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 제9장
《전쟁과 평화》 · 제8권 1811~1812년

제9장

《전쟁과 평화》 제8권 9장 삽화

무대 바닥은 매끄러운 널빤지였고 양옆에는 나무를 그린 판지가, 뒤에는 널빤지 위에 펼친 천이 있었다. 무대 중앙에는 붉은 몸통 옷과 흰 치마를 입은 처녀들이 앉아 있었다. 흰 비단옷을 입은 아주 뚱뚱한 처녀 하나만 초록색 판지를 등받이에 붙인 낮은 걸상에 따로 앉았다. 모두가 무언가를 노래했다. 노래가 끝나자 흰옷을 입은 처녀가 프롬프터석 앞으로 갔다. 굵은 다리에 몸에 꼭 붙는 비단 바지를 입고 깃털 장식과 단검을 든 남자가 다가가 팔을 휘저으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먼저 몸에 꼭 붙는 바지를 입은 남자가 혼자 노래하고 이어 처녀가 노래했다.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동안 둘 다 멈추었고, 남자는 함께 노래를 시작할 박자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한 모습으로 흰옷 입은 처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둘이 함께 노래하자 극장의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질렀다. 연인을 연기하는 무대 위 남녀는 미소 지으며 두 팔을 벌리고 절하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지낸 뒤인 데다 지금처럼 진지한 기분에 잠긴 나타샤에게 이 모든 것은 기괴하고 놀랍게 보였다. 오페라의 줄거리를 따라갈 수도, 음악에 귀 기울일 수도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칠한 판지와 밝은 불빛 아래에서 몹시 이상하게 움직이고 말하고 노래하는 기묘한 옷차림의 남녀뿐이었다. 무엇을 나타내려는지는 알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허세에 차고 거짓되며 부자연스러워 처음에는 배우들 때문에 부끄럽다가 나중에는 우스워졌다. 관객들의 얼굴에서 자신이 느끼는 것과 같은 조소와 당혹감을 찾았지만 모두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여 나타샤에게는 꾸며 낸 듯한 기쁨을 드러냈다. ‘원래 이렇게 해야 하는 모양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1층 관람석의 포마드를 바른 머리들과 박스석의 반쯤 벗은 여자들을 번갈아 바라보았으며, 특히 옆 박스석에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조용하고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는 엘렌을 보았다. 극장 전체를 채운 밝은 빛과 군중이 데운 따뜻한 공기를 느끼며 나타샤는 조금씩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도취 상태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으며 눈앞에서 무엇이 벌어지는지 깨닫지 못했다. 바라보고 생각하는 동안 가장 기묘한 공상들이 뜻밖에 서로 이어지지도 않은 채 머릿속을 스쳐 갔다. 박스석 난간에 뛰어올라 여배우가 부르는 아리아를 노래하고 싶다가, 멀지 않은 곳에 앉은 노신사를 부채로 건드리고 싶었고, 엘렌 쪽으로 몸을 기울여 간지럼을 태우고도 싶었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 모든 것이 조용해진 순간, 로스토프가의 박스석에서 가까운 쪽 1층 관람석의 문이 삐걱 열리고 늦게 온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쿠라긴이야!” 신신이 속삭였다. 베주호바 백작부인이 새로 온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돌아섰다. 그 눈길을 따라간 나타샤는 유난히 잘생긴 부관이 자신만만하면서도 정중한 태도로 그들의 박스석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페테르부르크 무도회에서 오래전에 보고 눈여겨보았던 아나톨 쿠라긴이었다. 그는 견장 하나와 견식끈을 단 부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절제된 뽐냄을 담아 걸었는데, 그토록 잘생기지 않았거나 아름다운 얼굴에 선량한 자기만족과 명랑함이 어려 있지 않았다면 우스워 보였을 것이다. 공연 중인데도 그는 군도와 박차를 살짝 쟁그랑거리며 향기 나는 잘생긴 머리를 높이 들고 양탄자가 깔린 통로를 느긋하게 걸어 내려왔다. 나타샤를 바라본 뒤 누이에게 다가가 장갑을 잘 낀 손을 박스석 난간에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나타샤를 가리키는 몸짓을 하며 무언가 물었다.

