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 제15장
《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제15장

《전쟁과 평화》 제2권 15장 삽화

쿠투조프에게 끈질기게 요청했던 안드레이 공작은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그룬트에 도착해 바그라티온에게 복귀를 보고했다. 보나파르트의 부관은 아직 뮈라의 부대에 도착하지 않았고 전투도 시작되지 않았다. 바그라티온 부대에서는 아무도 전반적인 상황을 알지 못했다. 강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믿지 않았고, 전투를 이야기하는 이들도 교전이 임박했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 바그라티온은 볼콘스키가 쿠투조프의 총애와 신뢰를 받는 부관임을 알고 특별한 존중과 호의로 맞이했다. 오늘이나 이튿날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하고, 전투 중 자기 곁에 남아도 좋고 후위대에 합류하여 ‘역시 매우 중요한’ 후퇴 질서를 살펴도 좋다며 그에게 자유롭게 선택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전투가 벌어질 것 같지 않소.” 바그라티온은 안드레이 공작을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훈장을 받으러 파견된 흔한 참모부 멋쟁이 가운데 하나라면 후위대에서도 충분히 포상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내 곁에 머물고 싶다면 머물라고 하자…… 용감한 장교라면 이곳에서 쓸모가 있을 테니.’ 바그라티온은 생각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대답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하러 파견될 경우 지형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진지를 돌며 병력 배치를 살펴보게 해 달라고 공작에게 허락을 청했다. 당직 장교는 잘생기고 우아한 옷차림에 집게손가락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남자였다. 그는 프랑스어를 서툴게 하면서도 즐겨 사용했고 안드레이 공작을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사방에는 무엇인가를 찾는 듯한 풀이 죽은 얼굴의 장교들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고, 병사들은 마을에서 문짝과 긴 의자와 울타리를 끌어오고 있었다.

“저것 보십시오, 공작님! 저 녀석들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참모장교가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교들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기,” 그는 종군상인의 천막을 가리켰다. “몰려들어 앉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모두 쫓아냈는데 보십시오. 또 가득 찼습니다. 공작님, 저곳에 가서 조금 겁을 줘야겠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좋소, 들어갑시다. 나도 빵과 치즈를 좀 구하겠소.” 아직 아무것도 먹을 틈이 없었던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공작님? 제가 무언가를 대접했을 텐데요.”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천막으로 들어갔다. 얼굴이 붉고 지친 장교 몇 명이 탁자에 앉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여러분,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참모장교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 사람처럼 나무라는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공작님께서 아무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 대위님도 말입니다.” 그는 작고 야위고 지저분한 포병장교에게 몸을 돌렸다. 포병장교는 군화를 종군상인에게 말리라고 맡겨 양말만 신은 채였고, 그들이 들어오자 완전히 편하지는 않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투신 대위,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그가 말을 이었다. “포병장교라면 좋은 모범을 보일 법한데 군화도 신지 않고 여기 계시는군요! 비상경보가 울리면 군화 없이 아주 볼 만한 꼴이 되겠습니다!” 참모장교는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 모두요!” 그는 명령하는 어조로 덧붙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포병장교 투신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말없이 웃는 투신은 양말을 신은 두 발을 번갈아 옮겨 디디며, 크고 총명하고 선량한 두 눈으로 안드레이 공작과 참모장교를 번갈아 보며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병사들은 군화를 벗으면 더 편하다고 합니다.” 투신 대위는 곤란한 처지에서 수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농담조로 넘어가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기 농담이 받아들여질 수 없고 성공하지도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당황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 참모장교는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포병장교의 작은 몸을 다시 흘끗 보았다. 그 모습에는 독특하고 전혀 군인답지 않으며 다소 우스우면서도 몹시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참모장교와 안드레이 공작은 말에 올라 계속 나아갔다.

마을을 벗어난 두 사람은 여러 연대의 병사와 장교들을 끊임없이 마주치고 앞질렀다. 왼쪽에는 새로 파낸 점토가 붉게 드러난 보루들이 구축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도 셔츠 소매 차림인 여러 대대의 병사들이 흰개미 떼처럼 토공시설 위에 몰려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둑 뒤에서 붉은 점토를 삽으로 계속 퍼 올렸다. 안드레이 공작과 장교는 가까이 다가가 보루를 살펴본 뒤 다시 나아갔다. 보루 바로 뒤에서는 수십 명의 병사들이 계속 다른 사람들과 교대하며 보루에서 뛰어 나왔다. 두 사람은 이 변소의 오염된 공기에서 벗어나려고 코를 막고 말의 속도를 높여야 했다.

