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9권 1812년 / 제3장
《전쟁과 평화》 · 제9권 1812년

제3장

《전쟁과 평화》 제9권 3장 삽화

한편 러시아 황제는 한 달이 넘도록 빌나에 머물며 군대를 사열하고 기동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하고 황제도 준비하려고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전쟁에 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체적인 작전 계획도 없었다. 황제가 총사령부에 한 달 동안 머무른 뒤에는 제안된 여러 계획 사이의 동요가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세 군에는 저마다 총사령관이 있었지만 전군을 통솔하는 최고사령관은 없었고, 황제 자신도 그 책임을 맡지 않았다.

황제가 빌나에 오래 머물수록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전쟁 준비를 덜 했다. 군주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든 노력은 그저 황제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다가오는 전쟁을 잊게 하는 데 쏠린 듯했다.

6월, 폴란드의 대귀족들과 궁정 신하들, 황제 자신이 마련한 수많은 무도회와 축제가 열린 뒤, 시종 부관 가운데 한 폴란드인이 황제를 위해 부관들이 만찬과 무도회를 열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모두가 그 생각을 열렬히 받아들였다. 황제도 동의했다. 부관들은 돈을 모금했다. 황제의 마음에 가장 든다고 여겨지는 부인이 여주인 역할을 맡도록 초대받았다. 빌나 지방의 지주인 베니히센 백작이 자기 시골 저택을 축제 장소로 내놓았고, 6월 13일에 베니히센 백작의 시골 영지 자크레트에서 무도회와 만찬, 보트 경주와 불꽃놀이를 열기로 정했다.

나폴레옹이 네만강을 건너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의 전위대가 카자크들을 몰아내며 러시아 국경을 넘은 바로 그날, 알렉산드르는 베니히센의 시골 저택에서 부관들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해 저녁을 보냈다.

명랑하고 찬란한 축제였다. 이런 일에 정통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성이 이토록 한자리에 많이 모인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군주를 따라 페테르부르크에서 빌나까지 온 다른 러시아 귀부인들 가운데 베주호바 백작부인도 있었다. 그녀는 풍만한 이른바 러시아형 미모로 세련된 폴란드 귀부인들을 무색하게 했다. 황제는 그녀를 알아보고 함께 춤추는 영예를 베풀었다.

아내를 모스크바에 남겨 두고 당분간 홀몸(en garçon)이라고 스스로 표현한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도 그곳에 있었다. 그는 부관이 아니었지만 행사 비용으로 거액을 냈다. 보리스는 이제 부유하고 높은 영예를 얻은 사람이어서 더는 후원자를 찾지 않았으며, 또래의 최고위층 인사들과 대등한 처지에 섰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엘렌을 빌나에서 다시 만났지만 과거의 일은 떠올리지 않았다. 엘렌은 매우 중요한 인물의 총애를 누리고 있었고 보리스도 얼마 전에 결혼했으므로 두 사람은 오랜 친한 친구처럼 만났다.

자정에도 춤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땅한 상대가 없던 엘렌은 자신이 먼저 보리스에게 마주르카를 함께 추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세 번째 쌍이었다. 보리스는 금실 자수를 놓은 어두운 색의 얇은 망사 드레스 위로 드러난 엘렌의 눈부신 맨어깨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옛 지인들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 동시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남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같은 방에 있는 황제를 한순간도 관찰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황제는 춤추지 않고 문간에 서서 이따금 한 쌍씩 멈춰 세우며 오직 그만이 할 줄 아는 다정한 말을 건넸다.

