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9권 1812년 / 제21장
《전쟁과 평화》 · 제9권 1812년

제21장

《전쟁과 평화》 제9권 21장 삽화

단호한 거절을 받은 페탸는 자기 방으로 가 문을 잠그고 서럽게 울었다.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로 말없이 침울하게 차를 마시러 들어왔을 때 모두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했다.

다음 날 황제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로스토프 집의 농노 하인 몇 명은 구경하러 가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날 아침 페탸는 어른처럼 보이려고 오랫동안 옷을 입고 머리와 옷깃을 매만졌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몸짓하며 어깨를 으쓱하다가 마침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모자를 집어 들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뒷문으로 집을 나갔다. 페탸는 황제가 있는 곳으로 곧장 가서 어느 시종에게 자신은 로스토프 백작이며 나이가 어리지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고, 젊음은 충성의 방해가 될 수 없으며 자기는 기꺼이…… 한다고 솔직히 설명하기로 했다. 황제는 언제나 시종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옷을 입는 동안 시종에게 할 훌륭한 말도 많이 준비해 두었다.

페탸는 나이가 어리다는 바로 그 사실 덕분에 황제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사람들이 자기의 어린 나이에 얼마나 놀랄지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옷깃과 머리를 다듬고 침착하고 신중하게 걸으며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멀리 갈수록, 크렘린으로 향하는 갈수록 불어나는 군중에게 주의를 빼앗길수록 어른답게 침착하고 신중하게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덜 기억했다. 크렘린에 가까워지자 이제는 짓밟히지 않으려고 위협하듯 단호히 팔꿈치를 내밀기까지 했다. 그러나 성삼위일체문 안에서는 애국적인 의도를 품고 온 그를 알지 못하는 듯한 사람들에게 벽으로 너무 심하게 밀려 모든 결심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야 했다. 마차들이 아치 밑에서 덜커덩거리며 지나가는 동안 멈춰 섰다. 페탸 곁에는 농부 여자 한 명과 하인 한 명, 상인 두 명과 제대한 병사 한 명이 있었다. 문 안에서 한동안 기다린 페탸는 모든 마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려고 단호하게 팔꿈치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밀어붙인 바로 앞의 여자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젊은 도련님, 왜 미는 거예요? 모두 서 있는 게 안 보여요? 대체 왜 밀어요?”

“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인도 팔꿈치를 힘껏 쓰기 시작해 페탸를 문간의 아주 더러운 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페탸는 땀이 나는 얼굴을 손으로 닦고, 집에서 어른처럼 보이려고 그토록 잘 정돈했지만 습기에 젖은 옷깃을 끌어 올렸다.

이제 자신이 더는 단정해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런 꼴로 시종들에게 다가가면 황제를 만나게 해 주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군중 때문에 옷차림을 바로잡거나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나가는 장군 가운데 한 명은 로스토프 가족의 지인이었다. 페탸는 도움을 청할까 생각했지만 남자답지 못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차가 모두 들어가자 군중은 페탸를 휩쓸고 앞으로 흘러 이미 사람으로 가득한 크렘린 광장으로 들어갔다. 광장뿐 아니라 비탈과 지붕까지 사람들이 있었다.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페탸는 크렘린 전체를 채운 종소리와 군중의 기쁜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한동안 군중은 덜 빽빽했지만 갑자기 모두 모자를 벗고 한 방향으로 앞으로 몰려갔다. 페탸는 숨을 거의 쉴 수 없을 만큼 짓눌렸고 모두 “만세! 만세! 만세!”라고 외쳤다. 그는 발끝으로 서고 사람들을 밀고 꼬집었지만 주위 사람들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모든 얼굴에는 똑같은 흥분과 열광이 떠올라 있었다. 페탸 곁에 선 상인의 아내는 흐느꼈고 눈물이 두 볼로 흘렀다.

“아버지! 천사님! 사랑하는 분!” 그녀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되풀이했다.

“만세!” 사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잠시 군중은 그대로 멈춰 섰다가 다시 앞으로 몰려갔다.

제정신이 아닌 페탸는 이를 악물고 눈을 사납게 부라리며 앞으로 밀고 나갔다. 바로 그 순간 자신과 다른 사람을 모두 죽일 준비가 된 듯 팔꿈치로 길을 내며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양쪽에서도 똑같이 사나운 얼굴을 한 사람들이 앞으로 밀고 모두 “만세!”라고 외쳤다.

‘황제라는 분은 바로 이런 분이구나!’ 페탸는 생각했다. ‘아니, 내가 직접 청원할 수는 없어. 너무 대담한 일이야.’ 그런데도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앞사람들의 등 사이로 붉은 천을 깐 좁은 빈 곳이 보였다. 바로 그때 군중이 뒤로 흔들렸다. 앞쪽 경찰이 행렬에 너무 가까이 몰려든 사람들을 뒤로 밀고 있었다. 황제가 궁전에서 성모승천 대성당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페탸는 뜻밖에 옆구리와 갈비뼈에 심한 충격을 받고 너무나 세게 짓눌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뒤통수에 회색 머리 다발이 있고 낡은 푸른색 사제복을 입은 성직자 같은 사람이 한 손으로 그의 겨드랑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군중이 누르는 것을 막고 있었다. 아마 교회 서기이자 성가대원인 듯했다.

“젊은 도련님을 짓밟았잖소!” 서기가 말했다. “무슨 짓들이오? 조심해요!…… 짓밟았어, 짓밟았다고!”