“*Voilà l’agrément des camps, monsieur le prince.*” 참모장교가 말했다.

“공작님, 이것이 진지에서 누리는 즐거움입니다.”

그들은 맞은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이미 프랑스군이 보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멈춰 서서 진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저곳이 우리 포대입니다.” 참모장교가 가장 높은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군화를 벗고 있던 괴짜가 맡고 있지요. 저기서는 모든 것이 보입니다. 그리로 갑시다, 공작님.”

“대단히 고맙소. 이제 혼자 가겠소.” 안드레이 공작은 이 참모장교와 헤어지고 싶어 말했다. “더는 수고하지 마시오.”

참모장교는 뒤에 남고 안드레이 공작은 혼자 말을 타고 나아갔다.

앞으로 나아가 적에게 가까워질수록 병사들의 모습은 더욱 질서 있고 명랑해졌다. 그날 아침 프랑스군에게서 7마일 떨어진 즈나임 도로의 치중대를 지나올 때 무질서와 침울함이 가장 심했다. 그룬트에서도 어느 정도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안드레이 공작이 프랑스군 전선에 가까이 갈수록 아군의 모습은 더욱 자신감에 차 있었다. 외투를 입은 병사들은 줄지어 서 있었고 선임하사들과 중대 장교들은 인원을 세면서 각 분대 마지막 병사의 옆구리를 찔러 손을 들게 했다. 사방에 흩어진 병사들은 통나무와 잔가지를 끌어와 명랑한 이야기와 웃음 속에 움막을 짓고 있었다. 모닥불 주위에는 옷을 입거나 벗은 병사들이 앉아 셔츠와 행전을 말리고 군화나 외투를 기웠으며, 솥과 죽을 끓이는 취사기구 둘레에 몰려 있었다. 한 중대에서는 식사가 준비되어 병사들이 김을 내뿜는 솥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보급 담당 하사가 나무 그릇에 담아 움막 앞 통나무에 앉은 장교에게 가져가는 견본을 맛보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모든 중대에 보드카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운이 좋은 다른 중대의 병사들은 곰보 자국이 있고 어깨가 넓은 선임하사 주위로 몰려들었다. 선임하사는 술통을 기울여 병사들이 내미는 수통 뚜껑을 차례차례 채워 주었다. 병사들은 경건한 표정으로 수통 뚜껑을 입술에 대고 보드카를 입안에서 굴리며 비운 뒤, 얼굴이 환해져 선임하사에게서 떠났다. 입술을 핥고 외투 소매로 닦았다. 이 모든 일이 전투를 앞두고 적이 보이는 곳에서 벌어지며 적어도 절반이 전장에 남게 되는 상황이 아니라 평화로운 숙영지를 기다리는 고향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모두의 얼굴은 평온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엽병연대를 지나 키예프 척탄병 연대의 대열로 들어섰다. 그곳의 훌륭한 병사들도 비슷하게 평화로운 일에 분주했다. 다른 움막보다 높고 모양도 다른 연대장의 움막 가까이에서 그는 척탄병 소대 앞으로 나왔고 그 앞에는 벌거벗은 남자 한 명이 누워 있었다. 병사 둘이 그를 붙잡고 다른 둘은 회초리를 휘둘러 맨 등에 일정한 간격으로 내리쳤다. 남자는 부자연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뚱뚱한 소령은 대열 앞을 오가며 비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되풀이했다.

“병사가 도둑질한다는 것은 수치다. 병사는 정직하고 명예롭고 용감해야 한다. 하지만 전우들의 물건을 훔친다면 그에게는 명예가 없다. 그는 악당이다. 계속해! 계속!”

회초리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절박하지만 부자연스러운 비명이 계속 이어졌다.

“계속해, 계속!” 소령이 말했다.

