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3권 1812년 / 제19장
《전쟁과 평화》 · 제13권 1812년

제19장

《전쟁과 평화》 제13권 19장 삽화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나 그 움직임의 목표를 만들어 낸다. 1,000마일을 가려면 그 끝에 좋은 것이 자기를 기다린다고 상상해야 한다. 움직일 힘을 얻으려면 약속의 땅을 앞에 내다보아야 한다.

프랑스군이 진격할 때 약속의 땅은 모스크바였고 퇴각할 때는 조국이었다. 그러나 조국은 너무 멀었다. 1,000마일을 가는 사람은 반드시 최종 목표를 한쪽에 두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오늘은 25마일 떨어진 곳까지 가서 쉬고 밤을 보내겠다.’ 첫날 여정에서는 그 휴식처가 최종 목표를 가리고 모든 희망과 욕망을 끌어당긴다. 한 사람이 느끼는 충동은 군중 속에서 언제나 커진다.

옛 스몰렌스크 길을 따라 퇴각하는 프랑스군에게 최종 목표인 조국은 너무 멀었으며, 당장의 목표는 스몰렌스크였다. 군중 속에서 엄청나게 강해진 모든 욕망과 희망이 그곳으로 그들을 재촉했다. 스몰렌스크에 많은 식량과 새로운 군대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서도, 누군가 그렇게 말해 주어서도 아니었다. 도리어 고급 장교들과 나폴레옹 자신은 그곳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직 이 생각만이 앞으로 나아가 현재의 궁핍을 견딜 힘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스스로를 속이며 스몰렌스크를 약속의 땅으로 여기고 나아갔다.

큰길로 나온 프랑스군은 놀라운 기세와 전례 없는 속도로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달아났다. 프랑스인 군중 전체를 한 덩어리로 묶고 일정한 활력을 준 공통의 충동 외에도 그들을 하나로 묶은 다른 원인이 있었다. 바로 엄청난 수였다. 물리적인 중력의 법칙처럼 그 거대한 덩어리가 개개의 인간 원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수십만 명의 그들은 하나의 온 국민처럼 움직였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모든 공포와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 포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통 목표인 스몰렌스크를 향한 이 공통의 인력이 각자를 같은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다른 한편으로 군단 하나가 중대 하나에 항복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인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 모든 편리한 기회를 이용했고 아주 작은 그럴듯한 구실만 생겨도 항복했지만 그런 구실이 늘 생기지는 않았다. 엄청난 수와 빽빽하고 빠른 이동 자체가 그 가능성을 빼앗았으며, 프랑스군이 모든 힘을 쏟는 이 움직임을 러시아군이 멈추는 일도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물리적으로 몸을 해체해도 분해 과정을 더 빠르게 할 수 없다.

눈덩이를 한순간에 녹일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열을 가해도 그보다 짧은 시간에는 눈을 녹일 수 없는 일정한 시간의 한계가 있다. 도리어 열이 강할수록 남은 눈은 더욱 단단하게 굳는다.

러시아 지휘관 가운데 오직 쿠투조프만이 이것을 이해했다. 프랑스군이 스몰렌스크 길을 따라 달아나는 모습이 분명해지자 10월 11일 밤 코노브니친이 내다본 일이 시작되었다. 고급 장교들은 모두 공을 세우고, 프랑스군을 차단하고 붙잡고 사로잡고 쓰러뜨리고 싶어 했으며 모두가 행동하라고 아우성쳤다.

오직 쿠투조프만이 자기의 모든 권력—어떤 총사령관에게든 그런 권력은 아주 제한되어 있다—을 써서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하는 말을 그들에게 할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싸우고 무엇 때문에 길을 막아 아군을 잃고 불행한 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도륙하는가? 모스크바에서 뱌지마로 오는 길에서 전투 하나 없이 그들 군대의 삼분의 일이 녹아 없어졌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노년의 지혜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끌어내어 황금 다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를 비웃고 헐뜯으며 죽어 가는 짐승에게 몸을 던져 찢고 기뻐했다.

뱌지마 근처에서 프랑스군 가까이에 있던 예르몰로프와 밀로라도비치와 플라토프 등은 프랑스 군단 두 개를 차단하고 격파하려는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 의도를 쿠투조프에게 보고한다며 빈 종이 한 장을 봉투에 넣어 보냈다.

쿠투조프가 군대를 억누르려고 아무리 애써도 아군은 길을 가로막으려고 공격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보병 연대들은 군악을 연주하고 북을 울리며 공격에 나서 적 수천 명을 죽이고 아군도 수천 명을 잃었다.

그러나 아무도 차단하거나 쓰러뜨리지 못했다. 프랑스군은 위험을 맞아 대열을 더욱 단단히 모으고 끊임없이 녹아 없어지면서도 스몰렌스크로 향하는 숙명적인 길을 계속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