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오빠도 그런 적이 있어요?” 거실에 자리를 잡자 나타샤가 오빠에게 말했다. “이제 앞으로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좋은 일은 모두 지나가 버린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어요? 꼭 따분하다기보다는 슬픈 기분이 드는 적 말이에요.”
“물론 있지!” 니콜라이가 대답했다. “모든 일이 잘되고 모두가 즐거워할 때도 그런 적이 있어. 이미 이 모든 것에 싫증이 났고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 한번은 연대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어떤 놀이 모임에 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몹시 울적해졌어…….”
“아, 그래요. 알아요, 알아, 알아요!” 나타샤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주 어렸을 때 나도 그랬어요. 자두 때문에 벌을 받은 적이 있었잖아요. 기억나요? 모두 춤을 추는데 나는 공부방에 앉아 흐느껴 울었어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슬펐고 모두가 가여웠어요. 나 자신도, 모두가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게 잘못이 없었다는 거예요.” 나타샤가 말했다. “기억나요?”
“기억나.” 니콜라이가 대답했다. “나중에 네게 가서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있잖아, 부끄러워서 그러지 못했던 것도 기억나. 우리는 지독하게 우스웠어. 그때 내게 우스꽝스러운 인형이 하나 있어서 네게 주고 싶었어. 기억나니?”
“그리고 기억나요?” 나타샤가 생각에 잠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주, 아주 오래전 우리가 무척 어렸을 때, ‘아저씨’가 우리를 서재로 불렀잖아요. 옛날 집에서였는데…… 방은 어두웠고…… 우리가 들어가자 갑자기 그곳에…….”
“흑인이 서 있었지.” 니콜라이가 기쁜 미소를 띠며 말을 받았다. “물론 기억나. 지금도 정말 흑인이 있었던 건지, 우리가 꿈을 꾼 건지, 아니면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 준 건지 모르겠어.”
“회색빛이었고 하얀 이가 있었어요. 기억나죠? 서서 우리를 바라보았잖아요…….”
“소냐, 너도 기억나니?” 니콜라이가 물었다.
“응, 응. 나도 무언가 기억나.” 소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흑인에 관해 아버지와 어머니께 여쭤 본 적이 있어요.” 나타샤가 말했다. “그런 흑인은 전혀 없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봐요, 오빠도 기억하잖아요!”
“물론이지. 그 이가 지금 막 본 것처럼 기억나.”
“정말 이상해! 꿈 같아! 난 그런 게 좋아.”
“그리고 무도실에서 삶은 달걀을 굴리는데 갑자기 두 노파가 양탄자 위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일까요, 아니었을까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기억나요?”
“그래. 그리고 아버지가 푸른 외투를 입고 현관에서 총을 쏘셨던 것도 기억나니?”
그렇게 그들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하나씩 되짚었다. 노년의 슬픈 추억이 아니라 꿈과 현실이 한데 뒤섞이는 아주 먼 과거의 인상, 시적이고 젊은 추억이었다. 그들은 조용한 즐거움에 잠겨 웃었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소냐는 언제나 그렇듯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많은 일이 소냐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남아 있는 기억도 두 사람이 느끼는 것과 같은 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소냐는 그저 두 사람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며 거기에 어울리려고 애썼다.
소냐가 진정으로 이야기에 끼어든 것은 자신이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를 회상할 때뿐이었다. 그녀는 니콜라이가 끈으로 장식한 웃옷을 입고 있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이야기했다. 유모가 소냐도 끈으로 꿰매 버릴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네가 양배추 밑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나.” 나타샤가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것도 기억나.”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녀 하나가 거실 반대편 문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가씨, 수탉을 가져왔습니다.” 하녀가 속삭였다.
“이제 필요 없어, 폴랴. 도로 가져가라고 해.” 나타샤가 대답했다.
