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4권 1806년 / 제4장
《전쟁과 평화》 · 제4권 1806년

제4장

《전쟁과 평화》 제4권 4장 삽화

피에르는 돌로호프와 니콜라이 로스토프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여느 때처럼 그는 많이 먹고 열심히 술을 마셨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 아는 사람들은 그날 그에게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식사 내내 말이 없었고, 눈을 깜박이며 얼굴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거나,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고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콧등만 자꾸 문질렀다. 얼굴에는 침울하고 어두운 빛이 감돌았다. 그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괴롭고 풀리지 않는 어떤 문제에 온통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그를 괴롭히는 풀리지 않는 문제는 모스크바에서 사촌인 공작부인이 그의 아내와 돌로호프의 친밀한 관계를 두고 넌지시 한 말과, 그날 아침 받은 익명의 편지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익명 편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열하고 조롱 섞인 어조로, 피에르는 안경을 쓰고도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아내와 돌로호프의 관계는 오직 그에게만 비밀이라고 적혀 있었다. 피에르는 공작부인의 암시도 편지의 내용도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맞은편에 앉은 돌로호프를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돌로호프의 잘생기고 오만한 눈과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피에르는 영혼 속에서 무언가 끔찍하고 흉측한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아내의 과거와 돌로호프와의 관계를 자기도 모르게 되짚어 보던 피에르는, 편지에 적힌 말이 사실일 수도 있으며, 적어도 그 대상이 자기 아내만 아니었다면 사실처럼 보일 수도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원정을 마치고 전의 지위를 완전히 회복한 돌로호프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자신을 찾아왔던 일을 무심결에 떠올렸다. 돌로호프는 술친구로 지낸 피에르와의 친분을 이용해 곧장 그의 집으로 찾아왔고, 피에르는 그를 집에 묵게 하며 돈도 빌려주었다. 엘렌이 돌로호프가 그들 집에 머무는 것을 웃으며 못마땅해했던 일, 돌로호프가 피에르 앞에서 그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냉소적으로 찬양했던 일, 그리고 그때부터 그들이 모스크바에 올 때까지 단 하루도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던 일을 피에르는 떠올렸다.

‘그래, 그는 아주 잘생겼지.’ 피에르는 생각했다. ‘나는 그를 알아. 내가 그를 위해 애쓰고 친구로 대해 주고 도와주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내 이름을 더럽히고 나를 조롱하는 일이 그에게는 각별히 즐거울 거야.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를 속이는 즐거움에 그것이 얼마나 짜릿한 맛을 더해 줄지 나는 알고도 남아. 그래, 사실이라면 말이지.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아. 믿을 권리도 없고, 믿을 수도 없어.’ 그는 돌로호프가 잔인해질 때 짓던 표정을 떠올렸다. 경찰관을 곰에게 묶어 함께 물속에 처넣었을 때나, 아무 이유 없이 어떤 남자에게 결투를 신청했을 때, 권총으로 역참 마부의 말을 쏘았을 때 짓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돌로호프는 피에르를 바라볼 때도 자주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는 난폭한 자야.’ 피에르는 생각했다. ‘사람 하나 죽이는 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모두가 자기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할 테고, 그것이 즐겁겠지. 내가 자기를 두려워한다고도 생각할 거야. 사실 나는 그가 두렵고.’ 그러자 다시 영혼 속에서 무언가 끔찍하고 흉측한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돌로호프와 데니소프와 로스토프는 피에르의 맞은편에 앉아 무척 유쾌해 보였다. 로스토프는 한 사람은 호방한 경기병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악명 높은 결투광이자 난봉꾼인 두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이따금 피에르를 비웃듯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겨 넋이 나간 거구의 피에르는 만찬 자리에서 몹시 눈에 띄었다. 로스토프가 피에르에게 적의를 품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경기병인 그의 눈에 피에르는 부유한 민간인이자 미인의 남편, 한마디로 늙은 여자 같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고, 둘째, 생각에 빠져 넋이 나간 피에르가 로스토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의 인사에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제의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가 제창되었을 때에도 생각에 잠긴 피에르는 일어서지도, 잔을 들지도 않았다.

“지금 뭐 하는 거요?” 로스토프가 격분에 가까운 흥분으로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황제 폐하의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라는 게 들리지 않소?”

피에르는 한숨을 쉬고 순순히 일어나 잔을 비운 뒤, 모두가 다시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선량한 미소를 띠고 로스토프를 돌아보았다.

“아, 당신인 줄 몰랐군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로스토프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다시 인사를 나누는 게 어때?” 돌로호프가 로스토프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바보 같은 자야!” 로스토프가 말했다.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편에게는 잘 보여야 하는 법이지.” 데니소프가 말했다.

피에르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자, 이제 아름다운 여인들의 건강을 위하여!” 돌로호프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으나 입가에는 미소를 감춘 채 잔을 들고 피에르를 향해 돌아섰다.

“사랑스러운 여인들과 그 연인들의 건강을 위하여, 피에르!” 그가 덧붙였다.

피에르는 눈을 내리깔고 돌로호프를 쳐다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은 채 잔을 비웠다. 쿠투조프에게 바치는 칸타타의 인쇄물을 나누어 주던 하인이 주요 손님 가운데 한 사람인 피에르 앞에도 한 부를 놓았다. 피에르가 막 집으려 하자 돌로호프가 몸을 내밀어 그의 손에서 그것을 낚아채 읽기 시작했다. 피에르는 돌로호프를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식사 내내 그를 괴롭히던 끔찍하고 흉측한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는 거대한 몸 전체를 식탁 너머로 내밀었다.

“감히 그걸 빼앗다니!” 그가 소리쳤다.