“정말 매력적이군!(Mais charmante!)” 그가 말했다. 분명 나타샤를 가리킨 말이었다. 나타샤는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 알아들었다. 그는 1층 관람석 맨 앞줄의 자기 자리에 가서 돌로호프 곁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아첨하듯 대하는 돌로호프를 친근하고 거리낌 없이 팔꿈치로 툭 치고 명랑하게 눈짓하며 미소 지은 다음 오케스트라 칸막이에 발을 댔다.

“오라버니와 누이가 정말 닮았구나.” 백작이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신은 목소리를 낮춰 쿠라긴이 모스크바에서 벌인 어떤 연애 사건을 백작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타샤는 그가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야기를 엿들으려 했다.

제1막이 끝났다. 1층 관람석에서는 모두가 움직이며 나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리스가 로스토프가의 박스석으로 와서 아주 담담하게 축하를 받았다.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미소로 눈썹을 치켜올리며 약혼녀가 나타샤와 소냐를 결혼식에 초대한다고 전하고 떠났다. 명랑하고 요염한 미소를 띤 나타샤는 한때 사랑했던 바로 그 보리스와 이야기하며 다가오는 결혼을 축하했다. 도취 상태에 빠진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웠다.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엘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미소 지었고, 나타샤도 보리스에게 그와 비슷한 미소를 보냈다.

엘렌의 박스석 안은 가장 저명하고 지적인 남자들로 가득했고 1층 관람석에서도 그런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엘렌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 주려고 서로 다투는 듯했다.

막간 내내 쿠라긴은 돌로호프와 함께 오케스트라 칸막이 앞에 서서 로스토프가의 박스석을 바라보았다. 나타샤는 그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 사실이 즐거웠다. 심지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옆얼굴을 그에게 보여 주려고 몸을 돌렸다. 제2막이 시작되기 전 피에르가 1층 관람석에 나타났다. 로스토프가 사람들은 모스크바에 온 뒤 그를 만나지 못했다. 얼굴은 슬퍼 보였고 나타샤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뚱뚱해져 있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채 앞줄로 갔다. 아나톨이 그에게 다가가 로스토프가의 박스석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타샤를 본 피에르는 생기를 되찾아 서둘러 좌석 사이를 지나 그들의 박스석으로 왔다.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고 미소 지으며 오랫동안 나타샤와 이야기했다. 피에르와 대화하는 동안 나타샤는 베주호바 백작부인의 박스석에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고, 무언가가 쿠라긴의 목소리라고 알려 주었다. 돌아보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거의 미소 지으며 황홀하고 애무하는 눈길로 나타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토록 가까이에서 서로 바라보고, 그가 자신에게 감탄한다고 확신하면서도 아직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제2막에는 묘비를 나타내는 무대 장치가 있었고 천에는 달을 나타내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각광 위의 가리개가 올라가고 호른과 콘트라베이스에서 낮은 음이 울리자 검은 망토를 걸치고 손에 단검 같은 것을 든 많은 사람이 좌우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이 달려 들어와 처음에는 흰옷을, 지금은 연한 푸른색 옷을 입은 처녀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데려가지는 않고 오랫동안 함께 노래한 뒤 마침내 끌고 갔다. 무대 뒤에서 쇠붙이 같은 것을 세 번 두드리자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 노래를 불렀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함성이 이 모든 것을 거듭 끊었다.