거실에서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딤믈러가 들어와 방 한구석에 놓인 하프로 다가갔다. 그가 덮개를 벗기자 하프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딤믈러 씨, 내가 좋아하는 필드의 야상곡을 연주해 주세요.” 응접실에서 늙은 백작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딤믈러는 화음을 한 번 울리고 나타샤와 니콜라이와 소냐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젊은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조용합니까!”
“네, 철학을 논하고 있어요.” 나타샤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그들은 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딤믈러가 연주를 시작했다. 나타샤는 소리 나지 않게 발끝으로 탁자에 다가가 촛불을 집어 들고 밖으로 가져간 다음, 돌아와 조용히 아까 자리에 앉았다. 방 안은 어두웠고 그들이 앉은 소파 부근은 특히 더 어두웠지만, 커다란 창문으로 보름달의 은빛이 바닥에 쏟아졌다. 딤믈러는 곡을 끝낸 뒤에도 현 위로 손가락을 부드럽게 놀리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연주를 멈출지 다른 곡을 연주할지 정하지 못한 듯했다.
“있잖아요.” 나타샤가 니콜라이와 소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계속해서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마침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까지 기억하게 돼요…….”
“그건 윤회야.” 언제나 공부를 잘했고 무엇이든 기억하는 소냐가 말했다. “이집트인들은 우리 영혼이 동물 속에서 살았고, 다시 동물 속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어.”
“아니, 우리가 동물이었던 적이 있다는 말은 믿지 않아.” 음악이 멈췄는데도 나타샤는 여전히 속삭였다. “하지만 우리가 저기 어딘가에서 천사였고, 여기에도 있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만은 분명해…….”
“나도 끼어도 될까요?” 조용히 다가온 딤믈러가 말하고 그들 곁에 앉았다.
“우리가 천사였다면 왜 더 낮은 곳으로 떨어졌을까요?” 니콜라이가 말했다. “아니, 그럴 리 없어요!”
“낮아지다니요? 누가 우리가 낮아졌다고 했어요?…… 내가 전에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나타샤가 확신을 품고 맞받았다. “영혼은 불멸이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영원히 산다면 전에도 살았어야 해요. 영원한 세월 동안 살았어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원을 상상하기란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지요.” 온화하면서도 조금은 어른인 체하는 미소를 띠고 젊은이들 사이에 끼었던 딤믈러가 말했다. 이제는 그들처럼 조용하고 진지한 목소리였다.
“영원을 상상하기가 왜 어려워요?” 나타샤가 말했다. “지금은 오늘이고, 다음에는 내일이고, 언제까지나 계속되잖아요.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었고요…….”
“나타샤! 이제 네 차례야. 노래를 하나 불러 다오.” 백작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음모라도 꾸미는 사람들처럼 거기 앉아 있니?”
“어머니, 저는 정말 부르고 싶지 않아요.” 나타샤가 대답했지만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심지어 중년인 딤믈러조차 이야기를 중단하고 거실 구석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나타샤가 일어났고 니콜라이는 클라비코드 앞에 앉았다. 나타샤는 평소처럼 홀 한가운데 서서 울림이 가장 좋은 자리를 고른 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타샤가 그날 저녁처럼 노래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으며 이후에도 다시 그렇게 노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텐카와 이야기하던 백작은 서재에서 딸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밖으로 놀러 나가려고 서두르는 학생처럼 백작은 관리인에게 지시하면서 말을 자꾸 더듬다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미텐카도 백작 앞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귀를 기울였다. 니콜라이는 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녀의 호흡에 맞춰 숨을 쉬었다. 소냐는 노래를 들으며 자신과 친구 사이에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지, 자신은 사촌만큼 매혹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생각했다. 늙은 백작부인은 더없이 행복하면서도 슬픈 미소를 띠고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앉아 가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나타샤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했고,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의 다가오는 결혼에는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두려운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백작부인 옆에 앉은 딤믈러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아, 백작부인.” 마침내 그가 말했다. “유럽에서도 명성을 떨칠 재능입니다. 더 배울 것이 전혀 없어요. 얼마나 부드럽고 다정하면서도 힘이 있는지…….”
