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 제3장
《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제3장

《전쟁과 평화》 제15권 3장 삽화

마리야 공작 영애는 출발을 미뤘다. 소냐와 백작이 나타샤를 대신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이성을 잃은 절망에 빠지는 어머니를 붙들 수 있는 사람은 나타샤뿐임을 알았다. 3주 동안 나타샤는 줄곧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 어머니의 방에 있는 긴 의자에서 자고, 어머니가 먹고 마시게 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다정하고 어루만지는 듯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머니가 진정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상처 입은 영혼은 아물 수 없었다. 페탸의 죽음은 그의 삶 절반을 뜯어갔다. 페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생기 있고 건강한 쉰 살의 여인이었지만, 한 달 뒤 방에서 나온 그는 삶에 아무 관심도 없는 무기력한 노파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작부인을 거의 죽일 뻔한 바로 그 타격, 이 두 번째 타격은 나타샤를 삶으로 되돌렸다.

영혼의 몸이 찢기며 생긴 상처는 육체의 상처와 같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깊은 상처도 아물어 양쪽 가장자리가 맞붙듯이, 육체와 영혼의 상처는 모두 내부에서 솟는 생명력에 의해서만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

나타샤의 상처는 그렇게 아물었다. 그는 자기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삶의 본질인 사랑이 여전히 자기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뜻밖에 보여주었다. 사랑이 깨어났고 삶도 깨어났다.

안드레이 공작의 마지막 나날은 마리야 공작 영애와 나타샤를 결속시켰다. 이 새로운 슬픔은 두 사람을 더욱 가까이 이어주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출발을 미루고 3주 동안 병든 아이를 돌보듯 나타샤를 보살폈다. 어머니의 침실에서 보낸 마지막 몇 주는 나타샤의 체력을 소진시켰다.

어느 날 오후, 나타샤가 열 때문에 몸을 떠는 것을 알아차린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나타샤는 누웠지만 마리야 공작 영애가 덧문을 닫고 나가려 하자 그를 다시 불렀다.

“자고 싶지 않아요, 마리야. 조금만 내 곁에 앉아 있어요.”

“피곤하잖아요. 잠들도록 해봐요.”

“아니요, 아니에요. 왜 나를 데리고 나왔어요? 어머니가 나를 찾으실 텐데.”

“훨씬 좋아지셨어요. 오늘은 말씀도 아주 잘하셨어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나타샤는 침대에 누워 어스름한 방 안에서 마리야 공작 영애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와 닮았나?’ 나타샤는 생각했다. ‘그래, 닮았지만 또 닮지 않았어. 하지만 이 사람은 완전히 독특해. 낯설고 새롭고 알 수 없는 사람이야. 그리고 나를 사랑해.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온통 선한 것뿐이야. 하지만 어떻게? 생각은 어떤 모습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 이 사람은 훌륭해!’

“마리야.” 그는 마리야 공작 영애의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수줍게 말했다. “마리야, 나를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지 않지요? 사랑하는 마리야,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 정말로, 정말로 친구가 돼요.”

나타샤는 마리야 공작 영애를 끌어안고 얼굴과 손에 입 맞추기 시작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이런 감정의 표현에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했다.

그날부터 마리야 공작 영애와 나타샤 사이에는 여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다정하고 열렬한 우정이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은 계속 서로에게 입 맞추고 다정한 말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 사람이 나가면 다른 사람은 불안해져 서둘러 그에게 돌아갔다.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은 각자 혼자 있을 때의 자신보다도 서로와 더 조화를 이룬다고 느꼈다. 우정보다 강한 감정, 곧 상대가 곁에 있어야만 삶이 가능하다는 배타적인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싹텄다.

때로는 몇 시간 동안 말없이 있었고, 때로는 이미 침대에 누운 뒤 이야기를 시작하여 아침까지 계속했다.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은 먼 과거의 일이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어린 시절과 어머니, 아버지, 공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타샤는 이전에는 헌신과 순종과 기독교적 자기희생의 시가 깃든 그런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외면했다. 그러나 이제는 애정으로 마리야 공작 영애와 결속되었다고 느끼면서 마리야 공작 영애의 과거까지 사랑하고,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의 한 면도 깨닫게 되었다. 나타샤는 다른 기쁨을 찾는 데 익숙했으므로 순종과 자기부정을 자기 삶에 적용하려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미덕들을 다른 사람 안에서 이해하고 사랑했다. 나타샤의 어린 시절과 이른 청춘 이야기를 듣는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도, 삶을 믿고 즐기는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새로운 면이 열렸다.

두 사람은 전과 마찬가지로 말로써 숭고한 감정을 낮추지 않으려고 그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드레이에 관한 이 침묵은 두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그를 잊기 시작하게 했다.

나타샤는 야위고 창백해졌으며 육체적으로 몹시 쇠약해져 모두가 그의 건강을 이야기했다. 나타샤는 그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때로는 죽음뿐 아니라 질병과 쇠약과 아름다움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갑자기 그를 압도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 팔을 유심히 살피며 너무 가늘어진 데 놀랐고, 아침에는 거울에 비친 수척하고 자신이 보기에도 가엾은 얼굴을 살펴보았다. 모든 일이 당연히 이래야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끔찍하게 슬펐다.

어느 날 나타샤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가 숨이 차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곧바로 아래층에 내려갈 이유를 만들어냈고, 그런 다음 힘을 시험하며 다시 계단을 뛰어올라 결과를 살폈다.

또 한번은 두냐샤를 불렀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두냐샤가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다시 불렀다. 전에 노래할 때 내던 깊은 가슴소리로 그를 부르고 자기 목소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나타샤는 몰랐고 알았더라도 믿지 않았겠지만, 그의 영혼을 덮어 뚫을 수 없다고 느껴지던 진흙층 아래에서는 여린 풀싹이 이미 돋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뿌리내리고 생명의 푸른빛으로 자신을 짓누르던 슬픔을 뒤덮어, 머지않아 그 슬픔이 더 이상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게 할 것이었다. 상처는 안에서부터 아물기 시작했다.

1월 말 마리야 공작 영애는 모스크바로 떠났다. 백작은 의사들의 진찰을 받도록 나타샤도 함께 가야 한다고 고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