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3권 1812년 / 제10장
《전쟁과 평화》 · 제13권 1812년

제10장

《전쟁과 평화》 제13권 10장 삽화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모든 조치와 노력과 계획은 비슷한 상황에서 나온 다른 것들보다 전혀 못하지 않았는데도 사태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기계장치에서 떨어져 나온 시곗바늘처럼 톱니바퀴에 맞물리지 않은 채 제멋대로 목적 없이 흔들렸다.

군사적 측면과 관련하여, 티에르는 “그의 천재성은 이보다 더 심오하고 노련하며 감탄스러운 것을 고안한 적이 없었다.”라고 평하고, 이 천재적 작품이 10월 4일이 아니라 15일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팽과 논쟁까지 벌인 그 전역 계획은 한 번도 실행되지 않았고 실행될 수도 없었다. 실제 상황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바실리 성당을 일컬은 ‘모스크’까지 허물어 버릴 예정이었던 크렘린 요새화는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크렘린에 지뢰를 매설한 일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떠날 때 그것을 폭파하고 싶어 한 바람을 이루는 데만 도움이 되었다. 다친 아이가 자기를 아프게 한 마룻바닥을 때려 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나폴레옹이 그토록 염려한 러시아군 추격은 전례 없는 결과를 낳았다. 프랑스 장군들은 6만 명의 러시아군을 놓쳤고, 티에르에 따르면 마침내 뮈라의 솜씨—분명 천재성인 듯한 것—로 잃어버린 바늘처럼 겨우 찾아냈다.

외교와 관련하여 나폴레옹이 투톨민과 야코블레프—가장 큰 관심사는 외투와 탈것을 얻는 일이었던—에게 늘어놓은 자기 관대함과 정의에 관한 모든 주장은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알렉산드르는 이 사절들을 접견하지 않았고 그들의 사명에도 답하지 않았다.

법률 문제와 관련하여 방화범으로 추정된 사람들이 처형된 뒤 모스크바의 나머지 부분이 불탔다.

행정 문제와 관련하여 자치 행정기관의 설립은 약탈을 막지 못했다. 다만 그 기관에 들어간 몇몇 사람이 질서를 지킨다는 구실로 모스크바를 약탈하거나 자기 재산이 약탈당하지 않게 하는 데 쓸모가 있었다.

종교와 관련해서는 이집트에서 나폴레옹이 모스크를 방문해 그토록 쉽게 해결했던 것과 달리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모스크바에서 발견된 사제 두세 명은 나폴레옹의 뜻을 실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예배를 집전하다 프랑스 병사에게 뺨을 맞았고, 프랑스 관리는 다른 한 사람에 관해 이렇게 보고했다. “내가 찾아 미사를 드리도록 청한 사제는 교회를 청소하고 문을 잠갔다. 그날 밤 문은 또다시 부서지고 자물쇠가 망가졌으며 책들은 훼손되고 다른 무질서도 저질러졌다.”

상업과 관련하여 부지런한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보낸 포고문에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부지런한 노동자는 없었고, 농민들은 포고문을 들고 도시에서 너무 멀리 나간 행정위원들을 붙잡아 죽였다.

민중과 군대를 즐겁게 하려던 극장도 성공하지 못했다. 크렘린과 포즈냐코프의 집에 설치된 극장들은 남녀 배우들이 약탈당하는 바람에 즉시 다시 문을 닫았다.

박애조차 바라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모스크바에 넘쳐난 진짜 지폐와 위조지폐 모두 가치를 잃었다. 전리품을 모으는 프랑스인들은 금에만 관심을 가졌다. 나폴레옹이 불행한 사람들에게 그토록 자애롭게 나누어 준 지폐가 가치 없었을 뿐 아니라, 은조차 금에 견주어 가치를 잃었다.

그러나 당시 권력자들이 내린 명령의 무력함을 보여 주는 가장 놀라운 사례는 나폴레옹이 약탈을 중단시키고 군기를 회복하려고 시도한 일이었다.