“아, 나는 저 아이가 너무 걱정돼요. 너무나 걱정돼요!” 백작부인은 자신이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말했다. 어머니의 본능은 나타샤에게 무언가가 너무 많으며 그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리라고 일러 주었다. 나타샤가 노래를 마치기도 전에 열네 살인 페탸가 기뻐 날뛰며 뛰어 들어와 변장놀이꾼들이 왔다고 알렸다.
나타샤는 갑자기 노래를 멈췄다.
“바보!” 나타샤는 남동생에게 소리치고 의자로 달려가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멈출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머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페탸가 저를 놀라게 했을 뿐이에요.” 나타샤는 미소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하지만 눈물은 여전히 흘렀고 흐느낌에 목이 메었다.
집안 농노들 가운데 일부인 변장놀이꾼들은 곰과 터키인과 여관 주인과 귀부인으로 변장했다.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그들은 바깥의 찬 기운과 흥겨운 분위기를 함께 몰고 와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현관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서로의 뒤에 몸을 숨기며 무도실로 밀려 들어와, 처음에는 수줍게, 이윽고 갈수록 더 명랑하고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며 성탄절 놀이를 시작했다. 백작부인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변장을 보며 웃은 다음 응접실로 들어갔다. 백작은 무도실에 앉아 환한 미소를 짓고 놀이꾼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젊은이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30분 뒤 무도실의 다른 변장놀이꾼들 사이에 후프 스커트를 입은 노부인이 나타났다. 니콜라이였다. 터키 처녀는 페탸였고, 광대는 딤믈러였다. 경기병은 나타샤였으며, 그을린 코르크로 콧수염과 눈썹을 그린 체르케스인은 소냐였다.
변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그럽게 놀라워하고, 알아보지 못하며, 칭찬까지 해 주자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변장이 아주 훌륭하니 다른 곳에서도 보여 주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길 상태가 아주 좋아 모두를 자신의 트로이카에 태워 달리고 싶었던 니콜라이는 농노 변장놀이꾼 열두 명가량도 함께 데리고 ‘아저씨’의 집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아니, 왜 그 노인을 귀찮게 하니?” 백작부인이 말했다. “게다가 그곳에서는 썰매를 돌릴 자리도 없을 거야. 꼭 가야겠다면 멜류코프네로 가거라.”
멜류코바는 과부로, 가족과 그들의 남녀 가정교사들과 함께 로스토프가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다.
“그게 좋겠구나, 여보.” 완전히 신이 난 늙은 백작이 맞장구쳤다. “나도 당장 변장하고 함께 가야겠다. 파셰트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해 줘야지.”
하지만 백작부인은 백작이 가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백작은 며칠째 다리가 좋지 않았다. 백작은 가지 않되, 루이자 이바노브나 곧 쇼스 부인이 동행한다면 젊은 아가씨들이 멜류코프네로 가도 좋다는 결론이 났다. 늘 소심하고 수줍은 소냐가 누구보다 간절히 루이자 이바노브나에게 거절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소냐의 변장은 그중 가장 훌륭했다. 콧수염과 눈썹이 놀라울 만큼 잘 어울렸다. 모두가 소냐에게 아주 잘생겨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기운차고 활기에 넘쳤다. 어떤 내면의 목소리가 지금이 아니면 결코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으리라고 말해 주었고, 남장을 한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루이자 이바노브나는 함께 가기로 했다. 30분 뒤 크고 작은 방울들을 매단 트로이카 썰매 네 대가 얼어붙은 눈 위에서 날이 끼익거리고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며 현관 앞으로 달려왔다.
