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 제8장
《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제8장

《전쟁과 평화》 제8권 8장 삽화

그날 저녁 로스토프가 사람들은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가 박스석을 마련해 둔 오페라 극장으로 갔다.

나타샤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특별히 자신을 위해 베푼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옷을 다 차려입고 아버지를 기다리려고 무도실로 나와 커다란 거울 속의 자신이 아름답고 무척 아름답다는 것을 보자 더욱 슬퍼졌다. 하지만 달콤하고 다정한 슬픔이었다.

‘아, 하느님, 그분이 지금 이곳에 계시다면 전처럼 굴지 않고 다르게 행동할 텐데. 어리석게 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그분을 껴안고 매달려, 그토록 자주 나를 바라보던 깊이 살피고 묻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게 할 거야. 그리고 전처럼 웃게 만들겠어. 그분의 눈…… 그 눈이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나타샤는 생각했다. ‘그분의 아버지와 누이가 내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그분만을 사랑해. 그 얼굴과 눈, 남자다우면서도 아이 같은 미소를 지닌 그분만을…… 아니, 그분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 지금은 생각하지 말고 완전히 잊어야 해. 이 기다림을 견딜 수가 없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쓰며 거울에서 돌아섰다. ‘그런데 소냐는 어떻게 니콜라이를 저토록 차분하고 조용하게 사랑하고, 그토록 오래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을까?’ 나타샤는 부채를 들고 옷을 다 차려입은 채 들어오는 소냐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 소냐는 나와 완전히 달라. 나는 그럴 수 없어!’

그 순간 나타샤는 마음이 너무나 부드럽고 다정해져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 당장 사랑하는 남자를 껴안고 마음을 채운 사랑의 말을 서로 주고받고 싶었다. 마차에서 아버지 곁에 앉아 얼어붙은 창문 위로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을 생각에 잠겨 바라보는 동안 더욱 슬퍼지고 사랑은 더 깊어졌다. 어디로 누구와 가는지도 잊었다. 마차 행렬에 들어선 로스토프가의 마차는 바퀴로 눈을 끼익거리며 극장 앞에 닿았다. 나타샤와 소냐는 치맛자락을 들고 재빨리 뛰어내렸다. 백작도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내렸다. 세 사람은 들어가는 남녀와 프로그램을 파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복도를 따라 첫 번째 줄의 박스석으로 갔다. 닫힌 문 너머로 벌써 음악이 들렸다.

“나타샤, 머리가!…….” 소냐가 속삭였다.

안내인이 공손하면서도 재빠르게 아가씨들 앞을 지나 박스석 문을 열었다. 음악 소리가 커졌고, 맨팔과 어깨를 드러낸 여자들이 앉은 밝은 박스석의 줄과 군복으로 눈부시고 떠들썩한 1층 관람석이 문 너머에서 반짝였다. 옆 박스석에 들어가던 여인이 나타샤를 여자의 질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막은 아직 오르지 않았고 서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옷을 매만진 나타샤는 소냐와 함께 들어가 앉아 맞은편의 찬란한 박스석 층들을 훑어보았다. 수백 개의 눈이 자신의 맨팔과 목을 바라본다는 오래전에 잊었던 감각이 갑자기 유쾌하면서도 불쾌하게 그녀를 사로잡았고, 그 감각과 이어진 수많은 기억과 욕망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유난히 아름다운 두 아가씨 나타샤와 소냐, 그리고 오랫동안 모스크바에서 보이지 않았던 로스토프 백작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나타샤가 안드레이 공작과 약혼했다는 사실과 로스토프가 사람들이 그 뒤로 줄곧 시골에서 살았다는 것을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혼처 가운데 하나를 얻을 약혼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두가 말하듯 나타샤는 시골에서 더 아름다워졌고, 그날 저녁에는 흥분 때문에 특히 아름다웠다. 주위 모든 것에 무심하면서도 생명력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모습이 보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검은 눈은 누구도 찾지 않은 채 군중을 바라보았다. 팔꿈치 위까지 드러난 섬세한 팔은 박스석의 벨벳 난간 위에 놓여 있었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음악에 맞춰 손을 폈다 오므리며 프로그램을 구겼다. “저기 알레니나가 있어.” 소냐가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 맞지?”

“아이고, 미하일 키릴로비치는 더 뚱뚱해졌구나!” 백작이 말했다.

“우리 안나 미하일로브나 좀 봐. 머리에 저게 무엇이야!”

