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3권 1805년 / 제18장
《전쟁과 평화》 · 제3권 1805년

제18장

《전쟁과 평화》 제3권 18장 삽화

로스토프는 프라첸 마을 근처에서 쿠투조프와 황제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두 사람도 지휘관 한 명도 없고 온갖 부대의 흐트러진 무리만 있었다. 그는 지친 말을 재촉해 군중을 빨리 지나려 했지만 갈수록 더 무질서했다. 큰길에는 칼레슈와 온갖 마차, 부상당한 자와 다치지 않은 자를 아우른 모든 병과의 러시아군과 오스트리아군이 가득했다. 프라첸 고지의 프랑스 포대에서 날아오는 포탄의 음울한 압박 아래 이 거대한 무리는 웅웅거리며 혼란스럽게 밀치고 밀렸다.

“황제 폐하는 어디 계시오? 쿠투조프는 어디 있소?” 로스토프는 붙잡을 수 있는 사람마다 계속 물었지만 아무에게서도 대답을 얻지 못했다.

마침내 병사 하나의 옷깃을 잡아 대답을 강요했다.

“이봐요, 형씨! 그분들은 벌써 오래전에 모두 달아났소!” 병사는 무슨 까닭인지 웃으며 몸을 빼냈다.

분명 취한 병사를 놓아준 로스토프는 높은 사람의 전속병이나 마부인 듯한 사람의 말을 세우고 물었다. 그는 황제가 한 시간쯤 전에 바로 그 길로 마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떠났으며 위험하게 부상했다고 알렸다.

“그럴 리 없소!” 로스토프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었을 거요.”

“내 눈으로 보았소.” 그는 자신만만하게 비웃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렇게 여러 번 뵈었는데 내가 황제 폐하를 알아보지 못하겠소? 당신을 보듯 똑똑히 보았지…… 마차에 창백하게 앉아 계셨소. 검은 말 네 마리를 어찌나 몰아붙였는지! 세상에, 요란하게 지나가더군! 황실 말과 일리야 이바니치를 모를 때도 지났소. 일리야가 황제 폐하 말고 다른 분의 마차를 모는 일은 없을 거요!”

로스토프는 그 말을 놓고 떠나려 했는데, 지나가던 부상 장교가 말을 걸었다.

“누구를 찾소?” 그가 물었다. “총사령관? 포탄에 맞아 전사했소. 우리 연대 앞에서 가슴을 맞았지.”

“죽지 않고 다쳤소!” 다른 장교가 바로잡았다.

“누구요? 쿠투조프?” 로스토프가 물었다.

“쿠투조프가 아니라, 이름이 뭐더라…… 아무래도 좋소. 살아남은 사람도 많지 않으니. 저쪽 마을로 가시오. 지휘관들이 모두 그곳에 있소.” 장교는 호제라데크 마을을 가리키고 계속 걸어갔다.

로스토프는 이제 왜, 누구에게 가는지도 모른 채 걸음으로 갔다. 황제가 다쳤고 전투에서 졌다. 이제 의심할 수 없었다. 그는 가리켜 준, 탑과 교회가 보이는 방향으로 갔다. 서두를 이유가 무엇인가? 황제나 쿠투조프가 살아 있고 다치지 않았다 해도 이제 무엇을 말할 것인가?

“장교님, 이 길로 가십시오. 저쪽으로 가면 당장 죽습니다!” 병사가 외쳤다. “그곳에서는 죽을 겁니다!”

“아,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이 말했다. “어디로 가겠어? 저쪽이 더 가깝지.”

로스토프는 생각한 뒤 죽을 것이라고 한 방향으로 갔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황제 폐하께서 다치셨는데 나만 살려고 해야 하나?’ 그는 생각했다. 프라첸에서 달아나다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구역으로 갔다. 프랑스군은 아직 그곳을 점령하지 않았고 다치지 않았거나 가볍게 다친 러시아군은 진작 떠났다. 잘 갈아 놓은 밭의 거름 더미처럼 2에이커마다 열 명에서 열다섯 명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널려 있었다. 부상자들은 두세 명씩 기어 모여 괴롭게 비명을 지르고 신음했는데, 때로는 로스토프에게 엄살처럼 들렸다. 그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고 말을 속보로 몰았다. 자기 목숨이 아니라 필요한 용기를 잃을까 두려웠다. 이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 그 용기가 견디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죽은 자와 부상자만 남아 더 쏠 상대가 없는 들판에 사격을 멈춘 프랑스군은 전속장교 한 명이 말을 타고 지나는 것을 보고 대포를 겨누어 몇 발 쐈다. 끔찍하게 윙윙거리는 소리와 주위의 시체는 로스토프의 마음에서 하나의 공포와 자기 연민으로 합쳐졌다.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가 떠올랐다. ‘지금 대포가 나를 겨누는 이 들판에 있는 나를 보시면 어머니는 어떻게 느끼실까?’

