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 제8장
《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제8장

《전쟁과 평화》 제12권 8장 삽화

니콜라이의 기도에 대한 응답처럼 트로이차에서 보내온 소냐의 편지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서 쓰였다. 늙은 백작부인의 마음은 니콜라이를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시키려는 생각으로 갈수록 더 가득 찼다.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소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백작부인의 집에서 소냐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니콜라이가 보구차로보에서 마리야 공작 영애를 만난 일을 알리는 편지를 받은 뒤로는 더욱 그랬다. 백작부인은 소냐를 모욕하거나 잔인하게 비꼬는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모스크바를 떠나기 며칠 전,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마음이 움직이고 흥분한 백작부인은 소냐를 불러 꾸짖거나 요구하는 대신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니콜라이와의 약혼을 깨뜨림으로써 이 집안이 그동안 해 준 모든 일에 보답해 달라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기 전에는 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게다.”

소냐는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뜨렸고, 흐느끼면서 무슨 일이든 하겠고 무엇이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분명한 약속은 하지 않았고, 요구받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할 수도 없었다. 자기를 길러 주고 키워 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소냐의 습관이었다. 이 집에서 그녀의 처지는 희생을 통해서만 자기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었으며, 그녀는 그렇게 하는 데 익숙했고 그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전의 모든 자기희생에서는, 그 행위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기 가치를 높이고 그리하여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니콜라이에게 더욱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는 행복한 자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녀에게 자기희생의 모든 보상이자 자기 삶의 모든 의미를 이루는 바로 그것을 희생하라고 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놓고는 그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쓰라림을 느꼈다.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았고, 스스로 희생할 필요 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희생하게 만들면서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나타샤를 질투했다. 그리고 소냐는 처음으로 니콜라이를 향한 순수하고 고요한 사랑에서 원칙과 미덕과 종교보다 강한 격정적인 감정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의존적인 삶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감추는 데 익숙해진 소냐는 이 감정에 휩싸여 백작부인에게 모호하고 일반적인 말로 대답한 뒤 그녀와의 대화를 피했다. 그리고 니콜라이를 만나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그때 영원히 자기에게 묶어 두기 위해서였다.

로스토프 가족이 모스크바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의 소란과 공포는 소냐를 짓누르던 어두운 생각을 억눌렀다. 소냐는 실제로 해야 할 일에 몰두하여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뻤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이 그들의 집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와 나타샤를 진심으로 가엾게 여기면서도 하느님께서 자기가 니콜라이와 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즐겁고 미신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타샤가 안드레이 공작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며, 그를 사랑하기를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토록 끔찍한 상황에서 다시 함께하게 된 두 사람이 또다시 서로 사랑하게 되면, 두 집안 사이에 혼인이 금지되는 인척 관계가 생기므로 니콜라이는 마리야 공작 영애와 결혼할 수 없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며칠과 여행을 시작한 며칠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섭리가 자신의 개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이 감정은 소냐를 기쁘게 했다.

로스토프 가족은 트로이차 수도원에서 처음으로 하루 내내 여행을 멈추었다.

수도원의 숙소에서 큰 방 세 개가 그들에게 배정되었고, 그중 하나에는 안드레이 공작이 머물렀다. 부상자는 그날 훨씬 나아졌고 나타샤는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옆방에는 백작과 백작부인이 앉아서 수도원장과 공손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도원장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이자 수도원의 은인인 그들을 찾아온 참이었다. 소냐도 그곳에 있었고, 안드레이 공작과 나타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문 너머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문이 열리고 흥분한 표정의 나타샤가 나왔다. 그녀는 자신을 맞으려고 일어서서 오른팔의 넓은 소매를 걷어 올리는 수도사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소냐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나타샤, 무슨 짓이냐? 이리 오너라!” 백작부인이 말했다.

나타샤는 수도사에게 다가가 축복을 받았다. 수도사는 하느님과 성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라고 타일렀다.

수도원장이 물러가자마자 나타샤는 친구의 손을 잡고 빈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소냐, 그분이 사실까?” 그녀가 물었다. “소냐, 나는 얼마나 행복하고, 또 얼마나 불행한지 몰라!…… 소냐, 내 사랑, 모든 것이 전과 똑같아. 그분이 살아 있기만 한다면! 그분은…… 할 수 없어. 왜냐하면…… 왜냐하면…….” 나타샤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는 알고 있었어!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냐가 중얼거렸다. “그분은 사실 거야.”