즐거운 축일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나타샤가 앞장섰다. 그 흥겨움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번져 갈수록 강해졌고, 모두가 추위 속으로 나가 서로 이야기하고 부르고 웃고 소리치며 썰매에 올라탔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트로이카 두 대는 집에서 평소 쓰던 썰매였고, 세 번째는 가운데 채말이 오를로프 종마장에서 난 속보마인 늙은 백작의 썰매였으며, 네 번째는 키가 작고 털이 덥수룩한 검은 채말을 맨 니콜라이 자신의 썰매였다. 노부인 차림 위에 경기병 외투를 입고 허리띠를 두른 니콜라이는 고삐를 손에 쥔 채 썰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달빛이 마구의 금속 원판과 말들의 눈에서 반사되는 것이 보일 만큼 밝았다. 말들은 현관 지붕의 그늘 아래 모여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불안한 듯 돌아보았다.
나타샤와 소냐와 쇼스 부인, 하녀 둘은 니콜라이의 썰매에 올라탔다. 딤믈러와 그의 아내와 페탸는 늙은 백작의 썰매에 탔고, 나머지 변장놀이꾼들은 다른 두 썰매에 나누어 앉았다.
“자하르, 먼저 가!” 그를 앞질러 경주할 기회를 노리며 니콜라이가 아버지의 마부에게 소리쳤다.
딤믈러 일행을 태운 늙은 백작의 트로이카가 앞으로 나아갔다. 썰매 날은 눈에 얼어붙은 듯 끼익거렸고 낮고 깊은 방울 소리가 울렸다. 양옆의 말들은 가운데 말의 끌채 쪽으로 몸을 기울이다가 설탕처럼 메마르고 반짝이는 눈 속에 빠지며 눈가루를 걷어찼다.
니콜라이가 첫 썰매를 따라 출발하자 다른 썰매들도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썰매 날이 끼익거렸다. 처음에는 좁은 길을 따라 일정한 속보로 달렸다. 정원을 지나는 동안에는 잎이 진 나무들의 그림자가 자주 길을 가로질러 눈부신 달빛을 가렸다. 하지만 울타리를 벗어나자 달빛에 잠긴 눈 덮인 평원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푸르스름한 그림자들이 얼룩져 있는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눈앞에 펼쳐졌다. 쾅, 쾅! 첫 번째 썰매가 눈길의 움푹 팬 곳을 넘으며 소리를 냈고, 다른 썰매들도 차례로 똑같이 덜컹거렸다. 얼어붙은 정적을 거칠게 깨뜨리며 트로이카들은 한 대씩 잇따라 길 위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 발자국이에요. 발자국이 아주 많아요!” 나타샤의 목소리가 얼어붙은 공기 속에 울렸다.
“정말 밝아요, 니콜라이!” 소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콜라이는 소냐를 돌아본 다음, 얼굴을 더 가까이 보려고 몸을 숙였다. 검은 눈썹과 콧수염을 지닌 완전히 새롭고 사랑스러운 얼굴이 검은담비 모피 사이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달빛 속에서 너무나 가까우면서도 아주 먼 얼굴이었다.
‘저 사람이 전에는 소냐였지.’ 니콜라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더 가까이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왜 그래요, 니콜라이?”
“아무것도 아니야.” 니콜라이는 말하고 다시 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썰매 날에 닳아 반들반들하고, 달빛에도 자국이 보이는 거친 편자를 박은 말발굽에 파인 큰길로 나오자 말들은 저절로 고삐를 당기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왼쪽 곁말은 머리를 활처럼 구부리고 짧은 구보로 달리기 시작하며 끈을 팽팽하게 당겼다. 채말은 귀를 움직이며 ‘이제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묻는 듯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앞쪽에는 이미 멀리 달아난 썰매의 낮고 깊은 방울 소리가 점점 더 먼 곳에서 울렸고, 자하르가 모는 검은 말들이 흰 눈 위로 뚜렷이 보였다. 그 썰매에서는 변장놀이꾼들의 외침과 웃음과 말소리가 들려왔다.
