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 제20장
《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제20장

《전쟁과 평화》 제2권 20장 삽화

숲 가장자리에서 기습을 당한 보병 연대들은 숲을 뛰쳐나오다 서로 다른 중대가 뒤섞였고, 무질서한 군중이 되어 후퇴했다. 한 병사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전투에서 그토록 끔찍한 “퇴로가 끊겼다!”라는 무의미한 외침을 내질렀고, 그 말은 군중 전체에 공포를 퍼뜨렸다.

“포위됐다! 퇴로가 끊겼어! 우리는 끝장이야!” 달아나는 병사들이 외쳤다.

등 뒤에서 총성과 외침을 듣는 순간 장군은 자기 연대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복무하며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른 적 없는 모범적인 장교인 자신이 소홀하거나 무능했다는 이유로 사령부에서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그는 반항적인 기병대 대령도 장군으로서의 위신도 잊고 무엇보다 위험과 자기 보호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잊었다. 안장 뒤턱을 움켜잡고 말에 박차를 가해 주위로 쏟아지지만 다행히 자신을 빗나가는 총탄의 우박 속을 지나 연대로 질주했다. 그의 유일한 바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고, 자신이 실수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로잡거나 수습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22년 동안 복무하며 한 번도 질책받은 적 없는 모범적인 장교인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을 터였다.

그는 프랑스군 사이를 무사히 질주하여 작은 숲 뒤의 들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아군 병사들이 명령을 무시한 채 달아나 골짜기로 내려가고 있었다. 전투의 운명을 결정하는 도덕적 동요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 무질서한 병사 무리가 지휘관의 목소리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를 무시하고 계속 달아날 것인가? 전에는 병사들에게 그토록 무섭게 들렸던 필사적인 외침에도, 예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지고 자줏빛으로 달아오른 분노한 얼굴에도, 군도를 휘두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계속 달렸다. 서로 이야기하고 허공에 총을 쏘며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전투의 운명을 결정하는 도덕적 동요가 공황으로 절정에 이르는 것이 분명했다.

고함과 화약 연기 때문에 기침이 터진 장군은 절망하여 멈춰 섰다. 모든 것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공격하던 프랑스군이 갑자기, 아무런 뚜렷한 까닭도 없이 뒤로 달아나 숲 가장자리에서 사라졌고 러시아군 저격병들이 작은 숲에 나타났다. 숲속에서 유일하게 질서를 지킨 티모힌의 중대였다. 도랑에 매복해 있던 이들은 이제 프랑스군을 뜻밖에 공격했다. 칼 한 자루만 든 티모힌은 너무도 절박하게 외치며 술에 취한 듯 미친 결의로 적에게 달려들었고, 기습을 당한 프랑스군은 머스킷총을 내던지고 달아났다. 티모힌 곁에서 달리던 돌로호프는 가까운 거리에서 프랑스 병사 하나를 죽인 뒤 항복하는 프랑스 장교의 멱살을 가장 먼저 붙잡았다. 달아났던 아군이 돌아오고 대대들은 다시 대열을 갖추었으며 아군의 왼쪽 측면을 거의 두 동강 낼 뻔했던 프랑스군은 일단 격퇴되었다. 아군 예비부대가 합류할 수 있게 되면서 전투는 끝났다. 연대장과 예코노모프 소령은 다리 곁에 멈춰 서서 후퇴하는 중대들이 지나가게 하고 있었다. 그때 병사 한 명이 다가와 연대장의 등자를 붙잡고 거의 몸을 기대었다. 병사는 푸르스름한 고급 모직 외투를 입었으나 배낭도 모자도 없었고 머리에는 붕대를 감았으며 어깨에는 프랑스군 탄약통을 메고 있었다. 손에는 장교용 군도를 들고 있었다. 병사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푸른 눈은 뻔뻔스럽게 연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입술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연대장은 예코노모프 소령에게 지시하느라 바빴지만 그 병사를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각하, 여기 전리품 두 점이 있습니다.” 돌로호프는 프랑스군 군도와 탄약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교 한 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제가 중대를 멈춰 세웠습니다.” 돌로호프는 피로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짤막짤막하게 말했다. “중대 전체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각하!”

“알겠네, 알겠어.” 연대장은 대답하고 예코노모프 소령에게 몸을 돌렸다.

그러나 돌로호프는 떠나지 않았다. 머리에 두른 손수건을 풀어 벗기고 머리카락에 엉겨 붙은 피를 보여 주었다.

“총검에 입은 상처입니다. 저는 전방에 남았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각하!”

