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 제15장
《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제15장

《전쟁과 평화》 제12권 15장 삽화

나타샤가 익숙한 동작으로 안드레이 공작의 문을 열고 마리야 공작 영애를 먼저 방 안으로 들여보냈을 때, 공작 영애는 목구멍에서 흐느낌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고 이제 침착하려 해도, 눈물 없이 그를 바라볼 수 없음을 알았다.

공작 영애는 나타샤가 “이틀 전에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어요.”라고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가 갑자기 부드러워졌으며 그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죽음이 다가오는 징후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문으로 다가가면서 그녀는 이미 어린 시절 기억 속 안드레이의 얼굴을 상상했다. 좀처럼 보여 주지 않아 더욱 강렬하게 마음을 움직였던 부드럽고 온화하며 정다운 얼굴이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했던 것처럼 그가 자기에게 부드럽고 다정한 말을 할 것이고, 자신은 그것을 견디지 못해 그의 앞에서 흐느껴 울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이 갈수록 또렷해지고 근시인 두 눈으로 얼굴 윤곽을 알아보려 애쓰면서 흐느낌은 목구멍에서 점점 더 높이 치솟았다. 그러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는 베개에 둘러싸인 채 다람쥐 털 실내복을 입고 긴 의자에 누워 있었다. 야위고 창백했다. 한쪽의 가늘고 투명할 만큼 흰 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길러 놓은 섬세한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그의 눈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의 얼굴을 보고 눈길을 마주치는 순간 갑자기 걸음이 느려졌다. 눈물이 마르고 흐느낌이 그치는 것을 느꼈다. 얼굴과 눈에 어린 표정을 알아차리자 문득 죄책감이 들고 겁이 났다.

‘하지만 내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의 차갑고 엄격한 눈길이 대답했다. ‘너는 살아 있고 산 사람들을 생각하지만, 나는…….’

밖이 아니라 안을 바라보는 듯한 깊은 눈길에는 누이와 나타샤를 천천히 살피는 동안 거의 적대적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늘 하던 대로 누이의 손을 자기 손에 잡고 입을 맞추었다.

“어떻게 지냈니, 마리야? 어떻게 이곳까지 왔지?” 그는 눈길처럼 차분하고 초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더라도 그 목소리의 어조만큼 마리야 공작 영애의 마음에 무서운 공포를 안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린 니콜라이도 데려왔니?” 그는 기억해 내려는 노력이 뚜렷한, 똑같이 느리고 조용한 태도로 물었다.

“지금은 어떠하세요?” 마리야 공작 영애는 자기가 하는 말에 스스로 놀라며 말했다.

“그건, 사랑하는 누이야, 의사에게 물어야지.” 그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정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것이 또다시 분명한 가운데 입술로만 말했다. 그의 말은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명백했다.

“*Merci, chère amie, d’être venue.*”

* “와 주어 고맙구나, 사랑하는 누이야.”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의 손을 꼭 눌렀다. 그 압박에 그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침묵했고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그녀는 이틀 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그의 말과 어조, 특히 그 차분하고 거의 적대적인 눈길에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과의 단절이 느껴졌다. 그는 살아 있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해할 힘이 없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정신을 온전히 빼앗겨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명백했다.

“보아라, 운명이 얼마나 기묘하게 우리를 다시 만나게 했는지.” 그는 침묵을 깨고 나타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가 늘 나를 돌봐 준단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 말을 듣고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섬세하고 다정한 안드레이 공작이 어떻게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살기를 기대했다면 모욕적일 만큼 차가운 어조로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죽어 가는 줄 몰랐다면 어떻게 그녀를 가엾게 여기지 않을 수 있고, 어떻게 그녀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유일한 설명은 그가 무심해졌다는 것뿐이었다. 다른 무엇인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그에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대화는 차갑고 앞뒤가 이어지지 않았으며 계속 끊어졌다.

