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 제18장
《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제18장

《전쟁과 평화》 제15권 18장 삽화

그날 밤 피에르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그는 방 안을 오가며, 때로는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때로는 갑자기 어깨를 으쓱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또 때로는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안드레이 공작과 나타샤와 두 사람의 사랑을 생각했다. 한순간에는 나타샤의 과거를 질투하다가 다음 순간에는 그런 감정을 품었다고 자신을 꾸짖었다. 이미 아침 여섯 시였는데도 계속 방 안을 오갔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쩌겠는가? 어떻게 하겠는가? 분명 이렇게 되어야 하는 모양이야.” 그는 혼잣말을 하고 서둘러 옷을 벗은 뒤 침대로 들어갔다. 행복하고 흥분했지만 망설임이나 결단하지 못하는 마음에서는 자유로웠다.

‘그런 행복이 아무리 이상하고 불가능해 보여도 그 사람과 내가 부부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는 생각했다.

피에르는 며칠 전 금요일에 페테르부르크로 떠나기로 정했다. 목요일 아침 잠에서 깨자 사벨리치가 여행 짐을 꾸리는 일에 관해 물으러 왔다.

“뭐라고, 페테르부르크로? 페테르부르크가 대체 무엇이지? 페테르부르크에 누가 있나?” 그는 자신에게만 하는 말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물었다. ‘아, 그래. 이 일이 생기기 오래전에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페테르부르크에 가려고 했지.’ 그는 생각했다. ‘왜였을까? 하지만 아마 가기는 할 거야. 정말 좋은 사람이야. 얼마나 세심하고 모든 것을 잘 기억하는지.’ 그는 사벨리치의 늙은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미소도 얼마나 기분 좋은가!’

“그런데 사벨리치, 아직도 자유를 받고 싶지 않은가?” 피에르가 물었다.

“자유가 제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각하? 돌아가신 백작님을 모시고 살았고—하늘나라에 드시기를!—각하를 모시고도 살았지만 부당한 일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자네 자식들은?”

“아이들도 똑같이 살 겁니다. 이런 주인들과는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상속인들은 어떻게 하지?” 피에르가 말했다. “내가 갑자기 결혼한다고 생각해보게……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외람되오나, 각하, 좋은 일이겠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피에르는 생각했다. ‘그 일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몰라.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거나…… 무서운 일이야!’

“그럼 어떻게 명령하시겠습니까? 내일 출발하십니까?” 사벨리치가 물었다.

“아니, 조금 미루겠네. 나중에 알려주지. 괜한 수고를 시켜 미안하네.” 피에르는 사벨리치가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내게 페테르부르크는 없고 먼저 이 일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 사람이 모른다니 얼마나 이상한가! 아마 충분히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 사람과 이야기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까?’ 그는 생각했다. ‘아니, 다음에 하자.’

아침 식사 때 피에르는 사촌 누이인 공작 영애에게 전날 마리야 공작 영애를 만나러 갔다가 “누구를 만났는지 아십니까? 나타샤 로스토바를 만났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작 영애는 그가 안나 세묘노브나를 만났다고 했을 때보다 더 놀랄 일이 없다는 듯 보였다.

“그 사람을 아십니까?” 피에르가 물었다.

“공작 영애는 본 적이 있어.” 그가 대답했다. “젊은 로스토프와 혼담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지. 로스토프가에는 아주 좋은 일이겠어. 완전히 파산했다고 하더군.”

“아니, 나타샤 로스토바를 아느냐고 묻는 겁니다.”

“그때 그 아가씨에게 일어난 사건은 들었어. 참 안된 일이었지.”

‘아니, 이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거야.’ 피에르는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

공작 영애도 피에르의 여행을 위한 식량을 준비해 두었다.

‘모두 얼마나 친절한가.’ 피에르는 생각했다. ‘이런 일이 이제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되지 못할 텐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워. 모두 나를 위해서!’