 

투신의 포대는 잊혔다. 전투가 거의 끝날 무렵에도 중앙에서 포성이 들리자 그제야 바그라티온 공작은 당직 참모장교를, 뒤이어 안드레이 공작도 보내 포대에 가능한 한 빨리 철수하라는 명령을 전하게 했다. 전투 중 누군가의 명령으로 투신 포대에 배속된 엄호 병력이 이동한 뒤에도 포대는 계속 사격했다. 프랑스군에게 붙잡히지 않은 유일한 까닭은 아무런 엄호도 받지 못하는 대포 네 문으로 계속 사격할 만큼 대담한 사람이 있으리라고 적이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포대가 활발히 움직이자 프랑스군은 이곳 중앙에 러시아군 주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번이나 이 지점을 공격하려 했지만 매번 작은 언덕에 고립된 대포 네 문에서 발사한 산탄에 밀려났다.

바그라티온 공작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신은 쇤그라베른에 불을 지르는 데 성공했다.

“저자들이 허둥대는 것 좀 봐! 불탄다! 연기를 봐! 훌륭해! 대단해! 연기 좀 봐, 연기!” 포병들은 얼굴이 밝아져 외쳤다.

모든 대포가 명령도 기다리지 않고 불길을 향해 발사되고 있었다. 병사들은 서로를 부추기듯 포탄이 발사될 때마다 외쳤다. “훌륭해! 잘했어! 저것 봐…… 대단해!” 산들바람에 부채질을 받은 불은 빠르게 번졌다. 마을 너머까지 전진했던 프랑스군 종대들은 후퇴했다. 하지만 이 실패에 복수라도 하듯 적은 마을 오른쪽에 대포 열 문을 배치하고 투신의 포대를 향해 사격하기 시작했다.

불이 난 것을 보고 프랑스군을 성공적으로 포격한 행운에 아이처럼 기뻐하던 아군 포병들은 포탄 두 발과 뒤이어 네 발이 더 대포들 사이에 떨어진 뒤에야 적의 포대를 알아차렸다. 포탄 하나는 말 두 필을 쓰러뜨리고 다른 하나는 탄약 수레 마부의 다리를 뜯어냈다. 그러나 한 번 달아오른 사기는 꺾이지 않고 성격만 바뀌었다. 말들은 예비 포차의 말로 교체되었고 부상자들은 옮겨졌으며 대포 네 문은 열 문의 적 포대를 향해 돌아갔다. 투신의 동료 장교는 전투가 시작될 때 전사했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포병 40명 가운데 17명이 전투 불능이 되었지만 포병들은 여전히 전과 다름없이 명랑하고 활기찼다. 그들은 프랑스군이 아래쪽에 나타나는 것을 두 번 알아차렸고 그때마다 산탄을 발사했다.

작은 투신은 힘없이 어색하게 움직이면서도 당번병에게 계속 “저 친구를 위해 내 파이프를 다시 채워!”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파이프에서 불꽃을 흩뿌리며 앞으로 달려가 작은 손으로 눈 위를 가리고 프랑스군을 바라보았다.

“저자들에게 한 방 먹여, 친구들!” 그는 계속 말하면서 대포의 바퀴를 붙잡고 몸소 조절 나사를 돌렸다.

투신은 연기 속에서 끊임없는 포성에 귀가 먹먹해졌고 포탄이 발사될 때마다 늘 몸을 움찔하면서도 파이프를 입에서 떼지 않은 채 대포 사이를 뛰어다녔다. 조준하거나 장약을 세거나, 죽거나 부상당한 말을 교체하고 새 말을 마구에 매라고 명령하며 약하고 높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얼굴은 갈수록 생기가 넘쳤다. 병사가 죽거나 부상당했을 때만 얼굴을 찌푸리고 그 광경에서 돌아섰으며, 늘 그렇듯 부상자나 전사자를 들어 옮기기를 주저하는 병사들에게 화를 내며 외쳤다. 대부분 잘생긴 장정인 병사들은 포병중대에서 언제나 그렇듯 자기 장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어깨는 두 배쯤 넓었다. 그들은 모두 곤란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처럼 지휘관을 바라보았고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언제나 그들의 얼굴에도 그대로 비쳤다.