친구의 두려움과 슬픔 때문에,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기 감정 때문에 소냐도 나타샤 못지않게 동요했다. 그녀는 흐느끼며 나타샤에게 입을 맞추고 위로했다. ‘그분이 살아 있기만 한다면!’ 소냐는 생각했다. 두 친구는 울고 이야기를 나누고 눈물을 닦은 뒤 함께 안드레이 공작의 방문으로 갔다. 나타샤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고, 소냐는 반쯤 열린 문 곁에서 그녀 옆에 서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베개 세 개에 몸을 높이 받친 채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고요했고 눈은 감겨 있었으며, 숨을 고르게 쉬는 것이 보였다.

“아, 나타샤!” 소냐는 갑자기 거의 비명을 지르며 친구의 팔을 붙잡고 문에서 뒤로 물러섰다.

“왜? 무슨 일이야?” 나타샤가 물었다.

“바로 저거야, 저거……”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을 떨며 소냐가 말했다.

나타샤는 아직 소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살며시 문을 닫고 그녀와 함께 창가로 갔다.

“기억나?” 소냐가 엄숙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트라드노예에서 성탄절에 내가 너를 위해 거울을 들여다봤던 때 말이야…… 기억나? 내가 무엇을 보았다고 했는지?”

“그래, 그래!” 나타샤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소냐가 누워 있는 안드레이 공작을 보았다고 자기에게 무언가 말했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기억나?” 소냐가 말을 이었다. “그때 내가 보고 모두에게 말했잖아. 너와 두냐샤에게. 그분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어.” 그녀는 손을 움직이며 손가락을 들어 세부 하나하나를 짚었다. “눈을 감고 분홍색 이불만 덮고 있었으며, 두 손은 모으고 있었어.” 그녀는 방금 본 세부 사항들이 바로 그때 거울에서 본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말을 끝맺었다.

사실 그때 소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머리에 처음 떠오른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지어낸 것이 이제는 다른 어떤 기억과도 다름없이 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당시 그가 몸을 돌려 자기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고 붉은 것을 덮고 있었다고 말했다는 것만 기억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그가 분홍색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렇게 말했다고 굳게 확신했다.

“그래, 그래, 정말 분홍색이었어!” 나타샤가 외쳤다. 이제는 자기도 그때 ‘분홍색’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것이 예언에서 가장 놀랍고 불가사의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무슨 뜻일까?” 그녀는 생각에 잠겨 덧붙였다.

“아, 나도 몰라. 모든 것이 너무 이상해.” 소냐는 머리를 감싸 쥐며 대답했다.

몇 분 뒤 안드레이 공작이 종을 울리자 나타샤는 그에게 갔다. 그러나 전에 없이 흥분하고 감동한 소냐는 창가에 남아 일어난 일의 기이함을 생각했다.

 

그날 군대로 편지를 보낼 기회가 생겨 백작부인은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소냐!” 조카딸이 곁을 지나가자 백작부인이 편지에서 눈을 들며 말했다. “소냐, 니콜라이에게 편지를 쓰지 않겠니?” 부드럽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지친 두 눈에서 소냐는 백작부인이 그 말에 담으려 한 모든 뜻을 읽었다. 그 눈은 간청과, 부탁해야 하는 수치심과,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거절당한다면 가차 없이 증오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소냐는 백작부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 손에 입을 맞추었다.

“예, 어머니, 쓸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날 일어난 모든 일, 특히 방금 목격한 자기 환영의 불가사의한 실현으로 소냐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흥분하고 감동했다. 이제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의 관계가 다시 이어지면 니콜라이가 마리야 공작 영애와 결혼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소냐는 자신이 익숙하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기를 좋아했던 자기희생의 정신이 되돌아오는 것을 기쁘게 느꼈다. 그리하여 너그러운 행위를 한다는 즐거운 자각 속에서—벨벳처럼 검은 두 눈을 흐리는 눈물 때문에 몇 번이나 쓰기를 멈추면서—니콜라이를 그토록 놀라게 한 감동적인 편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