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 제13장
《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제13장

《전쟁과 평화》 제2권 13장 삽화

그날 밤 볼콘스키는 전쟁대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군대에 합류하려고 출발했다. 어디에서 군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 크렘스로 가는 길에 프랑스군에게 붙잡힐까 두려웠다.

브륀에서는 궁정에 딸린 사람들이 모두 짐을 꾸리고 있었고 무거운 짐은 이미 올뮈츠로 보내지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헤첼스도르프 근처에서 러시아군이 몹시 서두르면서 극도의 혼란 속에 이동하는 대로에 들어섰다. 길은 수레들로 가로막혀 마차로 지나갈 수가 없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카자크 지휘관에게서 말 한 필과 카자크 병사 한 명을 얻었다. 배고프고 지친 그는 치중대 수레들을 앞질러 가며 총사령관과 자기 짐을 찾아 말을 달렸다. 가는 동안 군대의 상황에 관한 매우 불길한 소문들이 들려왔고 무질서하게 달아나는 병사들의 모습은 그 소문을 뒷받침했다.

“*Cette armée russe que l’or de l’Angleterre a transportée des extrémités de l’univers, nous allons lui faire éprouver le même sort—le sort de l’armée d’Ulm.*” 그는 원정이 시작될 무렵 보나파르트가 군대에 한 연설의 이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은 자기 영웅의 천재성에 대한 경탄과 상처 입은 자존심, 영광에 대한 희망을 그의 마음속에 일깨웠다. ‘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그는 생각했다. ‘좋아,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죽어 주지.’

“영국의 금으로 세상 끝에서 실어 온 저 러시아군도 우리는 똑같은 운명, 곧 울름 군대의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그는 끝없이 뒤엉킨 부대와 수레와 대포와 포병대, 다시 치중대 수레와 온갖 차량이 서로 앞지르며 진창길을 세 줄, 때로는 네 줄로 가로막은 모습을 경멸스럽게 바라보았다. 뒤에서도 앞에서도 귀에 들리는 데까지 사방에서 바퀴의 덜컹거림과 수레와 포차의 삐걱거림, 말발굽 소리, 채찍 소리와 외침, 말을 재촉하는 소리, 병사와 당번병과 장교의 욕설이 들렸다. 길 양옆에는 가죽을 벗긴 것도 있고 그대로인 것도 있는 쓰러진 말들이 계속 보였다. 부서진 수레 곁에는 병사 한 명씩 무언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또 소속 중대에서 뒤처진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이웃 마을로 향하거나 양과 닭, 건초와 불룩한 자루를 끌고 마을에서 돌아왔다. 길이 오르거나 내리막이 될 때마다 군중은 더욱 빽빽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침은 더 시끄러워졌다. 무릎까지 진흙에 빠진 병사들은 직접 대포와 수레를 밀었다. 채찍이 울리고 말발굽이 미끄러지고 견인줄이 끊어졌으며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행군을 지휘하는 장교들은 수레 사이를 앞뒤로 말을 타고 오갔다. 소란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희미하게밖에 들리지 않았고, 이 혼란을 막을 가능성에 절망한 것이 얼굴에서 보였다.

‘여기 우리의 친애하는 정교회 러시아군이 있군.’ 볼콘스키는 빌리빈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총사령관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는 치중대로 말을 몰았다. 바로 맞은편에서 기묘한 말 한 필짜리 차량이 다가왔다. 병사들이 손에 잡히는 재료를 모아 만든 것이 분명했으며 수레와 이륜마차와 사륜마차를 섞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병사 한 명이 몰고 있었고, 가죽 덮개 아래 앞가림막 뒤에는 숄로 온몸을 감싼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다가가 병사에게 질문하려는 참에 차량에 탄 여자의 절박한 비명이 주의를 끌었다. 수송 담당 장교가 남들을 앞지르려 한다며 여자의 마차를 몰던 병사를 채찍질하고 있었고 채찍은 차량의 앞가림막에도 떨어졌다. 여자는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안드레이 공작을 본 그녀는 앞가림막 너머로 몸을 내밀고 모직 숄 아래에서 야윈 두 팔을 흔들며 외쳤다.

“부관님! 부관님!…… 제발…… 저를 지켜 주세요!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저는 제7엽병연대 군의관의 아내입니다…… 저희를 지나가게 해 주지 않아요. 뒤에 남겨져 우리 사람들을 놓쳤어요…….”

“납작한 전병처럼 만들어 주마!” 화가 난 장교가 병사에게 외쳤다. “그 갈보를 데리고 돌아가!”

