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 제16장
《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제16장

《전쟁과 평화》 제12권 16장 삽화

안드레이 공작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죽어 가고 있으며 이미 반쯤 죽었다고 느꼈다. 세상의 모든 것에서 멀어졌다는 의식과 기이하고도 기쁜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 서두르거나 동요하지 않고 닥쳐올 것을 기다렸다. 일생 동안 줄곧 존재를 느꼈던 그 가차 없고 영원하며 멀고 알 수 없는 것이 이제는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자기가 느끼는 기이한 가벼움 때문에 거의 이해하고 만질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전에는 종말을 두려워했다. 죽음, 곧 종말에 대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공포를 두 번 경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공포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첫 번째로 그 공포를 느낀 것은 포탄이 눈앞에서 팽이처럼 돌 때였다. 그는 묵정밭과 덤불과 하늘을 바라보며 자기가 죽음과 마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부상 뒤 정신을 되찾았을 때, 그동안 억누르던 삶의 속박에서 풀려나기라도 한 듯 영원하고 구속받지 않는 사랑의 꽃이 영혼에서 한순간에 피어났다. 그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부상 뒤 홀로 고통과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보낸 시간 동안, 새롭게 드러난 영원한 사랑의 원리를 깊이 파고들수록 자기도 모르게 지상의 삶에서 멀어졌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언제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이 지상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 사랑의 원리에 깊이 젖어 들수록 그는 삶을 더욱 포기했고, 그런 사랑이 없을 때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무서운 장벽을 더욱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첫날들에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스스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오히려 잘된 일이지!’

그러나 미티시에서 보낸 밤, 반쯤 정신을 잃은 가운데 그토록 갈망하던 여인이 자기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입술에 대며 부드럽고 행복한 눈물을 흘린 뒤에는 특정한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이 다시 눈치채지 못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그를 삶에 다시 묶어 놓았다. 기쁘고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생각들이 마음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야전 치료소에서 쿠라긴을 보았던 순간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당시의 감정을 되찾을 수 없었고, 쿠라긴이 살아 있는지를 묻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나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병은 정상적인 신체적 경로를 따랐다. 하지만 나타샤가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어요.”라고 가리킨 일은 마리야 공작 영애가 오기 이틀 전에 일어났다. 삶과 죽음 사이의 마지막 정신적 투쟁이었고, 죽음이 승리를 거두었다. 나타샤를 향한 사랑의 모습으로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여전히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뜻밖에 깨달았고, 미지의 것을 앞두고 마지막으로—비록 결국 패배했지만—공포가 덮쳐왔다.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 뒤에는 늘 그렇듯 미열이 있었고 생각은 비정상적일 만큼 명료했다. 소냐가 탁자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졸기 시작했다. 갑자기 행복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아, 그 아이가 왔구나!’ 그는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소냐가 있던 자리에 방금 소리 없이 들어온 나타샤가 앉아 있었다.

나타샤가 그를 간호하기 시작한 뒤 그는 그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몸으로 느꼈다. 그녀는 옆으로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자기 쪽으로 오는 촛불을 가리며 양말을 뜨고 있었다. 늙은 유모들만큼 환자를 잘 간호하는 사람은 없고, 그들이 양말을 뜨는 모습에는 마음을 달래 주는 무언가가 있다고 안드레이 공작이 우연히 말한 뒤로 나타샤는 양말 뜨기를 배웠다. 가늘고 빠르게 움직이는 두 손에서 바늘이 가볍게 딸깍거렸고, 그는 숙인 얼굴의 생각에 잠긴 옆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몸을 움직이자 털실 뭉치가 무릎에서 굴러떨어졌다. 흠칫 놀라 그를 돌아본 뒤 손으로 촛불을 가리고, 유연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굽혀 털실 뭉치를 집은 다음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그는 꼼짝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몸을 숙인 뒤 깊이 숨을 들이쉬고 싶어 하지만 참고 조심스럽게 숨 쉬는 모습을 보았다.

트로이차 수도원에서 두 사람은 과거를 이야기했고, 안드레이 공작은 살아남는다면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 준 부상에 대해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뒤로 두 사람은 한 번도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는가?’ 그는 나타샤를 바라보고 강철 바늘이 내는 가벼운 딸깍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운명이 나를 이토록 기묘하게 저 아이에게 데려와 놓고는 오직 내가 죽게 하려는 것인가?…… 삶의 진실은 내가 거짓 속에서 일생을 보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내게 드러난 것뿐인가? 나는 세상 무엇보다 저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생각했고, 고통을 겪는 동안 생긴 습관대로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그 소리를 듣자 나타샤는 양말을 내려놓고 그에게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반짝이는 그의 눈을 갑자기 알아차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가 몸을 굽혔다.

“주무시지 않았어요?”

“그래, 오래전부터 너를 보고 있었어. 네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네가 주는 그 부드러운 평온을…… 그 빛을 내게 주지 못해. 기뻐서 울고 싶구나.”

나타샤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얼굴은 황홀한 기쁨으로 빛났다.

“나타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세상 무엇보다도.”

“저도 그래요!” 그녀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왜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왜 너무냐고?…… 그런데 너는, 너는 마음속으로, 온 영혼으로 어떻게 느끼니? 내가 살 것 같으냐? 어떻게 생각하니?”

“틀림없이 사실 거예요, 틀림없어요!” 나타샤는 격정적인 동작으로 그의 두 손을 잡으며 거의 외치듯 말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입을 맞추었다.

나타샤는 행복하고 가슴이 설렜다. 그러나 이러면 안 되며 그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곧 떠올렸다.

“하지만 주무시지 않았잖아요.” 그녀는 기쁨을 억누르며 말했다. “주무시려고 해 보세요…… 제발요!”

