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 제10장
《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제10장

《전쟁과 평화》 제12권 10장 삽화

9월 8일, 경비병들이 보이는 존경으로 미루어 매우 높은 사람인 듯한 장교가 포로들이 있는 마차 창고로 들어왔다. 아마 참모부 소속인 듯한 이 장교는 손에 종이를 들고 그곳의 러시아인들을 모두 호명했는데, 피에르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자’라고 불렀다. 그는 모든 포로를 게으르고 무심하게 훑어본 뒤, 책임 장교에게 그들을 원수(元帥) 앞으로 데려가기 전에 단정한 옷을 입히고 몸을 정돈시키라고 명령했다. 한 시간 뒤 병사 한 분대가 도착했고, 피에르는 다른 열세 명과 함께 데비치예 들판으로 끌려갔다. 비가 그친 뒤 햇빛이 비치는 맑은 날이었고 공기는 유난히 깨끗했다. 피에르가 주보프스키 성벽의 위병소에서 끌려나오던 날처럼 연기가 낮게 드리워 있지 않고 맑은 공기 속으로 기둥처럼 솟아올랐다.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에서 연기 기둥이 올라왔고, 피에르의 눈이 닿는 데까지 모스크바 전체가 거대하게 불탄 폐허였다. 사방에는 난로와 굴뚝만 남은 빈터가 펼쳐졌고, 여기저기 벽돌집 몇 채의 그을린 벽이 서 있었다. 피에르는 폐허를 바라보면서도 잘 알고 지내던 동네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따금 불타지 않은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파괴되지 않은 크렘린은 탑들과 이반 대제 종루를 거느리고 멀리서 하얗게 빛났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둥근 지붕들은 눈부시게 반짝였고 종소리는 유난히 맑게 울렸다. 그 종소리를 듣고 피에르는 오늘이 일요일이며 성모 탄생 축일임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축일을 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어디에나 그을린 폐허가 있었고, 드문드문 보이는 러시아인들은 누더기를 걸친 겁먹은 사람들로 프랑스인들을 보면 몸을 숨기려 했다.

러시아인의 보금자리가 파괴되고 무너졌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파괴된 러시아식 생활 질서 대신 전혀 다른 견고한 프랑스식 질서가 이 폐허가 된 보금자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무의식중에 느꼈다. 그와 다른 죄수들을 호송하며 활기차고 명랑하게 정연한 대열로 행진하는 병사들의 눈길에서 그것을 느꼈다. 길에서 마주친, 병사가 모는 두 필이 끄는 마차에 탄 프랑스 고관의 눈길에서도 느꼈다. 들판 왼쪽에서 들려오는 군악대의 흥겨운 연주에서도 느꼈고, 특히 그날 아침 프랑스 장교가 와서 읽은 포로 명단을 통해 그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피에르는 한 무리의 병사들에게 붙잡힌 뒤 수십 명의 다른 사람과 함께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녔으므로, 사람들이 자기를 잊거나 다른 사람과 혼동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심문 때 한 답변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자’라는 호칭으로 되돌아왔다. 피에르에게 끔찍하게 느껴지는 그 호칭 아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얼굴에 주저 없는 확신을 띠고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와 다른 포로 모두가 바로 자신들이 찾는 자들이며 마땅한 곳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피에르는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순조롭게 돌아가는 기계의 바퀴 사이에 떨어진 하찮은 나뭇조각처럼 느껴졌다.

그와 다른 포로들은 데비치예 들판 오른쪽,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정원이 딸린 큰 흰 집으로 끌려갔다. 피에르가 예전에 자주 방문했던 셰르바토프 공작의 집이었다. 병사들의 이야기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지금은 에크뮐 공작 다부 원수가 그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관으로 끌려가 한 사람씩 집 안으로 들어갔다. 피에르는 여섯 번째였다. 그는 익숙한 유리 회랑과 대기실과 홀을 지나 길고 천장이 낮은 서재로 안내되었다. 문 앞에는 부관이 서 있었다.