“부관님! 도와주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군의관의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이 수레를 지나가게 해 주시오. 여자가 보이지 않소?” 안드레이 공작은 장교에게 말을 몰아가며 말했다.

장교는 그를 흘끗 보고 대답하지 않은 채 다시 병사를 돌아보았다. “앞으로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마!…… 돌아가!”

“지나가게 하라고 말했소!” 안드레이 공작은 입술을 꾹 다물고 되풀이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야?” 장교는 술에 취해 화가 난 채 그에게 덤벼들며 외쳤다. “당신은 누구냐고? 여기 지휘관이 당신인가? 응? 여기 지휘관은 나야, 당신이 아니라! 돌아가. 안 그러면 납작한 전병처럼 만들어 주겠다.” 그는 되풀이했다. 그 표현이 마음에 든 것이 분명했다.

“꼬마 부관이 제대로 한 방 먹었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드레이 공작은 장교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성을 잃은 술주정뱅이의 분노 상태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기묘한 수레를 탄 군의관의 아내를 옹호하면 세상에서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조롱에 자신이 노출될 수 있음도 알았다. 하지만 본능이 그를 밀어붙였다. 장교가 말을 끝내기 전에 안드레이 공작은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그에게 말을 몰아가 승마용 채찍을 들어 올렸다.

“제발…… 지나……가게……하시오!”

장교는 팔을 휘두르고는 황급히 말을 타고 달아났다.

“이렇게 무질서해진 것은 모두 저 참모부 녀석들 탓이야.” 그가 중얼거렸다. “마음대로 하시오.”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을 구원자라고 부르는 군의관의 아내에게서 눈도 들지 않고 황급히 말을 몰아 떠났다. 굴욕적인 광경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혐오스럽게 떠올리며 총사령관이 있다고 들은 마을을 향해 질주했다.

마을에 도착한 그는 말에서 내려 가장 가까운 집으로 갔다. 잠시라도 쉬고 무언가를 먹은 뒤 머릿속에서 뒤엉켜 따갑고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생각들을 정리할 작정이었다. ‘이것은 악당들의 오합지졸이지 군대가 아니야.’ 첫 번째 집의 창문에 다가가며 이렇게 생각하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몸을 돌렸다. 작은 창문 밖으로 네스비츠키의 잘생긴 얼굴이 내다보였다. 네스비츠키는 무언가를 씹으며 촉촉한 입술을 움직이고 팔을 휘둘러 들어오라고 불렀다.

“볼콘스키! 볼콘스키!…… 들리지 않나? 응? 빨리 들어와…….” 그가 외쳤다.

안드레이 공작이 집에 들어가자 네스비츠키와 다른 부관 한 명이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급히 그를 돌아보며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물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낯익은 얼굴들에서 동요와 불안을 읽었다. 평소 웃음 띤 네스비츠키의 얼굴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총사령관께서는 어디 계시오?” 볼콘스키가 물었다.

“여기, 저 집에 계시오.” 부관이 대답했다.

“그럼 강화와 항복 이야기가 사실인가?” 네스비츠키가 물었다.

“내가 오히려 자네들에게 물으려 했소. 이곳에 간신히 도착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오.”

“우리는 또 어떤 줄 아나, 친구! 끔찍하네! 내가 마크를 비웃은 것은 잘못이었어. 우리는 더 심하게 당하고 있네.” 네스비츠키가 말했다. “하지만 앉아서 뭘 좀 먹게.”

“공작, 이제 짐도 그 밖의 물건도 찾지 못할 겁니다. 자네의 시종 표트르가 어디 있는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지.” 다른 부관이 말했다.

“사령부는 어디 있소?”

“즈나임에서 밤을 지낼 예정이오.”

“그래, 나는 필요한 모든 물건을 말 두 필에 실을 꾸러미로 만들어 놓았네.” 네스비츠키가 말했다. “아주 훌륭하게 꾸려 주었지. 보헤미아의 산을 건너기에도 충분할 만큼. 전망이 좋지 않아, 친구! 그런데 자네는 왜 그러나? 전기라도 통한 듯 몸을 떠는데 틀림없이 아픈 모양이군.” 그는 안드레이 공작이 움찔하는 것을 알아보고 덧붙였다.

“아무것도 아니오.” 안드레이 공작이 대답했다.

그는 조금 전 군의관의 아내와 수송 담당 장교를 만난 일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총사령관께서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오?” 그가 물었다.

“도무지 모르겠네.” 네스비츠키가 말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고 지긋지긋하고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것뿐이오!” 안드레이 공작은 말하고 총사령관이 있는 집으로 갔다.