호제라데크 마을에는 여전히 혼란스러워도 덜 무질서하게 전장에서 물러나는 러시아군이 있었다. 프랑스 대포는 그곳까지 닿지 않았고 소총 소리는 멀리 들렸다. 모두가 전투에서 졌음을 똑똑히 알고 말했다. 로스토프가 물은 사람 가운데 황제나 쿠투조프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이는 황제가 다쳤다는 소문이 맞다고 했고, 어떤 이는 아니라고 했다. 황제의 마차가 전장에서 정말 질주해 갔지만, 그 안에는 황제 수행원으로 전장에 나왔던 창백하고 겁에 질린 궁정대원수 톨스토이 백작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소문이 퍼졌다고 설명했다. 한 장교는 마을 왼쪽 뒤에서 본부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로스토프는 누군가를 찾으리라 기대해서가 아니라 양심을 달래려고 그쪽으로 갔다. 약 2마일을 가 마지막 러시아군 부대를 지나자, 도랑을 두른 채소밭 근처에서 두 기병이 도랑을 향해 선 것을 보았다. 모자에 흰 깃털을 단 한 사람은 낯이 익었고, 아름다운 밤색 말을 탄 다른 사람도 전에 본 듯했다. 그는 도랑으로 다가가 말에 박차를 대고 고삐를 풀어 가볍게 뛰어넘었다. 뒷발굽 아래 둑의 흙이 조금 무너졌을 뿐이었다. 말을 홱 돌려 다시 도랑을 넘고 흰 깃털을 단 기병에게 정중하게 말하며 그도 같은 일을 하라고 권하는 듯했다. 로스토프에게 낯익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붙들린 기병은 머리와 손으로 거절했다. 그 몸짓으로 로스토프는 슬프고도 숭배하는 군주를 즉시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 텅 빈 들판에 홀로 계신 저분일 리 없어!’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그 순간 알렉산드르가 고개를 돌렸고 로스토프는 기억에 깊이 새겨진 사랑하는 얼굴을 보았다. 황제는 창백하고 뺨과 눈이 움푹 패였지만, 얼굴의 매력과 온화함은 더욱 컸다. 황제가 다쳤다는 소문이 거짓임을 확인한 로스토프는 행복했다. 그분을 보고 있어 행복했다. 곧장 다가가도 되고, 아니 가서 돌고루코프의 전갈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젊은이가 밤마다 꿈꾼 생각을 말하려다가도 기다리던 순간에 그녀와 단둘이 남으면 떨고 정신을 잃어, 도움이나 지연과 도주의 기회를 찾듯, 세상 무엇보다 바라던 일을 이룬 로스토프는 황제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몰랐다. 불편하고 버릇없고 불가능한 이유가 수없이 떠올랐다.

‘뭐라고! 외롭고 낙담하신 기회를 이용해 기뻐하는 사람처럼 보이잖아! 슬픈 순간에 낯선 얼굴을 보면 불쾌하고 고통스러우실지도 몰라. 게다가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멎고 입이 마르는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상상 속에서 황제에게 하려고 지어 둔 수많은 연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연설들은 전혀 다른 상황, 대개 승리와 영광의 순간, 자신이 부상으로 죽어 가고 군주가 영웅적 행동에 감사할 때 하려던 것이었다. 죽으면서도 행동으로 증명한 사랑을 표현하려던 말이었다.

‘게다가 거의 네 시이고 전투도 졌는데 이제 우익에 대한 명령을 어떻게 여쭙겠어? 안 돼, 절대로 다가가서는 안 돼. 깊은 생각을 방해해서는 안 돼. 불친절한 눈길이나 나쁜 평가를 받을 위험을 감수하느니 천 번 죽는 편이 낫다.’ 로스토프는 결론 내리고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찬 채 떠났다. 황제는 여전히 망설이는 같은 자세로 있었고 그는 계속 뒤돌아보았다.

로스토프가 이렇게 생각하며 슬프게 떠나는 동안 우연히 폰 톨 대위가 같은 곳에 왔다. 황제를 보자 곧장 다가가 봉사를 자청하고 도랑을 걸어서 건너도록 도왔다. 쉬고 싶고 몸이 좋지 않았던 황제는 사과나무 아래 앉았고 폰 톨은 곁에 남았다. 로스토프는 멀리서 폰 톨이 황제에게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과,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분명한 황제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폰 톨의 손을 잡는 모습을 질투와 후회 속에서 보았다.

‘나도 그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데!’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황제를 가엾게 여기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완전히 절망한 채 계속 갔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약함이 슬픔의 원인임을 느껴 절망은 더욱 컸다.

그는 군주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했다. 헌신을 보여 줄 단 한 번의 기회를 이용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그는 생각하고 돌아서 황제를 보았던 곳으로 질주했지만 도랑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레와 마차 몇 대만 지나갔다. 마부 하나에게 쿠투조프 참모부가 마차들이 가는 마을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듣고 뒤따랐다. 앞에는 쿠투조프의 마부가 말 덮개를 씌운 말들을 끌고 걸었다. 뒤로 수레가 오고, 그 뒤에는 챙 달린 모자와 양가죽 외투를 입은 다리가 휜 늙은 집안 농노가 걸었다.

“티트! 이봐, 티트!” 마부가 말했다.

“왜?” 노인은 멍하니 대답했다.

