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4권 1806년 / 제6장
《전쟁과 평화》 · 제4권 1806년

제6장

《전쟁과 평화》 제4권 6장 삽화

요즘 피에르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모스크바에서도 그들의 집에는 언제나 손님이 가득했다. 결투가 있은 다음 날 밤, 그는 자기 침실로 가지 않고 자주 그러했듯 아버지의 방, 곧 베주호프 백작이 죽은 그 거대한 방에 머물렀다.

그는 일어난 모든 일을 잊고 잠들 생각으로 소파에 누웠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감정과 생각과 기억의 폭풍이 갑자기 밀려들어 잠들 수도, 한자리에 머물 수도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방 안을 오가야 했다.

어느 순간에는 결혼 초의 아내가 맨 어깨를 드러내고 나른하고 정열적인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연회에서 보았던 돌로호프의 잘생기고 뻔뻔하며 냉혹하고 조롱하는 얼굴이 그녀 곁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눈 위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질 때의 창백하고 떨리며 고통스러워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그 여자의 정부를 죽였다. 그래, 내 아내의 정부를 죽였어. 그렇다, 바로 그 일이야! 그런데 왜? 어떻게 내가 그런 짓을 하게 되었지?’ ‘그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내 죄가 무엇이지?’ 그는 물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 여자와 결혼하고, 나 자신과 그 여자를 속인 죄다.’ 그는 바실리 공작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 그토록 입 밖에 내기 어려웠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했던 순간을 생생히 떠올렸다. ‘모든 것이 거기서 시작됐어! 그때도 느꼈지.’ 그는 생각했다. ‘그때도 그것이 진실이 아니며, 내게는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다고 느꼈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그는 신혼여행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혔다. 특히 생생하고 굴욕적이며 부끄럽게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정오가 다 되어 비단 실내복 차림으로 침실에서 서재로 나왔을 때 총지배인이 그곳에 있었다. 총지배인은 정중히 몸을 굽히고 피에르의 얼굴과 실내복을 바라보며, 주인의 행복을 공손히 이해한다는 듯 살짝 미소 지었다.

‘나는 그 여자를 얼마나 자주 자랑스러워했던가. 그 위풍당당한 아름다움과 사교계에서의 세련된 처신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던가.’ 그는 생각했다. ‘그 여자가 페테르부르크의 온 사교계를 맞아들이던 내 집을,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을 자랑스러워했지. 겨우 이런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거야! 그때 나는 내가 그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그 여자의 성격을 생각할 때마다, 그 변함없는 침착함과 자기만족, 아무런 관심도 욕망도 없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라고 얼마나 자주 되뇌었던가. 그러나 모든 비밀은 그 여자가 타락한 여자라는 끔찍한 진실에 있었어. 이제 그 무서운 말을 나 자신에게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아나톨은 그 여자에게 돈을 빌리러 와서 맨 어깨에 입을 맞추곤 했지. 그 여자는 돈은 주지 않으면서 입맞춤은 허락했어. 아버지가 농담으로 질투를 부추기려 하자, 자기는 질투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며 태연히 웃었지. 그 여자는 나를 두고 “저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하곤 했어. 어느 날 나는 임신한 징후가 있는지 물었다. 그 여자는 경멸하듯 웃으며, 아이를 낳고 싶어 할 만큼 바보가 아니고 나와의 사이에서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어.’

그러자 피에르는 최고 귀족사회에서 자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게, 그 여자의 생각이 얼마나 거칠고 무뚝뚝했으며 입버릇이 얼마나 천박했는지를 떠올렸다.

“내가 그렇게 바보인 줄 알아요?……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저리 가요(Allez-vous promener).” 그 여자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젊은 남녀와 나이 든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도, 피에르는 자기가 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저리 가요.”

“그래,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어.” 그는 혼잣말을 했다. “그 여자가 타락한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 자신에게조차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거야. 그런데 지금 돌로호프는 억지로 웃으며 눈 속에 앉아, 어쩌면 죽어 가면서도 억지 허세로 내 후회를 받아들이고 있지!”

피에르는 흔히 나약한 성격이라고 부르는 겉모습과 달리,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 속을 털어놓을 상대를 찾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고통을 혼자 삭였다.

“모두, 모두 그 여자 탓이야.” 그는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지지? 나는 왜 그 여자와 나 자신을 묶었을까? 왜 거짓말이며 거짓말보다 더 나쁜 ‘당신을 사랑합니다(Je vous aime)’라는 말을 했을까? 죄는 내게 있으니 견뎌야 해…… 무엇을? 내 이름에 묻은 오명? 평생의 불행? 아,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생각했다. “이름과 명예에 묻은 오명은 나 자신과는 별개의 일이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루이 16세는 불명예스럽고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피에르는 생각했다. ‘그를 처형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관점에서 옳았고,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며 그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 역시 자기 관점에서는 옳았다. 그 뒤 로베스피에르는 폭군이라는 이유로 목이 잘렸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아무도 아니다! 그러나 살아 있다면 살아라. 내일이면 죽는다. 한 시간 전에 나도 죽을 수 있었다. 영원에 견주면 삶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데, 스스로를 괴롭힐 가치가 있는가?’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여기는 순간, 아내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특히 자기가 거짓된 사랑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했던 순간의 모습이었다. 피가 심장으로 몰려드는 것을 느낀 그는 다시 일어나 방 안을 오가며 손에 잡히는 것을 모조리 부수고 찢고 싶어졌다. “나는 왜 그 여자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을까?” 그는 계속 되뇌었다. 열 번째로 이 말을 반복했을 때 몰리에르의 “대체 그 악마는 그 갤리선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Mais que diable allait-il faire dans cette galère?)”라는 구절이 떠올랐고, 그는 자기 자신을 비웃기 시작했다.