어리둥절하고 괴로운 표정의 젊은 장교가 그 남자에게서 물러나 말을 타고 지나가는 부관을 묻는 듯 돌아보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전선에 도착해 그 선을 따라 말을 몰았다. 아군과 적군의 전선은 좌우 측면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날 아침 휴전기를 든 사람들이 지나갔던 중앙에서는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양쪽에서 전초선을 구성하는 병사들 외에도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들어 농담하고 웃으며 낯설고 이국적인 적을 빤히 바라보았다.

전초선에 다가가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장교들은 아침 일찍부터 구경꾼들을 쫓아낼 수 없었다. 진귀한 물건을 전시하는 장사꾼처럼 전초선을 지키는 병사들은 더 이상 프랑스군을 바라보지 않고 구경꾼들에게 주의를 기울였으며 교대하기를 기다리다 지쳐 갔다. 안드레이 공작은 프랑스군을 보려고 멈춰 섰다.

“보게! 저기 좀 봐!” 한 병사가 다른 병사에게 말했다. 러시아 머스킷병 한 명이 장교와 함께 전초선으로 다가가 프랑스 척탄병과 빠르고 흥분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가리켰다. “재잘거리는 것 좀 들어 봐! 대단하지 않나? 프랑스 놈도 따라가기 벅차군. 자, 시도로프!”

“잠깐 기다리고 들어 봐. 대단하군!” 프랑스어에 능하다고 여겨지는 시도로프가 대답했다.

병사들이 웃으며 가리킨 사람은 돌로호프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를 알아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멈췄다. 돌로호프는 자기 연대가 주둔한 왼쪽 측면에서 대위와 함께 왔다.

“자, 계속해, 계속!” 대위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부추겼다. “더 하게, 더! 뭐라고 하나?”

돌로호프는 대위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프랑스 척탄병과 벌이는 격렬한 논쟁에 빠져 있었다.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은 당연히 이번 원정에 관한 일이었다. 프랑스인은 오스트리아군과 러시아군을 혼동하면서 러시아군이 항복하고 울름에서부터 줄곧 달아났음을 증명하려 했다. 돌로호프는 러시아군은 항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프랑스군을 물리쳤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너희를 몰아내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대로 몰아낼 것이다.” 돌로호프가 말했다.

“너희와 너희 카자크가 모조리 붙잡히지 않도록 조심해라!” 프랑스 척탄병이 말했다.

구경하고 듣던 프랑스인들이 웃었다.

“수보로프 시대에 그랬듯 너희를 춤추게 해 주마…….” 돌로호프가 말했다.

“*On vous fera danser.*”

“*Qu’est-ce qu’il chante?*” 프랑스인 한 명이 물었다.

“저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옛날 역사 이야기야.” 다른 프랑스인이 이전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짐작하고 말했다. “황제께서는 다른 자들을 가르치셨듯 너희 수바라에게도 가르침을 주실 것이다…….”

“보나파르트는…….” 돌로호프가 말을 시작했지만 프랑스인이 가로막았다.

“보나파르트가 아니다. 그분은 황제시다! *Sacré nom……!*” 그가 화를 내며 외쳤다.

“악마가 네 황제의 가죽을 벗길 것이다.”

돌로호프는 거친 러시아 병사 말로 욕을 퍼붓고 머스킷총을 어깨에 멘 채 걸어갔다.

“갑시다, 이반 루키치.” 그가 대위에게 말했다.

“아, 프랑스어는 저렇게 해야지.” 전초의 병사들이 말했다. “자, 시도로프, 자네도 한번 해 봐!”

시도로프는 프랑스인 쪽으로 몸을 돌려 눈을 찡긋하고 아무 뜻도 없는 소리를 매우 빠르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Kari, mala, tafa, safi, muter, Kaská.*” 그는 목소리에 풍부한 억양을 넣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호! 호! 호! 하! 하! 하! 하! 우! 우!” 병사들에게서 건강하고 선량한 웃음이 폭발했다. 프랑스인들에게도 저절로 옮겨 갈 정도였다.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머스킷총에서 탄약을 빼고 탄약을 폭파한 뒤 모두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인 듯했다.

그러나 총은 여전히 장전된 채였고 방책과 보루의 총안은 전과 마찬가지로 위협적으로 밖을 내다보았으며 포차에서 분리된 대포들은 여전히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