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 제18장
《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제18장

《전쟁과 평화》 제2권 18장 삽화

바그라티온 공작은 아군 오른쪽 측면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 머스킷총의 연속 사격이 들려오는 비탈 아래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그곳은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골짜기에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것은 줄었지만 실제 전장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강해졌다. 부상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자를 잃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한 사람은 두 병사의 부축을 받아 양쪽 겨드랑이가 들린 채 끌려가고 있었다. 목에서는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고 피를 뱉었다. 총알이 목이나 입에 맞은 것이 분명했다. 다른 병사는 머스킷총도 없이 혼자 힘차게 걷고 있었지만 큰 소리로 신음하면서 막 다친 팔을 흔들었고, 그곳에서는 병에서 쏟아지듯 피가 외투 위로 흘러내렸다. 방금 부상을 입은 그의 얼굴에는 고통보다 두려움이 더 많이 드러났다. 그들은 길 하나를 건너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다가 땅에 누운 사람 몇 명을 보았고, 부상당하지 않은 이들도 섞인 병사 무리와 마주쳤다. 병사들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언덕을 올라왔고 장군이 있는데도 큰 소리로 말하고 손짓했다. 앞쪽에서는 회색 외투의 대열들이 벌써 연기 사이로 보였다. 장교 한 명이 바그라티온을 발견하고 후퇴하는 병사 무리를 뒤쫓아가 돌아가라고 고함쳤다. 바그라티온은 곳곳에서 총성이 터져 목소리와 구령을 삼키는 대열에 다가갔다. 공기 전체에 화약 연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흥분한 병사들의 얼굴은 연기에 검게 그을렸다. 어떤 이들은 꽂을대로 장전하고 어떤 이들은 점화접시에 화약을 뿌리거나 탄약통에서 장약을 꺼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사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없어 흩어지지 않는 연기 때문에 누구를 향해 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총알이 기분 좋게 윙윙거리며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이 자주 들렸다. ‘이게 뭐지?’ 안드레이 공작은 병사 무리에 다가가며 생각했다. ‘움직이지 않으니 공격일 수 없고, 그런 대형을 이루지 않았으니 방진일 수도 없어.’

연대장은 야위고 허약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반쯤 넘게 늘어진 눈꺼풀이 늙은 두 눈을 덮고 있어 온화해 보였으며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귀한 손님을 맞는 주인처럼 바그라티온에게 말을 타고 다가가 환영했다. 연대장은 자기 연대가 프랑스 기병대의 공격을 받았으며 공격을 물리쳤지만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고 보고했다. 그는 자기 연대에 일어난 일을 군사 용어로 표현하여 공격을 물리쳤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병력에 지난 30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고 공격을 물리친 것인지 연대가 무너진 것인지 확신을 갖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은 전투가 시작될 때 포탄과 유탄이 연대 전체로 날아들어 병사들을 쓰러뜨렸고, 뒤이어 누군가가 “기병대다!”라고 외쳐 아군이 사격을 시작했다는 것뿐이었다. 병사들은 이미 사라진 기병대가 아니라 골짜기로 들어와 아군을 향해 사격하는 프랑스 보병들을 상대로 여전히 총을 쏘고 있었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바라며 예상한 그대로라는 표시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부관에게 몸을 돌려 조금 전에 지나쳐 온 제6엽병연대의 두 대대를 이곳으로 내려오게 하라고 명령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 순간 바그라티온 공작의 달라진 얼굴 표정에 놀랐다. 무더운 날 물에 뛰어들기 전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사람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집중되고 행복한 결의가 나타났다. 무디고 졸린 표정도 심오하게 생각하는 척하는 태도도 사라졌다. 둥글고 한결같은 매의 눈은 열망과 다소간의 경멸을 담아 앞을 바라보았으며, 움직임은 여전히 느리고 절도 있었지만 어느 것에도 머물지 않았다.

연대장은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며 바그라티온 공작에게 뒤로 물러나 달라고 애원했다. “제발, 각하, 하느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는 계속 말하며 수행단 장교에게 지지를 구하려고 흘끗 보았지만 장교는 얼굴을 돌렸다. “저것 보십시오!” 그는 주위에서 끊임없이 휘파람과 노랫소리와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는 총알에 주의를 돌렸다. 그는 손도끼를 집어 든 신사에게 목수가 ‘우리는 익숙하지만 나리는 손에 물집이 잡힐 겁니다’라고 애원하고 나무랄 때의 어조로 말했다. 마치 그 총알들이 자신은 죽일 수 없다는 듯 말했고 반쯤 감긴 눈은 그의 말을 더욱 설득력 있게 했다. 참모장교도 대령의 간청에 가세했으나 바그라티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두 대대가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도록 사격을 중지하고 대열을 다시 짜라고 명령했을 뿐이다. 그가 말하는 사이 골짜기를 가리던 연기의 장막이 일어난 바람에 밀려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당기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맞은편 언덕과 그 위를 움직이는 프랑스군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시선은 저도 모르게 울퉁불퉁한 땅을 구불구불 내려오며 아군을 향해 전진하는 프랑스군 종대에 붙들렸다. 병사들의 털모자도 보였고 장교와 병사를 구별할 수 있었으며 깃대에 나부끼는 군기도 알아볼 수 있었다.

