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 제17장
《전쟁과 평화》 · 제2권 1805년

제17장

《전쟁과 평화》 제2권 17장 삽화

안드레이 공작은 다시 말에 올라 포탄을 쏜 대포에서 피어난 연기를 바라보며 포대 곁에 머물렀다. 그의 눈은 넓은 공간을 빠르게 훑었지만,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던 프랑스군의 덩어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과 왼편에 정말 포대가 있다는 것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 위의 연기는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부관인 듯한 프랑스 기병 두 명이 언덕 위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전선을 증원하려는 듯 작지만 뚜렷이 보이는 적의 종대가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첫 포탄의 연기가 흩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어 포성이 들렸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말을 돌려 바그라티온 공작을 찾으려고 그룬트로 질주했다. 등 뒤에서 포성이 더 커지고 잦아지는 것이 들렸다. 아군의 대포도 응사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아래쪽 비탈의 협상이 이루어졌던 곳에서는 머스킷총 소리가 들려왔다.

르마루아가 보나파르트의 엄중한 편지를 가지고 막 전속력으로 도착했다. 굴욕을 느끼고 잘못을 만회하고 싶었던 뮈라는 즉시 병력을 움직여 러시아군 중앙을 공격하고 양쪽 측면을 우회하게 했다. 해가 지고 황제가 도착하기 전에 눈앞의 보잘것없는 부대를 분쇄하려는 것이었다.

‘시작됐어. 바로 이것이야!’ 안드레이 공작은 피가 심장으로 몰리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툴롱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15분 전까지만 해도 죽을 먹고 보드카를 마시던 중대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그는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고 머스킷총을 준비하는 똑같이 빠른 움직임을 곳곳에서 보았다. 모든 얼굴에서 자기 가슴을 채우는 것과 똑같은 열망을 알아보았다. ‘시작됐어! 바로 이것이야. 무섭지만 즐겁다!’ 모든 병사와 장교의 얼굴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구축 중인 보루에 닿기도 전에 그는 흐린 가을 저녁 빛 속에서 말을 탄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선두에는 카자크식 외투와 양가죽 모자를 쓰고 흰 말을 탄 바그라티온 공작이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멈춰 서서 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말을 세우고 안드레이 공작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이 공작이 본 것을 보고하는 동안에도 계속 앞을 바라보았다.

‘시작됐어. 바로 이것이야!’라는 감정은 반쯤 감긴 무디고 졸린 눈과 단단하고 거무스름한 바그라티온 공작의 얼굴에도 나타났다. 안드레이 공작은 초조한 호기심으로 그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 지금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기는 하는지, 그렇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 뒤에 과연 무언가가 있기는 할까?’ 안드레이 공작은 바라보며 자문했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안드레이 공작의 보고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아주 좋소!”라고 말했다. 마치 일어나서 자신에게 보고된 모든 일이 자신이 정확히 예상한 대로라는 뜻을 담은 듯한 어조였다. 빠르게 말을 달려 숨이 찬 안드레이 공작은 급히 말했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듯 동양적인 억양으로 유난히 느리게 말했으나, 말은 투신의 포대 쪽으로 속보로 몰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수행원들과 함께 뒤따랐다. 바그라티온 공작의 뒤로는 수행단 장교와 공작의 전속부관, 제르코프, 연락장교, 꼬리를 자른 훌륭한 말을 탄 당직 참모장교, 그리고 호기심 때문에 전투를 참관하도록 허락을 구한 민간인 회계관이 말을 타고 갔다. 뚱뚱하고 얼굴이 통통한 회계관은 천으로 만든 외투 차림에 치중대 장교용 안장이 얹힌 말 위에서 덜컹거리며 만족스러운 천진한 미소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기병과 카자크 병사와 부관들 사이에서 기묘한 모습이었다.

“저 사람은 전투를 보고 싶답니다.” 제르코프는 회계관을 가리키며 볼콘스키에게 말했다. “하지만 벌써 명치가 아픈 모양입니다.”

“아, 그만두십시오!” 회계관은 환하면서도 다소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르코프의 농담거리가 된 것이 우쭐한 듯했고, 실제보다 일부러 더 어리석게 보이려고 애썼다.

“매우 기묘한 일입니다, *mon Monsieur Prince*.” 참모장교가 말했다. 공작을 프랑스어로 부르는 특별한 방식이 있다는 것은 기억했지만 정확히 해내지는 못했다.

이때 모두가 투신의 포대에 가까이 다가갔고 포탄 하나가 그들 앞의 땅을 때렸다.

“방금 떨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회계관이 천진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프랑스산 전병입니다.” 제르코프가 대답했다.

“저런 것으로 때리는 겁니까?” 회계관이 물었다. “끔찍하군요!”

그는 만족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말을 거의 끝내자마자 예상하지 못한 사나운 휘파람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소리는 갑자기 부드러운 무언가에 부딪히는 퍽 하는 소리로 끝났다…… 휘익―퍽! 회계관보다 조금 오른쪽 뒤에서 말을 타던 카자크 병사가 말과 함께 땅에 고꾸라졌다. 제르코프와 참모장교는 안장 위로 몸을 숙이고 말을 돌려 그곳에서 멀어졌다. 회계관은 카자크 병사를 마주한 채 멈춰 서서 주의 깊은 호기심으로 살폈다. 카자크 병사는 죽었지만 말은 여전히 몸부림쳤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소란의 원인을 알아차리자 ‘그런 사소한 일에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는가?’라고 말하는 듯 무심하게 몸을 돌렸다. 노련한 기수답게 조심스럽게 말을 세우고 몸을 약간 숙여 외투에 걸린 군도를 풀어냈다. 이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구식 군도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탈리아에서 수보로프가 자기 군도를 바그라티온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고, 그 기억은 이 순간 유난히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전장을 살필 때 머물렀던 포대에 도착했다.