* “대체 그 악마는 그 갤리선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밤이 되자 그는 시종을 불러 페테르부르크로 갈 짐을 꾸리라고 했다. 이제 아내와 어떻게 말을 나눌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이튿날 떠나기로 결심하고, 영원히 헤어지겠다는 뜻을 알리는 편지를 남기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시종이 커피를 들고 방에 들어왔을 때, 피에르는 펼친 책을 손에 든 채 긴 의자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잠에서 깬 그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깨닫지 못한 듯 놀란 표정으로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작부인께서 각하께서 집에 계시는지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시종이 말했다.

피에르가 무슨 대답을 보낼지 결정하기도 전에 백작부인이 직접 들어왔다. 은실로 수놓은 흰 공단 실내복을 입고 머리는 단정하고 수수하게 꾸몄다. 거대한 두 갈래 땋은 머리를 아름다운 머리 둘레에 왕관처럼 두 겹으로 감고 있었다. 약간 튀어나온 대리석 같은 이마에 분노의 주름이 잡힌 것 말고는, 그녀는 침착하고 위엄이 넘쳤다. 흔들림 없는 평정을 유지한 채 시종 앞에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투 소식을 알고 그 일을 따지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시종이 커피 도구를 내려놓고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피에르는 안경 너머로 겁먹은 듯 그녀를 바라보며, 사냥개들에게 둘러싸여 귀를 뒤로 젖히고 적 앞에 꼼짝 않고 웅크린 토끼처럼 책을 계속 읽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고 느끼고는 다시 소심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앉지도 않고 경멸하는 미소를 지은 채 시종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자,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신 거죠? 알고 싶군요.” 그녀가 엄하게 물었다.

“나 말이오? 내가 무슨……” 피에르가 말을 더듬었다.

“이제 영웅이 되신 모양이군요? 대체 그 결투는 무엇 때문이었죠? 무엇을 증명하려 했나요? 무엇을요? 묻고 있잖아요.”

피에르는 긴 의자 위에서 무겁게 몸을 돌리고 입을 열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으시겠다면 내가 말해 드리죠……” 엘렌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남들이 하는 말을 모조리 믿어요. 누군가가……” 엘렌은 웃었다. “돌로호프가 내 정부라고 말하니까,” 그녀는 다른 말과 다름없이 ‘정부(아망, amant)’라는 말을 거칠고 태연하게 프랑스어로 내뱉었다. “당신은 그것을 믿었죠! 그래서 무엇을 증명했나요? 그 결투가 증명한 것이 무엇이죠? 당신이 바보라는 것(que vous êtes un sot)이에요. 하지만 그건 누구나 알고 있었죠.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모스크바의 모든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겠죠. 모두가 당신이 술에 취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까닭 없이 질투한 남자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고 말할 거예요.” 엘렌은 목소리를 높이며 점점 흥분했다. “당신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남자에게 말이에요……”

“흠…… 흠……!” 피에르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얼굴을 찌푸린 채,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그 사람이 내 정부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었죠? 왜죠? 내가 그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해서요? 당신이 좀 더 영리하고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이었다면, 나는 당신과 있는 편을 더 좋아했을 거예요.”

“내게 말하지 마시오…… 부탁이오.” 피에르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왜 말을 못 하죠? 나는 마음대로 말할 수 있어요. 당신 같은 남편을 두고도 정부들(des amants)을 두지 않을 아내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두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엘렌이 말했다.

피에르는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눕혔다. 그 순간 그는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 고통을 끝내려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너무도 끔찍했다.

“우리는 헤어지는 편이 좋겠소.” 그가 끊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거요? 좋아요. 하지만 내게 재산을 주어야죠.” 엘렌이 말했다. “별거라니! 그 말로 내가 겁먹을 줄 아세요?”

피에르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죽여 버리겠어!” 그는 외쳤다. 전에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힘으로 탁자의 대리석 상판을 움켜쥐고 높이 치켜든 채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엘렌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뛰어 피했다. 피에르에게서 아버지의 기질이 드러났다. 그는 광란이 주는 매혹과 환희를 느꼈다. 대리석 판을 내던져 깨뜨리고, 두 팔을 뻗어 그녀에게 덮쳐 들며 온 집안이 공포에 떨 만큼 무서운 목소리로 “나가!”라고 외쳤다. 엘렌이 방에서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피에르가 무슨 짓을 했을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일주일 뒤 피에르는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이루는 대러시아의 모든 영지를 관리할 전권을 아내에게 넘기고 혼자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