이 막이 이어지는 동안 나타샤는 1층 관람석을 바라볼 때마다 의자 등받이에 한 팔을 걸친 채 자신을 응시하는 아나톨 쿠라긴을 보았다. 그가 자신에게 매혹되었다는 것을 보는 일이 즐거웠으며 거기에 잘못된 것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2막이 끝나자 베주호바 백작부인은 온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채 일어나 로스토프가의 박스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장갑 낀 손가락으로 늙은 백작을 부르고 자기 박스석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매력적인 따님들을 꼭 소개해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온 모스크바가 두 아가씨를 칭찬하는데 나만 모르고 있군요!”

나타샤는 일어나 눈부신 백작부인에게 절했다. 이 화려한 미인의 칭찬이 너무나 기뻐 즐거움으로 얼굴을 붉혔다.

“이제 나도 모스크바 사람이 되고 싶답니다.” 엘렌이 말했다. “그런 진주들을 시골에 묻어 두고도 부끄럽지 않으세요?”

베주호바 백작부인은 매혹적인 여자라는 평판을 충분히 받을 만했다. 생각하지도 않는 말, 특히 아첨을 아주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친애하는 백작님, 따님들은 내게 맡겨 주세요! 이번에는 나도 오래 머물지 않고 백작님도 마찬가지겠지만 아가씨들이 즐겁게 지내도록 해 볼게요. 페테르부르크에서 아가씨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만나고 싶었답니다.” 엘렌은 틀에 박혔지만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나타샤에게 말했다. “내 시동 드루베츠코이에게서 아가씨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가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겠지요? 그리고 내 남편의 친구인 볼콘스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에게서도 들었답니다.” 그녀는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관계를 안다는 뜻을 담아 특별히 힘주어 말했다. 더 가까이 알고 싶다며 남은 공연 동안 아가씨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 박스석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고 나타샤가 그쪽으로 옮겨 갔다.

제3막의 무대는 촛불이 많이 타오르고 벽에는 짧은 수염을 기른 기사들의 그림이 걸린 궁전을 나타냈다. 한가운데에는 왕과 왕비인 듯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왕은 오른팔을 휘저으며 긴장한 듯 무언가를 서툴게 노래하고 진홍색 왕좌에 앉았다. 처음에는 흰옷을, 다음에는 연한 푸른색 옷을 입었던 처녀는 이제 속옷만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왕좌 옆에 서 있었다. 왕비에게 슬프게 무언가를 노래했지만 왕은 엄하게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맨다리를 드러낸 남녀들이 양쪽에서 들어와 모두 함께 춤추기 시작했다. 이어 바이올린이 몹시 높고 명랑하게 연주했다. 굵은 맨다리와 가느다란 팔을 지닌 여자 하나가 무리에서 떨어져 무대 뒤로 가서 몸통 옷을 고쳐 입고 중앙으로 돌아와 뛰면서 한쪽 발로 다른 발을 빠르게 쳤다. 1층 관람석의 모두가 박수를 치며 “브라보!”라고 외쳤다. 이어 남자 하나가 무대 구석으로 갔다. 관현악단의 심벌즈와 호른이 더 크게 울리자 맨다리를 드러낸 이 남자는 아주 높이 뛰고 두 발을 빠르게 휘저었다. 이 기술로 해마다 6만 루블을 받는 뒤포르였다. 1층 관람석과 박스석과 갤러리의 모든 사람이 있는 힘껏 박수를 치고 외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멈춰 사방을 향해 미소 지으며 절했다. 이어 맨다리를 드러낸 다른 남녀들도 춤추었다. 왕이 다시 음악에 맞춰 소리치자 모두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이 일어났다. 관현악단에서 반음계와 감7화음이 울리자 모두가 달아났고 또 한 사람을 끌고 갔으며 막이 내렸다. 관객들 사이에서 다시 무시무시한 소음과 박수 소리가 났고 모두 황홀한 얼굴로 “뒤포르! 뒤포르! 뒤포르!”라고 외쳤다. 나타샤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뒤포르가 정말 멋지지 않아요?” 엘렌이 물었다.

“아, 네.” 나타샤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