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그 편지가 아직 황제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때,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바클라이는 군주가 튀르키예에 관해 직접 묻기 위해 볼콘스키를 만나고 싶어 하며, 안드레이 공작은 그날 저녁 여섯 시에 베니히센의 숙소로 출두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바로 그날 나폴레옹이 군대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였다는 소식이 황제의 숙소에 전해졌다.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진 소식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미쇼 대령이 황제와 함께 드리사의 방어 시설을 말을 타고 돌아본 뒤, 프프ويل이 건설하고 지금까지 나폴레옹의 파멸을 보장할 전술 과학의 걸작(chef-d’œuvre)으로 여겨지던 이 요새화된 숙영지가 실은 러시아군의 파멸을 불러올 터무니없는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강 바로 기슭에 있는 중간 크기의 시골 지주 저택인 베니히센의 숙소에 도착했다. 베니히센도 황제도 없었지만 황제의 부관 체르니셰프가 볼콘스키를 맞았다. 그는 황제가 베니히센 장군과 파울루치 후작을 데리고 그날 두 번째로 드리사 숙영지의 방어 시설을 살피러 갔다고 알려 주었다. 그 시설이 적합한지를 두고 심각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체르니셰프는 첫 번째 방 창가에서 프랑스 소설을 손에 들고 앉아 있었다. 그 방은 아마 음악실이었던 듯했다. 아직도 오르간이 있었고 그 위에는 양탄자 몇 장이 쌓여 있었으며, 한쪽 구석에는 베니히센 부관의 접이식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부관도 그곳에서 둘둘 만 침구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일 때문인지 잔치 때문인지 몹시 지친 것이 분명했다. 방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정면 문은 예전 응접실로 곧장 이어졌고 오른쪽 문은 서재로 통했다. 첫 번째 문 너머로 독일어로 이야기하고 이따금 프랑스어를 섞는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의 뜻에 따라 그 응접실에 모인 것은 군사회의가 아니었다. 황제는 불분명한 상태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곤란을 생각해 견해를 듣고 싶은 몇 사람을 불렀을 뿐이었다. 전쟁회의가 아니라 황제 개인에게 몇 가지 문제를 밝혀 주려는 반쪽짜리 회의와 같은 것이었다. 이 회의에는 스웨덴 장군 아르므펠트, 시종무관 볼초겐, 나폴레옹이 프랑스에서 도망친 신민이라 불렀던 빈칭게로데, 미쇼, 톨, 군인이 전혀 아닌 슈타인 백작, 그리고 안드레이 공작이 듣기로 모든 일을 움직이는 중심인 프프ويل 자신이 초대되었다. 프프ويل은 안드레이 공작에 이어 곧 도착했고 응접실로 지나가다가 체르니셰프와 이야기하려고 잠시 멈췄으므로, 안드레이 공작에게는 그를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러시아 장군의 군복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가장복처럼 몸에 맞지 않게 입은 프프ويل은 처음 보는데도 안드레이 공작의 눈에 낯익어 보였다. 그에게는 안드레이 공작이 1805년에 본 바이로터, 마크, 슈미트와 다른 많은 독일인 이론가 장군의 모습이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전형적이었다. 다른 이들의 모든 특성이 이토록 한 사람 안에 모인 독일인 이론가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프프ويل은 키가 작고 아주 말랐지만 뼈대가 굵고 거칠고 튼튼한 체격이었으며, 엉덩이가 넓고 어깨뼈가 튀어나왔다. 얼굴에는 주름이 많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관자놀이 앞쪽만 급히 매끈하게 빗은 것이 분명했지만 뒤쪽에는 우스꽝스러운 작은 다발들이 삐죽 솟아 있었다. 그는 넓은 방 안의 모든 것이 두렵기라도 한 듯 불안하고 성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들어왔다. 군도를 어색하게 받쳐 든 채 체르니셰프에게 독일어로 황제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가능한 한 빨리 방들을 지나가 인사와 절차를 끝내고, 자신에게 익숙한 지도 앞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고 싶은 것이 보였다. 그는 체르니셰프의 대답에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군주가 자기 이론에 따라 자신이 계획한 방어 시설을 살피고 있다는 말을 듣자 조소하듯 웃었다. 독일인들이 자신 있게 말할 때 그러듯 낮고 굵은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무언가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자로군.”이거나 “모든 일을 망칠 테야.” 또는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오겠군.”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정확히 듣지 못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체르니셰프가 그를 프프ويل에게 소개하면서 안드레이 공작이 전쟁을 그토록 성공적으로 끝낸 튀르키예에서 막 돌아왔다고 말했다. 프프ويل은 안드레이 공작을 보았다기보다 거의 그 너머를 흘끗 보고는 웃으며 “아주 훌륭한 전술 전쟁이었겠군.”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경멸하듯 웃으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짜증스럽게 빈정거리는 경향이 있는 프프ويل은 그날 유난히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 감히 자기 숙영지를 살펴보고 비판했다는 사실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프프ويل과 나눈 이 짧은 만남과 아우스터리츠의 경험 덕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파악했다. 프프ويل은 가망 없을 만큼 변함없이 자신만만하고 순교에 이를 정도로 자신을 확신하는 부류였다. 독일인만이 그럴 수 있었다. 독일인만이 추상적인 관념, 곧 절대 진리를 안다고 전제하는 과학을 근거로 자신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정신과 육체를 통틀어 자신이라는 개인이 남녀 모두에게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만만하다. 영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잘 조직된 국가의 시민이므로 자신만만하고, 영국인으로서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며 영국인으로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의심할 여지 없이 옳다고 안다. 이탈리아인은 쉽게 흥분하고 자신과 남들을 쉽게 잊기 때문에 자신만만하다. 러시아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으면서 무엇이든 알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만하다. 독일인의 자신감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나쁘고 강하며 혐오스럽다. 자신이 발명했지만 자기에게는 절대 진리인 과학, 곧 진리를 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프프ويل은 분명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하나의 과학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전쟁사에서 추론한 사선 기동 이론이었다. 더 최근 전쟁사에서 접하는 모든 일은 그에게 터무니없고 야만적인 것으로 보였다. 양측이 너무나 많은 실수를 저지른 기괴한 충돌이었으므로 그런 전쟁은 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고 이론에 맞지 않았기에 과학의 자료가 될 수도 없었다.
1806년 프프ويل은 예나와 아우어슈테트의 패배로 끝난 원정 계획에 책임이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 전쟁의 재앙에서 자기 이론이 틀릴 수 있다는 증거를 조금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이론에서 벗어난 일들만이 모든 재앙의 유일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했고, 특유의 기뻐하는 조소로 “거봐, 내가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하곤 했다. 프프ويل은 이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이론의 목적인 실제 적용을 보지 못하는 이론가였다. 이론을 사랑했으므로 실무적인 것은 모두 미워하고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실패조차 기뻐했다. 실제 상황에서 이론을 벗어나 발생한 실패는 자기 이론의 정확성만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이 잘못될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며 그렇게 되는 것을 불쾌해하지 않는 사람의 태도로 안드레이 공작과 체르니셰프에게 현재 전쟁에 관해 몇 마디 했다. 뒤에서 삐죽 솟은 빗지 않은 머리카락과 급히 빗은 관자놀이의 머리카락이 그런 태도를 가장 웅변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다음 방으로 들어갔고 곧 낮고 불평하는 목소리가 그곳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