황제는 성모승천 대성당에 들어갔다. 군중은 다시 고르게 퍼졌고 서기는 창백하고 숨이 가쁜 페탸를 차르 대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여러 사람이 페탸를 가엾게 여겼고 갑자기 한 무리가 그쪽으로 몸을 돌려 주위를 에워쌌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그를 돌보고 외투 단추를 풀어 대포의 높은 받침대에 앉힌 뒤, 그를 짓밟은 사람들이 누구든 그들을 꾸짖었다.

“저러다 사람이 쉽게 죽겠어! 대체 무슨 짓들이야? 사람을 죽이려고 해! 가엾어라, 종이처럼 하얗잖아!” 여러 목소리가 들렸다.

페탸는 곧 정신을 차렸다.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통증도 사라졌다. 잠시 불쾌한 일을 겪은 대가로 대포 곁에 자리를 얻었고, 돌아오는 황제를 그곳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이제는 청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황제를 보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었다.

성모승천 대성당에서는 황제의 도착을 맞는 기도와 튀르키예와의 강화에 감사하는 기도를 합친 예배가 진행되었다. 밖의 군중은 흩어졌고 크바스와 생강 과자, 페탸가 특히 좋아하는 양귀비씨 사탕을 파는 행상인들이 나타났다. 평범한 대화도 다시 들렸다. 한 상인의 아내는 찢어진 숄을 보여 주며 얼마를 주고 샀는지 말했고, 다른 여자는 이제 모든 비단 제품이 비싸졌다고 했다. 페탸를 구한 서기는 어느 관리에게 그날 주교와 함께 예배를 집전하는 사제들을 이야기했다. 서기는 페탸가 이해하지 못하는 ‘전원 참석’이라는 말을 몇 차례 썼다. 젊은 시민 두 명은 견과류를 까는 농노 처녀들에게 농담을 했다. 이 모든 대화, 특히 처녀들과 나누는 농담은 페탸 또래라면 유난히 매력을 느꼈을 법했지만 지금은 관심이 없었다. 그는 높은 자리인 대포 받침대에 앉아 황제와 그를 향한 사랑을 생각하며 전과 다름없이 흥분했다. 짓눌릴 때 겪은 고통과 두려움이 황홀감과 합쳐져 이 순간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했다.

갑자기 튀르키예와 강화한 것을 축하하는 대포 발사 소리가 강둑에서 들렸고 군중은 포격을 보려고 그쪽으로 거세게 몰려갔다. 페탸도 달려가려 했지만 젊은 도련님을 보호하게 된 서기가 막았다. 포격이 계속되는 동안 장교와 장군과 시종들이 대성당에서 뛰어나왔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느긋하게 나왔다. 사람들이 다시 모자를 벗고 대포를 보러 달려간 이들도 돌아왔다. 마침내 군복을 입고 띠를 두른 남자 네 명이 대성당 문에서 나왔다. “만세! 만세!” 군중이 다시 외쳤다.

“어느 분이에요? 어느 분?” 페탸는 주위 사람들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모두 너무 흥분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쁨의 눈물이 가득해 잘 보이지 않는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을 황제라고 생각하고 모든 열광을 그에게 쏟았다. 실제로는 황제가 아니었지만 미친 듯이 “만세!”라고 외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군대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군중은 황제의 뒤를 따라 궁전까지 갔다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고 페탸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데도 집에 가지 않고, 황제가 식사하는 동안 줄었지만 여전히 상당한 군중과 함께 궁전 앞에 서 있었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며 자신도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기다렸다. 황제와 식사하러 현관에 도착하는 귀인들과 창문 너머로 이따금 보이는 식탁 시중을 드는 궁정 하인들을 똑같이 부러워했다.

황제가 식사하는 동안 발루예프가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백성들이 아직도 폐하를 다시 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 황제는 비스킷을 씹으며 일어나 발코니로 나왔다. 페탸를 포함한 사람들이 발코니로 몰려갔다.

“천사님! 사랑하는 분! 만세! 아버지!……” 군중과 페탸가 외쳤다. 여자들과 마음이 여린 남자들, 그중 페탸는 다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황제가 손에 든 비스킷의 큰 조각 하나가 부러져 발코니 난간에 떨어졌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짧은 외투 차림의 마부가 앞으로 뛰어들어 낚아챘다. 군중 몇 사람이 마부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본 황제는 비스킷을 한 접시 가져오게 해 발코니에서 아래로 던지기 시작했다. 페탸의 눈은 충혈되었다. 짓밟힐 위험 때문에 더욱 흥분해 비스킷을 향해 돌진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황제의 손에서 나온 비스킷을 반드시 가져야 했고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앞으로 뛰어 비스킷을 잡으려던 노파를 쓰러뜨렸다. 노파는 땅에 누워서도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비스킷을 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페탸는 무릎으로 그 손을 밀어내고 비스킷 하나를 움켜쥐었다. 너무 늦을까 두려운 듯 이미 쉰 목소리로 다시 “만세!”라고 외쳤다.

황제는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 군중 대부분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봐!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정말 그렇게 됐어!” 여러 사람이 기뻐하며 말했다.

페탸는 행복했지만 그날의 모든 즐거움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집에 가야 해서 슬펐다. 크렘린에서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열다섯 살이며 역시 연대에 들어가려는 친구 오볼렌스키를 찾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페탸는 군 복무를 허락하지 않으면 달아나겠다고 단호하고 확고하게 선언했다. 다음 날 일리야 로스토프 백작은 아직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지만 페탸가 가장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복무하게 할 방법을 알아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