마주르카가 시작되자 보리스는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수행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발라셰프 시종무관이 황제에게 다가가, 황제가 어느 폴란드 귀부인과 이야기하는 동안 궁정 예법을 어기고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귀부인과 이야기를 마친 황제는 묻는 듯 발라셰프를 바라보았다. 발라셰프가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고 귀부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그에게 돌아섰다. 발라셰프가 말을 꺼내자마자 황제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황제는 그의 팔을 잡고 함께 방을 가로질렀다. 양쪽 사람들이 길을 내느라 저도 모르게 일곱 야드 폭의 통로가 생겼다. 군주가 발라셰프와 함께 나갈 때 보리스는 흥분한 아락체예프의 얼굴을 보았다. 아락체예프는 눈썹 아래로 황제를 바라보며 붉은 코로 킁킁거리고, 황제가 자신에게 말을 걸기를 기대하는 듯 군중 속에서 앞으로 나섰다. 보리스는 아락체예프가 발라셰프를 질투하며 중요한 소식이 자신을 통하지 않고 황제에게 전해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황제와 발라셰프는 아락체예프를 알아보지 못한 채 불을 밝힌 정원으로 나갔다. 아락체예프는 군도를 잡고 성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약 스무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보리스는 마주르카의 동작을 밟는 내내 발라셰프가 무슨 소식을 가져왔는지, 어떻게 남들보다 먼저 알아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애를 태웠다. 두 귀부인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야 하는 순서가 되자, 그는 베란다로 나간 듯한 포토츠카 백작부인을 고르겠다고 엘렌에게 속삭였다. 그러고는 쪽마루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가로질러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갔다. 그곳에서 베란다로 돌아오는 발라셰프와 황제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물러날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몸을 떨며 고개를 숙인 채 공손히 문설주에 바싹 붙었다.

황제는 개인적으로 모욕당한 사람처럼 흥분하여 다음 말로 이야기를 끝내고 있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러시아에 들어오다니! 무장한 적군 한 명이라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한 나는 강화하지 않겠다!” 보리스가 보기에는 황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듯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한 방식에는 만족했지만 보리스가 엿들은 것은 못마땅해했다.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하라!” 황제가 얼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보리스는 그 말이 자신에게 한 것임을 알아듣고 눈을 감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황제는 무도회장으로 다시 들어가 약 30분 동안 더 머물렀다.

이리하여 보리스는 프랑스군이 네만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춰진 많은 일이 대개 자신에게는 알려진다는 사실을 몇몇 중요 인사에게 보여 줄 수 있었고, 그 수단으로 그들의 평가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올랐다.

 

프랑스군이 네만강을 건넜다는 뜻밖의 소식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한 달을 기다린 뒤, 그것도 무도회장에서 전해졌기에 특히 충격적이었다. 황제는 처음 소식을 받았을 때 분노와 울분에 사로잡혀 자기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면서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문구를 찾아냈고, 그 말은 이후 유명해졌다. 그날 밤 두 시에 귀가한 황제는 비서 시시코프를 불러 군대에 내릴 명령과 살티코프 육군원수 공작에게 보낼 칙서를 작성하게 했다. 그는 무장한 프랑스인 한 명이라도 러시아 땅에 남아 있는 동안은 강화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반드시 넣으라고 했다.

다음 날 나폴레옹에게 다음 편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나의 형제여(Monsieur mon frère),

어제 나는 폐하와 맺은 약속을 충실히 지켰는데도 폐하의 군대가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방금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공문을 받았는데, 로리스통 백작은 쿠라긴 공작이 여권을 요구한 때부터 폐하께서 나와 전쟁 상태에 있다고 여기셨다는 것을 이 침략의 이유로 알려 왔습니다. 바사노 공작이 여권 발급을 거부하면서 내세운 이유 때문에 그것이 침략의 구실이 될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대사는 스스로 밝혔듯이 그런 요구를 할 권한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그 행동을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기는지 알리고 자기 자리에 머무르라고 명했습니다. 폐하께서 이런 오해 때문에 우리 인민들의 피를 흘리려는 뜻이 없고 러시아 영토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는 데 동의하신다면, 나는 이미 일어난 일을 없었던 것으로 여기겠으며 우리 사이의 이해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폐하, 나는 내 쪽에서는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은 공격을 물리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류를 또 다른 전쟁의 재앙에서 지키는 일은 여전히 폐하께 달려 있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서명) 알렉산드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