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 제7장
《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제7장

《전쟁과 평화》 제8권 7장 삽화

이튿날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조언에 따라 로스토프 백작은 나타샤를 데리고 니콜라이 볼콘스키 공작을 방문했다. 백작은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두려웠다. 징집 당시 늙은 공작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만찬 초대에 답하러 갔다가 정해진 수의 병사를 다 내놓지 않았다고 성난 질책을 들어야 했던 때였다. 반면 가장 좋은 옷을 입은 나타샤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모두가 언제나 나를 좋아했어. 나는 그분들이 바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분의 아버지이니 아버지를 좋아하고, 그분의 누이이니 누이도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 나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그들은 보즈드비젠카의 음울하고 낡은 집에 도착해 현관방으로 들어갔다.

“자,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백작이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심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타샤는 아버지가 대기실로 들어서며 당황하여 공작과 공작 영애가 집에 있는지를 소심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문객이 왔다는 말이 전해지자 하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그들을 알리러 간 시종은 큰 홀에서 다른 시종에게 제지당했고 둘은 서로 속삭였다. 그러자 하녀 하나가 홀로 뛰어 들어와 공작 영애를 언급하며 서둘러 무언가를 말했다. 마침내 심술궂어 보이는 늙은 시종이 와서 공작은 손님을 받지 않지만 공작 영애가 올라오시기를 청한다고 로스토프 부녀에게 알렸다. 방문객들을 처음 맞으러 나온 사람은 부리엔 양이었다. 그녀는 부녀에게 특별히 공손하게 인사하고 공작 영애의 방으로 안내했다. 흥분하고 불안한 표정에 얼굴이 군데군데 붉어진 공작 영애는 무거운 걸음으로 방문객들을 맞으러 달려 나와 다정하고 편안해 보이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첫눈에 나타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나치게 유행을 따른 옷차림에 경박하리만큼 명랑하고 허영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올케를 보기도 전부터 그녀의 아름다움과 젊음과 행복을 자기도 모르게 시기하고, 오라버니의 사랑을 받는 것을 질투하여 편견을 품고 있었음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극복하기 힘든 이런 반감 외에도, 마리야 공작 영애는 로스토프 부녀가 왔다는 말을 듣고 늙은 공작이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으며 자신은 원한다면 만나도 되지만 그들을 자기 앞에는 들이지 말라고 소리친 탓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손님을 맞기로 결심했지만 로스토프가의 방문 때문에 몹시 동요한 공작이 언제 무슨 기행을 벌일지 몰라 두려웠다.

“자, 친애하는 공작 영애님, 우리 노래하는 새를 데려왔습니다.” 백작은 절하며 늙은 공작이 나타날까 두려운 듯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분이 서로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공작께서 아직 편찮으시다니 몹시 유감입니다.” 그는 평범한 말을 몇 마디 더 하고 일어났다. “제 나타샤를 15분만 공작 영애님 손에 맡겨도 괜찮다면 아주 가까운 도그스 광장의 안나 세묘노브나를 잠깐 만나고 돌아와 데려가겠습니다.”

백작은 미래의 시누이와 올케가 자유롭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려고 이 외교적 계책을 꾸몄다고 나중에 딸에게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은 두려워하는 늙은 공작과 마주칠 위험을 피하는 것이었다. 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타샤는 아버지의 초조함과 불안을 알아차리고 모욕감을 느꼈다. 아버지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고, 얼굴을 붉혔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나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듯 대담하고 도전적인 표정으로 공작 영애를 바라보았다. 공작 영애는 백작에게 기꺼이 나타샤를 맡겠지만 안나 세묘노브나의 집에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고, 백작은 떠났다.

