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 제16장
《전쟁과 평화》 · 제15권 1812-1813년

제16장

《전쟁과 평화》 제15권 16장 삽화

“나타샤는 나와 함께 지내려고 왔어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백작과 백작부인도 며칠 뒤면 오실 거예요. 백작부인은 끔찍한 상태예요. 하지만 나타샤 자신도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했어요. 모두가 나와 함께 오라고 고집했지요.”

“그래요, 지금 슬픔이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피에르는 나타샤에게 말했다. “우리가 구출된 바로 그날 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는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나타샤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대답하듯 두 눈이 커지고 빛났다.

“위로가 될 만한 무슨 말이나 생각이 있겠습니까?” 피에르가 말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토록 훌륭하고 생명력이 넘치던 아이가 왜 죽어야 했을까요?”

“그래요, 요즘 같은 때에는 믿음 없이 살아가기 힘들 거예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그래요, 그래요,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피에르가 다급히 말을 가로막았다.

“왜 맞는 말이지요?” 나타샤는 피에르의 눈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왜냐고 물을 수 있어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우리 앞에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나타샤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을 끝내기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묻는 눈길로 피에르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피에르가 말을 이었다. “우리를 다스리는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는 사람만이 백작부인이 겪은 상실과…… 당신이 겪은 상실을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타샤는 이미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갑자기 멈췄다. 피에르는 황급히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안드레이의 마지막 나날을 물었다.

피에르의 당혹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꼈다. 이제 자기의 모든 말과 행동을 판단하는 재판관이 있으며, 그의 판단이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의 판단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지금 말하면서 자기 말이 나타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를 생각했다. 일부러 나타샤의 마음에 들 만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든 나타샤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이런 경우에 흔히 그렇듯 마지못해, 안드레이 공작을 발견했을 때의 상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정으로 떨리는 피에르의 표정과 질문, 열렬하고 불안한 표정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떠올리기 두려워하던 세부까지 조금씩 말하게 했다.

“그래요, 그래요, 그래서요……?” 피에르는 온몸을 그에게 기울이고 열심히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말했다. “그래요, 그래요…… 그러니까 안드레이가 평온해지고 부드러워졌군요? 그는 온 영혼으로 늘 한 가지, 완전히 선해지는 것을 추구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그런 것이 있었다 해도—그의 탓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부드러워졌군요?…… 당신을 다시 만난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을까요.” 그는 갑자기 나타샤를 돌아보며 눈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타샤의 얼굴이 움찔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말할 것인지 말하지 않을지 잠깐 망설였다.

“그래요, 그것은 행복이었어요.” 이윽고 그는 깊은 가슴에서 나오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는 분명 행복이었어요.” 그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그이는…… 그이는…… 내가 방에 들어간 바로 그 순간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고 했어요…….”

나타샤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맞잡은 두 손을 무릎에 눌렀다. 그러고는 분명히 애써 자신을 억누르며 고개를 들고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를 떠날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감히 그분에 관해 물을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소냐가 그분이 우리와 함께 가고 있다고 말했어요.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몰랐고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그저 만나고 곁에 있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는 몸을 떨고 가쁜 숨을 쉬며 말했다.

나타샤는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게 한 채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계속 이야기했다. 여행길과 야로슬라블에서 지낸 3주 동안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이었다.

피에르는 입술을 벌리고 눈물 가득한 눈을 나타샤에게 고정한 채 이야기를 들었다. 들으면서도 안드레이 공작이나 죽음이나 그가 하는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말하는 동안 나타샤가 지금 겪는 고통 때문에 그저 그를 가엾게 여겼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눈물을 참으려고 눈살을 찌푸린 채 나타샤 곁에 앉아, 오라버니와 나타샤의 사랑이 마지막에 보낸 나날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나타샤는 고통스럽지만 기쁨도 깃든 그 이야기를 해야만 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주 사소한 세부와 영혼의 은밀한 비밀을 뒤섞어 이야기했으며 영원히 끝내지 못할 듯했다. 몇 차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했다.

문밖에서 어린 니콜라이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러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 데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게 전부예요. 모두 다 말했어요.” 나타샤가 말했다.

니콜라이가 들어오는 순간 그는 재빨리 일어나 커튼 뒤에 감춰진 문으로 거의 달려가다가 머리를 부딪쳤다. 아픔인지 슬픔인지 모를 신음 소리를 내며 방에서 뛰쳐나갔다.

피에르는 나타샤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왜 갑자기 세상에 혼자 남았다고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방에 들어온 조카에게 피에르의 주의를 돌려 상념에서 깨웠다.

감정이 부드러워진 그 순간, 아버지를 닮은 어린 니콜라이의 얼굴은 피에르의 마음을 너무나 움직였다. 그는 소년에게 입 맞춘 뒤 재빨리 일어나 손수건을 꺼내 들고 창가로 갔다.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작별을 고하려 했지만 그는 피에르를 보내주지 않았다.

“안 돼요. 나타샤와 나는 때로 새벽 두 시가 지나도록 잠들지 않으니 제발 가지 마세요.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할게요. 아래층으로 가세요. 우리도 곧 내려가겠어요.”

피에르가 방을 떠나기 전에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나타샤가 오라버니에 관해 저렇게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