그는 그녀의 손을 눌렀다가 놓았다. 나타샤는 촛불 곁으로 돌아가 원래 자리에 다시 앉았다. 두 번이나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고, 자신을 향해 빛나는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양말 뜨기의 일정한 부분을 과제로 정하고 그것을 끝낼 때까지 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말로 눈을 감고 잠들었다. 오래 자지 못하고 갑자기 몸을 떨며 식은땀 속에서 깨어났다.

잠들 때도 이제 언제나 마음을 차지하는 것, 곧 삶과 죽음, 특히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는 생각했다.

‘사랑은 죽음을 가로막는다. 사랑은 삶이다.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한다.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은 오직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오직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사랑은 하느님이며, 죽는다는 것은 사랑의 한 조각인 내가 보편적이고 영원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생각들은 그에게 위안을 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무언가 부족했고 명료하지 않았으며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개인적이고 머리로 지어낸 생각이었다. 예전과 같은 동요와 모호함이 있었다. 그는 잠들었다.

실제로 누워 있는 그 방에 누워 있지만 완전히 건강하고 다치지 않았다는 꿈을 꾸었다. 서로 다른 무심하고 하찮은 사람들이 여럿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그들과 이야기하며 사소한 일을 의논했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 모든 일이 하찮으며 자기에게는 더 중요한 걱정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공허하고 재치 있는 말을 던져 그들을 놀라게 하며 계속 이야기했다. 차츰 아무도 모르게 그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닫힌 문이라는 하나의 문제만 남아 다른 모든 것을 밀어냈다. 그는 일어나 문에 빗장을 걸고 자물쇠를 채우려고 다가갔다. 제때 잠글 수 있는가 없는가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그는 걸으며 서두르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문을 제때 잠그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통스럽게 온 힘을 짜냈다. 끔찍한 공포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죽음은 문 뒤에 서 있었다. 그가 서툴게 문 쪽으로 기어가는 동안 저편의 끔찍한 무언가는 이미 문을 밀며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것—죽음—이 그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 했고, 막아야 했다. 그는 문을 붙잡고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냈다. 이제 잠그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힘은 약하고 동작은 서툴렀으며, 공포가 반대편에서 미는 문은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그것이 바깥에서 또다시 문을 밀었다. 인간의 힘을 넘어선 마지막 노력도 헛되었고 문 두 짝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죽음이었고 안드레이 공작은 죽었다.

그러나 죽는 순간 안드레이 공작은 자기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죽는 바로 그 순간 힘을 다해 깨어났다.

‘그래, 그것은 죽음이었다! 나는 죽었다—그리고 깨어났다. 그래, 죽음은 깨어나는 것이다!’ 갑자기 영혼이 밝아지고 그때까지 미지의 것을 감추던 장막이 정신의 시야에서 걷혔다. 전에 자기 안에 갇혀 있던 힘들이 해방된 듯했고, 그 기이한 가벼움은 다시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식은땀 속에서 깨어 긴 의자 위에서 몸을 움직이자 나타샤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듯 기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오기 이틀 전에 그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날부터 의사의 표현대로 소모열은 악성으로 변했다. 하지만 의사의 말에는 나타샤의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더 확실한, 끔찍한 영적 징후를 보았다.

그날부터 안드레이 공작에게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함께 삶에서 깨어나는 일이 시작되었다. 삶의 길이에 견주면 그것은 꿈의 길이에 견준 잠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더 느리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교적 느린 이 깨어남에는 끔찍하거나 격렬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의 마지막 며칠과 시간은 평범하고 단순하게 흘러갔다. 곁을 떠나지 않은 마리야 공작 영애와 나타샤도 그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울거나 몸을 떨지 않았다. 마지막 며칠 동안 자신들이 그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그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고 그들을 떠났다—그를 가장 가깝게 상기시키는 것, 곧 그의 몸을 돌보고 있다고 느꼈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을 너무나 강하게 느꼈으므로 죽음의 외적이고 끔찍한 면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슬픔을 부추길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도 밖에서도 울지 않았으며 서로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도 없었다. 자신들이 이해한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그가 천천히 고요하게, 더 깊이 더 깊이 자기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보았다. 둘 다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고해하고 성찬을 받았으며 모두가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아들을 데려오자 아이에게 입술을 대고 고개를 돌렸다. 힘들고 슬퍼서 그런 것이 아니라—마리야 공작 영애와 나타샤는 그것을 이해했다—자기에게 요구되는 일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아이를 축복해 달라고 하자 그는 시키는 대로 하고, 더 해야 할 일이 있는지를 묻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영혼이 떠나는 육체에 마지막 경련이 일어날 때 마리야 공작 영애와 나타샤가 함께 있었다.

“끝난 건가요?” 그의 몸이 몇 분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눈앞에서 식어 가자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나타샤는 다가가 죽은 두 눈을 바라보고 서둘러 감겼다. 눈을 감겨 주었지만 입을 맞추지 않고, 그를 가장 가깝게 상기시키는 것—그의 몸—에 매달렸다.

‘그분은 어디로 가셨을까? 지금 어디 계실까?…….’

씻기고 옷을 입힌 시신이 탁자 위 관에 놓이자 모두 작별 인사를 하러 와 울었다.

어린 니콜라이는 고통스러운 당혹감에 마음이 찢어져 울었다. 백작부인과 소냐는 나타샤가 가엾고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울었다. 늙은 백작은 머지않아 자신도 똑같은 무서운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느껴 울었다.

나타샤와 마리야 공작 영애도 이제 울었다. 그러나 자기 개인의 슬픔 때문에 운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서 이루어진 단순하고 엄숙한 죽음의 신비를 의식하면서 영혼을 사로잡은 경건하고 부드러운 감동으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