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 제17장
《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제17장

《전쟁과 평화》 제8권 17장 삽화

아나톨은 방을 나갔다가 몇 분 뒤 은색 허리띠를 두른 모피 외투를 입고 검은담비 모자를 비스듬히 멋지게 쓴 채 돌아왔다. 모자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아주 잘 어울렸다. 그는 거울을 보고 나서 아까와 같은 자세로 돌로호프 앞에 서서 술잔을 들어 올렸다.

“자, 잘 있어, 표도르. 모두 고맙다. 작별이야!” 아나톨이 말했다. “자, 동료들과 친구들이여……” 그는 잠시 생각했다. “……내 젊은 시절의 친구들이여, 잘 있어!” 그는 마카린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가 함께 갈 예정이었지만, 아나톨은 동료들에게 하는 이 인사를 감동적이고 장엄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는 크고 느린 목소리로 말하며 가슴을 내밀고 한쪽 다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모두 잔을 들어. 발라가, 자네도. 자, 내 젊은 시절의 동료와 친구들이여, 우리는 마음껏 놀고 살고 흥청거렸지. 그렇지? 이제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나는 외국으로 간다. 즐거웠어. 이제 잘 있어, 친구들!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만세!……” 그는 외치고 잔을 비운 뒤 바닥에 내던졌다.

“나리의 건강을 위하여!” 발라가도 잔을 비우고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마카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나톨을 끌어안았다.

“아, 공작님, 헤어지려니 얼마나 서운한지 모르겠습니다!”

“가자. 어서 가자!” 아나톨이 외쳤다.

발라가가 방을 나가려 했다.

“아니, 잠깐!” 아나톨이 말했다. “문을 닫아. 먼저 잠깐 앉아야 해. 그게 관습이야.”

그들은 문을 닫고 모두 앉았다.

“자, 친구들, 이제 속보로 전진!” 아나톨은 일어서며 말했다.

시종 조제프가 기병용 가방과 군도를 건넸고, 그들은 모두 현관으로 나갔다.

“모피 망토는 어디 있지?” 돌로호프가 물었다. “이봐, 이그나트카! 마트료나 마트료브나에게 가서 검은담비 망토를 달라고 해. 여자와 달아나는 일이 어떤지 들어 본 적이 있지.” 돌로호프는 눈을 찡긋하며 말을 이었다. “여자는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반쯤 죽어서 뛰어나올 거야.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눈물을 흘리며 ‘아빠’, ‘엄마’를 찾겠지. 그러다 금세 얼어붙으면 돌아가야 하니까, 나오자마자 모피 망토부터 둘러서 썰매로 안고 가.”

시종은 여우털 안감을 댄 여성용 망토를 가져왔다.

“바보야, 검은담비라고 했잖아! 이봐, 마트료나, 검은담비 망토!” 그가 외쳤고, 목소리가 방마다 멀리 울려 퍼졌다.

검은 눈이 반짝이고 푸른빛이 도는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에 붉은 숄을 걸친, 잘생기고 날씬하며 창백한 집시 처녀가 검은담비 망토를 팔에 들고 달려 나왔다.

“자, 아깝지 않으니 가져가세요!” 그녀는 주인을 두려워하면서도 망토를 아쉬워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돌로호프는 대답하지 않고 망토를 받아 마트료나의 어깨에 씌운 뒤 몸을 감쌌다.

“이렇게.” 돌로호프가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그는 얼굴이 조금만 드러나도록 옷깃을 머리 둘레까지 세웠다. “그다음에는 이렇게, 알겠어?” 그는 옷깃 사이로 보이는 마트료나의 환한 미소에 얼굴을 맞대도록 아나톨의 머리를 앞으로 밀었다.

“잘 있어, 마트료나.” 아나톨은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 이곳에서 즐기던 일도 이제 끝이군. 스테시카에게 내 안부를 전해 줘. 자, 잘 있어! 잘 있어, 마트료나. 내 행운을 빌어 줘!”

“공작님, 하느님께서 큰 행운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트료나가 집시 억양으로 말했다.

현관 앞에는 트로이카 두 대가 서 있었고 젊은 마부 둘이 말들을 붙들고 있었다. 발라가는 앞쪽 썰매의 마부석에 앉아 팔꿈치를 높이 들고 천천히 고삐를 정돈했다. 아나톨과 돌로호프가 그와 함께 올라탔다. 마카린과 흐보스티코프와 시종 한 명은 다른 썰매에 앉았다.

“자, 준비됐습니까?” 발라가가 물었다.

“가자!” 그는 외치며 고삐를 손에 휘감았고, 트로이카는 니키츠키 대로를 질주했다.

“워! 길을 비켜! 이랴!…… 워!……” 발라가와 마부석에 앉은 건장한 젊은이의 고함만 들렸다. 아르바트 광장에서 트로이카가 마차 한 대에 걸렸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고함이 들렸고, 트로이카는 그대로 아르바트 거리를 날아갔다.

포드노빈스키 대로를 한 차례 돌아간 뒤 발라가는 말의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고, 방향을 돌려 옛 코뉴셰니 거리 교차로에 멈추었다.

마부석의 젊은이가 말을 붙들려고 뛰어내렸고, 아나톨과 돌로호프는 보도를 따라 걸어갔다. 대문에 이르자 돌로호프가 휘파람을 불었다. 안에서 응답하는 휘파람이 들리고 하녀 한 명이 뛰어나왔다.

“뜰 안으로 들어오세요. 남들에게 보일 거예요. 아가씨는 곧 나올 겁니다.” 하녀가 말했다.

돌로호프는 대문 곁에 남았다. 아나톨은 하녀를 따라 뜰로 들어가 모퉁이를 돈 뒤 현관으로 뛰어 올라갔다.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거대한 체구를 지닌 하인 가브릴로가 그를 맞았다.

“마님께로 가시지요.” 하인이 퇴로를 막으며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마님? 너는 누구냐?” 아나톨이 숨 가쁜 속삭임으로 물었다.

“들어가 주십시오. 모셔 오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쿠라긴! 돌아와!” 돌로호프가 소리쳤다. “배신당했어! 돌아와!”

아나톨이 안으로 들어간 뒤 돌로호프는 쪽문에 남아 문을 잠그려는 문지기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필사적인 힘을 다해 문지기를 밀쳐 냈다. 아나톨이 달려 돌아오자 그의 팔을 붙잡아 쪽문 밖으로 끌어내고 함께 트로이카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