같은 날 경찰서장이 피에르를 찾아와, 그날 소유주들에게 돌려줄 물건을 찾도록 대리인을 그라노비타야 궁전으로 보내라고 했다.

‘이 사람도 그렇군.’ 피에르는 경찰서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훌륭하고 잘생긴 장교이며 친절한가. 이런 때에 그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다니!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람이 정직하지 않고 뇌물을 받는다고 말하지. 무슨 터무니없는 말인가! 게다가 뇌물을 받으면 왜 안 되는가? 그렇게 교육받았고 모두가 그렇게 하잖아. 하지만 얼마나 친절하고 기분 좋은 얼굴인지,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잘 웃는지.’

피에르는 마리야 공작 영애의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불탄 집들을 지나 거리를 달리면서 폐허의 아름다움에 놀랐다. 도시의 불탄 구역에서 서로 이어지고 서로를 가리며 뻗어 나간 굴뚝과 무너진 벽들이 이루는 그림 같은 모습은 라인강과 콜로세움을 떠올리게 했다. 마주친 마부와 승객들, 새집에 쓸 목재를 도끼로 다듬는 목수들, 행상하는 여자들과 상점 주인들은 모두 명랑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아, 저기 그가 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라고 말하는 듯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의 집에 들어서며 피에르는 전날 정말 이곳에 와서 나타샤를 보고 이야기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상상한 것인지도 몰라. 들어가 보면 아무도 없을지 몰라.’ 그러나 방에 들어서자마자 자유를 잃는 감각으로 나타샤가 있다는 것을 온 존재로 느꼈다. 그는 전날과 똑같이 부드러운 주름이 잡힌 검은 옷을 입고 머리도 똑같이 했지만 완전히 달라 보였다. 전날 피에르가 들어왔을 때 이런 모습이었다면 한순간도 알아보지 못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타샤는 거의 어린아이였을 때, 그리고 나중에 안드레이 공작의 약혼녀였을 때 피에르가 알던 모습이었다. 밝고 묻는 빛이 두 눈에 비쳤고 얼굴에는 친근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장난스러운 표정이 어려 있었다.

피에르는 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내내 머물고 싶었지만, 마리야 공작 영애가 저녁 기도에 가야 해서 그와 함께 집을 나왔다.

이튿날 그는 일찍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내내 머물렀다. 마리야 공작 영애와 나타샤가 손님을 만나 분명 기뻐했고 피에르의 모든 관심도 이제 그 집에 집중되었지만, 저녁이 되자 할 말을 모두 나누어 대화가 사소한 화제에서 다른 화제로 옮겨가며 자꾸 끊겼다. 피에르가 너무 오래 머물자 마리야 공작 영애와 나타샤는 그가 언제 갈지 궁금한 듯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피에르는 이를 알아차렸지만 갈 수 없었다. 불편하고 어색했으나 도저히 일어나 작별을 고할 수 없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끝날 기미가 없음을 알아차린 마리야 공작 영애가 먼저 일어나 머리가 아프다고 하며 잘 자라는 인사를 시작했다.

“그럼 내일 페테르부르크로 가시나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가지 않습니다.” 피에르는 놀라고 기분이 상한 듯한 목소리로 다급히 대답했다. “그래요…… 아니…… 페테르부르크로요? 내일…… 하지만 아직 작별 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부탁하실 일이 있는지 보러 오지요.” 그는 마리야 공작 영애 앞에 서서 얼굴을 붉히면서도 떠나지 않고 말했다.

나타샤는 피에르에게 손을 내밀고 나갔다. 반면 마리야 공작 영애는 나가는 대신 안락의자에 몸을 가라앉히고 깊고 빛나는 눈으로 그를 엄숙하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분명하게 드러냈던 피로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깊고 길게 한숨을 쉬며 긴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나타샤가 방에서 나가자 피에르의 당혹과 어색함은 즉시 사라지고 열렬한 흥분이 대신했다. 그는 안락의자를 마리야 공작 영애 쪽으로 재빨리 옮겼다.