“마리야는 랴잔을 거쳐 왔어요.” 나타샤가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녀가 자기 누이를 마리야라고 부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앞에서 그렇게 부르고 나서야 나타샤 자신이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 그가 물었다.

“모스크바 전체가 불탔다고 사람들이 마리야에게 말했대요. 그리고…….”

나타샤는 말을 멈췄다.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가 들으려고 애쓰지만 들을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불탔다고 하더군.” 그가 말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 그는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콧수염을 무심히 쓰다듬었다.

“그래서 니콜라이 백작을 만났니, 마리야?” 안드레이 공작은 두 사람에게 유쾌한 말을 해 주려는 것이 분명한 태도로 갑자기 말했다. “그가 여기로 편지를 보내 너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하더구나.” 그는 자기 말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지닌 복잡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단순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너도 그를 좋아했다면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 좋겠구나.” 그는 오래도록 찾던 말을 발견해 기쁘기라도 한 듯 조금 더 빠르게 덧붙였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은 그가 이제 살아 있는 모든 것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증명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뜻도 없었다.

“왜 제 이야기를 하세요?” 그녀는 조용히 말하고 나타샤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을 느낀 나타샤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

“안드레이, 혹시……” 마리야 공작 영애는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린 니콜라이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 애는 늘 오라버니 이야기를 해요!”

안드레이 공작은 처음으로 거의 알아차릴 수 없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너무나 잘 아는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것이 아들을 향한 기쁨이나 애정의 미소가 아님을 공포 속에 깨달았다. 자기를 일깨우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고 누이가 믿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고 여겨 조용하고 온화하게 비웃는 미소였다.

“그래, 그 애를 보면 무척 기쁘겠구나. 잘 지내고 있니?”

어린 니콜라이가 안드레이 공작의 방으로 들어왔을 때 겁먹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다른 누구도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니콜라이가 나간 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다시 오라버니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더 이상 눈물을 억누르지 못해 울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니콜라이 때문이니?” 그가 물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야, 너는 복음서의……” 그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울면 안 돼.” 그는 똑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울기 시작하자 그는 어린 니콜라이가 아버지 없이 남겨질 것을 생각해 우는 것임을 이해했다. 그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삶으로 되돌아가 그들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고 했다.

‘그래, 그들에게는 슬프게 보이겠지!’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나 단순한 일인가.

‘공중의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너희 아버지께서 먹이신다.’ 그는 속으로 말하고 그것을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야.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일 테고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들은 자기들이 귀중히 여기는 그 모든 감정—우리의 모든 감정,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하게 보이는 그 모든 관념—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침묵했다.

 

안드레이 공작의 어린 아들은 일곱 살이었다. 글을 겨우 읽었고 아무것도 몰랐다. 그날 이후 그는 많은 일을 겪으며 지식과 관찰력과 경험을 얻었다. 그러나 훗날 얻게 된 모든 능력을 당시 이미 갖추고 있었다 해도, 아버지와 마리야와 나타샤 사이에서 목격한 광경의 의미를 그때보다 더 훌륭하고 깊게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울지 않고 방을 나와 함께 나온 나타샤에게 말없이 다가가 아름답고 생각에 잠긴 눈으로 수줍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위로 들린 혈색 좋은 윗입술이 떨렸고, 그녀에게 머리를 기대며 울기 시작했다.

그 뒤로 아이는 데살과 자기를 어루만지는 백작부인을 피하고 혼자 앉아 있거나, 겁먹은 듯 마리야 공작 영애 또는 아주머니보다도 더 좋아하는 듯한 나타샤에게 다가가 조용하고 수줍게 달라붙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안드레이 공작의 방에서 나온 뒤 나타샤의 얼굴이 말해 준 것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제 나타샤에게 그의 목숨을 구할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침상 곁을 번갈아 지켰으며 더 이상 울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죽어 가는 사람 위에 존재함이 이제 그토록 명백해진 영원하고 헤아릴 수 없는 존재를 향해 영혼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