“가서 보리나 좀 타작해, 티트!”

“아, 이 바보야!” 노인은 화가 나 침을 뱉었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 같은 농담이 되풀이되었다.

 

오후 다섯 시 전에 전투는 모든 지점에서 패배했다. 백 문이 넘는 대포가 이미 프랑스군 수중에 있었다.

프셰비셰프스키와 그 군단은 무기를 내려놓았다. 다른 종대들은 병력 절반을 잃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무리로 후퇴했다.

랑제론과 도흐투로프의 뒤섞인 잔여 병력은 아우게스트 마을 근처 연못의 둑과 제방 주위로 몰렸다.

다섯 시 뒤에도 격렬한 포격이 들리는 곳은 아우게스트 제방뿐이었다. 프라첸 고지 비탈에 늘어선 수많은 프랑스 포대만이 후퇴하는 아군을 향해 쏘았다.

후위에서는 도흐투로프 등이 대대 몇 개를 수습해 아군을 추격하는 프랑스 기병대와 총격을 주고받았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수년 동안 술 달린 모자를 쓴 늙은 방앗간 주인이 평화롭게 앉아 낚시하고, 소매를 걷은 손자가 물뿌리개 속에서 퍼덕이는 은빛 물고기를 다루던 좁은 아우게스트 제방, 수년 동안 털모자를 쓰고 푸른 상의를 입은 모라비아인들이 밀을 실은 쌍두마차를 평화롭게 몰고 지나갔다가 밀가루로 수레를 하얗게 물들이며 돌아오던 그 제방 위에서, 이제 죽음의 공포로 흉하게 변한 사람들이 수레와 대포 사이, 말발굽 아래와 수레바퀴 사이에 몰려 서로를 짓밟고 죽으며 죽어 가는 자를 넘어가고 서로를 죽였다. 겨우 몇 걸음 나아간 뒤 자신도 똑같이 죽기 위해서였다.

십 초마다 포탄이 주위 공기를 압축하며 날아오거나 포탄이 빽빽한 무리 한가운데 터져 몇 명을 죽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를 뿌렸다.

이제 장교인 돌로호프는 팔에 부상을 입고 걸어서, 말을 탄 연대장과 중대원 열 명쯤과 함께 그 연대 전체의 남은 병력을 이루었다. 군중에 밀려 제방 입구에 끼인 그들은 사방으로 옴짝달싹 못했다. 앞의 말이 포탄에 맞아 쓰러져 사람들이 끌어내느라 멈췄다. 포탄 하나가 뒤의 누군가를 죽였고 다른 하나는 앞에 떨어져 돌로호프에게 피를 튀겼다. 군중은 필사적으로 앞으로 밀고 조여 몇 걸음 움직였다가 다시 멈췄다.

‘100야드만 가면 반드시 살고 여기서 2분만 더 있으면 틀림없이 죽는다.’ 모두가 생각했다.

군중 한가운데 있던 돌로호프는 병사 둘을 쓰러뜨리며 제방 가장자리로 길을 뚫고, 방앗간 연못을 덮은 미끄러운 얼음 위로 달려갔다.

“이쪽으로 돌아!” 그는 밑에서 삐걱거리는 얼음 위로 뛰며 외쳤다. “이쪽으로 돌아!” 대포를 끄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얼음이 버텨!…….”

얼음은 그를 버텼지만 흔들리고 삐걱거렸다. 대포나 군중은커녕 곧 그의 몸무게조차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고 둑으로 몰렸지만 얼음 위로 발을 내딛기를 주저했다. 제방 입구에서 말을 탄 장군은 손을 들고 돌로호프에게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갑자기 포탄 하나가 모두가 몸을 숙일 만큼 군중 위 낮게 쉭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축축한 무언가에 철퍽 떨어졌고 장군은 피웅덩이 속으로 말에서 쓰러졌다. 아무도 보지 않았고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얼음 위로 가! 얼음으로! 어서! 돌아! 들리지 않아? 가!” 포탄이 장군을 맞힌 뒤 수많은 목소리가 자신도 무엇을 왜 외치는지 모른 채 갑자기 외쳤다.

제방으로 올라가던 후미의 대포 하나가 방향을 틀어 얼음 위로 갔다. 제방의 병사 무리가 얼어붙은 연못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 병사 하나의 발밑에서 얼음이 깨져 한쪽 다리가 물에 빠졌다. 몸을 바로잡으려다 허리까지 빠졌다. 가까운 병사들은 뒤로 물러나고 포차 마부는 말을 세웠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얼음 위로! 왜 멈춰? 가! 가!”라는 외침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공포의 비명이 났다. 대포 가까운 병사들은 팔을 흔들고 말들을 때려 방향을 바꾸고 움직이게 했다. 말들이 둑에서 움직였다. 보병은 버텼던 얼음이 거대한 덩어리로 무너졌고, 그 위의 마흔 명쯤 되는 병사들은 앞뒤로 달리다 서로를 물에 빠뜨렸다.

포탄은 여전히 규칙적으로 윙윙거리며 얼음과 물, 무엇보다 제방과 연못과 둑을 뒤덮은 군중 사이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