“행군을 훌륭하게 하는군.” 바그라티온 수행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종대의 선두는 이미 골짜기로 내려왔다. 충돌은 골짜기의 이쪽에서 벌어질 터였다…….

전투를 치른 아군 연대의 잔존 병력은 재빨리 대열을 갖추고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 뒤에서는 제6엽병연대의 두 대대가 낙오병들을 헤치며 훌륭한 질서로 다가왔다. 그들이 바그라티온에게 닿기도 전에 보조를 맞춰 행군하는 거대한 사람 무리의 육중한 발소리가 들렸다. 바그라티온과 가장 가까운 왼쪽 측면에는 한 중대장이 행군하고 있었다. 잘생기고 얼굴이 둥글며 어리석고 행복한 표정을 지은 남자로, 엮은 가지 움막에서 뛰어나왔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 순간 그는 지휘관 앞을 지나갈 때 자기가 얼마나 씩씩하게 보일지만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열병 중인 사람의 자기만족을 품고 근육질의 두 다리를 가볍게 움직여 물 위를 미끄러지듯 걸었다.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키를 한껏 폈고, 그 여유로운 모습은 보조를 맞추는 병사들의 육중한 발걸음과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진짜 무기 같지 않은 작고 휘어진, 칼집을 벗긴 가느다란 군도를 다리 가까이 붙여 들었다. 걸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상급 장교들을 보다가 병사들을 돌아보았으며 강인한 몸 전체를 유연하게 돌렸다. 영혼의 온 힘을 가능한 한 훌륭한 모습으로 지휘관 앞을 지나가는 데 쏟고 있는 듯했고, 잘하고 있다고 느끼기에 행복해했다. ‘왼발…… 왼발…… 왼발…….’ 그는 한 걸음 걸러 속으로 되풀이하는 듯했다. 그 보조에 맞추어 엄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채 배낭과 머스킷총의 무게를 짊어진 병사들의 벽이 행진했다. 수백 명의 병사들 하나하나가 한 걸음 걸러 ‘왼발…… 왼발…… 왼발…….’이라고 속으로 되풀이하는 듯했다. 뚱뚱한 소령은 숨을 헐떡이며 보조를 잃고 덤불을 피해 갔다. 대열에서 뒤처졌다는 불안이 얼굴에 드러난 병사는 헐떡이며 종종걸음으로 달려 중대를 따라잡았다. 포탄 하나가 공기를 가르며 바그라티온과 수행원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 ‘왼발…… 왼발!’ 하는 박자에 맞춰 종대 안으로 떨어졌다. “간격을 좁혀!” 중대장의 목소리가 씩씩하게 들렸다. 병사들은 포탄이 떨어진 곳의 무언가를 반원으로 돌아 지나갔다. 측면에 있던 부사관인 늙은 병사 하나가 죽은 사람들 곁에 멈췄다가 자기 대열을 따라잡으려고 달렸다. 그는 한 번 뛰어 보조를 맞춘 다음 화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불길한 침묵과 일제히 땅을 치는 규칙적인 발소리 사이로 ‘왼발…… 왼발…… 왼발…….’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잘한다, 친구들!” 바그라티온 공작이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각……하!” 대열에서 뒤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왼쪽에서 행군하던 침울한 병사 하나가 ‘그 정도는 우리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그라티온을 바라보며 외쳤다. 다른 병사는 긴장을 늦출까 두려운 듯 돌아보지도 않고 입을 크게 벌려 외치며 지나갔다.

멈춰 서서 배낭을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바그라티온은 자기 앞을 지나간 대열 주위로 말을 몰고 가다 말에서 내렸다. 고삐를 카자크 병사에게 넘기고 펠트 외투를 벗어 건넨 뒤 다리를 펴고 모자를 바로 썼다. 장교들이 앞장선 프랑스군 종대의 선두가 언덕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느님과 함께 전진하라!” 바그라티온은 단호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전열을 향해 몸을 돌린 뒤 두 팔을 가볍게 흔들며 거친 들판 위를 기병 특유의 어색한 걸음으로 불편하게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안드레이 공작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을 앞으로 이끈다고 느끼며 커다란 행복을 맛보았다.

프랑스군은 벌써 가까이 와 있었다. 바그라티온 곁에서 걷는 안드레이 공작은 그들의 탄띠와 붉은 견장, 심지어 얼굴까지도 똑똑히 구별할 수 있었다. 각반을 찬 다리를 하고 발끝을 바깥으로 돌린 채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늙은 프랑스 장교도 뚜렷이 보았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더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대열 앞에서 말없이 계속 걸었다. 갑자기 프랑스군 쪽에서 총성이 하나씩 잇따라 울렸고 고르지 못한 대열 전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머스킷총 소리가 터졌다. 아군 병사 몇 명이 쓰러졌으며 그중에는 그토록 명랑하고 자기만족에 찬 모습으로 행군하던 얼굴이 둥근 장교도 있었다. 그러나 첫 총성이 들린 바로 그 순간 바그라티온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만세!”

“만세―에!―에!” 아군 대열에서 길게 늘인 외침이 울렸다. 병사들은 바그라티온을 지나 서로 앞다투며 무질서하지만 명랑하고 열망에 찬 무리가 되어 혼란에 빠진 적을 향해 언덕 아래로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