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 제16장
《전쟁과 평화》 · 제14권 1812년

제16장

《전쟁과 평화》 제14권 16장 삽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10월 28일 뒤부터 프랑스군의 도주는 한층 더 비극적인 양상을 띠었다. 사람들은 얼어 죽거나 모닥불에서 몸을 녹이다 타 죽었지만, 모피 옷을 입은 사람들을 태운 마차들은 황제와 왕들과 공작들이 훔친 재산을 싣고 계속 지나갔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도주하고 붕괴하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전과 다름없이 계속되었다.

모스크바에서 뱌지마에 이르는 동안 7만 3천 명이던 프랑스군은—전쟁 내내 약탈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근위대는 제외하고—3만 6천 명으로 줄었다. 전투에서 쓰러진 사람은 5천 명도 되지 않았다. 이 최초의 수치로부터 뒤따르는 수열의 항들은 수학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프랑스군은 추위의 강약, 추격, 퇴로 차단 또는 그 밖의 어떤 특수한 조건과도 관계없이, 모스크바에서 뱌지마까지, 뱌지마에서 스몰렌스크까지, 스몰렌스크에서 베레지나까지, 베레지나에서 빌나까지 같은 비율로 녹아 없어지고 죽어갔다. 뱌지마를 지난 뒤 프랑스군은 세 종대로 이동하는 대신 한 덩어리로 뭉쳤고 끝까지 그렇게 갔다. 베르티에는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지휘관들이 군대의 상태를 기술할 때 진실에서 얼마나 벗어나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는지는 우리가 알고 있다.

 

지난 이삼 일의 행군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관찰할 기회가 있었던 각 군단의 상태를 폐하께 보고드리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거의 해산 상태입니다. 연대 군기 아래 남아 있는 병사는 겨우 4분의 1이며, 나머지는 식량을 구하고 규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집니다. 그들은 대체로 스몰렌스크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곳으로 여깁니다. 최근 며칠 동안 많은 병사가 탄약과 무기를 버리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는 폐하의 최종 계획이 무엇이든, 폐하의 군무를 위해 군대를 스몰렌스크에 집결시키고 우선 말을 잃은 기병, 불필요한 치중품, 현재 병력과 더 이상 비례하지 않는 포병 장비 같은 무용한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굶주림과 피로로 지친 병사들에게는 이 보급품들과 며칠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최근 며칠 동안 많은 사람이 길이나 야영지에서 죽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으며, 신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전투가 벌어질 경우 병력을 더는 통제할 수 없을까 우려됩니다.

11월 9일, 스몰렌스크에서 20마일 떨어진 곳.

 

약속의 땅처럼 보였던 스몰렌스크에 비틀거리며 들어간 프랑스군은 먹을 것을 찾다가 서로를 죽이고 자기네 보급창을 약탈했다. 모든 것을 약탈하고 나서는 더 멀리 달아났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나아갔다. 그 천재 나폴레옹은 더욱 몰랐다. 아무도 그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폴레옹과 주변 사람들은 옛 습관을 유지했다. 명령과 편지와 보고서와 일일명령을 작성하고 서로를 폐하(sire), 나의 사촌(mon cousin), 에크뮐 공작(prince d’Eckmühl), 나폴리 왕(roi de Naples)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명령과 보고는 종이 위에만 존재했고, 실행할 수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폐하, 전하, 사촌이라고 불렀지만, 자신들이 많은 악행을 저질러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비참한 인간들임을 모두 느꼈다. 군대를 걱정하는 척했지만 각자는 오직 자신과 어떻게 빨리 달아나 목숨을 구할지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