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3권 1812년 / 제3장
《전쟁과 평화》 · 제13권 1812년

제3장

《전쟁과 평화》 제13권 3장 삽화

러시아군은 쿠투조프와 그의 참모진,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황제의 지휘를 받았다. 모스크바 포기 소식이 페테르부르크에 닿기 전에 이미 전체 전역의 상세한 계획이 작성되어 쿠투조프가 지침으로 삼도록 보내졌다. 이 계획은 모스크바가 아직 아군의 수중에 있다는 가정 아래 작성되었지만 참모진의 승인을 받아 행동의 토대로 채택되었다. 쿠투조프는 멀리서 정한 이동은 언제나 실행하기 어렵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맞닥뜨릴 수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라는 새로운 지시와 함께, 쿠투조프의 행동을 감시하고 보고할 새로운 사람들도 보내졌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군 참모부 전체가 이제 개편되었다. 전사한 바그라티온과 분개하여 떠난 바클라이가 남긴 자리를 채워야 했다. A의 자리에 B를, B의 자리에 D를 앉히는 편이 나은지, 아니면 반대로 D를 A의 자리에 앉히는 편이 나은지 따위의 문제가 아주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마치 이 일에 A나 B의 만족보다 더 많은 것이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랬다.

쿠투조프와 참모장 베니히센 사이의 적대감, 황제의 밀사들이 진영에 있다는 사실, 이런 인사 이동 때문에 군 참모부에서는 평소보다 더 복잡한 당파 싸움이 벌어졌다. A가 B의 발밑을 파고, D가 C의 발밑을 파는 식으로 가능한 모든 조합과 순열이 나타났다. 이 모든 음모에서 책략의 대상은 대개 전쟁 수행이었고, 그들은 모두 자기가 전쟁을 지휘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일은 그들과 무관하게, 갈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곧 사람들이 고안한 대로는 결코 가지 않았으며, 언제나 대중의 본질적인 태도에서 흘러나왔다. 오직 가장 높은 영역에서만 이 모든 계획과 엇갈림과 뒤섞임이 일어나야 할 일을 진정으로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공작! 황제는 10월 2일, 타루티노 전투 뒤에야 쿠투조프에게 도착한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9월 2일부터 모스크바는 적의 수중에 있소. 그대가 보낸 마지막 보고는 20일에 작성되었고, 그동안 적을 상대로 하거나 옛 수도를 구원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대의 마지막 보고에 따르면 오히려 더 멀리 퇴각하기까지 했소. 세르푸호프는 이미 적의 분견대가 점령했고, 군대에 없어서는 안 될 유명한 무기고가 있는 툴라도 위험에 처했소. 빈칭게로데 장군의 보고를 보면 만 명의 적 군단이 페테르부르크 길로 이동하고 있소. 수천 명의 또 다른 군단은 드미트로프로 이동하고 있소. 세 번째 군단은 블라디미르 길을 따라 진격했고, 네 번째 상당히 큰 분견대는 루자와 모자이스크 사이에 배치되어 있소. 나폴레옹 자신은 25일까지도 모스크바에 있었소. 이 모든 정보에 비추어 볼 때, 적이 병력을 큰 분견대들로 흩어 놓았고 나폴레옹과 근위대가 모스크바에 있는 상황에서, 그대와 맞선 적의 병력이 공세에 나설 수 없을 만큼 많을 수 있겠소? 도리어 그대의 뒤를 쫓는 것은 분견대들, 많아야 그대에게 맡긴 군대보다 훨씬 약한 한 개 군단일 것이오. 이 상황을 이용하면 약한 적을 유리하게 공격하여 섬멸하거나 적어도 퇴각하게 만들 수 있을 듯하오. 그렇게 하면 현재 적이 점령한 지방의 중요한 부분을 우리 수중에 보존하고 툴라와 내륙의 다른 도시들에 닥친 위험도 피할 수 있소. 적이 어떤 규모의 병력이든 페테르부르크로 보내, 많은 군대를 남겨 둘 수 없었던 이 수도를 위협한다면 그 책임은 그대에게 돌아갈 것이오. 그대에게 맡긴 군대를 단호하고 활기차게 운용하면 이 새로운 재앙을 막을 수단이 충분하기 때문이오. 모스크바를 잃은 일에 대해 그대가 아직 모욕당한 조국에 답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대는 내가 기꺼이 포상한다는 것을 경험했소. 내게서 그 뜻은 약해지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와 러시아는 그대의 지성과 군사적 재능, 그리고 그대가 지휘하는 군대의 용기를 생각할 때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열성과 굳셈과 성공을 그대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소.

 

그러나 병력의 실제 관계가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이미 느껴지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이 편지가 발송되었을 때, 쿠투조프는 자기가 지휘하는 군대의 공격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고 전투는 이미 벌어진 뒤였다.

10월 2일 정찰을 나간 카자크 샤포발로프는 토끼 한 마리를 죽이고 다른 한 마리에게 상처를 입혔다. 상처 입은 토끼를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간 그는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그곳에 진을 친 뮈라군의 좌익과 마주쳤다. 그 카자크는 프랑스군의 손에 거의 잡힐 뻔한 이야기를 웃으며 동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기병 소위가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카자크는 불려가 심문을 받았다. 카자크 장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말 몇 필을 빼앗고 싶어 했지만, 상부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고급 장교 한 명이 그 일을 참모부 장군에게 보고했다. 최근 참모부의 상황은 극도로 팽팽했다. 예르몰로프는 며칠 전 베니히센을 찾아가 총사령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세에 나서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내가 그대를 모른다면 그대가 부탁한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오. 내가 어떤 것을 권하기만 하면 전하께서는 틀림없이 정반대로 하실 테니까.” 베니히센이 대답했다.

기병 정찰대의 확인을 받은 카자크의 보고는 사건이 무르익었다는 최종 증거였다. 단단히 감긴 용수철이 풀리고 시계가 윙윙거리며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쿠투조프는 흔히 그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권력과 지성과 경험과 사람에 대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카자크의 보고와 황제에게 직접 보고서를 보내던 베니히센의 쪽지, 황제가 품고 있으리라고 짐작한 뜻과 모든 장군이 같은 뜻을 나타낸 사실을 고려한 끝에 피할 수 없는 움직임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쓸모없고 해롭다고 여긴 일을 하라고 명령했다. 곧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