“달려라, 귀염둥이들아!” 니콜라이는 고삐를 한쪽으로 당기고 채찍을 휘두르며 외쳤다.
맞바람이 더욱 매서워지고 양옆의 말들이 세게 끌어 썰매가 홱홱 당겨지며 질주 속도를 계속 높이는 것을 보고서야 트로이카가 얼마나 빠르게 날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니콜라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비명과 날카로운 외침을 지르고 채찍을 휘둘러 가운데 채말까지 질주하게 만들며 다른 썰매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채말은 속도를 늦출 생각 없이 머리 위 멍에 아래에서 한결같이 몸을 흔들었고, 필요하면 언제든 더 빠르게 달릴 태세였다.
니콜라이는 첫 번째 썰매를 따라잡았다. 그들은 내리막을 달려 강 근처의 초원을 가로지르는 넓고 다져진 길로 나오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코소이 초원인 것 같군. 하지만 아니야.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곳이야. 코소이 초원도 아니고 됨킨 언덕도 아니야. 대체 어디인지 하늘만이 알겠지! 새롭고 마법에 걸린 무언가야. 뭐, 어디면 어때…….’ 그는 말들에게 소리치며 첫 썰매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자하르는 말들의 속도를 늦추고 눈썹까지 서리가 하얗게 덮인 얼굴을 돌렸다.
니콜라이는 말들의 고삐를 풀어 주었다. 자하르는 두 팔을 뻗고 혀를 차며 말들을 내달리게 했다.
“자, 조심하십시오, 도련님!” 자하르가 외쳤다.
두 트로이카는 나란히 더욱 빠르게 날았고, 질주하는 곁말들의 다리도 더 빨리 움직였다. 니콜라이가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두 팔을 뻗은 자하르는 고삐를 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도련님!” 그가 외쳤다.
니콜라이는 세 말 모두를 질주시켜 자하르를 앞질렀다. 말들은 곱고 메마른 눈가루를 썰매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 끼얹었다. 바로 옆에서는 방울들이 빠르게 울렸고, 그들은 앞질러 가는 트로이카의 재빨리 움직이는 다리와 그림자를 어지럽게 얼핏 보았다. 사방에서 썰매 날이 눈 위를 스치는 휘파람 같은 소리와 아가씨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니콜라이는 다시 말들의 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달빛에 잠기고 별들이 흩뿌려진 마법 같은 평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자하르는 왼쪽으로 돌라고 소리치는데, 왜 왼쪽이지?’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멜류코프네에 다 온 건가? 여기가 멜류코프카인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하늘만이 알겠지.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몹시 이상하고 즐거워.’ 그는 썰매 안을 돌아보았다.
“보세요. 콧수염과 속눈썹이 온통 하얗게 됐어요!” 곱고 낯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가운데 가는 눈썹과 콧수염을 지닌 이가 말했다.
‘저 사람은 전에는 나타샤였던 것 같고, 저 사람은 쇼스 부인이었던 것 같군. 하지만 아닐지도 몰라. 콧수염을 기른 이 체르케스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해.’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춥지 않아요?” 그가 물었다.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 시작했다. 뒤따르는 썰매에서 딤믈러가 무언가를 외쳤다. 아마도 우스운 말이었겠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요, 그래!” 몇몇 목소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검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드리운 요정의 숲이 있고, 다이아몬드의 반짝임과 대리석 계단들이 이어져 있으며, 요정 건물들의 은빛 지붕과 어떤 짐승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도 있구나. 정말 멜류코프카라면 우리가 하늘만 아는 곳까지 달려왔다가 멜류코프카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더욱 이상해.’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그곳은 정말 멜류코프카였다. 즐거운 표정의 하녀들과 시종들이 촛불을 들고 현관 앞으로 달려 나왔다.
“누구예요?” 현관에 있던 누군가가 물었다.
“백작 댁 변장놀이꾼들이야. 말들을 보면 알아.” 여러 목소리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