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 제4장
《전쟁과 평화》 · 제12권 1812년

제4장

《전쟁과 평화》 제12권 4장 삽화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우리는 러시아의 절반이 정복되고 주민들이 먼 지방으로 달아나며 조국 방어를 위한 징집이 잇따르던 때,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모든 러시아인이 오로지 자신을 희생하고 조국을 구하거나 그 몰락을 슬퍼하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 시대에 관한 이야기와 묘사는 예외 없이 러시아인들의 자기희생과 애국적 헌신, 절망과 슬픔과 영웅적 행위만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당시의 전반적인 역사적 관심만 보고 사람들이 품었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든 관심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실제로 그 순간의 개인적 관심은 일반적 관심을 훨씬 뛰어넘어 공공의 관심을 느끼거나 알아차리는 것조차 언제나 막는다.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사건의 전체적인 진행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직 사적인 관심에 이끌렸으며, 바로 그들의 활동이 그 시기에 가장 유용했다.

사건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자기희생과 영웅적 행동으로 참여하려 한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없는 구성원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거꾸로 보았고 공동선을 위해 한 일은 모두 쓸모없고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 마을을 약탈한 피에르와 마모노프의 연대, 젊은 귀부인들이 만들었으나 부상자들에게 닿지 못한 붕대용 보풀 따위가 그랬다. 지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당시 러시아의 처지를 논한 사람들조차 자기도 모르게 대화에 가식과 거짓의 기미를 넣거나,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의 죄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향한 쓸모없는 비난과 분노를 섞었다. 역사적 사건에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규칙이 특별히 잘 적용된다. 무의식적인 행동만이 열매를 맺으며, 역사적 사건에 참여한 사람은 그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려 애쓰면 노력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가까이 관여할수록 사람들은 그 의미를 덜 깨달았다.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는 귀부인과 민병대 제복을 입은 신사들이 러시아와 오래된 수도를 위해 울며 자기희생 따위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너머로 퇴각한 군대에서는 모스크바에 관한 말이나 생각이 거의 없었다. 불탄 폐허를 보았을 때 프랑스군에게 복수하겠다고 맹세한 사람도 없었다. 다음 봉급과 다음 숙영지, 종군 상인 여자(vivandière) 마트료시카와 그 비슷한 일들을 생각했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전쟁이 시작될 때 이미 군 복무 중이었으므로 그는 조국 방어에 오랫동안 긴밀히 참여했다. 그러나 자기희생의 목적 없이 우연히 그렇게 했기에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절망하거나 침울하게 골똘히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러시아의 상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자기 일이 아니며 그 일은 쿠투조프와 다른 사람들이 맡고 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다만 연대를 정원 병력까지 충원한다는 말을 들었고 아마 전투가 아직 오래 이어질 테니, 그렇다면 2년 뒤 자기가 연대를 지휘하게 될 가능성도 꽤 높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일을 보았으므로 자기 사단의 군마를 사러 보론네시로 파견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기는커녕 몹시 기뻐했다. 그 기쁨을 숨기지 않았고 전우들도 충분히 이해했다.

보로디노 전투가 벌어지기 며칠 전 니콜라이는 필요한 돈과 증서를 받았다. 후사르 몇 명을 먼저 보낸 뒤 역참마를 타고 보론네시로 출발했다.

경험한 사람, 곧 몇 달 동안 원정과 전쟁의 분위기 속에서 계속 살아 본 사람만이 군대의 식량 징발대와 보급 수송대와 병원으로 뒤덮인 지역에서 벗어났을 때 니콜라이가 느낀 기쁨을 이해할 수 있다. 병사와 수레와 더러운 야영의 흔적에서 벗어나 농민 남녀가 있는 마을과 귀족의 시골 저택, 소들이 풀을 뜯는 들판과 역참지기가 잠든 역참을 보았을 때 그는 그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기뻐했다. 특히 오랫동안 그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한 것은 젊고 건강하며, 여자 한 사람마다 구애하는 장교가 열두 명씩 붙어 있지 않은 여자들이었다. 지나가는 장교가 농담을 걸면 즐겁고 우쭐해하는 여자들이기도 했다.

니콜라이는 한밤중에 더없이 유쾌한 기분으로 보론네시의 여관에 도착하여 야영지에서 오랫동안 누리지 못한 것들을 주문했다. 이튿날 아주 깨끗이 면도하고 오랫동안 입지 않은 정장 제복을 갖춰 입은 뒤 당국에 신고하러 갔다.

민병대 지휘관은 문관 장군으로, 군대식 명칭과 계급을 분명히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그는 그것이 군인다운 태도라고 생각하며 니콜라이를 퉁명스럽게 맞았다. 전체적인 사태의 진행을 검토하여 찬성하고 반대할 완전한 권리가 있다는 듯 거드름을 피우며 물었다. 니콜라이는 기분이 너무 좋아 그 모습이 그저 재미있었다.

민병대 지휘관에게서 나와 총독에게 마차를 타고 갔다. 총독은 활기차고 몸집이 작은 사람으로 매우 소탈하고 상냥했다. 니콜라이가 말을 구할 수 있는 종마 사육장들을 알려 주고, 시내의 말 장수와 시외 14마일 떨어진 곳에 가장 좋은 말을 가진 지주를 추천했으며 가능한 모든 도움을 약속했다.

“일리야 로스토프 백작의 아들이시오? 내 아내가 그대 어머니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소. 우리는 목요일이면 손님을 맞는데 오늘이 목요일이니 아무 격식 없이 꼭 오시오.” 총독은 작별하며 말했다.