“어느 중대인가?” 바그라티온 공작이 탄약 수레 곁에 서 있는 포병에게 물었다.

그는 “어느 중대인가?”라고 물었지만 실제로는 “여기서 두려운가?”라고 묻는 것이었고 포병도 그렇게 알아들었다.

“투신 대위 중대입니다, 각하!”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포수가 차렷 자세로 서서 명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그래.” 바그라티온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중얼거리고 포차들을 지나 가장 끝쪽 대포로 갔다.

그가 다가갈 때 그 대포가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며 발사되어 공작과 수행원들의 귀를 먹먹하게 했다. 갑자기 대포를 에워싼 연기 속에서는 대포를 붙잡고 힘을 모아 재빨리 원래 자리로 밀어 놓는 포병들이 보였다. 대걸레를 든 몸집이 거대하고 어깨가 넓은 1번 포수는 두 다리를 벌린 채 바퀴로 뛰어들었다. 2번 포수는 떨리는 손으로 장약을 포구에 넣었다. 키가 작고 등이 굽은 투신 대위는 포차의 꼬리판에 걸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장군을 알아보지 못하고 작은 손으로 눈 위를 가린 채 밖을 바라보았다.

“두 눈금 더 올리면 딱 맞아.” 그는 약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씩씩한 어조를 내려고 애쓰며 힘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2번!” 그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메드베데프, 발사!”

바그라티온이 그를 부르자 투신은 손가락 세 개를 모자에 대고 다가왔다. 수줍고 어색한 몸짓은 군인의 경례라기보다 사제의 축복 같았다. 투신의 대포들은 계곡을 포격하도록 배치되었지만 그는 정면에 보이는 쇤그라베른 마을을 향해 소이탄을 쏘고 있었다. 마을 앞에서는 프랑스군의 큰 무리가 전진하고 있었다.

아무도 투신에게 어디를 무엇으로 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깊이 존경하는 선임하사 자하르첸코와 상의한 뒤 마을에 불을 지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아주 좋소!” 바그라티온은 장교의 보고에 대답하고 눈앞에 펼쳐진 전장 전체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은 아군 오른쪽으로 가장 가까이 전진했다. 키예프 연대가 배치된 고지 아래 개울이 흐르는 골짜기에서는 영혼을 뒤흔드는 머스킷총 소리가 잇따라 우르릉거리고 터졌다. 훨씬 더 오른쪽의 용기병 너머에서는 수행단 장교가 아군의 측면을 돌아 들어오는 프랑스군 종대를 바그라티온에게 가리켜 보였다. 왼쪽 지평선은 인접한 숲에 가로막혀 있었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중앙의 대대 두 개를 오른쪽 측면의 증원군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수행단 장교는 이 대대들이 떠나면 대포들이 엄호를 받지 못한 채 남을 것이라고 감히 공작에게 지적했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그 장교에게 몸을 돌려 무딘 눈으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장교의 지적이 옳으며 실제로 대답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골짜기에 있는 연대장이 보낸 부관이 말을 달려와 엄청난 프랑스군이 몰려오고 있으며 자기 연대가 무너져 키예프 척탄병 연대를 향해 후퇴 중이라고 보고했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동의하고 승인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천천히 말을 몰아 오른쪽으로 떠나면서 부관 한 명에게 프랑스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용기병들에게 전하게 했다. 하지만 이 부관은 30분 뒤에 돌아와, 용기병 지휘관이 이미 골짜기 너머로 후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적의 집중 사격이 시작되어 쓸데없이 병력을 잃고 있었으므로 서둘러 숲속에 저격병 몇 명을 투입했다고 했다.

“아주 좋소!” 바그라티온이 말했다.

그가 포대를 떠날 때 왼쪽에서도 총성이 들렸다. 왼쪽 측면은 직접 가기에 너무 멀었으므로 바그라티온 공작은 제르코프를 보내 그곳의 지휘관, 브라우나우에서 쿠투조프 앞에 자기 연대를 열병시켰던 장군에게 가능한 한 빨리 후방의 골짜기 너머로 후퇴하라고 전하게 했다. 오른쪽 측면이 적의 공격을 오래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투신과 그의 포대를 엄호하던 대대는 모두에게 잊혔다. 안드레이 공작은 바그라티온이 지휘관들과 나누는 말과 그들에게 내리는 명령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러다 실제로는 아무 명령도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바그라티온 공작은 필요에 따라, 우연히, 또는 부하 지휘관들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모든 일을 자신의 직접 명령에 따른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기 의도와 일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은 일어난 일이 우연에 따른 것이고 지휘관의 의지와 무관했어도 바그라티온이 보여 준 재치 덕분에 그의 존재는 매우 값졌음을 알아차렸다. 불안한 얼굴로 다가온 장교들은 그를 만나면 침착해졌다. 병사와 장교들은 명랑하게 경례하고 그의 곁에서 더욱 활기를 띠었으며, 그 앞에서 자기 용기를 보여 주려는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