끔찍한 소란과 집중하여 움직여야 할 필요 때문에 투신은 조금도 불쾌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며 자기가 죽거나 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들떴다. 처음 적을 보고 첫 포탄을 발사한 때가 아주 오래전, 거의 하루 전인 듯했고 자신이 서 있는 들판 모퉁이는 잘 알고 익숙한 곳처럼 느껴졌다. 그는 모든 것을 생각하고 헤아리며 자기 처지의 가장 훌륭한 장교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했지만, 한편으로는 열에 들뜬 정신착란이나 술 취한 상태와 비슷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주위 아군 대포의 귀먹먹한 소리, 적 포탄의 휘파람과 땅을 때리는 소리, 대포 주위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병사들의 붉고 땀에 젖은 얼굴, 사람과 말의 피, 적 쪽에서 솟는 작은 연기구름 포탄 하나가 뒤따라 날아와 땅이나 사람이나 대포나 말을 때리는 연기구름을 보면서 투신의 머릿속에는 자신만의 환상적인 세계가 자리 잡았고 이 순간 그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그의 상상 속에서 적의 대포는 대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흡연자가 이따금 연기를 내뿜는 파이프였다.

“저기…… 또 연기를 뿜는군.” 작은 연기구름이 언덕에서 솟아 바람에 길게 늘어져 왼쪽으로 날아가자 투신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포탄을 조심해…… 우리가 되던져 줄 테니.”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나리?” 가까이 서 있다가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포병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포탄일 뿐이야…….” 그가 대답했다.

“자, 우리 마트베브나, 시작해 보자!” 투신은 혼잣말로 말했다. ‘마트베브나’는 포대의 가장 끝쪽에 있는 크고 구식인 대포에 그의 상상력이 붙인 이름이었다. 프랑스군이 대포 주위에 몰려 있는 모습은 그에게 개미처럼 보였다. 그 세계에서 제2포의 1번 포수인 잘생긴 술꾼은 ‘아저씨’였다. 투신은 누구보다 자주 그를 바라보았으며 동작 하나하나를 보고 기뻐했다. 언덕 아래에서 줄었다가 커지는 머스킷총 소리는 누군가가 숨 쉬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소리가 밀려왔다 빠지는 흐름에 귀를 기울였다.

마트베이의 딸.

“아! 또 숨을 쉬는군, 숨을 쉬어!”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엄청나게 키가 크고 힘센 사람이 되어 두 손으로 프랑스군에게 포탄을 던지고 있다고 상상했다.

“자, 마트베브나, 착한 할멈아, 나를 실망시키지 마!” 그가 대포에서 몸을 옮기며 말할 때 머리 위에서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불렀다. “투신 대위! 대위!”

투신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그룬트의 천막에서 자신을 쫓아냈던 참모장교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미쳤소? 두 번이나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당신은…….”

‘왜 나만 괴롭히는 거지?’ 투신은 겁먹은 채 상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는…… 모르…….” 그는 손가락 두 개를 모자에 대며 중얼거렸다. “저는…….”

그러나 참모장교는 하려던 말을 끝내지 못했다. 가까이 날아온 포탄 하나 때문에 그는 고개를 움츠리고 말 위로 몸을 숙였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또 다른 포탄이 입을 막았다. 그는 말을 돌려 질주해 떠났다.

“후퇴하라! 모두 후퇴하라!” 그가 멀리서 외쳤다.

병사들은 웃었다. 잠시 뒤 부관 한 명이 똑같은 명령을 가지고 도착했다.

안드레이 공작이었다. 그가 투신의 대포들이 배치된 곳으로 말을 타고 다가오며 맨 먼저 본 것은 마구가 풀린 채 다리가 부러져 마구를 찬 말들 곁에 누워 애처롭게 울부짖는 말이었다. 다리에서는 샘물처럼 피가 솟구쳤다. 포차들 사이에는 시체 몇 구가 놓여 있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포탄이 하나씩 머리 위를 지나갔고 신경질적인 전율이 척추를 훑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두려워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다시 기운이 솟았다. ‘나는 두려워해서는 안 돼.’ 그는 생각하고 대포들 사이에서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명령을 전달했지만 포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포들을 진지에서 빼내 철수시키기로 했다. 투신과 함께 시체들을 넘어 다니고 프랑스군의 끔찍한 포화를 맞으며 대포들을 옮기는 일을 감독했다.

“조금 전에 참모장교 한 명이 왔다가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포병 한 명이 안드레이 공작에게 말했다. “나리와는 다르더군요!”

안드레이 공작은 투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바빴다. 온전하게 남은 두 문만 포차에 연결하여 언덕 아래로 옮기기 시작했을 때 네 문 가운데 부서진 대포 한 문과 유니콘포 한 문은 남겨 두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투신에게 말을 몰아 다가갔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그는 투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 가게, 친구.” 투신이 말했다. “고마운 사람! 잘 가게, 친구!” 알 수 없는 까닭으로 갑자기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