안드레이 공작은 쿠투조프의 마차와 지친 수행원들의 안장 얹은 말들, 서로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카자크 병사들을 지나 복도로 들어갔다. 들은 바에 따르면 쿠투조프는 바그라티온 공작 및 바이로터와 함께 집 안에 있었다. 바이로터는 슈미트의 뒤를 이은 오스트리아 장군이었다. 복도에는 키 작은 코즐로프스키가 서기 앞에 발뒤꿈치를 대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소매를 걷어 올린 서기는 뒤집은 통을 책상 삼아 급히 글을 쓰고 있었다. 코즐로프스키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그 역시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안드레이 공작을 흘끗 보고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았다.

“두 번째 전열…… 썼나?” 그는 서기에게 계속 받아쓰게 했다. “키예프 척탄병 연대, 포돌리야…….”

“그렇게 빨리 쓸 수 없습니다, 나리.” 서기는 화를 내며 무례한 눈으로 코즐로프스키를 흘끗 보고 말했다.

문 너머에서는 쿠투조프의 흥분하고 불만스러운 목소리와 낯선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그 목소리들, 코즐로프스키가 자신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방식, 지친 서기의 무례한 태도, 서기와 코즐로프스키가 총사령관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통 곁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다는 사실, 창가에서 말을 붙잡은 카자크 병사들의 시끄러운 웃음을 통해 안드레이 공작은 중요하고 파국적인 일이 막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다급한 질문을 던지며 코즐로프스키에게 몸을 돌렸다.

“곧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작님.” 코즐로프스키가 말했다. “바그라티온에게 줄 작전명령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항복은 어떻게 됐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전투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문으로 갔다. 문을 열려는 순간 목소리가 멎고 문이 열리더니 매부리코에 부은 얼굴을 한 쿠투조프가 문간에 나타났다. 안드레이 공작은 쿠투조프 바로 앞에 서 있었지만 총사령관의 성한 한쪽 눈에 나타난 표정은 생각과 근심에 너무 깊이 잠겨 그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쿠투조프는 부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 끝냈나?” 그는 코즐로프스키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각하.”

바그라티온이 총사령관의 뒤를 따라 나왔다. 그는 중간 키에 야위고 단호하며 무표정한 동양적인 얼굴을 한 중년 남자였다.

“복귀를 보고드립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제법 큰 목소리로 되풀이하며 쿠투조프에게 봉투를 건넸다.

“아, 빈에서 왔군? 잘됐어. 나중에, 나중에!”

쿠투조프는 바그라티온과 함께 현관으로 나갔다.

“그럼 잘 가시오, 공작.” 그는 바그라티온에게 말했다. “축복하오. 이 위대한 임무에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를!”

그의 얼굴이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왼손으로 바그라티온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반지를 낀 오른손으로 습관적인 것이 분명한 몸짓을 하며 그의 앞에 성호를 그어 주었다. 그리고 부은 볼을 내밀었으나 바그라티온은 볼 대신 그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를!” 쿠투조프는 되풀이하고 자기 마차로 향했다. “나와 함께 타게.” 그는 볼콘스키에게 말했다.

“각하, 저는 이곳에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바그라티온 공작의 부대에 남게 해 주십시오.”

“타게.” 쿠투조프가 말하고도 볼콘스키가 머뭇거리는 것을 알아차리자 덧붙였다. “내게도 유능한 장교들이 필요해. 나도 필요하다고!”

두 사람은 마차에 올라 몇 분 동안 말없이 달렸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많고도 많은 일이 남아 있어.” 쿠투조프는 노인의 통찰력으로 볼콘스키의 마음속을 지나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그의 부대에서 10분의 1이라도 돌아온다면 하느님께 감사할 걸세.” 그는 혼잣말하듯 덧붙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불과 한 자쯤 떨어진 쿠투조프의 얼굴을 흘끗 보았다. 이스마일에서 총알이 두개골을 관통하며 남긴 관자놀이 근처 흉터의 가지런히 씻긴 이음매와 텅 빈 눈구멍이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분에게는 저 사람들의 죽음을 그토록 침착하게 말할 권리가 있다.’ 볼콘스키는 생각했다.

“그래서 저를 그 부대로 보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했다.

쿠투조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잊은 듯 생각에 잠겨 앉아 있었다. 5분 뒤 부드러운 마차의 용수철 위에서 가볍게 흔들리던 그는 안드레이 공작에게 몸을 돌렸다. 얼굴에는 동요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섬세한 빈정거림을 담아 황제와 나눈 면담의 세부 사항, 크렘스 전투에 관해 궁정에서 들은 말, 두 사람 모두 아는 몇몇 여성에 대해 안드레이 공작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