그 고함을 듣고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아본 네스비츠키와 피에르의 오른쪽 자리 사람은 놀라 황급히 베주호프를 돌아보았다.

“안 돼! 안 돼! 무슨 짓이오?” 겁먹은 목소리들이 속삭였다.

돌로호프는 맑고 즐거우면서도 잔인한 눈으로 피에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미소는 ‘아! 바로 이런 게 좋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당신에게는 안 주겠소!” 그가 또렷이 말했다.

피에르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떨며 인쇄물을 낚아챘다.

“이…… 이…… 비열한 놈! 결투를 신청하겠다!” 그는 더듬거리며 내뱉고 의자를 뒤로 밀치며 식탁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그 행동을 하고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온종일 그를 괴롭혀 온 아내의 죄에 관한 물음은 마침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다는 답을 얻었다고 피에르는 느꼈다. 그는 아내를 증오했고 그녀와 영원히 갈라섰다. 이 일에 관여하지 말아 달라는 데니소프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로스토프는 돌로호프의 입회인이 되기로 했고, 만찬 뒤 피에르의 입회인인 네스비츠키와 결투 절차를 의논했다. 피에르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로스토프는 돌로호프, 데니소프와 함께 늦도록 클럽에 남아 집시들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럼 내일 소콜니키에서 보세.” 돌로호프가 클럽 현관에서 로스토프와 작별하며 말했다.

“마음은 아주 평온한가?” 로스토프가 물었다.

돌로호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좋아, 결투의 비결을 단 두 마디로 전부 말해 주지. 결투하러 가면서 유언장을 쓰고 부모님께 다정한 편지를 보내고,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자는 바보고 틀림없이 지게 돼.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확실하게 상대를 죽이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나가면 모든 일이 잘될 거야. 코스트로마의 곰 사냥꾼이 내게 하던 말과 같지. ‘사람은 누구나 곰을 무서워하지요. 하지만 막상 곰을 보면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그놈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나도 그래. À demain, mon cher.*”

* 내일 보세, 친애하는 친구.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피에르와 네스비츠키는 마차를 타고 소콜니키 숲으로 가서 이미 와 있던 돌로호프, 데니소프, 로스토프를 만났다. 피에르는 눈앞의 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문제에 골몰한 사람처럼 보였다. 수척한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다. 그는 분명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햇빛에 눈이 부신 사람처럼 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정신을 온통 사로잡은 생각은 두 가지였다. 잠 못 이룬 밤을 보낸 뒤 이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된 아내의 죄, 그리고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의 명예를 지켜 줄 이유가 전혀 없었던 돌로호프의 무죄였다…… ‘나라도 그의 처지였다면 아마 똑같이 했을 거야.’ 피에르는 생각했다. ‘틀림없이 나도 똑같이 했을 텐데, 그렇다면 이 결투와 살인은 왜 하는 거지? 내가 그를 죽이거나, 그가 내 머리나 팔꿈치나 무릎을 맞히겠지. 여기서 떠날 수는 없을까? 달아나 어디엔가 몸을 묻고 살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는 구경하는 이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침착하고 넋이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오래 걸립니까? 준비는 다 됐습니까?”

모든 준비가 끝나고 경계를 표시할 군도 두 자루를 눈 속에 꽂고 권총에 탄환을 장전하자, 네스비츠키가 피에르에게 다가왔다.

“백작님, 제가 이 중대한, 참으로 중대한 순간에 모든 진실을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저를 입회인으로 택해 주신 백작님의 신뢰와 영예에도 보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머뭇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제 생각에는 이번 일에 충분한 이유가 없으며, 이 일로 피를 흘릴 까닭도 없습니다…… 백작님이 잘못하셨습니다. 온전히 옳지는 않으셨고, 너무 성급하셨습니다……”

“그렇소, 끔찍하게 어리석은 일이지.” 피에르가 말했다.

“그렇다면 유감의 뜻을 전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상대도 분명 받아들일 겁니다.” 네스비츠키가 말했다. 그는 이 일에 관계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또 비슷한 경우에 놓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직 일이 실제 결투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백작님도 아시겠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사태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명예롭습니다. 어느 쪽도 모욕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전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니! 무슨 말을 더 하겠소?” 피에르가 말했다. “다 마찬가지요…… 준비는 다 됐습니까?” 그가 덧붙였다. “어디로 가서 어디를 쏘아야 하는지만 말해 주시오.” 그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권총을 손에 들고 방아쇠를 다루는 법을 묻기 시작했다. 이전에 권총을 손에 쥐어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사실을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아, 그렇소. 이렇게 하는 거군. 알고 있었는데 잠시 잊었소.” 그가 말했다.

“사과는 안 돼. 어떤 사과도 받지 않겠어.” 돌로호프가, 그 나름대로 화해를 시도하던 데니소프에게 말하고 자신도 정해진 자리로 나아갔다.

결투 장소는 썰매를 세워 둔 길에서 여든 걸음쯤 떨어진 곳으로, 소나무 숲 안의 작은 공터였다. 지난 며칠 사이 추위가 누그러지기 시작해 공터에는 녹아내리는 눈이 덮여 있었다. 두 사람은 공터 양 끝에 마흔 걸음 떨어져 섰다. 걸음을 재던 입회인들은 그들이 서 있던 자리와, 열 걸음 간격으로 땅에 꽂아 경계선을 표시한 네스비츠키와 돌로호프의 군도 사이 깊고 축축한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날은 녹고 있었고 안개가 자욱해 마흔 걸음 떨어진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끝난 지 삼 분이나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미적거렸고, 모두가 말없이 서 있었다.