군 당국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약탈 금지 명령에도 도시에서 약탈이 계속되고 있다. 질서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며 합법적으로 장사하는 상인은 한 명도 없다. 종군 상인들만 감히 거래하는데 그들은 훔친 물건을 판다.”

“내 관할 구역은 제3군단 병사들에게 계속 약탈당하고 있다. 그들은 지하실에 숨은 불행한 주민들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것을 빼앗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내가 거듭 목격했듯 군도로 상처까지 입히는 잔혹함을 보인다.”

“병사들이 강도질하고 약탈한다는 것 외에는 새로운 일이 없다—10월 9일.”

“강도질과 약탈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구역에는 강력한 병력으로 체포해야 할 도둑 무리가 있다—10월 11일.”

“약탈을 중지하라는 엄명이 내려졌는데도 약탈에 나선 근위대 무리가 끊임없이 크렘린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는 데 황제께서는 극도로 불쾌해하신다. 어제 저녁과 지난밤과 오늘, 고참 근위대 사이에서는 무질서와 약탈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되살아났다. 황제께서는 자신을 경호하도록 뽑혀 군기의 모범이 되어야 할 병사들이 불복종을 밀고 나가 군 보급품을 저장한 지하실과 창고까지 부수고 들어가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신다. 다른 자들은 보초와 장교에게 불복종하고 모욕하고 구타할 만큼 스스로를 욕되게 했다.”

“궁정 대원수는 거듭된 명령에도 병사들이 모든 뜰에서, 심지어 황제의 창문 바로 아래에서도 계속 용변을 본다고 몹시 불평한다.” 총독이 썼다.

그 군대는 날뛰는 가축 떼처럼 굶주림에서 구해 줄 수도 있었던 먹이를 짓밟으며 모스크바에 머무는 하루하루 더욱 해체되고 소멸했다. 그래도 떠나지는 않았다.

스몰렌스크 길에서 수송대가 빼앗긴 일과 타루티노 전투 때문에 일어난 공포에 갑자기 사로잡힌 뒤에야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열 중에 타루티노 전투 소식을 뜻밖에 들은 나폴레옹은 러시아군을 응징하고 싶은 욕망을 품었고—티에르는 그렇게 말한다—전군이 요구하던 출발 명령을 내렸다.

모스크바에서 달아나며 병사들은 훔친 것을 모두 가져갔다. 나폴레옹도 자기 개인 보물(trésor)도 가져갔다. 그러나 군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짐마차 행렬을 보고 그는 공포에 질렸다—티에르는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도 전쟁 경험을 갖춘 그는 모스크바로 다가올 때 어느 원수의 불필요한 차량을 모두 불태우게 했던 것처럼 그것들을 불태우라고 명하지 않았다. 그는 병사들이 타고 있는 경쾌한 사륜마차와 일반 마차를 바라보며, 그 차량들을 식량과 병자와 부상자 수송에 쓸 수 있으니 아주 좋은 일이라고 평했다.

전군의 처지는 자기가 죽어 가는 것은 느끼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는 상처 입은 짐승과 같았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가 모스크바에 들어온 때부터 파멸할 때까지 보인 능숙한 전술과 목표를 연구하는 것은 치명상을 입은 짐승이 죽어 가며 뛰고 몸을 떠는 모습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상처 입은 짐승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흔히 사냥꾼의 총구로 곧장 달려들고, 앞으로 갔다가 다시 뒤로 뛰어 스스로 종말을 앞당긴다. 전군의 압박을 받은 나폴레옹도 똑같이 행동했다. 타루티노 전투의 바스락거림이 짐승을 놀라게 하자 사냥꾼의 총구로 달려들어 그에게 다가갔다가 뒤로 돌아섰고, 마침내 다른 모든 야생 짐승처럼 익숙한 냄새가 나는 가장 불리하고 위험한 길을 따라 되돌아 달렸다.

그 기간 내내 모든 이동의 지도자로 보이는 나폴레옹은—배의 선수상이 야만인에게는 배를 이끄는 것으로 보일 수 있듯—마차 안에서 끈 두 개를 쥐고 자기가 마차를 몰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처럼 행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