“그래요, 당신에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이라도 한 듯 그의 눈길에 대답했다. “공작 영애, 나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희망을 품어도 될까요? 공작 영애, 소중한 친구여, 내 말을 들어주십시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나타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지금은 이 일을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나타샤의 오라버니가 되고 싶습니다. 아니,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두 손으로 얼굴과 눈을 문질렀다.

“자.” 그는 분명 자제력을 되찾고 조리 있게 말하려 애쓰며 계속했다. “언제부터 나타샤를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평생 나타샤만 사랑했고 지금도 나타샤 없이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합니다. 지금 청혼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나타샤가 내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면…… 그 가능성을……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희망을 품어도 되는지 말해주십시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세요, 소중한 공작 영애!” 그는 잠시 뒤 덧붙이고, 마리야 공작 영애가 대답하지 않자 그의 손에 손을 댔다.

“당신이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있어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대답했다.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지금 나타샤에게 사랑을 말할 수 없다는 당신의 말이 옳아요…….”

마리야 공작 영애는 말을 멈췄다. 사랑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려 했다. 그러나 이틀 전 나타샤가 갑자기 달라진 것을 보았으므로, 피에르가 사랑을 말해도 나타샤가 상처받지 않을 뿐 아니라 바로 그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지금 나타샤에게 말하는 것은 안 돼요.” 공작 영애가 말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게 맡기세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나는 알아요…….”

피에르는 마리야 공작 영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그가 말했다.

“나타샤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요…… 사랑하게 되리라는 것을요.” 마리야 공작 영애는 말을 고쳤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에르는 벌떡 일어나 겁먹은 표정으로 마리야 공작 영애의 손을 움켜쥐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희망을 품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그렇게 생각해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분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내게 맡기세요. 할 수 있을 때 나타샤에게 말할게요.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마음도 그렇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어요.”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하지만 그럴 수 없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피에르는 마리야 공작 영애의 손에 입 맞추며 계속 말했다.

“페테르부르크로 가세요. 그게 가장 좋아요. 내가 편지를 쓸게요.” 그가 말했다.

“페테르부르크로요? 가라고요? 좋습니다, 가겠습니다. 하지만 내일 다시 와도 되겠습니까?”

이튿날 피에르는 작별을 고하러 왔다. 나타샤는 전날보다 덜 활기찼다. 그러나 그날 나타샤를 바라보면서 피에르는 때로 자신이 사라지고 자신도 나타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행복만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능한 일인가? 아니야, 그럴 수 없어.’ 그는 영혼을 기쁨으로 채운 나타샤의 눈길과 몸짓과 말 하나하나에 스스로 말했다.

작별 인사를 하며 나타샤의 가늘고 섬세한 손을 잡았을 때 피에르는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오래 자기 손안에 붙들었다.

‘이 손과 이 얼굴과 이 눈, 지금은 내게 그토록 낯선 여성적 매력의 이 모든 보물이 언젠가 영원히 내 것이 되고, 내가 나 자신에게 익숙한 만큼 내게 익숙해지는 일이 가능할까?…… 아니, 그것은 불가능해!…….’

“안녕히 가세요, 백작님.” 나타샤가 소리 내어 말했다. “돌아오시기를 정말 많이 기다릴게요.” 그는 속삭이며 덧붙였다.

이 단순한 말과 그 말에 따르는 나타샤의 눈길과 얼굴 표정은 두 달 동안 피에르에게 고갈되지 않는 기억과 해석과 행복한 명상의 대상이 되었다. ‘돌아오시기를 정말 많이 기다릴게요…… 그래, 그래, 어떻게 말했지? 그래, “돌아오시기를 정말 많이 기다릴게요.”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피에르는 혼잣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