나타샤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리야 공작 영애가 불안한 눈길을 보내는데도 부리엔 양은 방에 남아 모스크바의 오락과 극장에 관해 끈질기게 이야기했다. 나타샤는 대기실에서 알아차린 망설임과 아버지의 초조함, 자기를 맞아 주는 일을 큰 호의처럼 여긴다고 생각된 공작 영애의 부자연스러운 태도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쾌했다. 그녀는 마리야 공작 영애가 아주 못생겼고 가식적이며 메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나타샤는 갑자기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어 저절로 무심한 태도를 취했고, 그 때문에 마리야 공작 영애는 더욱 멀어졌다. 괴롭고 불편한 대화가 5분쯤 이어진 뒤 슬리퍼를 신은 발이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문이 열리고 실내복과 흰색 잠자는 모자를 쓴 늙은 공작이 들어왔다.

“아, 부인!” 그가 말을 시작했다. “부인, 백작 영애…… 로스토바 백작 영애가 맞다면……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주시오…… 몰랐소, 부인. 하느님께서 증인이시오. 댁이 우리 집을 찾아오는 영광을 베풀었다는 것을 몰랐소. 딸을 만나러 왔다가 이런 옷차림으로 들어왔을 뿐이오. 용서해 주시오…… 하느님께서 증인이시오, 몰랐소…….” 그는 ‘하느님’을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불쾌하게 강조하며 되풀이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눈을 내리깔고 아버지도 나타샤도 감히 바라보지 못했다.

일어나 절한 나타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부리엔 양만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주시오! 하느님께서 증인이시오, 몰랐소.” 늙은 공작은 중얼거리며 나타샤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나갔다.

부리엔 양이 이 출현 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공작의 몸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타샤와 마리야 공작 영애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은 채 오래 바라볼수록 두 사람의 반감은 커졌다.

백작이 돌아오자 나타샤는 무례할 만큼 기뻐하며 서둘러 떠나려 했다. 자신을 이토록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하고 30분 동안 함께 있으면서 안드레이 공작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딱딱하고 나이 든 공작 영애가 그 순간에는 미웠다. ‘그 프랑스 여자가 있는데 내가 먼저 그분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어.’ 나타샤는 생각했다. 그와 똑같은 생각이 마리야 공작 영애도 괴롭히고 있었다. 나타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부리엔 양이 방해가 되었고, 까닭도 모르게 결혼 이야기를 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백작이 이미 방을 나가려 할 때 마리야 공작 영애는 서둘러 나타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다려 주세요. 꼭 해야 할 말이…….”

나타샤는 까닭도 모른 채 비웃는 듯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나탈리.”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오라버니가 행복을 찾은 것을 내가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녀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느껴 말을 멈췄다. 나타샤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이유도 짐작했다.

“공작 영애님,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나타샤는 눈물이 목을 메게 했지만 겉으로는 위엄 있고 차갑게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한 거지?’ 방에서 나오자마자 그녀는 생각했다.

그날 사람들은 나타샤가 식사하러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녀는 자기 방에 앉아 코를 풀고 흐느끼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소냐가 곁에 서서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다.

“나타샤, 무엇 때문이야?” 소냐가 물었다. “그분들이 네게 무슨 상관이야? 모두 지나갈 거야, 나타샤.”

“하지만 얼마나 모욕적이었는지 네가 알기만 한다면…… 마치 내가…….”

“그 이야기는 하지 마, 나타샤. 네 잘못도 아닌데 왜 마음을 써? 내게 입 맞춰 줘.” 소냐가 말했다.

나타샤는 고개를 들고 친구의 입술에 입 맞춘 뒤 눈물에 젖은 얼굴을 그녀에게 눌렀다.

“말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겠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나타샤가 말했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아파. 아, 왜 그분은 오지 않으실까?…….”

나타샤는 눈이 빨개진 채 식사하러 들어왔다. 공작이 로스토프 부녀를 어떻게 맞았는지 알고 있던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는 나타샤가 속상해하는 것을 모르는 척하며 식탁에서 백작과 다른 손님들에게 단호하고 큰 목소리로 농담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