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 제14장
《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제14장

《전쟁과 평화》 제2권 14장 삽화

11월 1일, 쿠투조프는 첩자를 통해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가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첩자의 보고에 따르면 프랑스군은 빈의 다리를 건넌 뒤 러시아에서 오는 병력과 쿠투조프를 연결하는 통신선을 향해 거대한 병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쿠투조프가 크렘스에 남기로 한다면 나폴레옹의 15만 대군이 그를 완전히 차단하고 지친 4만 병력을 포위하여, 쿠투조프는 울름의 마크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터였다. 러시아에서 오는 병력과 연결되는 길을 포기한다면 도로도 없이 보헤미아 산지의 낯선 곳으로 행군하면서 우세한 적군을 막아야 하고 북스회덴과 합류할 희망도 모두 버려야 했다. 크렘스에서 올뮈츠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후퇴하여 러시아에서 오는 병력과 합류하기로 한다면 빈의 다리를 건넌 프랑스군이 그 길을 먼저 차지할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짐과 수송대에 발이 묶인 채 행군 중 자신보다 세 배나 강한 적군과 전투를 치러야 했고 양쪽에서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쿠투조프는 마지막 방안을 택했다.

첩자의 보고에 따르면 빈의 다리를 건넌 프랑스군은 쿠투조프의 퇴로에 있는 66마일 떨어진 즈나임을 향해 강행군하고 있었다. 프랑스군보다 먼저 즈나임에 도착한다면 군대를 구할 희망이 컸다. 프랑스군이 즈나임을 먼저 차지하게 둔다는 것은 전군을 울름에서와 같은 치욕이나 완전한 파멸에 노출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전군을 이끌고 프랑스군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빈에서 즈나임으로 가는 프랑스군의 길이 크렘스에서 즈나임으로 가는 러시아군의 길보다 짧고 좋았다.

소식을 들은 그날 밤, 쿠투조프는 4천 명으로 이루어진 바그라티온의 선봉대를 크렘스-즈나임 도로에서 오른쪽의 언덕들을 넘어 빈-즈나임 도로로 보냈다. 바그라티온은 쉬지 않고 행군하여 즈나임을 등지고 빈을 마주한 채 멈춰야 했다. 프랑스군보다 먼저 도착하는 데 성공하면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들을 지연시켜야 했다. 쿠투조프 자신은 모든 수송대를 거느리고 즈나임으로 향했다.

바그라티온은 폭풍우 치는 그날 밤 도로도 없는 언덕을 넘어 30마일을 행군했다. 배고프고 신발이 형편없는 병사들을 이끌었으며 도중에 낙오자로 병력의 3분의 1을 잃었다. 그래도 빈에서 홀라브룬으로 접근하는 프랑스군보다 몇 시간 먼저 홀라브룬의 빈-즈나임 도로에 도착했다. 쿠투조프가 수송대와 함께 즈나임에 도착하려면 아직 며칠을 더 행군해야 했다. 그러므로 바그라티온은 배고프고 지친 4천 명의 병력으로 홀라브룬에서 맞닥뜨릴 적의 전군을 며칠 동안 붙잡아 두어야 했다. 이는 분명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변덕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빈의 다리를 싸우지 않고 프랑스군 손에 넘겨준 계략의 성공은 뮈라가 쿠투조프도 같은 방식으로 속이게 했다. 뮈라는 즈나임 도로에서 바그라티온의 약한 부대를 만나자 쿠투조프의 전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군대를 완전히 분쇄하기 위해 빈에서 오는 나머지 병력의 도착을 기다렸고, 이를 목적으로 양군이 이동하지 않고 현재 위치에 머문다는 조건으로 3일간의 휴전을 제안했다. 뮈라는 강화 협상이 이미 진행되고 있어 불필요한 유혈을 피하고자 휴전을 제안한다고 선언했다. 전초진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장군 노스티츠 백작은 뮈라가 보낸 사절의 말을 믿고 후퇴하여 바그라티온 사단을 노출시켰다. 다른 사절은 러시아군 전선으로 말을 달려가 강화 협상이 진행 중임을 알리고 러시아군에도 3일간의 휴전을 제안했다. 바그라티온은 휴전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권한이 없다고 대답하고, 받은 제안을 보고하도록 부관을 쿠투조프에게 보냈다.

휴전은 시간을 벌어 바그라티온의 지친 병력을 조금 쉬게 하고, 프랑스군에게 움직임을 감춘 수송대와 무거운 치중대를 단 한 구간이라도 즈나임에 더 가까이 진군시킬 쿠투조프의 유일한 기회였다. 휴전 제안은 군대를 구할 유일하면서도 전혀 뜻밖인 기회였다. 소식을 받은 쿠투조프는 자신을 수행하던 빈칭게로데 부관장군을 즉시 적진으로 보냈다. 빈칭게로데는 휴전에 동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항복 조건까지 제시해야 했다. 그사이 쿠투조프는 부관들을 뒤로 보내 크렘스-즈나임 도로를 따라가는 전군의 치중대가 최대한 서둘러 이동하게 했다. 수송대와 전군의 움직임을 홀로 엄호하는 바그라티온의 지치고 굶주린 부대는 자기보다 여덟 배나 강한 적군 앞에 그대로 머물러야 했다.

아무 구속력도 없는 항복 제안으로 수송대 일부가 지나갈 시간을 벌 수 있으며 뮈라의 착오도 곧 드러나리라는 쿠투조프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홀라브룬에서 16마일 떨어진 쇤브룬에 있던 보나파르트는 휴전과 항복 제안을 담은 뮈라의 급보를 받자마자 계략을 알아차리고 다음 편지를 뮈라에게 썼다.

1805년 브뤼메르 25일, 쇤브룬

오전 8시

뮈라 공작에게

그대에 대한 나의 불쾌감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그대는 나의 선봉대만 지휘하며 내 명령 없이 휴전을 정할 권리가 없다. 그대는 내가 원정에서 얻은 성과를 잃게 하고 있다. 즉시 휴전을 파기하고 적을 향해 진군하라. 항복문서에 서명한 장군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으며 러시아 황제 이외에는 누구도 그런 권한을 갖지 못한다고 적에게 알려라.

다만 러시아 황제가 그 협정을 비준한다면 나도 비준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계략일 뿐이다. 진군하여 러시아군을 파괴하라…… 그대는 그들의 치중대와 포병을 빼앗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러시아 황제의 부관은 사기꾼이다. 권한이 없는 장교는 아무것도 아니며 이 자에게는 권한이 없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빈의 다리를 건널 때 속임수에 넘어갔고 그대는 황제의 부관에게 속고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부관은 이 위협적인 편지를 가지고 뮈라에게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보나파르트 자신도 장군들을 믿지 못하고 눈앞의 희생물을 놓칠까 두려워 근위대 전체를 거느리고 전장으로 이동했다. 바그라티온의 4천 병력은 즐겁게 모닥불을 피우고 몸과 옷을 말려 따뜻하게 하고, 사흘 만에 처음으로 죽을 끓였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을 기다리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