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 제4장
《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제4장

《전쟁과 평화》 제15권 4장 삽화

뱌지마에서 교전한 뒤, 쿠투조프는 적을 압도하고 퇴로를 차단하려는 등의 열망에 사로잡힌 병력을 붙잡지 못했다. 그 뒤 달아나는 프랑스군과 그들을 추격하는 러시아군은 크라스노예까지 전투 없이 계속 이동했다. 프랑스군의 도주가 너무 빨라 추격하는 러시아군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기병과 포병의 말들이 쓰러졌고 프랑스군의 움직임에 관해 들어오는 정보는 전혀 믿을 만하지 않았다.

러시아군 병사들은 하루 27마일씩 이어진 행군으로 너무나 지쳐 그보다 더 빨리 갈 수 없었다.

러시아군의 탈진 정도를 깨달으려면 한 가지 사실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타루티노 뒤로 전사자와 부상자가 5천 명을 넘지 않았고 포로가 백 명도 되지 않았는데, 타루티노를 떠날 때 10만 명이던 러시아군이 크라스노예에는 겨우 5만 명만 데리고 도착했다.

러시아군의 신속한 추격은 프랑스군의 도주가 그들 군대에 그랬던 것만큼이나 아군을 파괴했다. 차이는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을 뒤덮은 것과 같은 파멸의 위협 없이 자발적으로 이동했고, 뒤에 남겨진 프랑스군 병자들은 적의 손에 떨어진 반면 뒤에 남겨진 러시아군 병자들은 자기네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나폴레옹 군대가 줄어든 주된 원인은 이동 속도였고, 러시아군도 그에 상응하여 감소했다는 사실이 이를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쿠투조프는 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군 장군들이 바라던 대로 프랑스군의 이동을 저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타루티노와 뱌지마에서 그랬듯, 아군의 이동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재촉하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집중했다.

그뿐 아니라 진격 속도로 말미암은 군대의 탈진과 엄청난 감소가 분명해진 뒤에는 속도를 늦추고 지체해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쿠투조프 앞에 나타났다. 러시아군의 목적은 프랑스군을 추격하는 것이었다. 프랑스군이 택할 길을 알 수 없었으므로 아군이 그들의 뒤를 바싹 밟을수록 더 먼 거리를 가야 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가야만 프랑스군이 지그재그로 가는 길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아군 장군들이 제안한 온갖 교묘한 기동은 군대를 새로 움직이고 행군 거리를 늘리는 것을 뜻했으나, 유일하게 합리적인 목표는 그 행군을 줄이는 것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빌나까지 이어진 원정 내내 쿠투조프의 활동은 이 목적을 향했다. 우연히 또는 간헐적으로가 아니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을 만큼 일관되게 그러했다.

쿠투조프는 추론이나 학문이 아니라 러시아인으로서의 온 존재로 모든 러시아 병사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알았다. 프랑스군은 패배했고 적은 달아나고 있으므로 몰아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계절에는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이 행군이 가져오는 모든 고난을 깨달았다.

하지만 공을 세우고 누군가를 놀라게 하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왕이나 공작을 사로잡고 싶어 하는 장군들, 특히 러시아군의 외국인 장군들에게는 모든 전투가 끔찍하고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야말로 싸워서 누군가를 정복할 때처럼 보였다. 한 달 동안 전투도 치르지 않았는데 절반으로 줄어든 병사들, 신발도 변변치 않고 옷도 부족하며 반쯤 굶주린 이 병사들을 움직일 기동 계획이 잇따라 제출될 때마다 쿠투조프는 어깨만 으쓱했다. 도주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순조롭게 가더라도 국경에 닿기 전까지는 이미 지나온 거리보다 더 먼 길을 가야 했다.

공을 세우고 기동하여 적을 무너뜨리고 퇴로를 차단하려는 열망은 러시아군이 프랑스군과 맞닥뜨릴 때마다 특히 두드러졌다.

크라스노예에서도 그랬다. 그곳에서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의 세 종대 가운데 하나를 만나리라 예상했지만, 대신 병력 1만 6천 명을 거느린 나폴레옹 자신과 맞닥뜨렸다. 파멸을 부르는 이 교전을 피하고 병력을 보존하려는 쿠투조프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라스노예에서는 지쳐버린 러시아군이 무너진 프랑스 병사 무리를 도륙하는 일이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톨은 “제1종대는 이러이러한 곳으로 행군한다”라는 등의 작전명령을 작성했다.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그 명령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뷔르템베르크의 외젠 공작은 언덕에서 달아나는 프랑스군 무리를 향해 포격하고는 오지 않는 증원군을 요구했다. 프랑스군은 러시아군을 피해 흩어져 밤중에 숲에 숨었고, 할 수 있는 대로 우회하여 도주를 계속했다.

밀로라도비치는 자기 부대의 병참 업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필요할 때면 결코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두려움도 오점도 없는 기사(chevalier sans peur et sans reproche)’*라고 부르던 그는 프랑스군과 담판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사절을 보내 항복을 요구하며 시간을 낭비했고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

* 두려움도 오점도 없는 기사.

“얘들아, 저 종대는 너희에게 주겠다.” 그는 병력 쪽으로 말을 타고 다가가 기병들에게 프랑스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병들은 박차와 군도로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말들을 재촉하며, 자기들에게 주어진 종대를 향해 힘겹게 속보로 나아갔다. 다시 말해 추위와 동상과 굶주림으로 뻣뻣해진 프랑스인 무리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주어진 종대는 오래전부터 간절히 그러고 싶었던 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크라스노예에서 그들은 포로 2만 6천 명과 수백 문의 대포, ‘원수봉’이라 불리는 지휘봉 하나를 빼앗았다. 그러고는 누가 공을 세웠는지를 놓고 다투며 자기들의 성과를 기뻐했다. 나폴레옹이나 적어도 원수 한 명 또는 어떤 영웅이라도 붙잡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했고, 그렇게 하지 못한 일을 서로에게, 특히 쿠투조프에게 탓했다.

정념에 사로잡힌 이 사람들은 가장 음울한 필연의 법칙에 휘둘리는 눈먼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영웅이라 여기고 가장 고귀하고 명예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쿠투조프를 비난하며 그가 원정 초부터 자신들이 나폴레옹을 무찌르지 못하게 했고, 자기 향락밖에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리넨 공장 지대에서는 지내기가 편안해서 진격하려 하지 않았고, 크라스노예에서는 나폴레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완전히 정신을 잃어 진격을 막았으며, 나폴레옹과 내통하거나 뇌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등의 말을 했다.

정념에 사로잡힌 동시대인들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후세와 역사도 나폴레옹을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반면, 외국인들은 쿠투조프를 교활하고 방탕하며 나약한 늙은 궁정인으로 묘사하고 러시아인들은 그를 막연한 무언가, 곧 러시아 이름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쓸모 있는 일종의 꼭두각시로 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