방 안쪽 끝에서 다부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탁자 위로 몸을 굽힌 채 앉아 있었다. 피에르가 바로 앞까지 다가갔지만, 다부는 눈앞에 놓인 서류를 살피는 듯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을 들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누구냐?”

피에르는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어 침묵했다. 그에게 다부는 단지 프랑스 장군이 아니라 잔혹함으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잠시 답을 기다릴 각오를 한 엄한 교사처럼 앉아 있는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며, 피에르는 지체하는 순간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심문에서 했던 말을 되풀이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자기 신분과 지위를 밝히는 것은 위험하고 난처했다. 그래서 침묵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도 전에 다부는 고개를 들고 안경을 이마 위로 밀어 올린 다음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자를 안다.” 그는 피에르에게 겁을 주려 계산한 것이 분명한 차갑고 느린 어조로 말했다.

피에르의 등을 타고 흐르던 한기가 이제는 바이스처럼 머리를 조였다.

“장군님께서는 저를 아실 수 없습니다. 저는 장군님을 한 번도 뵌 적이…….”

“러시아 첩자다.” 다부는 피에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곁의 다른 장군에게 말하며 그의 말을 끊었다.

다부가 고개를 돌렸다. 피에르는 뜻밖에 울림을 띤 목소리로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각하(monseigneur).” 그는 다부가 공작이라는 사실을 문득 떠올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각하께서 저를 아셨을 리 없습니다. 저는 민병대 장교이며 모스크바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이름은?” 다부가 물었다.

“베주호프입니다.”

“네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무엇이냐?”

“각하(monseigneur)!” 피에르는 모욕당한 목소리가 아니라 애원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다부는 눈을 들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몇 초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이 피에르를 구했다. 전쟁과 법률의 조건을 벗어나 그 시선은 두 사람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 주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마음에는 엄청나게 많은 것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고, 둘 다 자신이 인류의 자식이며 형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인간의 일과 생명이 숫자로 표시된 그 서류를 보던 다부에게 피에르는 하나의 상황에 지나지 않았다. 다부는 악행으로 양심을 짓누르지 않고도 그를 총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서 한 인간을 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네 말이 사실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다부가 차갑게 말했다.

피에르는 랑발을 떠올리고 그의 이름과 연대, 그 집이 있던 거리를 댔다.

“너는 네가 말하는 그런 자가 아니다.” 다부가 대꾸했다.

피에르는 떨리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자기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들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부관 한 명이 들어와 다부에게 무언가 보고했다.

다부는 부관이 가져온 소식을 듣고 얼굴이 환해져 군복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피에르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부관이 포로를 상기시키자 다부는 눈살을 찌푸리고 피에르 쪽으로 머리를 홱 젖히며 끌고 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어디로 끌고 가라는 것인지 피에르는 알지 못했다. 마차 창고로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데비치예 들판을 건널 때 동료들이 가리킨 처형장으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부관이 다부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 물론이지!” 다부가 대답했다. 그러나 이 ‘그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피에르가 알지 못했다.

훗날 피에르는 어떻게 걸어갔는지, 먼 길이었는지, 어느 방향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감각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넋이 나가 주위의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로 다리를 움직이다가 모두가 멈추자 자기도 멈췄다. 그때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대체 누가 실제로 자기에게 사형을 선고했는가? 처음 자기를 심문했던 위원회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토록 인간적인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았던 다부도 아니었다. 잠시만 더 있었다면 다부는 자기가 그릇된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부관이 들어와 방해했다. 그 부관도 들어오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악의가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처형하고 죽이며 생명을 빼앗는가? 그 모든 기억과 열망과 희망과 생각을 지닌 피에르를 누가 죽이는가? 누가 이 일을 하는가? 피에르는 그것이 아무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하나의 체계, 여러 상황의 결합이었다.

어떤 체계가 그를—피에르를—죽이고 생명과 모든 것을 빼앗아 소멸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