“카라긴가 사람들이야. 줄리와…… 보리스도 함께 있군. 약혼한 것을 한눈에 알겠어…….”

“드루베츠코이가 청혼했나요?”

“물론이지. 오늘 들었어.” 로스토프가의 박스석으로 들어온 신신이 말했다.

나타샤는 아버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줄리는 행복한 얼굴로 어머니 곁에 앉아 있었고, 분을 발랐다는 것을 나타샤도 아는 굵고 붉은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보리스의 단정히 빗은 잘생긴 머리가 미소를 띤 채 줄리의 입에 귀를 기울이듯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는 눈썹 아래로 로스토프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약혼녀에게 미소 지어 무언가 말했다.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어. 나와 그분 이야기를!’ 나타샤는 생각했다. ‘틀림없이 줄리가 나를 질투하지 않도록 달래고 있겠지. 그럴 필요 없는데! 내가 그들 누구에게도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안다면!’

그들 뒤에는 초록색 머리 장식을 한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하느님의 뜻에 행복하게 순종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박스석에는 나타샤가 잘 알고 좋아하는 약혼한 남녀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가 그날 아침 방문에서 겪은 굴욕적인 일을 갑자기 모두 떠올렸다.

‘그분은 무슨 권리로 나를 자기 집안에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거야? 아, 그분이 돌아오기 전에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 나타샤는 자신에게 말하고 1층 관람석의 낯선 얼굴과 아는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맨 앞줄 한가운데, 오케스트라 난간에 등을 기댄 돌로호프가 페르시아 옷을 입고 서 있었다. 곱슬머리를 위로 빗어 거대한 머리숱을 드러냈다. 모든 사람의 눈길을 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기 방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관객들에게 온몸을 드러내고 서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화려한 젊은이들이 그를 에워쌌고, 그가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분명했다.

백작은 웃으며 얼굴을 붉힌 소냐를 팔꿈치로 찌르고 옛 숭배자를 가리켰다.

“알아보겠니?”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신신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에서 나타난 건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았나?”

“그랬지요.” 신신이 대답했다. “캅카스에 있다가 그곳에서 달아났답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어느 군주의 대신 노릇을 하다가 샤의 동생을 죽였다고 해요. 이제 모스크바 여자들이 모두 그에게 미쳐 있지요! ‘페르시아인 돌로호프’라는 말 한마디면 끝입니다. 어디서나 돌로호프 이야기뿐이에요. 그를 두고 맹세하고, 맛좋은 철갑상어 요리처럼 권하지요. 돌로호프와 아나톨 쿠라긴이 우리 여자들을 모조리 홀렸습니다.”

땋은 머리숱이 풍성하고 통통하고 흰 어깨와 목을 크게 드러낸 키 크고 아름다운 여인이 옆 박스석으로 들어왔다. 목에는 커다란 진주를 두 줄로 둘렀다. 무거운 비단옷을 바스락거리며 오랫동안 자리를 잡았다.

나타샤는 자기도 모르게 그 목과 어깨와 진주와 머리 모양을 바라보며 어깨와 진주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나타샤가 두 번째로 시선을 고정하자 여인이 돌아보다가 백작과 눈이 마주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피에르의 아내 베주호바 백작부인이었다. 사교계의 모든 사람을 아는 백작은 몸을 기울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모스크바에 오신 지 오래되셨습니까, 백작부인?” 그가 물었다. “찾아뵙고 손에 입 맞추겠습니다. 일 때문에 왔다가 우리 아가씨들을 데려왔어요. 세묘노바의 연기가 놀랍다고 하더군요. 피에르 백작은 우리를 잊는 법이 없었는데. 이곳에 있습니까?”

“네, 들를 생각이었어요.” 엘렌은 대답하고 나타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로스토프 백작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름답지 않니?” 그가 나타샤에게 속삭였다.

“놀라워요!” 나타샤가 대답했다. “쉽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여자예요.”

바로 그때 서곡의 마지막 화음이 울렸고 지휘자가 지휘봉으로 두드렸다. 늦게 온 사람들이 1층 관람석의 자리에 앉고 막이 올랐다.

막이 오르자 박스석과 1층 관람석의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다. 군복이나 야회복을 입은 젊고 늙은 남자들과, 맨살에 보석을 단 여자들은 열렬한 호기심으로 무대에 온 주의를 기울였다. 나타샤도 무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