총독 저택을 나오자마자 니콜라이는 역참마를 빌리고 대대 보급관을 데리고 14마일 떨어진 종마 사육장의 지주에게 전속력으로 갔다. 보론네시 체류 초반에는 모든 일이 유쾌하고 쉬워 보였다. 사람이 유쾌한 기분에 있을 때 늘 그렇듯 모든 일이 잘되고 쉽게 풀렸다.

니콜라이가 찾아간 지주는 독신인 늙은 기병이자 말 애호가이며 사냥꾼이었다. 100년 묵은 브랜디와 오래된 헝가리 포도주, 담배 피우는 아늑한 방과 훌륭한 말들을 지닌 사람이었다.

니콜라이는 아주 짧은 말 몇 마디로 군마의 견본으로 삼겠다며 엄선한 종마 열일곱 마리를 6천 루블에 샀다. 저녁을 먹고 헝가리 포도주를 조금 지나치게 마신 그는 벌써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 지주와 입을 맞추어 작별하고, 가장 밝은 기분으로 형편없는 길을 전속력으로 돌아갔다. 총독의 모임에 제시간에 도착하려고 마부에게 계속 속도를 내라고 재촉했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물을 붓고 향수까지 뿌린 니콜라이는 “늦더라도 안 오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총독 저택에 꽤 늦게 도착했다.

무도회도 아니었고 춤을 춘다는 발표도 없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페트로브나가 클라비코드로 왈츠와 에코세즈(écossaise)를 연주하여 춤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므로 무도회에 오듯 찾아왔다.

1812년의 지방 생활은 거의 평소처럼 이어졌다. 다만 모스크바의 부유한 가족이 많이 도착하여 도시들이 더 활기찼고, 당시 러시아에서 벌어진 모든 일에서 눈에 띈 특별한 무모함, 곧 ‘기왕 한 푼을 썼으니 한 냥까지 쓰자, 누가 상관하랴’ 하는 정신이 있었다. 날씨와 서로 아는 사람을 화제로 삼던 피할 수 없는 잡담도 이제 모스크바와 군대와 나폴레옹 이야기로 바뀌었다.

총독 저택에 모인 이들은 보론네시에서 가장 훌륭한 사교계 사람들이었다.

귀부인이 아주 많고 니콜라이가 모스크바에서 알던 사람도 몇 있었지만, 성 게오르기 훈장을 받은 후사르 군마 조달 장교이자 선량하고 교양 있는 로스토프 백작과 조금이라도 겨룰 수 있는 남자는 없었다. 남자들 가운데에는 프랑스군 장교인 이탈리아인 포로가 있었다. 니콜라이는 그 포로가 있어 러시아 영웅인 자기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느꼈다. 이탈리아인은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탈리아인을 그런 눈으로 본다고 생각했고, 위엄과 절제를 지키면서도 다정하게 대했다.

향수와 포도주 냄새를 풍기며 후사르 제복을 입은 니콜라이가 들어와 “늦더라도 안 오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것을 듣자 사람들이 주위로 모였다. 모든 눈이 그에게 향했고 그는 자기가 지방에서 마땅히 차지할 자리, 곧 모두의 총애를 받는 자리에 즉시 들어섰다고 느꼈다. 오랫동안 궁핍한 생활을 한 뒤에는 몹시 유쾌하고 도취적인 자리였다. 역참과 여관과 지주의 아늑한 방에서는 하녀들이 그의 관심을 기뻐했다. 여기 총독의 모임에도 니콜라이의 관심을 조급하게 기다리는 예쁜 젊은 여자와 유부녀가 끝없이 많은 듯했다. 여자들과 아가씨들은 그에게 추파를 던졌다. 사람들은 첫날부터 이 훌륭하고 젊고 대담한 후사르를 결혼시켜 정착시키는 일에 마음을 썼다. 로스토프를 가까운 친척처럼 맞고 ‘니콜라이’라고 부른 총독 부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예카테리나 페트로브나는 실제로 왈츠와 에코세즈(écossaise)를 연주했고 춤이 시작되었다. 니콜라이는 민첩함으로 지방 사교계를 더욱 사로잡았다. 유난히 자유분방한 춤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니콜라이 자신도 그날 저녁 자기 춤에 조금 놀랐다. 모스크바에서는 그렇게 춘 적이 없고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춤을 부적절하고 취향이 나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별한 무언가, 지방 사람들에게는 새롭지만 수도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무언가로 모두를 놀라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날 저녁 내내 니콜라이는 지방 관리 한 사람의 아내인 푸른 눈에 통통하고 매력적인 작은 금발 여인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흥겨운 젊은이들이 다른 남자의 아내는 자신들을 위해 태어났다고 순진하게 믿듯, 로스토프는 그 여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남편에게도 다정하고 공모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말은 하지 않아도 니콜라이와 그 여인이 얼마나 잘 어울릴지 서로 안다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확신에 동의하지 않는 듯 로스토프에게 침울하게 행동하려 했다. 그러나 니콜라이의 선량한 순진함에는 끝이 없어 남편도 때때로 저도 모르게 그의 좋은 기분에 굴복했다. 저녁이 끝날 무렵 아내의 얼굴이 갈수록 붉어지고 생기가 넘치자 남편의 얼굴은 더욱 우울하고 엄숙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일정한 양의 활기만 있어 아내의 몫이 늘어날수록 남편의 몫은 줄어드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