투조프와 알렉산드르 황제에게 끊임없이 불평했다. 마치 사람을 죽이는 일에 무슨 규칙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랬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프랑스인들의 불평에도, 몽둥이로 싸우는 것이 다소 치욕스럽다고 여겨 모든 규칙에 따라 제4자세나 제3자세를 취하고 능숙하게 제1자세의 찌르기를 가하는 따위의 일을 하고 싶어 한 러시아 고위 인사들이 있었음에도, 민중전쟁의 몽둥이는 위협적이고 장엄한 온 힘으로 들어 올려졌다. 누구의 취향이나 규칙에도 묻지 않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어리석을 만큼 단순하지만 일관되게 오르내리며 침략군 전체가 파멸할 때까지 프랑스군을 후려쳤다.

1813년 프랑스인들처럼 모든 기술의 규칙에 따라 경례하고, 레이피어 손잡이를 우아하고 공손하게 내밀어 관대한 정복자에게 건네는 민족이 아니라, 시련의 순간에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규칙을 채택했는지 묻지 않고 그저 쉽고 단순하게 손에 잡히는 첫 몽둥이를 들어 영혼의 분노와 복수심이 경멸과 연민으로 바뀔 때까지 내려치는 민족은 복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